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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5

       

       

       아까 마주쳤을 때 팔뚝을 비롯한 근육이 전보다 두꺼웠던 것이, 그저 근육강화 능력 덕분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의 생체조직을 흡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던 것이었나! 

       

       고자가 되었을 줄 알았는데 ‘회복했다’고 말했던 것도 그래서였고……. 

       

       ‘생각보다 위험한 놈이었네. 뭐, 그러든 말든.’ 

       

       또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이번에는 애매하게 살아서 시체 파밍을 못 하도록, 바로 목이나 심장을 갈라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내가 66호 죄수를 향해 칼을 겨누고 곧장 달려나갈 자세를 취하자 놈은,

       

       “하! 이번에는 안 당하지!”

       

       하며 또다른 간수의 시체를 냉큼 집어들어, 마치 방패라도 된 듯이 자신의 앞을 막았다. 뭐지? 사람 몸뚱이로 내 검격을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건가? 어차피 이미 죽은 시체니까, 거리낄 것도 없—

       

       『으윽…… 사, 살려, 줘……』

       

       ‘이런, 젠장.’

       

       놀랍게도, 놈에게 붙잡힌 간수는 아직 살아 있었다. 놈은 아직 숨이 붙어있는 간수를 붙잡아, 방패 겸 인질 겸 피주머니로 쓰고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로서는 이름도 모를 간수의 목숨 따위, 어찌 되든 상관도 없긴 했지만……

       

       『저기다!』

       『66호! 역시 네놈이었구나!』  

       

       저편에서, 다른 쪽의 소란을 진압하고 온 간수들이 우르르 몰려왔기 때문에, 나도 66호에게 붙잡힌 간수를 함부로 해칠 수는 없었다. 

       

       『66호! 다, 당장 간수를 내려놓아라!』

       

       몇몇은 소총을 들고, 각성능력자인지 무기를 들고 있거나 손 끝에 불덩이나 물 같은 것을 띄워놓은 간수도 더러 있었지만, 

       

       66호 죄수가 간수를 인질(겸 방패 겸 피주머니) 삼아 들고있다보니 섣불리 공격해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붙잡힌 동료가 걱정된다기보단 자기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닐까? 죄수를 아무 거리낌 없이 곤봉으로 두들겨 패던 놈들이, 지금은 제 목숨 아깝다고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내가 상대할 수밖에 없나. 어차피 66호의 목표는 나였으니까.

       

       나는 칼을 휘두르며 짓쳐들어갔다. 66호 죄수는 한쪽 손으로는 인질로 잡은 간수를 붙들고 방패로 쓰며, 다른 손으로 나를 공격해왔다. 

       

       ‘저 손아귀에 잡히면 안 된다!’

       

       66호의 손에 들린 간수도 주의해야 했고, 놈의 신체에 혹여나 스치는 것도 조심해야 했기에 비록 아까처럼 쉽게 팔다리를 끊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번은 꽤 깊게 상처를 내는 데에 성공하기는 했다. 

       

       하지만,

       

       『크아악! 내 팔! 팔이! 사, 살려줘—!』

       

       66호 대신에 비명을 내지르는 간수. 내가 66호에게 상처를 낼 때마다, 66호는 자신의 손아귀에 쥐어진 간수를 통해 곧바로 스스로를 재생시키는 것이다. 

       

       “흐하하! 그런 간지럽지도 않은 칼질 따위, 소용 없다!”

       

       피를 흘리면 간수의 피를, 팔뚝을 베이면 간수의 팔뚝을, 다리를 베이면 간수의 다리를 흡수해 대체하는 방식의 재생. 실시간으로 보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혈액형같은건 상관 없나? 거부반응은? 그냥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동일한 신체부위만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 없는 건가? 성별도 무관인가?’

       

       그러기를 몇 번을 반복해서 들고 있던 간수가 비쩍 말라 죽어버리자, 66호는 주변에 있던 다른 간수를 잽싸게 주워들었다. 붙잡힌 간수는 운 나쁘게도, 각성능력이 없거나 별로여서 저항할 힘도 없는 일반인이었던 모양이다. 

       

       『으악! 놔, 놔 줘! 다들 나를 살려 줘!』

       『……!』

       

       생체 포션마냥 쓰던 간수가 메마른 채로 픽 죽어버리자 다른 희생양을 잡아드는 광경에 다른 간수들은 기가 질린 표정이었고, 

       

       ‘뭐 이런 새끼가 있어!’

       

       기껏 칼로 치명상을 몇 번이고 입혀도, 손에 붙들고 있는 간수를 흡수하며 금새 회복해버리는 66호의 모습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흐흐! 날 막고 싶으면, 간수 째로 베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응? 사람을 여럿 죽이고 들어왔다더만, 간수는 못 죽이겠나? 으응?”

