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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5

    <465 – 눈치 있는 정보원>

     

    교관복을 입은 사내가 디스트로이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적길드 소속인 저희가 아카데미까지 들어와도 괜찮은 겁니까? 양지에서의 활동은 오랜만이라 너무 긴장이 됩니다.”

    “재단의 장학생들도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교수들은 모두 자신들의 측근을 전속교관으로 꽂아 넣고 아카데미에 끌이고 있지. 너희라고 못 할 건 없다.”

     

    아무리 인생 바쁘게 사는 사람이라도 없는 시간을 쥐어짜내서라도 일정에 추가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건강에 적신호를 느끼고 진단을 받을 때.

    마음이 맞은 상대와 연애를 할 때.

     

    전자는 나쁜 일이지만 후자는 좋은 일이다.

    그리고 디스트로이어가 지금 필요성을 느끼는 일정은 애석하게도 전자에 가까웠다.

     

    “화산지부에 맡긴 적색마탑의 조사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수상한 동향이 확인되었습니다. 마탑의 경호마법진이 보수 정비를 이유로 일시적으로 정지되었으며 경호를 맡은 마법사들도 일부 자리를 비웠습니다.”

    “화산폭발을 성립시키기 위해 포석을 두기 시작했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디스트로이어는 세계제일의 도적이다.

    그를 따르는 도적길드도 용사파티가 마계를 횡단하는 여정을 펼치면서도 정보를 모으고 물자를 제공하는데 충실한 도움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북부 마계령 최전선과 아득히 거리가 먼 남부신성도시국가연맹에서는, 심지어 오색마탑 중 하나인 적색마탑의 불순한 움직임을 막는 일은 그로서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증거수집.”

    “실패했습니다. 허술한 외부경비와 달리 내부보안은 철저합니다. 주요시설에 침입한 조직원은 모두 불타 죽었습니다.”

    “주요건물 설계도 및 병력배치도.”

    “마탑이 매입 후 개조하기 이전의 설계도를 입수했습니다. 병력배치 세부사항은 확인 중입니다.”

    “길어도 일주일이다. 빠르면 며칠 내로 터질지도 몰라. 서둘러라.”

    “명심하겠습니다.”

     

    핑크베리 교수 앞에서는 개망신을 당한 어린이애호가 아님호소자인 디스트로이어.

    도적길드 앞에서는 세계제일의 도적이자 전대용사로서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

     

    “덤으로 아카데미에 머무르면서 따로 알아보라고 한 건은 어떻게 되었지.”

    “오크노디의 조사에 붙인 인원 다섯 중 둘은 오크노디 본인에게 걸렸습니다. 나머지 둘은 경호로 붙은 메이드에게 경고를 받고 물러났습니다.”

    “하나는 남았군.”

    “아카데미 3학년 중퇴자라기에 뭣도 없는 줄 알았더니 의외로 실력도 괜찮은 녀석이었나 봅니다.”

    “결과는?”

    “오크노디는 적색마탑의 건에 대해 특별히 인지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험에 충실히 매진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오늘 오전 위어드 교수의 <자연의 분노> 시험에서도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다만… 우려사항이 있습니다.”

     

    오크노디를 위해 그녀의 걸림돌이 될 이사장의 세력과 작전을 방해하는 디스트로이어.

    아무리 큰일을 앞에 두고 있더라도 규모에 눈이 멀어서 정작 지켜야 할 아이를 못 지켜서야 하비를 잃은 경험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꼴이 된다.

     

    ‘그 아이만큼은 절대로 하비 같은 꼴을 겪게 만들지 않겠어.’

     

    그런 다짐의 의미를 담아서 오크노디에게 붙여둔 정보원은 실로 황당한 정보를 물어왔다.

     

    “오크노디가 다른 누군가의 조언을 받아 다른 이의 행실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재단의 마도구를 이용해 교신하며 조언을 받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크노디에게 재단의 새로운 고위인사가 붙었을 가능성이 있군. 3학년 중퇴자 정보원을 고정으로 채용하고 지원을 밀어주도록.”

    “알겠습니다.”

