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66

        

       악인지옥 만들기.

       재료. 악인. 많으면 많을수록 좋음.

         

       하나. 재료는 큼직하게 손질해 주세요.

       팔다리를 으스러뜨리는 편이 제일이지만, 스스로 끼울 수 있는 탈골같은 수단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멱에 구멍을 뚫으면 조용한 악인지옥을 즐기실 수도 있습니다.)

         

       둘. 땅을 파 주세요.

       재료들은 팔다리가 장식이기 때문에 너무 깊게 파지 않더라도 상관없답니다.

         

       셋. 어느 정도 땅이 파지면 준비된 재료들을 전부 넣으면 악인지옥 완성!

         

       취향에 따라 깐족거리며 약을 올리며 즐기셔도 좋고, 돌을 던지거나 창을 찌르거나 혹은 잠시 들어가 몸을 굴리며 부러진 팔다리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게 해도 좋습니다.

         

       추천하는 방법은 일명 ‘대충 알아들었지?’예요.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한 놈만 살려 주겠다 해 보세요.

       사지 불만족인 악인들이 혼자만 살겠다며 서로를 이빨로 뜯고 몸으로 뭉개는 진풍경을 감상하실 수도 있답니다.

         

       물론, 어차피 저네들끼리 서로 돕는다고 뭐가 되지는 않겠지만요.

         

       “으음.”

         

       청이 제작법을 정리해 보았다.

       이걸 비급으로 남겨 악인의 처형법으로 후세에 길이길이 남겨야 할 텐데.

       하지만 악인의 손에 들어가면 세상에 큰 해악을 끼칠 테니, 아쉽지만 나만 조용히 기억하고 있어야겠다, 하고.

         

       여인의 몸이라는 것이 참으로 비통하다.

       사내였으면 오줌발 갈겨 기겁하며 피하는 모습을 감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여인이라고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뭐 구경거리 만들어 줄 일 있나?

       저놈들 좋은 꼴은 절대 못 보지.

         

       어둑한 저녁이었다.

       청의 인간 초월 시력으로는 아직 훤하니 들여다보이지만, 밤눈 어두운 사람이라면 벌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청이 서늘한 눈빛으로 구덩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한 반 장?

       아래에 서면 땅 위가 코끝에 닿을 정도의 얕은 구덩이다.

       물론, 팔다리가 죄다 불구가 되고 나면 그 반 장이 천장단애(천 장 높이의 낭떠러지라는 뜻)처럼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로 여겨질 것이다.

         

       청이 시뻘건 황토물 차오르는 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마디 툭 던진다.

         

       “배수가 잘 되는 땅이기를 기원할게요. 그래도 인원수가 좀 있으니까, 잠길 것 같으면 다 마셔버려도 되지 않나? 황토는 뭐 몸에 그렇게 좋다고 하니까.”

         

       한민족에게 황토라고 하면 바닥에 깔고 벽에 바르며 심지어 침과 베개까지 만들어 쓸 정도로 무시무시한 자연의 만병통치약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음? 그런데?

       생각해보니, 황토라는 말도 웃기다.

       저게 왜 황토야? 빨간색 아닌가?

         

       청도 진짜 적토를 보면 아, 이래서 황토를 황토라고 하는구나, 진짜 적토는 진짜 빨갛네, 하겠지만.

         

       사실, 청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중원인은 적토를 보지 않았으니 더 붉은 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몰랐음에도 굳이 황토라고 이름을 붙였으니까.

         

       어째서인가?

       사실은 땅이 갈색이든 흑색이든 심지어 살색이든 상관없이 그냥 땅이니까 황토다.

       검을 현 누를 황.

       하늘의 색은 검고 땅의 색은 노랗다. 끝.

         

       청이 진창에 허우적거리는 악인들을 바라보며 하는 생각은 딱 이 정도다.

         

       청이 몸을 돌려 네 장쯤 솟은 절벽으로 향한다.

         

       돌산에도 돌산의 장점이 있었으니, 바로 암반이란 들쑥날쑥하여 비 오는 와중에도 몸을 피신할 지붕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슬슬 불을 피워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 우중에 불 피우는 방법을 아냐?”

         

       “음. 더 강한 힘?”

         

       “됐다. 이참에 보고 배워라.”

         

       바위산은 보통 소나무가 많이 자란다.

       그리고 해안가에는 염해에 강한 소나무가 아니면 살기 힘들다.

       그렇다면 바다에 붙은 바위산인 노산은 어떻겠는가.

         

       “소나무 심지는 젖어도 불이 잘 붙는다. 여긴 온통 소나무 천지라 주워오는 족족 소나무다만, 다른 산이라면 소나무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거다.”

         

       그리고는 주워온 장작 더미를 뒤적이다가 송진 덩어리 크게 엉겨붙은 큼직한 놈을 하나 꺼내드는 것이다.

         

       “송진이 많이 붙은 놈일수록 잘 타고 오래 탄다. 이거 누가 주워왔어? 아주 제대로 주워왔구만.”