       

       나를 약올리듯 그렇게 말한 66호 죄수는, 자신을 멀찍이 둘러싼 간수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간수든 누구든, 나를 쓰러트리려면 와 봐라! 불알 달린 사내자식이라면 와 보란 말이다! 흐흐…… 날 막을 놈은 없을걸!”

       

       그 말이 단순히 허세는 아닌 모양이었다. 66호에게 겁을 집어먹은 간수들은 멀찍이서 둘러싸기만 한 채 몸을 사리기만 할 뿐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고, 

       

       나 역시, 다른 간수들이 지켜보고 있으니 66호 놈에게 붙잡힌 간수를 도외시하고 마음껏 공격을 전개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너! 피하지 말고 한 대만 맞아라!”

       

       체인을 휘감은 커다란 주먹이 나를 향해 쇄도해 왔다.

       

       ‘쳇……!’

       

       나는 그저 놈의 공격을 막거나 피해내며, 어떻게든 놈의 몸에 닿지 않으려고 조심할 뿐. 

       

       그나저나 이 놈은 어떻게 도망칠 생각인 거지? 주변에 간수가 수두룩한데, 이렇게 일을 벌려놓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나? 

       

       —까앙!

       

       나는 놈의 주먹을 칼로 쳐내고 한걸음 옆으로 피하며 물었다.

       

       “너 말야. 이러고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냐?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투항하지?” 

       “흐흐…… 여기 있는 간수들 다 쳐죽이고 도망치면 그만이다. 그리고 뭐, 어차피 일본은 망한다며?” 

       “어라.”

       “뭘 놀라나? 나도 그런 헛소리는 들었어.”  

       

       저 놈도, 노인이 병감에서 한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설마 일본이 망한다는 얘기를 듣고 이런 깽판을 벌일 자신감을 얻은 것인가? 나는 놈에게 말했다.

       

       “그 소문과는 별개로, 조선이 해방되면 네 죄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 같냐? 너는 여전히 감방 신세일걸.”

       “흐…… 사실, 조선 해방이니 뭐니 내 알 바 아니야. 조선이 해방되어봤자 내 팔자가 필 것 같은가? 흥…… 그럴 리 없지!” 

       

       놈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전쟁이 난다면서? 그럼 도망쳐야지. 만주나 서백리아 같은 곳으로 도망치면 누가 알아! 곧 망할 일본이든 아니면 조선 나라든, 날 잡을 여력도 정신머리도 없을걸!”

        

       그 말과 함께 날아드는 통나무같은 다리를 피하며, 나는 짧게 생각했다.

       

       ‘멍청한 놈. 기왕 도망칠 거면 미국으로 갈 생각을 해야지.’

       

       간악하고 비겁한데다가 심지어 지능도 낮다. 나는 놈을 비웃으며 말했다.

       

       “착하게 살겠다는 선택지는 아예 없는 거냐?”

       “흐…… 어차피 나같은 놈은 사회에서는 못 살아갈 위인이란 말이야.” 

       

       놈은 손에 든 간수—피주머니 신세가 된 간수를 보란 듯이 휘두르며 말을 이었다. 

       

       “나같은 놈은 이렇게밖에는 살 수가 없다. 하지만 너는!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좋은 능력을 얻어서 좋은 학교에 다니고…… 사람을 죽여서 감방에 들어왔어도 곧 보석금을 내고 나갈 모양이라지?”

       

       음. 그것이 저 놈에게도 말해 준, 원래의 내 탈출 시나리오였지. 66호 죄수는 붉어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너같은 놈을 도무지 용서할 수가 없어……! 그래서 너만은 꼭 죽이고 가려는 거다……!” 

       

       끔찍하고 배척받기 충분한 능력을 가진 66호 죄수로서는, 내 정상적인 능력과 부유한 팔자가 어지간히 질투가 나는 모양이었다. 

       

       ‘알고보면 나도 그렇게 형편 좋은 팔자는 아닌데.’

       

       그렇게 놈을 비웃으면서도, 또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런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조선이 해방되고 대한민국이 세워져도 어차피 이런 사람은 사회로 편입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쩌긴 뭘 어째.’

       

       나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이 놈은 그저 흉악한 범죄자일 뿐이다. 일본이든 조선이든 대한민국이든 미국이든, 어쨌든 감방에 쳐넣거나 사형을 시켰을 범죄자.

       

       놈의 사정이 어떻든지간에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놈을 제압하는 것 뿐이다. 나는 쓸데없는 고민을 마치고 지금 닥친 상황으로 돌아와 놈을 노려보며 말했다.

       

       ‘일단 저 놈이 들고 있는 간수를 치워야 해.’

       

       공격이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금방 회복해버리니 대미지가 쌓이지 않는다. 놈이 회복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놈의 손아귀에 닿기만 해도 생체조직이 흡수된다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간수를 빼내기는 커녕 함부로 접근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일이었다.

       

       ‘틈. 잠깐이라도 틈이 난다면……’

       

       그 때, 

       

       “제기랄, 가만 놔 두쇼! 내 이래보여도 제법 명사수라, 놈만 정확하게 맞출 수 있으니까!”