     

    당장은 오크노디 곁에서 한발 물러나겠지만 재단의 큰 계획 하나를 무너뜨리거든 우위는 이쪽이 거머쥐게 된다.

    핑크베리 교수의 협력을 얻은 이상, 재단과의 수 싸움에서는 결코 패해서는 안 된다.

     

     

    * * *

     

     

    아카데미 3학년 중퇴자 출신의 이력은 기프트 아카데미에서는 낙오자 취급일 뿐이지만 도적길드에서는 우수한 인재라는 증표가 되었다.

     

    “히틀러 씨가 이렇게나 대단한 실력을 지니고도 4학년으로 졸업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군요. 오늘부터 저희와 일해주시길 바랍니다.”

     

    방문 첫날 신원이 검증되자마자 채용된 이래로 히틀러가 맡은 일은 여덟 건.

    모든 의뢰를 완벽하게 수행해내며 신용을 쌓은 히틀러는 마침내 커다란 의뢰를 받게 되었다.

     

    “VIP로부터의 의뢰입니다. 기프트 아카데미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할 유능한 인재를 구하고 있습니다. 부담이 되신다면 거절하더라도 불이익은 없습니다.”

    “설마. 오히려 바라던 바입니다. 내 진가를 알아주지 못한 아카데미에 한방 먹이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죠.”

     

    너는 4학년으로 올라설 자격이 없다.

    진급시험에 실패한 그를 앞둔 담당교수의 매정한 선언을 떠올리며 히틀러의 가슴은 차갑게 식었다.

    증명해주마.

    내가 정녕 너희들의 위에 올라설 자격이 없었는지.

    너희가 나라는 사람을 잘못 보았는지.

     

    “격리실의 융합생물체를 해방시키는 테러. 아니면 동아리실의 연구성과를 탈취하는 장물의뢰. 뭐든 맡겨주십시오. 학생의 납치 및 암살만 아니라면 기꺼이 수락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염려하는 그런 의뢰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위험인물의 감시 및 정보수집이 주 임무가 될 겁니다.”

     

    히틀러는 신중하게 물었다.

     

    “상대가 4학년입니까?”

    “자세한 사항은 아카데미에 도착한 뒤에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죽을 자리에 사람을 보내는 의뢰는 아닙니다. 공식라인을 통해 전속교관 및 보조교원의 신분으로 입성할 예정입니다.”

     

    잔뜩 긴장하며 아카데미에 도착한 히틀러에게는 천만 다행히도 감시상대는 4학년이 아니었다.

    오히려 978기에 입학한 그와는 입학기수가 4년이나 차이나는, 981기에 막 입학한 따끈따끈한 햇병아리 1학년이었다.

     

    “VIP의 의뢰라더니 막상 별것도 아니군. 애 하나 졸졸 따라다니는 노릇이라니.”

    “고작 1학년의 감시에 이 정도의 고급정보원을 다섯이나 동원하다니, 지나친 사치 아닌가?”

    “그만큼 일을 확실히 하고 싶으신 거겠지. 방심들 하지 말자고.”

    “우리 같은 거리 출신이 아니라 아카데미 출신의 귀하신 도련님도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 흐흐.”

    “…”

     

    같은 의뢰를 받은 동업자들의 은근한 견제나 신경전에도 히틀러는 코웃음조차 치지 않았다.

    실력을 감추는 데 능한 정보원들은 상대의 수준을 섣불리 단정 지을 수 없다.

    그러나 기프트 아카데미에서 3학년이 된 학생이라면 비법을 배울 수 있다.

     

    1학년의 안목.

    마나를 읽어내는 견문안, 서치아이Search Eye.

     

    2학년의 관조.

    역장을 뚫는 관조안, 피어스아이Pierce Eye.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기술.

    3학년의 염탐.

    마력반응을 감추고 눈의 빛남 없이 상대를 견문하거나 관조할 수 있는 염탐안, 스파이아이Spy Eye.

     

    스파이아이를 습득한 그는 상대의 경계를 사거나 마력반응의 감지에 걸리지 않고 혼자만 일방적으로 적을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는 우위를 지닌다.

