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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5

   “루카 교수님. 요즘 자주 찾아오시네요.”

   “아하하. 슬슬 2학년 학생분들이 외부 던전으로 나갈 시점이 되었으니까요. 혹시나 위험한 곳에 가시려는 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자꾸 발이 여기로 오네요.”

   

   루카는 그리 이야기를 하며 행정실 안 쪽으로 발을 들였다.

   

   과거 그와 연이 있었던 행정실의 교수는 루시와 관계된 사건으로 퇴출당했다.

   

   자신이 마음에 안 든다고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든 대가였다.

   

   선을 넘나들 생각이라면 자신이 밟는 선이 어디 있는지 잘 봤어야 했는데.

   

   그걸 못 봤으니 어쩌겠나.

   

   죽어야지.

   

   배신감. 분노. 공포. 경악.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이의 눈빛을 떠올린 루카는 순식간에 그를 지워버리고 새로운 행정실 교수를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번에 새로 온 행정실의 교수는 1왕비 파벌에 속해 있는 귀족 가문의 자식이었다.

   

   힘없는 가문의 사람이기에 공훈을 세우는 데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는 그는 빈 자리가 있다는 사실에 눈을 붉히며 달려들었지.

   

   그의 모습을 보고 여러모로 다루기 편한 사람이라 생각한 루카는 그를 써먹기 좋은 자리에 들여놓았다.

   

   이 때의 일을 은혜라 여기는 듯 행정실 교수는 루카가 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쉬이 넘어가주고는 했다.

   

   지금 루카가 규정을 어기고 다른 이들의 서류를 살피는 걸 방관하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보다 수가 적네요. 이번 아카데미 던전의 난이도가 높은 탓일까요?”

   “애초에 50층을 넘은 인원자체가 많지 않기도 하고. 50층을 넘은 학생분들도 계속해서 아카데미 던전을 공략하는 쪽을 택하고 계셔서요.”

   

   이번 아카데미 던전은 루카가 보기에도 상당한 수준을 자랑했다.

   

   던전학회와 관계된 사람들 중에서는 이번 년도의 우승은 이미 결정되어버렸다고 말하는 이까지 나올 정도로.

   

   그러니 평상시라면 아카데미 던전을 적당히 공략하다 빠져나갈 이들도 자연스레 아카데미 던전을 공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알른 영애와 그 친구분들이 던전을 공략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거다.

   

   정말 공략할 수 없는 곳처럼 보이더라도 분명 빠져나갈 방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했으니까.

   

   몇 안 되는 공략 신청 서류를 확인하던 루카는 그 사이에서 루시의 이름을 찾아냈다.

   

   전 주에 바깥에 나가시고 또 다시 바깥으로 나가시는 건가.

   

   무척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네.

   

   이번에도 주신께서 계시를 내린 것일까.

   

   루시가 가겠노라고 적어 놓은 지역의 이름을 확인한 루카는 고갤 갸웃했다.

   

   내가 아는 바가 맞다면 저 곳에는 악신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뿐일까? 세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저기에 머무는 것은 크게 세 부류다.

   

   죽음을 바라는 자. 자취를 감추기 위해 도주하는 방랑자. 귀족의 의뢰를 따라 대신 저 지역을 관리하는 용병단.

   

   이외에 그 누구도 저 척박한 장소를 찾지 않지. 저 곳을 돌아다녀봐야 얻을 것이 없으니까.

   

   알른 영애는 왜 저런 곳에 방문하겠다고 신청을 한 거지?

   

   내가 아는 알른 영애는 무의미한 일로 시간을 낭비할 사람은 아니다.

   

   그녀는 효율에 미쳐 있는 사람이야. 친구들과 관계되어 있는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테지.

   

   “흐으음.”

   

   한 번 알아보긴 해야겠군.

   

   “아. 알른 영애와 관계된 서류를 보고 계시네요. 그것 때문에 여러모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위험도를 보면 거절하는 것이 옳은데 상대가 상대이다 보니.”

   “괜찮습니다. 통과시키죠. 다른 교수분들께서 무어라 하신다면 제가 설득하겠습니다.”

   “루카 교수님께서 그래 주신다면 저야 좋지요.”

