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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6

       사실 나는 세 자매 중에서 가장 잠이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내가 ‘게으르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스마트폰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여덟 시면 일어나는 편이니까. 물론 창밖에 해가 떠 있다는 가정 하에. 겨울엔 그 시간이 조금 늘어질 수 있다.

        

       아무튼, 그런 내가 세 자매 중에서 가장 먼저 잠에서 깼다는 사실은 내가 생각해도 놀랄만한 일이었다.

        

       보통은 클레어가 가장 먼저 일어나서 우리 두 사람을 흔들어 깨운다. 그리고 아직 잠이 깨지 않아 조금 비틀거리는 우리들을 끌고 나가 오늘 집에 돌아가는 시간까지 꽉 채워 놀자고 하겠지.

        

       그런 클레어가 지금은 자고 있었다.

        

       평소에는 가끔 좀 과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활력이 넘치는 클레어였지만, 이렇게 잠들어 있으니 천사가 따로 없었다.

        

       아니, 아니다. 클레어는 언제나 천사였다. 클레어 본인은 어린 자신을 내가 구해줬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클레어가 아제르나에서의 나의 삶을 구해줬다고 생각한다.

        

       아마 얘 없었으면 내가 하던 모든 일이 엄청나게 어려웠을 테니까.

        

       언제나 긍정적인 성격으로, 웃으면서 나를 도와주고 앞길을 밝혀주는 클레어는 나에게 이미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건 앨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투덜거리고, 나를 의심할 때도 있긴 해도, 앨리스는 내가 자신을 믿어준 만큼 나를 믿어주었다. 내가 아제르나에서 결국 타락해서 미친 짓을 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앨리스와 클레어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으니까.

        

       “……음.”

        

       그렇게 천사같이 잠들어 있는 두 사람을 보면서 잠깐 고민했다.

        

       이 둘을 깨워야 하나?

        

       하지만……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둘의 얼굴을 찍었다. 이상한 사진을 찍으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자는 모습이 예뻐서 찍은 것이다.

        

       둘 다 엄청나게 깊게 잠들었는지, 스마트폰 특유의 찰칵거리는 소리를 듣고도 깨지는 않았다.

        

       어젯밤에 누워서 한참 이야기했던 것 때문이었을까.

        

       어느 시간에 잤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겉옷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으으.”

        

       차가운 새벽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떤 뒤 바람막이를 입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쿡 찔러넣으니 조금은 견딜 만 했다.

        

       하암, 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폐 안으로 차갑지만 상쾌한 공기가 가득 들어와 잠이 조금 깼다.

        

       “…….”

        

       그리고 말없이 걸어 황제의 텐트 쪽으로 향했다.

        

       음.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밖에서 안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사람이 잠을 자더라도 인기척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나는 문 지퍼가 끝까지 잠긴 텐트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어깨를 으쓱했다.

        

       자고 있다면 굳이 깨울 생각은 없었다. 일부러 깨워서 할 이야기도 없고.

        

       다만, 만약에 깨어있다면—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셔서 폐 안으로 신선한 공기를 잔뜩 들여보내며, 나는 해변을 향했다.

        

       쏴아, 쏴아, 파도 소리가 웅장했다.

        

       예전에 읽은, 바다는 크레파스 같은…… 뭐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었는데. 아마 광장이었나 그랬을 거다. 소설의 첫 부분을 보고 엄청나게 감명받았었는데, 그 모습이 딱 그랬다. 파란 용이 몸을 뒤트는 것 같은 모습.

        

       그리고 그 해변에 누가 봐도 그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서 있었다.

        

       몇 년 정도만 있으면 장년에서 노년으로 인생의 장이 넘어갈 것 같은 나이지만, 여전히 허리는 꼿꼿하고 어깨는 넓었다. 한 나라를 지탱하던 사람의 몸이라 저런 것일까.

        

       하지만 바다 앞에 혼자 서 있으니 그렇게 작을 수가 없었다. 그 대자연조차 자기 발아래 놓으려고 했던 사람이건만.

        

       나는 별생각 없이 휘적휘적 걸었다.

        

       밤사이에 어느 정도 마른 샌들은 발에 모래를 더 묻히지는 않았다.

        

       다만 발가락 사이에 모래 입자가 끼어드는 것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별 열의도 없이 휘적휘적 걸어 황제 옆까지 갔다.

        

       “일어났느냐?”

        

       “일어나지 않았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몽유병이 있는 것 같습니까?”

        

       “……예전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말을 하는구나.”

        

       “당신이 절대 권력을 손에 넣은 황제였으니 그랬던 것입니다. 힘을 숨겨야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너는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내가 결국 끝까지 너에 대한 경계를 놓지 않았으니까.”

        

       “예, 뭐, 여신도 그렇긴 했습니다.”

