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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6

   “에르기누스님을 만나러 간다고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옆에 앉아 있던 조이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질렀다.

   

   귀족영애다움을 버리다 못해 아이돌을 좋아하는 여고생이 되어버린 듯한 그녀의 모습에 난 의문을 느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대로라면 에르기누스라는 마법사는 도저히 좋아할 만한 인물이 아니지 않나?

   

   마법사로서의 실력이 어떻든 간에 사람으로써는 되먹지 못한 정신병자잖아.

   

   조이의 성격상 마법만 잘 쓸 뿐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많은 사람을 선망하진 않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좋니. 얼빵아?”

   “그럼요! 에르기누스님은 전설적인 대마법사임과 동시에 여러 귀족들의 표본이라 불리는 분인걸요!”

   

   …응? 그게 무슨 소리니. 조이조이야.

   

   그 이야기는 내가 할아버지한테 들었던 거랑은 좀 많이 다른데?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싶어 눈을 끔뻑이고 있으려니 옆에서 아서가 한 마디를 더했다.

   

   “나도 그 분을 만나는 것은 기대가 되는 군. 교양 넘치기로 유명하신 분이니만큼 고견을 기대할 수 있을 터.”

   “교회의 신성마법에도 큰 영향을 끼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항상 궁금하게 여겼던 것을 여쭈어봐야겠네요.”

   

   페이비까지 거들어서 에르기누스에 대한 호평을 하는 광경을 본 나는 눈을 끔뻑이다가 할아버지에게 물음을 던졌다.

   

   ‘…제가 들은 이야기랑 너무 다른 것 같은데요?’

   <…나한테 묻지 마라. 나도 당혹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이니. 아니. 대체 어떻게 그 정신 나간 놈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좋을 수 있지? 그럴 리가 없는데?>

   

   지구가 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과거의 학자들마냥 혼란스러워하는 할아버지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자니 할아버지에게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긴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 대신 친구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너희들이 아는 인간 에르기누스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냐고.

   

   “과거 악신과 선신간의 전쟁이 선신의 승리로 끝난 후. 그 최전선을 지켰던 영웅분들께서는 재건의 시대가 펼쳐지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셨죠.”

   

   고결한 백색의 기사. 가라드는 자신의 존재가 왕국의 혼란이 될 것이라 이야기하며 초야 속으로 몸을 숨겼다.

   

   경건한 신화 속의 성기사 루엘은 교회가 질서를 되찾은 후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악신과 대결할 때마다 선두에 자리를 잡았던 용사 줄란은 자신이 할 일을 모두 끝마쳤으니 이제 쉬겠다는 편지를 남기고서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다.

   

   그렇게 모든 동료가 떠나간 후 왕국에 남은 것은 대마법사 에르기누스였다.

   

   모든 영웅이 사라진 후에도 왕국에 남은 그는 현대 마법의 체계를 정비함과 동시에 여러 나라에 조언을 하며 혼란스러웠던 대륙이 제 모습을 갖추는 데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의 공이 얼마나 컸던지. 한 나라의 역사서 초반부는 에르기누스라는 이름으로 가득 차 있을 지경이었다.

   

   “재건의 시대에 에르기누스님이 영향은 그야말로 세상 모든 곳이라 해도 무방했습니다. 마법. 행정. 학문. 역사. 오죽했으면 그 분이 없었다면 재건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으리란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상황이 이러했으니 에르기누스라는 이름의 명성이 한없이 드높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영웅들이 사라지며 생겨난 공백을 지킨 것은 오롯이 에르기누스라는 이름 하나 뿐이었으니까.

