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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5

        

         

       “으음~ 대략적인 것만 들어도 좀 심각하긴 하네요~”

         

       진성의 시선을 받은 아나스타시아는 약간 질린 듯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혐오감에서 비롯된 것에 가까웠다.

         

       인종차별주의자.

       거기다가 사람으로 실험하기까지 하는 미치광이들.

         

       그런 존재들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니 혐오감이 치밀어 오른 것이다.

       게다가 그 미치광이들이 그녀들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릴 것으로 생각하니 더더욱.

         

       진성은 아나스타시아가 아프리카에 대한 막연한 혐오감을 느끼는 것을 확인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감상에 긍정하기라도 하는 듯 말이다.

         

       그리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나스타시아와 엘라를 바라보고 있는 아그네스를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 단체 말고도 위험한 존재가 있지요. 이 두 단체보다 훨씬 강하고 위험한 존재가 말입니다.”

         

       진성의 입에서 나온 것은 충격적인 말이었다.

         

       앞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비윤리적인 실험을 하면서 긴 세월 동안 유지된 단체보다도 더 위험한 존재가 있다는 말.

         

       “안타깝게도 위의 두 단체는 제가 후술할 것들에 비하면 약합니다.”

         

       “…그게, 말인가요?’

         

       아그네스는 진성의 말에 못 믿겠다는 것처럼 반문했다.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힘이 퍼져있을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실험에 사용할 사람을 인신매매로 구입하는 단체들이 가장 약한 존재라니.

         

       차마 믿기 힘든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두 단체가 좀 오래되고, 세력권이 좀 넓은 편이기는 합니다만…. 적어도 ‘강함’으로 따지자면 가장 약하다는 것이 맞겠지요.”

         

       하지만 진성은 아그네스의 말에 긍정했다.

         

       “제가 다음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아프리카를 무대로 활동하는 주술사에 대한 것입니다.”

         

       “…주술사요?”

         

       아그네스는 주술사라는 단어를 듣자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프리카에서 주술을 쓰는 족속들과 안 좋게 얽힌 것을 생각하자 절로 악감정이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주술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제대로 된 주술사라고 할 수도 없으면서 끈질기게 달라붙는 그 작자들.

       다른 주술사들처럼 제대로 된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신의 안녕을 위해서 살아갈 뿐인 작자들.

       주술 몇 개를 익히고 남을 현혹하면서 돈이나 뜯어먹는 사기꾼 같은 놈들.

         

       ‘…잠깐.’

         

       그때를 떠올리던 아그네스는 문득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진성이 그녀가 겪었던 그 사기꾼 같은 작자들을 ‘위협’이라고 말할 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네. 주술사입니다.”

         

       아그네스가 막 어떠한 사실을 깨달은 그 시점에, 진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녀가 생각한 것이 정답이라고 넌지시 알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아프리카는 말입니다. 기술이 계속 이어지기에, 기술이 발전하기에 좋은 곳은 아닙니다. 이능은 더더욱 그렇지요.”

         

       진성은 방긋 웃으며 아그네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상태에 대해서.

         

       “아프리카는 아주 오랫동안 신음해 왔습니다. 외부의 침략에 신음하고, 내부의 전화에 휩쓸렸습니다. 거기에 망가진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수많은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갔고, 살만하다 싶으면 수탈이 뒤따르며 그곳에 사는 이들을 가난의 늪에서 허덕이게 했지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 대륙에서 존재하는 이능은 맥이 끊겨갔습니다.”

         

       전쟁은 기술을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기술을 소실시키기도 한다.

       도서관은 박살 나고, 책은 불태워지고, 지식을 갖춘 노인들은 죽어 나간다.

       재능 있는 아이들은 병사로 끌려 나가 총알을 한두 번 막을 고기 방패로 활용된다.

         

       그렇게 전쟁은 불꽃처럼 피어나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늙은 대장장이의 기술을 먹어 치워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고, 후대로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발전해나가야 할 연구는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사람이 사람일 수 있게 하는 교육 역시 끔찍한 고통 속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다양성이 상실된 채 사람을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허덕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는 이능 역시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기름을 먹인 것처럼 더 빠른 속도로 활활 불타서 사라져버린다.

         

       가진 재능에 크게 영향을 받는 이능.

       하지만 어린 재목이 무럭무럭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에 아프리카란 환경은 너무 척박하고 위험했기에.

       그랬기에 수없이 많은 이능은 맥이 끊겨버린다.

         

       부족에게 전해지던 무공은 끊겨버린다.

       터전을 지키기 위해 싸운 전사들이 죽고, 무공을 익혀야 할 청년들은 반군의 위협과 함께 끌려가고, 아이는 굶주림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져버리니까.

       그 와중에 마을은 짓밟히고, 수탈당하고, 여자들은 붙잡혀 끔찍한 꼴을 당하고….

       그렇게 번성해야 할 마을은 사라져버린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위기를 피해 떠돌고 떠돌다가 점점 수가 줄어들고….

       수가 줄어드는 것과 비례해서 부족의 기술도, 전통도, 힘도, 정신도….

       점차 줄어들고, 또 줄어든다.

         

       그렇게 간신히 살아남은 끝에 남은 것은 티끌.

       아무리 긁어모으고 긁어모아도, 옛적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먼지의 산.

         

       그렇게 이능은 끊기고, 끊긴다.

         

       하지만 그런데도 끈질기게 맥을 이어가는 이능도 있는 법.

       그리고 그중 하나가 바로….

         

       “하지만 이렇게 맥이 끊기는 와중에도 이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전통과 관련이 있는 것, 구전으로 이어져도 손색이 없는 것, 방법만 제대로 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능….”

         

       주술이다.

