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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6

    <466 – 평가하는 입장>

     

    고급정보원 히틀러는 자신보다 강한 정보원이 위어드 교수의 논문실험에 휘말려 기절한 채로 치료실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쯧쯧. 이러니 실력보다 눈치가 더 중요하지.’

     

    나보다 잘난 사람이 세상에는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는 기프트 아카데미.

    제 실력이라면 교수의 장단에도 맞출 수 있다고 자신했던 정보원의 딱한 최후였다.

     

    “지원을 몰아주겠다. 다음 강의 시험장에는 직접 진입해서 오크노디를 보다 면밀히 감시해라.”

    “어렵습니다.”

     

    히틀러는 도적길드 중간간부의 지시를 손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크노디가 오후에 치르는 시험인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강의는 제가 아카데미를 다닐 적에도 악명 높기로 유명한 지뢰강의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진입이 필요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재단은 오크노디에게 접근할 수 있고, 감시하기 위험한 강의만큼 좋은 기회는 없다.”

    “교수의 변덕에 휘말리면 3학년 중퇴자든 4학년 졸업생이든 파리처럼 날아갑니다.”

     

    히틀러가 탐탁지 않은 기색을 드러냈다.

    중간간부가 초강수를 두었다.

     

    “쫄리냐?”

    “…”

    “고작 1학년 시험이 쫄린다면 말해라. 당장이라도 돌아가게 해주지. 불이익은 없을 거다. 고작 퇴학생에게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길드 상층부의 잘못이니까.”

     

    남자라면 울컥할 수밖에 없는 마법의 단어, 쫄!

    히틀러는 오기를 부렸다.

     

    “어렵다고 했지 불가능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거 당했는데.

    후회할 때에는 이미 늦었다.

    각종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시험장에 들어갈 채비를 끝마친 뒤였다.

    이제 그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몰래 잠입할까, 앞선 강의에서 그랬던 것처럼 공식적인 지원에 나선 것으로 행세할까.

     

    ‘무조건 후자를 골라야지.’

     

    위어드 교수는 똘기가 있어도 사람이 죽을 정도로 심한 짓은 안 한다.

    반면,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강의를 가르치는 데모니카 교수는 평판부터 살벌했다.

     

    학생살해자 데모니카.

     

    이게 어떻게 교수한테 붙을 수 있는 칭호인가.

    재학생 시절에도 듣지 않았던 강의를 전속교관보조 신분으로 참여하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했지만 거액의 보수를 떠올리며 애써 용기를 내었다.

    아무리 1학년 강의가 위험하기로서니 자신은 3학년 중퇴자가 아니던가.

     

    ‘죽어도 1학년이 죽겠지 3학년이 죽겠어?’

     

    시험을 보는 건 학생이지 교관이 아니다.

    애써 용기를 내며 히틀러는 데모니카 교수의 교수실을 찾아갔다.

     

    “시험교관에 자원하고 싶습니다.”

    “내 강의에? 너 제정신이니? 마약 했어?”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데모니카 교수는 별 희한한 녀석을 다 보겠다며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지원장비 챙겨서 시험장으로 가. 할 일은 다른 교관들이 알려줄 거야.”

     

    지원장비를 받은 히틀러는 잠행을 시도하지 않았던 판단이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여겼다.

    노이즈캔슬러.

    청각을 이용한 각종 공격을 차단하는 장신마도구는 흔한 지원장비가 아니었다.

     

    “포인트에 눈 먼 바보가 하나 더 늘었구나. 이번 중간고사에서 제일 빡센 시험에 자원하다니, 어지간히도 포인트가 절박하나보네.”

    “무슨 시험을 치르는데 그렇게 겁을 줍니까?”

    “소문도 못 들었냐? 데모니카 교수님이 애들 시험상대로 그 악명 높은 혈음악단을 초빙했단다. 당장 3학년 시험상대로 꽂아도 이상하지 않을 거물이잖아.”

     

    혈음악단!

    대부분의 악단이 청중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한다면 혈음악단은 연주자들의 즐거움을 위해 연주한다.

    좋은 노래를 연주하는 것은 똑같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보통의 악단은 청중의 환호를 받지만 혈음악단은 청중의 비명과 절규를 받는다.

     

    “♪”

    “♩”

     

    하얀 두건에 두툼한 외투 아래로 예비용 현이나 음악도구로 추정되는 것들을 달아둔 혈음악단 단원들의 모습에서 히틀러는 오싹함을 느꼈다.

     

    ‘모험학부에서 마주쳤던 암살자 동기들이 꼭 저런 분위기에 비슷한 장비들을 지니고 있었지.’

     

    건드리면 암기가 무더기로 쏟아지는 지뢰 같은 여자.

    뭣 모르고 깝치던 기사학부 동기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서 꿈틀거리던 모습은 아직도 히틀러의 뇌리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새로운 교관분이시군요.”

     

    그런 불길한 악단의 단원 한 명이 히틀러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목이 긴 동방의 거문고를 한쪽 어깨에 걸친 채로 현을 점검하는 단원에게서는 좀처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기운이 물씬 풍겼다.

     

    “잘 부탁드립니다.”

     

    의례적인 인사를 끝으로 달아나다시피 하려던 히틀러는 싱긋 웃으며 멀어지는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단원의 모습에서 까닭모를 공포를 느꼈다.

     

    “교관들은 모두 모여라.”

     

    수석교관이 곳곳에서 두려움을 느끼던 교관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학생들은 앞으로 벌어질 시험을 모르지만 교관들은 알아야겠지. 두 번 말하지 않으니 지금부터 전달하는 사항을 필히 숙지하도록.”

    ““옙!!””