       

       하고 실랑이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서 슬쩍 돌아보니, 

       

       ‘……송병오?’

       

       송병오 녀석이 어디서 소총 하나를 주워들고서는 66호를 겨누고 있었고, 주변에 있던 간수 두어 명이 그런 송병오에게서 총을 빼앗으려고 우격다짐을 벌이고 있었다. 죄수복을 입고 있는 녀석이 총을 들고 있으니 가만 두고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들 진정해요! 이 사람, 총은 잘 쏘니까!』

       

       다행히 여간수 복장의 홍옥례가 송병오를 지켜주고 있었기에 총을 빼앗기지는 않은 송병오였다. 

       

       ‘이거다!’

       

       나는 송병오가 총을 빼앗기기 전에 그쪽을 향해 외쳤다. 

       

       “쏘게 놔 두세요! 송병오, 쏴!” 

       “쏘겠네!”

       

       —타앙!

       

       총성이 울리고,

       

       —퍼억!

       

       “허억, 으거걱!” 

       

       타격음, 아니 파열음과 함께, 66호 죄수가 순간 허리를 접으며 고꾸라질 듯 비척거렸다. 

       

       어우, 송병오 녀석. 총 잘 쏘는 거야 알았지만,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그 부위만을 노려서 맞췄지? 알을 맞추었는지 막대기를 맞추었는지는 몰라도, 정확하게 그 부위에서 선지가 번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크어억! 으극, 으거걱! 내, 내 양물이———!”

       

       물론, 이대로 놔 두면 놈이 간수를 흡수해 금방 회복되어버린다. 다른 간수들도 그걸 알기에 함부로 격발하지 못했던 것이고.

       

       하지만 잠깐의 틈이 필요했을 뿐인 나는, 놈이 국부를 관통하는 격통에 주춤하는 순간을 타서 놈의 거리 안쪽으로 깊숙히 파고들어, 

       

       —스윽! 

       

       ……베어버리는 대신, 놈이 붙잡고 있던 간수를 빼앗아 들쳐메고 바로 뒤로 물러섰다. 혹시나 잠깐이라도 놈과 접촉했다간 내가 고자가 될 수도 있으니 신중을 가한 것이다.  

       

       ‘아무튼 이걸로 됐어.’ 

       

       나는 간수를 멀찍이 떨궈놓고는 66호 죄수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놈은 이제 회복 수단을 잃었고, 격통으로 인해 비틀거리고 있다. 

       

       나는 다시금 칼자루를 쥐었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지금처럼 무방비한 놈에게 치명타를 먹이는 일이야 쉬운 일이지만, 자칫하면 내가 고자가 되는 수가 있으니까. 

       

       ‘……후우.’

       

       조심하자, 조심. 이제 놈의 손아귀에 닿는 것만 주의하며, 머리를 따버리든 심장을 찌르든 막타만 먹이면……

       

       “그헉, 또, 또 비겁한 짓을—! 재, 재생을 해야 해!”

       

       놈은 비틀거리며 두리번거리더니,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간수 한 명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아니, 시발 뭐야.’

       

       기껏 놈이 들고있던 간수를 치워놨는데, 저 간수는 또 어느 틈에 알짱거리고 있던 거야? 자진해서 고자가 되고 싶었나?  

       

       하지만, 붙잡힌 간수는 어찌 된 일인지 비명을 지르는 대신, 

       

       “날 가지고 네 양물을 재생하진 못할걸!”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뭐, 뭐엇……!”

       “왜냐하면, 난 양물같은 거 없는 계집애니까!”

        

       붙잡힌 간수는 여간수—아니, 여간수 복장을 한 홍옥례였던 것이다! 

       

       성별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동일한 신체 부위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66호는 홍옥례를 붙잡아 놓고도 자신의 부상을 재생시키지 못해 당황하고 있었다. 

       

       “뭐, 뭐야! 하필이면 계집이……!”

       “받아라!”

       

       채찍으로 66호를 칭칭 감은 상태에서 관절기를 쓰듯 놈의 팔뚝 안쪽으로 자신의 팔뚝을 교차시켜 붙잡은 홍옥례는, 

       

       “전격(電擊)……” 

       

       —파직! 빠지지직!

       

       어느샌가 66호의 몸에 칭칭 감겨 있는 채찍과 자신의 몸에서 샛노란 빛을 발광시키며, 

       

       크게 외쳤다. 

       

       “오랏줄 활개감기이이잇—!”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여기까지! 이번주도 주5회업로드 성공!!!!

    그나저나, 어째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기술명 짓는 센스가 심각하게 없는 것 같지용……?

    혹시나 싶어 말하지만 제가 그런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이 그런 겁니다. 애들이 1930년대 사람이라 그런 것이니 독자 여러분들이 너른 마음으로 양해해 주세요……!

    그럼 이번주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맛난 주말…… 아니, 즐거운 주말 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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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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