         

       “주술은 재능을 따지지 않습니다. 방법을 제대로 안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요. 주술은 구전으로, 지식으로, 기록으로 전승할 수 있습니다. 재능을 따지지 않기에 더더욱 맥을 이어가기가 쉽지요. 그리고 주술이라는 것은 전통과 관련이 있기에 뿌리를 잊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익히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잊혔다고 하더라도 전통과 연관이 있기에 쉽게 부활할 수도 있지요.”

         

       주술은 가장 입문이 쉬운 이능이다.

       기(氣)에 대한 재능도, 무(武)에 대한 재능도 필요 없다.

       강인한 신체도 필요 없고, 천재라 불릴만한 지능도 필요 없다.

       섬세한 손재주도 필요 없고, 인간을 초월한 것 같은 감각도 필요가 없다.

       소환수를 불러낼 수 있을법한 말도 안 되는 친화력도 필요가 없고, 마력의 흐름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을 재능도 필요가 없다.

         

       오직 방법만 알면 된다.

       제대로 된 방법과 대가, 그리고 대가를 낼 각오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린아이도.

       노인도.

       나이도, 성별도, 병자도, 건강한 이도 따지지 않고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그 대가는 참으로 무거운 것이라.

       주술을 아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주술을 사용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그 대가는 참혹하리만치 가혹한 것이 되어갈 뿐이다.

         

       어린 짐승이 젖니로 깨무는 것과 같았던 따끔함이 종국에는 피부를 얇게 포를 뜨는 사나운 칼날로 변하고, 끔찍한 고통을 가하는 칼날이 목을 자르는 시퍼런 단두대가 되어 내려찍게 되느니.

         

       이 어찌 가혹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러한 가혹함도 환경에 따라서는 조절이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자면, 쉴 새 없이 죽어 나가서 주술을 아는 이들이 강제로 일정 숫자로 조절되는…그러한 환경 말이다.

         

       “그래서 아프리카에는 제대로 된 주술사의 숫자가 적습니다.”

         

       “….”

         

       “아, 물론 제가 말하는 ‘제대로 된 주술사’는 프라우 라이히께서 보았을 법한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간신히 전승되거나 복원한 주술 한두 개를 익히고 신비로운 척을 하고, 호의호식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란 이야기예요. 그 사람들은 제대로 된 주술사라고는 할 수 없어요. 주술을 업으로 삼아 살아간다기보다는, 사람을 현혹하는 데에 집중하는 이들이지요.”

         

       “….”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주술사라고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주술사라고 규정짓는 것은 외부의 시선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지이기도 하기에, 주술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며 주술과 관련된 업을 쌓아가는 것이기에. 그렇기에 주술사랍시고 사기를 치고 다니는 사기꾼들에게 으레 가하는 주술사들의 제재가 그들에게 미치지 않은 것이기도 하지요.”

         

       주술사란 무엇인가?

       주술을 업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에 있는 이들은 주술사인가, 그렇지 않은가?

         

       주술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주술 불모지라 불렸던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진성은 주술사가 아니었는가?

       이곳저곳에서 긁어모은 주술을 익힌 채 용병으로 투신했던 그때의 박진성은 주술사가 아니었는가?

         

       주술을 돈벌이로 사용하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그것이 문제인가?

       그렇게 따지자면 점을 봐주고 돈을 받는 것은 무엇인가?

       미래를 보고, 권력자가 알고자 하는 것을 귀띔해주고 금은보화를 얻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인가?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것?

       사람들에게 떠받들어지고, 대접을 받는 것?

       그렇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인가?

       길을 지나가다가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도와준 뒤 감사 인사를 받는 것.

       위험에 처한 마을을 구해주고 마을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것.

       그것과 다른 것이 있을까?

         

       주술이란 기술이다.

       주술이란 능력이다.

         

       선택받은 이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숭고한 것도 아니다.

       선택받은 이만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신성한 것도 아니다.

         

       그냥 기술에 불과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용해서 무엇을 하느냐.

       그리고 그것을 업으로 삼아 무엇을 이루고자 하느냐일 뿐이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

       명예를 바라는 것은 죄악이 아니다.

       겸손하고, 청렴한 것이 미덕이 될 수 있을지언정 부귀영화와 명예는 죄악이 될 수는 없다.

       과하다면 모르되 그것이 적정하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다만 그들의 어설픔과 미숙함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요.

       그들에게서 향상심이 거세된 것 역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을 주술사라고 부르기에는 분명히 손색이 있으니.

       이는 그들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술을 사용한다고 모두가 주술사라고 할 수는 없다.

         

       주물로 귀신을 부리고 소환한다고 그를 강령술사라 할 수 있는가?

       주물을 사용해 불꽃을 뿜어낸다고 그를 화염술사라 할 수 있는가?

       아티팩트를 사용해 마법을 쓴다고 한들 그를 마법사라 부를 수 있는가?

       액션 영화에서 나오는 스턴트맨이 화려한 무술을 뽐낸다고 한들 그를 무인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것과 같은 이치로, 그들 역시 제대로 된 주술사라 할 수 없다.

         

       주술을 사용한다기에 그들의 것은 흉내에 가까우며.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있으되 그것은 한없이 얕은 것이라.

       거기에 탐구심도, 향상심도, 이해하려는 노력도 현저하게 부족하니 이는 주술사라고 하기에는 분명히 모자람이 있는 것이다.

         

       차량을 간단하게 수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자동차 엔지니어라고 부를 수 없듯이, 그들 역시 주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주술사라고 하기에는 현격히 부족함이 존재하는바.

         

       그리하여 진성은 평한다.

         

       그들은 제대로 된 주술사라고 할 수 없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 편 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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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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