    “너희가 교관을 맡은 강의이름은 <피크닉으로 힐링하기>이다. 혈음악단은 피크닉을 방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공격을 하는 역할이다.”

    “…”

     

    세상에 어떤 미친 악단이 피크닉 나온 손님들을 최선을 다해 공격을 한단 말인가.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수석교관은 진지한 목소리로 주의사항을 짚었다.

     

    “1학년들의 목표는 간단하다. 평온한 얼굴로 정해진 코스를 따라 이동 후, 돗자리를 깔고 각자에게 배부된 도시락의 음식을 모두 식사한다. 이 과정에서 속도는 결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아야 한다.”

    “식사 중 환담으로 5가지 주제의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이후 10분간 오침을 취한다. 오침 후에는 준비한 차를 마시며 20분간 느긋하게 바람을 만끽하고 돗자리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나무를 한 바퀴 돌며 벚꽃의 색과 향을 즐기고 천천히 종료 선까지 이동한다. 이상의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보이거나 규정을 준수하지 못한 학생은 모두 각 조의 교관이 이유를 알려주며 감점처리 한다. 채점표에 상세사항을 참고하도록.”

     

    …진짜 더럽게 불쌍한 1학년들이군.

    히틀러는 이 시험이 3학년 현역시절 자신이 겪은 시험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난이도라는 사실을 경험을 토대로 깨달았다.

    일상을 누리기만 해도 통과할 수 있는 시험에는 반드시 비非일상이 따라붙기 마련이기에.

     

    “또한 교관들도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도록 피크닉에 나선 행인들 행세를 해야 한다. 이를 어길 시, 지급될 보수에서 포인트가 차감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권하거나 더 이상 시험의 속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학생들은 보호캡슐을 터뜨려 보호막에 거두고 즉시 치료소로 이송한다.”

    “이상. 질문이 있는 자는 거수하라.”

     

    눈치 없는 교관 한 명이 손을 들었다.

     

    “혈음악단이 통제를 따르지 않을 시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러지 않기만을 기도해라.”

    “제재는 하지 않는 겁니까?”

    “너희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다.”

     

    총교관은 진지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교관이 불만스레 물었다.

     

    “그럼 저흰 여기에 왜 있는 겁니까…?”

    “채점.”

    “…”

     

    히틀러는 멍청한 교관처럼 하나마나한 질문으로 총교관의 심기를 거스르는 대신 입은 무겁게 다물고 눈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나긋나긋한 얼굴로 하프를 켜는 악사도, 무표정한 얼굴로 바이올린의 목을 쥔 악사도 이제는 하나같이 미치광이 연쇄살인마 집단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시험을 시작하지. 모두 자리로 이동하도록.”

     

    학생들은 조별과제라도 하듯이 그룹별로 모였다.

    교관들은 각 그룹마다 두 명씩 배정되었다.

    학생 다섯에 교관 둘.

    무려 마흔 명의 학생들이 듣는 강의이니 배치된 교관만 열여섯 명이다.

    교관이 이렇게 많은 건 정말 좋지 않은 징조였다.

    강의가 그만큼 위험하다는 증거니까.

    히틀러는 노이즈캔슬러를 언제든지 장착할 수 있도록 귀에 걸어두었다.

     

    “악단 분들도 준비를 마치셨습니까?”

    “조율은 끝났습니다. 가시죠.”

     

    데모니카 교수가 출발선 앞에서 깃발을 들었다.

     

    “명심해라. 너희는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강의에 들어왔다.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반드시 ‘피크닉’과 ‘힐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준수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상사는 모두 너희에게 닥칠 것이다.”

    “…”

    “피크닉에 집중해라. 정해진 순서를 놓치지 마라. 시선과 감정처리를 실수하지 마라.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이란 인내 속에서만 찾아온다.”

     

    피크닉이 시작되었다.

    여러 조가 각기 다른 출발선에서 움직였다.

    그리고 혈음악단의 연주가 시작됐다.

     

    끼긱

    끼기긱

     

    마치 칠판을 손톱으로 긋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관들까지 일제히 고개가 멈칫했다.

    돌아보면 감점 당한다.

    그렇기에 혈음악단은 작정하고 돌아보게 만들려고 하고 있다.

     

    ‘노이즈캔슬러가 지급된 이유를 알겠군.’

     

    히틀러는 즉시 귀에 걸어둔 보호장신구를 장착했다.

    갈수록 고통에 물드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며 잘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학생들은 매주 강의를 빙자한 고문을 당해왔던 건가? 놀라울 정도로 인내심이 뛰어나군.’

     

    그가 맡은 조에는 VIP의 표적인 오크노디와 귀족가의 샌님들이 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풀어 음식을 하나씩 내려놓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소음에 대한 괴로움으로 일그러지려는 근육을 강제로 웃는 얼굴로 바꾸려는 노력이 절절히 묻어났다.

    남일 보듯이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히틀러는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다.

     

    -식사 중 환담으로 5가지 주제의 대화를 나누어야 하며, 이후 10분간 오침을 취한다.

     

    일인당 5가지 주제에 대해 한 번씩 대화를 나눌 것.

    그걸 귀를 막은 채로 어떻게 분간하지…?

     

    ‘맙소사.’

     

    보호장신구는 줬다.

    단지 착용한 채로는 채점을 할 수 없을 뿐.

     

    <미러>

    <윙 커터>

     

    거울을 생성하고 우둘투둘한 곡면을 원거리로 사출한 검격으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수직으로 베어낸다.

    반듯한 거울로 얼굴을 가다듬는 척 자연스럽게 돌아본 곳에서 수석교관이 한 손에 채점표를 든 채로 히틀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수석교관은 채점하는 교관들을 채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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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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