   

   “그런 고귀하신 분을 만나는 데 어찌 기대를 품지 않겠습니까!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조이의 열기 어린 설명이 끝났을 때. 그 모든 설명을 귀에 담은 할아버지는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그 놈. 혼자 남았다고 제멋대로 자기 이야기를 왜곡해 놓은 건가!>

   

   개같은 짓거리를 해두었다면서 할아버지는 이를 갈았지만 영웅담의 내용을 기억하는 나는 에르기누스가 마냥 제멋대로 행동한 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정말 에르기누스가 자기 마음 가는 대로 역사서를 편찬했다면 악연이 깊었다는 할아버지나 그 동료들에 대한 이야기에 호평만이 남아있진 않을 테니까.

   

   *

   

   “알른 영애! 잠시 바깥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마차 안에서 에르기누스라는 사람에 대한 찬양을 지겹도록 듣고 있으려니 바깥에서 용병단장이 나를 불렀다.

   

   문 바깥으로 나가자 주홍빛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출발한 것이 아침의 일이니 마차 안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 셈이었다.

   

   용병단을 부르지 않고 이 거리를 내 발로 걸었을 걸 생각하니 좀 끔찍하네. 하려면 할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지날 때마다 짜증이 차올랐을 거야.

   

   “영애께서 서면으로 알려주셨던 지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에서 어디로 가야 할는지요.”

   “잠시 기다려 봐. 따까리 대장.”

   

   기지개를 쭉 피는 것으로 굳어있던 몸을 푼 나는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해가 저 쪽에 떠 있고. 지표가 될 거대한 돌이 저 쪽에 있는 걸 보면.

   

   음.

   

   “여기에서 시간 낭비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봐? 따까리한테도 재능이 있다는 거려나.”

   

   용병단장의 실력이 좋긴 하네.

   

   건너건너 이야기한 것만으로 정확한 위치까지 우리를 데려다주다니.

   

   덕분에 편하게 왔다갔다 할 수 있겠네.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너희 같은 체력 조루들이 돕겠다고 난리를 쳐봐야 방해만 될 뿐이야.”

   “알겠습니다. 영애. 이 곳에 야영장을 만들어두겠습니다.”

   

   용병들이 짐을 풀고 하룻밤을 보낼 곳을 만드는 동안 나는 친구들을 데리고서 밤의 사막을 걸었다.

   

   용병단장은 내 이야기를 듣고서 호위로 붙을 인원을 배정해야하느냐고 물었지만 난 그 이야기를 거절했다.

   

   지금부터 내가 펼칠 기행을 초면의 사람에게 납득시키는 건 너무 귀찮은 일이었으니까.

   

   그 용병이란 녀석들이 우리를 지킬만큼 강해보이지도 않았고 말야.

   

   “알겠습니다. 대신 저희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위쪽으로 화염을 쏘아주십시오. 신호를 확인하는 즉시 달려가겠습니다.”

   

   용병단장은 굳이 고집을 부리는 대신 항시 대기하고 있겠단 말을 전하고 뒤로 물러섰다. 귀족들과의 거래에 익숙하다는 것이 절로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계절이 좋은데도 상당히 쌀쌀하군.”

   “낮에는 쪄 죽을 정도로 덥고. 밤에는 얼어 죽을 정도로 추운 지역이라. 지식으로 알던 것 이상이네요. 괜히 사람들이 사막을 꺼리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 정돈가? 알른 기사단에서 훈련받던 때가 더 재밌지 않아? 거긴 진짜 장난 아니었는데.”

   “…그것과 비교해서 더 열악한 환경이 존재하긴 하나?”

   “알른 기사단은 좀… 범주 바깥이긴 하죠.”

   

   밤의 사막을 걷는 것은 고귀한 핏줄의 사람들이 할 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내 친구들은 딱히 불평하지 않았다.

   

   이전에 알른 기사단에서 겪은 일이 너무도 험악해서 그런가 이 정도면 산책하는 정도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친구들의 쌀쌀하다는 이야기에 이게 추운 날씨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지경이었으니 친구들이라 해서 크게 다르진 않겠지.

   

   매마른 사막을 30분 가량 내달린 끝에 우리가 도착한 장소는 아무것도 없는 사막의 한복판이었다.