         

       천유학이 껍질을 떼어낸다.

       그리고는 심지를 파내 대패로 밀어내듯 얇게 저며 나풀거리게 만들었다.

       그 후에 화섭자를 가져다대니, 젖은 나무가 무색하게 금세 화염이 피어오른다.

       거기에 껍질 무더기 던져놓고.

       다른 장작 가늘게 쪼개 세워놓으면.

       순식간에 모닥불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물론, 쉬워 보이는 것은 천유학이 화경의 고수이기 때문이다.

       나무토막을 두부라도 썰듯 슥슥 토막내며 저미는 고수가 아닌가.

       게다가 본인은 몸에 익어 익숙하니 원래 장인이 하는 일은 대충대충 아무렇게나 하는 것처럼 보이는 법이기도 하고.

         

       “오.”

         

       “근데 어우, 콜록, 젖은 나무라 연기가, 막힌 곳에서는 피우는 게 아니다.”

         

       동굴이라고 하기 애매한 암반 사이의 쏙 들어간 지형이다.

       위로 자욱하게 솟은 연기가 천장을 타고 바깥으로 슥슥 빠져나가지만, 그 잔향이 남아 눈이 시큰하고 코는 매콤하다.

         

       불을 피워도 괜찮은가 싶었는데, 스승님 말씀으로는 뭐 상관없을 거라고.

         

       깊은 곳이고 위로는 절벽, 앞으로는 숲을 끼었으니 불빛을 보고 찾아올 이는 정말로 드물 것이고.

       또 깜깜하니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도 안 보일 테니 멀리서 특정하지도 못할 거라고.

         

       불 피워다 아까 잡아 멱 따고 매달아 둔 사슴을 구워먹고.

       누린내가 좀 심하기는 해도 원래 밖에서 먹는 식사에는 이상하게 입맛이 관대해지는 법이다.

         

       그리고는 젖은 옷 걸어 말려놓고 예비용 복장으로 갈아입고서는 빗소리 들으며 누워 시답잖은 잡담이나 떠들다가.

       다만 바닥이 딱딱한 암반 돌바닥이라서 영 불편하기는 하다.

       물론, 청은 그래도 잘 잔다.

       돌바닥이 아니라 자갈밭에서 자도 어디 상할 만한 위인은 아니라서.

         

       하지만 진장명과 모용주희는 영 불편하니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모양.

       둘이 야지에서 잠을 청할 일이 뭐 얼마나 있었겠나.

       진장명은 신녀문에 얌전히 수련중이었고.

       명가의 자손인 모용주희는 여행을 다녀도 늘 최고급 객잔이나 이용했지 길바닥에서 모닥불 피우고 잘 일도 없었으니까.

         

         

       —-

         

         

       중원의 법칙 중 하나.

       강을 따라가다 보면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오지에도 마을이 하나씩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원의 법칙이라 변방은 예외다.

       변방은 강이고 나발이고 도시가 아니면 사람이 안 산다.

         

       어쨌거나 이 법칙에 따르면, 노산의 남악과 중악을 사이를 흐르는 서사강의 상류, 작은 계곡 주변에도 촌락이 있다는 사실은 딱히 놀랄 거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중원의 역사는 부패한 관리들이 양민을 착취한 역사와 같은 말이라서.

       그래서 범 이리 곰 등등 사람을 습격하는 맹수보다 관리가 더 무서운 사람들이 으슥한 땅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중화 민족 특유의 폐쇄적인 촌락 문화를 끼얹으면?

         

       중원 산자락 물길 주변에는 꼭 일이백년 전 풍경처럼 미개한 깡촌이 존재하게 된다.

         

       산꾼들이 죽와촌이라 부르는 촌락 역시 그러한 숨은 마을이었다.

       마을이었었다.

         

       사도십대천성 중 하나, 절낙성의 노산 지부가 되기 전까지는.

         

       이름처럼 대숲 사이에 잘 숨은 죽와촌에 닥친 참혹한 비극은 여러 가지 요소가 혼재한 결과다.

         

       칼 들이밀고 하는 협박에, 산꾼이 산행 중에 머무르게 해 준 은혜도 모르고 마을의 위치를 실토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잘 가려져 있으면서도 굳이 불을 피워서 제 위치를 노출한 죽와촌 사람들의 부주의함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이 참상의 죄는 온전히 절낙성 무인들의 것이다.

       좋은 거점이 생겼다면서 마을 청소를 자행한 장본인이었으니.

         

       그리하여 절낙성 성존 준기충이 우중에서도 직접 노산을 헤메다 허탕만 치고 돌아왔을 때는, 죽와촌 사람들의 심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탕아, 탕아는!?”

         

       준기충이 마을 중앙에 장식된 성도들의 시체 사이로 뛰어든다.

       그리고 뒤이어 으아아악! 장이 끊어지는 듯한, 중원식 표현으로 단장의 고통을 담은 비통한 절규를 쏟아낸다.