    히틀러의 염탐안은 넷 중에 둘은 명백한 하수이고 하나는 자신에 견줄만하며 놀랍게도 한 명은 자신보다 강자임을 알려주었다.

     

    ‘그래봤자 너희는 기프트 아카데미를 모르지.’

     

    자연스럽게 동선을 짜고 아카데미에 배치된 다른 교관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메모리마법을 걸어둔 물건을 적당한 자리에 던져둔 그와 달리, 다른 정보원들은 표적의 동선에 잠복하거나 근처로 접근했다.

     

    “응?”

     

    VIP의 감시요청대상, 1학년 오크노디.

    앙증맞은 체구의 여자아이는 흐릿한 견문안의 반응을 감추려 신문지를 들거나 옷깃을 여민 정보원들의 시도가 무색하게 즉시 품에서 돌멩이를 꺼냈다.

    저걸로 뭘 하나 멀뚱멀뚱 지켜보던 정보원 둘에게 엄청난 속도로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퍼벅!

     

    “끄윽…!”

    “갑자기 무슨 짓이냐!”

    “그건 제가 할 말이랍니다. 갑자기 견문안을 펼치다니, 어떤 사악한 꿍꿍이를 꾸미는 건가요? 설마 마력량이 적은 1학년을 납치해서 학생회 몰래 부정한 일에 동원하려는 꿍꿍이를 꾸미는 건 아니겠죠?”

    “오, 오해다.”

    “우린 수상한 사람이 아니야.”

    “흐음… 재학생 출신 교관 아니죠? 누가 꽂은 전속이에요? 전속교관이라기도 약한데. 두 사람 다 보조시구나? 그것도 같은 소속. 이런 짓은 제국에서 자주 벌이는 데, 정치질에 능한 교수들은 데려올 인재도 강해서 이렇게 어설프진 않으니 비주류 교수님이 꽂은 분들이시겠군요!”

     

    정보원들은 애써 사색이 되려는 얼굴빛을 의도적으로 억제하고 피를 순환시키며 변명을 둘러댔지만 이미 마음 속으로는 단단히 기가 꺾였다.

    견문안을 펼치자마자 공격을 당한 것도 억울한데 심지어 그들은 회피를 시도했었다.

    그런데도 공격이 적중당한 이유를 본인들은 모르는 눈치지만 히틀러는 짐작이 갔다.

     

    ‘역시. 각인을 썼군.’

     

    모두가 떠난 뒤에 바닥에 떨어진 돌 주변에 남은 잔류마나를 읽고 히틀러는 알아차렸다.

     

    ‘유도마법이 걸렸어. 그나마도 크기가 작은 돌이라 인챈트가 조금만 걸려서 망정이지, 각인실력을 보아서는 더 큰 돌이라면 위력증강이나 폭발주문도 새길 수도 있었겠어.’

     

    1학년 오크노디는 각인의 재주가 뛰어난 생산학부 지망생일 가능성이 높겠군.

    덤으로 심계가 대단히 깊은 아이야.

    마치 재단에서 조기교육이라도 받은 것처럼.

    추가정보를 수집하던 히틀러는 오크노디가 재단의 수석장학생이며 재단의 조기교육을 받았다는 정황까지 순식간에 도달했다.

    히틀러는 정보를 머릿속에 새겨두며 적당한 자리에 심어둔 메모리장치를 회수했다.

     

    -선배도 참, 걱정이 너무 많아요.

    -어차피 허접좆밥들인데. 앗, 이건 핑크베리 교수님 말투였지 참!

    -아무튼 신경 끄고 시험이나 보러 가요.

     

    ‘혼잣말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모자에서 희미하게 마력반응이 검출되는군.’

     

    선배. 모자로 위장한 통신마도구를 상시 착용한 채로 고학년과 통신하는 1학년이라.

    수상한 냄새가 풀풀 풍기기 시작했다.

    역시나 재단의 수석장학생.

    디스트로이어가 감시를 요청할 만큼 수상하고 특별한 아이였다.

    다른 정보원들도 수상함을 느끼고 그녀가 시험을 치르는 강의실에 접근하려다가 멈칫했다.