   

   싱글싱글 웃음을 짓는 행정학 교수를 보며 루카도 마주 웃음을 지어주었다.

   

   부디 나중에도 이렇게 웃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오. 루카 교수님. 예전에도 장갑을 끼셨나요?”

   “아뇨. 최근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서 끼고 다닌답니다.”

   “과연. 좋은 물건으로 보이네요.”

   

   *

   

   다시금 찾아온 주말 아침. 아침부터 친구들과 만난 나는 그들의 손에 하나씩 아공간 주머니를 쥐어주었다.

   

   “이건 뭐지?”

   “뭐일 것 같아요. 불쌍왕자님? 왕자님의 한심한 상상력으로 한 번 추리를 해보실래요?”

   “추리라고 할 것도 없지. 네가 우리한테 뭔가를 선물할 위인은 아니니. 앞으로 갈 곳에 필요한 물건이겠지.”

   

   아서의 무심한 대답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눈꼬리를 축 늘어트렸다. 그런 말을 들어서 충격을 받았다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행동해봐야 속지 않는다. 네 녀석에게 몇 번이나 당해 왔는 줄 아느냐?”

   

   대답하지 않는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입을 꾹 다물고만 있는다. 내가 할 행동은 이거면 충분하다.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

   

   “3왕자님.”

   “왕자님. 이건 좀.”

   “이건 왕자님이 나빴다.”

   “아니! 뭐냐! 왜 내가 잘못한 것처럼 되는 거냐! 여태 루시 알른이 했던 걸 보면 이게 장난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나!”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억지로 참으며 친구들의 압박이 이어지길 기다린다.

   

   3대 1로 진행되는 압박 속에서 어찌할 줄 몰라하던 아서는 결국 탐탁치않은 목소리로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그. 뭐냐. 미안하다. 내가 의심을.”

   “푸하하핳!”

   

   머쓱한 듯한 목소리를 듣다가 결국 웃음을 견디는 데 실패한 나는 황당하단 감정이 절로 묻어나는 시선을 받아내며 한참 동안 키득키득 댔다.

   

   “아. 정말. 불쌍왕자님은 가지고 놀기 참 좋네요. 볼 때마다 쿡쿡 찌르고 싶다니까요.”

   “…빌어먹을.”

   “에이. 불쌍왕자님도 즐기셨으면서 왜 화난 척 해요? 사실은 좋잖아요? 즐기고 있잖아요? 변태왕자님이니까.”

   “누가 변태라는 거냐!”

   

   아서가 소리지르는 것을 깔끔하게 무시한 나는 친구들에게 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잘 봐. 허접들. 여기에 들어 있는 건 물과 식량이야.”

   “뭐냐! 내 말이 맞지 않았나!”

   

   지난 주에 우리가 갔던 장소는 식량 때문에 무언가를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은 장소였다.

   

   근처에 꽤 괜찮은 도시가 있기도 했고, 애초에 숲부터가 식량을 구하기에 쉬운 곳인지라 이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

   

   그렇지만 지금부터 우리가 갈 곳은 그렇지 않다. 모래의 빛깔로 물들어 있는 그 곳은 풀은커녕 그럴 듯한 호수조차도 찾기 어려운 장소니까.

   

   “서쪽의 사막인가요?…”

   “예전에 격려차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곳이었죠. 힘든 여행이 되겠네요.”

   “사막. 재미없을 것 같아.”

   

   나는 친구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쪽의 사막은 내 입장에서도 굳이 방문하고 싶은 장소는 아니었다.

   

   숨겨져 있는 것이 몇 가지 있긴 하지만 지금의 내게 유용한 건 아니기도 하고.

   

   몸이 약한 캐릭터로 가면 실시간으로 체력이 깎여나가던 사막이 얼마나 개 같은 장소인지 상상이 잘 안 되기도 해서.

   

   이번에 거길 들리고 나면 다시는 찾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쩌겠어. 너네들의 능력이 허접해서 거기에 갈 수밖에 없는데.”

   “대답해라! 내 말이 맞지 않았나!”

   “얌전히 따라오기나 해. 허접들.”

   “젠장! 딱밤. 딱밤 한 대만 때리게 해다오! 한 대마아안!”