       참고로 단장이라 하면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나타내는 말이다.

       준기충의 심정이 바로 그러했다.

         

       절낙성의 소성존, 준우탕의 시신이 거기에 있었으니까.

         

       전신의 뼈가 으스러진 상태로, 팔다리를 돌돌 말아 둥글게 뭉쳐 야무지게 새끼줄로 매듭까지 지어 놓은 상태다.

       시뻘겋게 물든 눈동자를 보면, 그 과정이 산채로 이루어졌으리라는 추측도 어렵사리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왜 마공을 찾으러 굳이 자식을 보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야 누가 감히 절낙성을 건드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으니까.

         

       이러한 상상력의 부재, 다른 말로는 안전 불감증이라고도 하는 실책으로, 준기충은 아들을 잃었다.

         

       사실, 노산에는 사파 문파의 후계자들이 제법 많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도련의 무림 대회가 있었고, 이러한 자리에는 당연히 인맥 도모를 위해 후계자를 동석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다 신가비보의 소문을 듣고 도중에 쓱 빠져나왔으니 일단 후계자에게 선발대를 맡기지 않았겠는가.

         

       뭐든 성과가 나면 집단의 대표자가 공을 차지하는 법이니, 후계자에게 단단히 힘을 실어줄 기회이기도 하고.

         

       “어떤 놈들이냐! 어떤 놈이! 으아악! 찾아! 당장 찾아내! 찾아서 내 앞에 끌고 와!”

         

       하지만 비는 내리고 해는 지는데 수색은 무슨 수색이겠는가.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서 그저 아들의 시신을 바라보는 준기충이다.

       문도들, 절낙성의 용어로는 성도들이 제 문주, 절낙성의 용어로는 성존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시신을 하나씩 수습하여 치운다.

         

       그때였다.

         

       “문주님.”

         

       준기충의 고개가 홱 돌아간다.

       가장 직급이 높다는 죄로 말을 건 장로가 흠칫 몸을 떨었다.

       흐르는 빗물 사이, 피눈물의 흔적이 역력하니 코의 좌우로 번져 있었으니까.

         

       청이 보았다면 아주 고소해 죽겠다고, 거 여기 밥 한 그릇만 있으면, 아니 밥 한 그릇이 뭐야 한 솥도 그냥 반찬 없이 꿀떡꿀떡 넘어가겠다고 할 것이다.

       남의 아들 딸 애비 애미 죽여놓고는 제 아들 하나 죽었다고 피눈물은 무슨.

       그냥 눈깔이 녹아 흐르면 안 되나?

         

       “내 아들이, 아들이 죽었다.”

         

       “그, 이걸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장로가 내민 것은, 수실이었다.

         

       다급히 팔을 빼앗은 준기충이 대도의 손잡이 끝, 거기에 달린 수실을 들여다본다.

         

       어쩐지 익숙한 모양, 그리고 도중에 꿰인 팔각의 나무토막에는 한 글자. 강.

       준기충이 나무토막을 뒤집는다.

       거기에도 한 글자. 천.

         

       “강패천……! 이게, 이게 어디서 났지?”

         

       “오후삼, 삼등성도 오후삼의 손아귀에서 나왔습니다.”

         

       준기충의 눈에 시퍼렇게 귀화가 핀다.

         

       “이 새끼들이, 감히.”

         

       “문주님, 진정하시지요. 이간책일 수도-”

         

       “이간책은 무슨 이간책! 방금 네 입으로 성도의 손아귀에서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흉수의 정체를 남기려고 콱 틀어쥐었겠지!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제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하지만-”

         

       “그래, 강패천 그놈들이 서쪽 기슭에 자리를 잡았지? 내 직접, 강패천 그놈들에게 진실을 물을 것이다.”

         

       순간 꽈릉. 번개가 친다.

       준기충의 얼굴이 희게, 그늘진 음영은 더 까맣게.

       광기 어린 표정이 장로의 눈동자에 아로새겨진다.

       

       

       —-

       

         

       그 시각, 청 일행은 말이 없었다.

         

       도대체 산중에 촌락이 얼마나 있었을까.

       또 양민들은 얼마나 죽어 나갔을 것인가.

       

       두엄 밭에 대충 쌓아 내다버린 촌락민들의 시신들을 보았다.

       그러니 또다른 사도십대천성 중 하나를 건드리는 데에는 그 누구도 망설이지 않았다.

       

       다만, 후계라는 놈을 죽였으니 오늘 밤은 좀 사리자고 모닥불조차 피우지 않은 상태.

       깜깜한 밤에 다들 말이 없다.

         

       그러다 문득, 청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쁜 놈 죽였는데 왜 우리가 축축 쳐져야 해?

       해야 할 일 한 사람은 당당해야지.

       청이 분위기도 돌릴 겸, 크게 소리치는 것이다.

         

       “꿉꿉하고 찝찝해서 못 참겠다! 씻자!”

       

       

    다음화 보기


           


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