   

   선인장조차도 자랄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사막의 풍경에 내 친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루시 알른. 정말 이 곳이 맞나?”

   “그럼요. 제가 얼빵이나 바보검사도 아니고 이런 걸 착각할 리 없잖아요?”

   “그렇지만 여기에 뭔가가 있을 것 같지가 않은데.”

   “뭐 모르면 나대지 말고 지켜보고 계세요. 불쌍왕자님. 뭐. 제게 나쁜 말을 듣고 싶은 거라면 말리지 않겠지만.”

   “닥치고 있으마.”

   

   아서가 기겁을 하며 입술을 다물어 버린 후 나는 인벤토리를 열어서 준비한 물건을 꺼내서 바닥에 늘어놓았다.

   

   “…영애. 이거 폭탄 아니에요?”

   “와아. 얼빵이도 눈이 있구나. 맞아. 폭탄이야.”

   “폭탄은 갑자기 왜.”

   “으음. 내가 얼빵한 조이한테 과한 기대를 했나 보네. 눈은 있지만 생각은 없을 줄이야. 하긴. 머리가 있었으면 매일 같이 얼빵한 짓을 하고 다닐 리가…”

   “됐으니까 설명이나 해주시겠어요?”

   “생각을 좀 해. 폭탄을 왜 꺼냈겠어? 터트리려고 꺼낸 거지.”

   조이를 놀리면서 차곡차곡 폭탄을 늘어 놓은 나는 그 수를 다시 한 번 세고 나서 폭탄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허접 성녀. 방어막 만들어줘.”

   “조금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저 정도 화력을 막아내려면 준비가 필요해서요.”

   

   조금 기다려달라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페이비가 방어막을 만드는 데에는 채 십초가 걸리지 않았다.

   

   저번에 연금술사를 상대하러 갔을 때에도 느낀 거지만 진짜 신성마법 잘 다룬다니까.

   

   아무리 봐도 지금의 페이비는 게임 속에 나오던 페이비보다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아.

   

   나중에 한 번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물어보든가 해야겠다.

   

   “됐습니다. 영애님.”

   “자. 허접들. 놀라서 오줌 지리지 마. 이제 바로 터트릴 테니까.”

   

   기폭 버튼을 누른 순간 방어막의 안에서 일어난 진동이 대지를 뒤흔든다.

   

   너무도 큰 소리에 잠시나마 자리했던 이명이 사라진 후 나는 멀쩡히 남아있는 페이비의 방어막을 지우고서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게임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천장이 훤히 뚫린 지하의 풍경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따라와. 허접들. 늦으면 버려두고 갈 거니까.”

   

   나는 친구들에게 따라오라 이야기를 하고서 지하로 폴짝 뛰어내렸다.

   

   지하에는 기다란 로브를 입고 있는 해골이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 폭발의 여파에 휘말린 듯 바닥에 넘어져 있던 해골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자연스레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눈동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레 느껴지는 해골의 당혹을 확인한 나는 눈꼬리를 올리며 입가에 웃음을 담았다.

   

   “꺄아아. 대마법사님이 정신나갔단 이야기는 자주 들었는데 설마 여자애 속옷까지 빤히 바라보는 변태일 줄은. 짐승. 로리콘. 쓰레기. 성범죄자. 빨리 썩어서 저승으로 꺼져 버려.”

   “갑자기 쳐들어와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뭐 같은 꼬맹아!”

   

   해골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동안 구멍난 천장에서 친구들이 하나 둘 내려왔다.

   

   꽤 높은 높이였음에도 가뿐하게 착지를.

   

   “꺄악!”

   

   …한 사람 빼고는 친구들이 가뿐하게 착지한 걸 확인한 나는 멍하니 우릴 바라보는 해골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건물을 더 튼튼하게 짓지 그랬어. 멍청한 해골씨.

   

   이게 능력의 한계면 여자애 속옷 훔쳐 볼 시간에 빨리 복원이라도 했어야지.

   

   안 그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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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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