   “여자애를 때리고 싶다고 소릴 지르시다니. 불쌍왕자님은 정말 야만스러우시네요.”

   “또 이런 거에만 대답을… 으아아악!”

   

   *

   

   순간이동의 진을 타고서 도착한 장소는 사막 한 켠에 존재하는 오아시스였다.

   

   굳이 사막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여행객들이라면 자연스레 들를 수밖에 없는 이 장소에는 꽤 많은 인원들이 모여 있었다.

   

   “…저기 저 분들은.”

   “아카데미에 계실 분들이 여기에 왜?”

   “어떡해야 하지? 인사를 드려야 하나?”

   

   우리의 면면을 본 사람들은 순식간에 우리 정체를 알아차리고 웅성이기 시작했다.

   

   귀족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용병들답게 유명인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는 한편 우리의 모습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 다급히 물러나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자 하는 이들이겠지.

   

   우리가 찾아옴에 따라 만들어진 소란 속에서 난 미리 불러둔 사람을 찾았다.

   

   카리아를 경유해서 불러둔 용병단이 대기하고 있을 텐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알른 가문의 영애시여.”

   

   내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와 무릎을 꿇은 남자는 파트란 가문의 축제에서 만났던 용병이었다.

   

   베네딕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했었던 그는 순간이동의 후유증 탓에 널부러져 있는 친구들을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아들놈을 신경 써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 녀석에게도 귀족분들과의 연이 생겼더군요.”

   “…응?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하찮은 용병의 아들 따위에게 신경을 써줬다고?”

   “토비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토비?

   

   아! 생각났다!

   

   지난 학기에 내가 만든 던전을 공략하던 평민 남자애.

   

   던전을 공략하는 발상이 무척이나 좋아서 애버리한테 붙여줬었지.

   

   솔직히 애버리 따위와 함께 던전을 공략하기에는 많이 아까운 재능이었어.

   

   좀 더 제대로 된 녀석들과 함께 했다면 상위권과도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수 있지 않았으려나.

   

   “기억을 해주셨군요. 기쁜 일입니다.”

   

   용병단장은 내 표정을 보고 환히 웃었다. 내 입장에서는 별 생각하지 않고 한 일이었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무척 은혜로운 일이었던 모양.

   

   “알른 가문에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여행에서 최선을 다해 보필할 것을 약속 드리겠습니다.”

   

   용병단장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를 따라서 간 오아시스의 바깥에는 군대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규율이 잘 갖추어진 용병단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마차 안에 타고 계시면 미리 이야기 된 목적지까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말보다 훨씬 더 크고 사나워보이는 짐승이 앞에 매달린 마차의 안은 사막의 풍경에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쾌적했다.

   

   조이의 설명에 따르면 편의를 위해 온갖 마법을 설치한 귀빈용 마차라는 것 같았다.

   

   “이런 사막에서 사용하기에는 너무 고급스러운 마차네요. 무척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아요.”

   

   마차 안을 둘러보며 가볍게 웃음을 지은 조이는 그 위에 몇 가지 마법을 추가했다.

   

   여행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파트란 가문의 비법이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마차의 바퀴가 움직이며 차 내부가 덜컹거리기 시작했을 무렵. 아침의 놀림 때문에 신경질이 나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아서가 한숨과 함께 무거운 입술을 들었다.

   

   “이쯤 되었으니 슬슬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루시 알른.”

   “무엇인가요. 불쌍왕자님?”

   “우리에게 조언을 해 줄 그 대마법사라는 작자가 도대체 누구냐? 누구이기에 이런 험악한 곳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냐.”

   

   혹여 정체를 숨겨야만 하는 입장을 지닌 사람이냐는 아서의 물음에 난 별 거 아니라는 듯 가볍게 대답을 해줬다.

   

   “옛날에 이름을 떨쳤던 정신병자에요. 머리는 이상하지만 실력은 확실한 분이죠.”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

   “영웅이란 과분한 호칭을 지닌 분이기도 하고요.”

   “…영웅이라면. 설마.”

   

   자연스레 내 쪽으로 모여든 친구들의 시선을 보면서 나는 웃음과 함께 고갤 끄덕였다.

   

   “너희들의 허접한 상상으로도 떠올릴 수 있는 그 미친 놈 맞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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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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