     

    ‘위기감지는 되는군. 실력을 허투루 쌓지는 않았어.’

     

    잡스러운 기능으로 기능의 총량만 늘린 잡종들과 달리, 실용적인 기능을 제대로 연마했는지 아카데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에도 다른 정보원들은 강의실에 펼쳐진 은밀한 결계를 간신히 회피했다.

    정보원들은 전략을 바꾸어 정보를 얻으려면 강의 도중이 아니라 혼자가 될 때를 노렸다.

     

    스스슥.

     

    기숙사를 향해 은밀하게 접근하던 정보원들의 걸음이 멈추었다.

     

    “아가씨의 개인실의 청소담당은 당신들이 아닙니다. 어디서 온 누구인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순순히 물러나십시오.”

    “…”

     

    정보원 한 명이 빠르게 견적을 내고 녹색머리 메이드의 경고를 받아들여 물러났다.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담배를 꺼내든 정보원이 담배에 숨을 불어넣었다.

     

    훅! 슈슉.

     

    담배로 위장한 블로우건에서 날아든 수면침이 메이드의 손에 들린 빨래바구니에 꽂혔다.

     

    <원격폭발>

     

    자욱하게 안개가 일어날 정도로 피어오른 수면가루가 메이드를 집어삼켰다.

    호흡을 참고 다가가던 정보원은 빨래바구니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다가가다가 멈칫했다.

     

    “…”

     

    빨래바구니가 떨어지는 소리는 들었다.

    사람이 쓰러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보원이 다급히 물러나기도 전에 연기를 가르고 날아든 수건이 그의 손목을 낚아챘다.

     

    <구속>

    <무기강탈>

    <당기기>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연계기능에 끌려간 정보원의 입으로 메이드가 손을 올렸다.

    입술을 다물고 버티려던 정보원의 목젖을 메이드가 손날로 가격했다.

     

    “컥!”

     

    벌어진 입으로 쏙 들어간 사탕.

    정신을 잃은 정보원이 그대로 기절했다.

     

    “…”

     

    기절한 정보원과 빨래바구니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메이드가 사라진 뒤에야 히틀러는 식은땀을 흘리며 지면에 남은 흔적을 훑었다.

    땅에 파인 자국.

    힘과 균형의 이동.

    당장 3학년 기사학부에 입학해도 이상하지 않은 대단한 체술을 지닌 메이드였다.

     

    ‘내가 중퇴한 사이에 아카데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1학년도 이상하고 메이드도 이상하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무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험장을 염탐하고 1학년들의 수준을 봐야겠다.

     

    ━━━

    [자연의 분노]

    -금요일 9시~13시

    -교수 : 위어드

    -마법학부, 교양

    ━━━

     

    <자연의 분노> 강의실.

    히틀러는 마지막 남은 정보원이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강의실에 잠입한 모습을 발견했다.

     

    “마침 잘됐네. 시간 비는 교관이면 와서 시험 진행하는 것 좀 도와.”

     

    위어드 교수가 접근하기 좋으라고 판까지 깔아줬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떤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애들이 마나석에 깃든 마나퍼즐 푸는 거 옆에서 체크하면서 기록해. 무슨 마법 썼는지. 마나퍼즐은 어디까지 풀었지.”

    “알겠습니다.”

     

    제 실력만 믿고 순순히 수락한 다른 정보원과 달리, 히틀러는 싸한 기분이 들었다.

     

    “한 장소에서 대량의 마법을 사용하면 자연마나가 비고 다른 차원의 마나가 딸려오며 이상현상이 벌어질 텐데, 마력집적진이나 보호장구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거 없어.”

    “네?”

    “마력집적진과 보호장구 없이 대량의 마나를 다수의 학생이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어떤 이상현상이 일어날지 연구논문으로 쓸 거야.”

    “…”

    “방해되면 안 되니까 혹시 착용한 보호장구 있으면 반납해.”

     

    히틀러는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제 교수님한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섯 명의 정보원 중에 마지막까지 남은 비결은 아카데미 생활로 단련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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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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