        

       나는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잠깐 파도 소리를 들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물리법칙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라는 건 알고 있다. 파도가 휩쓰는 소리 따위에 번뇌가 씻겨나갈 수 있다면 세상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기분’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역시 기분전환을 하기에는 장소 자체가 달라지는 게 최고였다.

        

       “이쪽 세계에서 지내면서…… 뭔가 느끼신 것이 있으십니까?”

        

       “그런 질문을 하는 저의가 궁금하구나.”

        

       “조금 바뀐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냐?”

        

       황제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나처럼 바람막이를 입은 채 손을 주머니에 쿡 찔러넣은 그 모습은 꼭 스포츠용품 광고를 하는 외국 모델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좀 아저씨 같았다. 후자는 아마 내 개인적인 감상일 것이다. 내가 이 사람을…… 그만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네가 내 앞에서 힘을 숨겼던 것처럼, 나도 네 앞에서 숨겨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겠지.”

        

       “…….”

        

       꽤 그럴싸한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가고 싶으십니까?”

        

       “돌아갈 생각이다.”

        

       “돌아가면 분명 처벌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내가 벌인 일이다. 나의 음모고, 나의 계획이었다. 그렇다면 그 결말도 온전히 나의 것이다.”

        

       “이쪽 세상으로 잠깐 피신했던 분이 하실 소리가 아닙니다만.”

        

       내가 처음으로 웃자, 황제도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잠깐 시간을 벌 생각이긴 했지.”

        

       “부질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세상에 부질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또한 부질없는 일은 아니겠지. 적어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은 있었다. 사실, 너무 많이 있었지. 그게 조금 탈이었던 것 같기도 하구나.”

        

       “……어쩌면, 저희 셋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이 탈이었을지 모르죠.”

        

       황제가…… ‘황제’가 아닌, 아버지였던 시간.

        

       물론 그를 온전히 아버지라고 생각한 사람은 앨리스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음, 원래 딸들과 아버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아 서먹한 경우는 많지 않은가.

        

       이 경우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 서먹함이 좀 심각한 서먹함이라 그렇지.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다.”

        

       황제는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잠깐 말이 없던 황제가, 내 쪽을 슬쩍 보면서 말했다.

        

       “여기서 원래 살았었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만.”

        

       엄밀히 따지자면 ‘여기’는 아니지만, 황제는 나더러 ‘강원도에서 살았냐’라고 물어본 것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에서 살았냐고 물어보는 거지.

        

       “그럼 가족도 있었겠구나.”

        

       “그렇습니다.”

        

       “…….”

        

       황제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돌아가기 전에, 만나고 싶지 않으냐?”

        

       “잠깐 보는 정도라면. 가족들은 저를 저라고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테니까요.”

        

       “그렇구나.”

        

       황제는 잠깐 말을 쉬었다가 말했다.

        

       “내가 모은 돈 중 일부를, 그 가족에게 줄 수 있다.”

        

       “…….”

        

       나는 황제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식을 하나 잃은 가족이 아니냐.”

        

       “그런 것을 신경 쓰시는 분이셨습니까?”

        

       “…….”

        

       나의 말에 황제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떨어지면, 결국에는 누군가를 의지하게 되는 법이더구나.”

        

       “…….”

        

       그랬었나?

        

       황제가 티를 내지 않아서 잘 모르겠던데.

        

       뭐, 적어도 글을 가르쳐준 사람은 나긴 했다. 이쪽 세상의 규칙 같은 걸 알려주고, 주식이니 뭐니 하는 것들의 존재를 알려준 사람도 나였다.

        

       황제가 스마트폰을 배운 상대도 나였고.

        

       뭐야, 나 생각보다 훨씬 도움 되었네.

        

       “최소한의 보상이라고 생각하자꾸나. 내가. 너에게 했던 일에 대한.”

        

       “이쪽 세상에 와서 제 도움을 받아서 생각이 바뀌게 된 것입니까?”

        

       “네 도움만은 아니다.”

        

       황제는 천천히 말했다.

        

       “앨리스와 클레어도, 네가 보지 않는 사이에 꽤 많은 도움을 주었다.”

        

       “…….”

        

       뭐, 알고는 있었다. 아무리 우리 셋이라고 해도 24시간을 붙어있지는 않으니까.

        

       클레어는 황제의 방송을 적당히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걸 도왔고, 앨리스는 그 채널을 관리하는 것을 도왔다.

        

       내가 황제와 사이가 나쁘다는 걸 아는 두 사람은 구태여 그걸 나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숨어서 몰래 하지도 않았다. 나도 굳이 뭐라고 하진 않았고.

        

       “하지만 그래도 결국 이 세상에 와서 시간을 벌 수 있었던 건 네 존재 덕분이었지. 네가 아니었다면 이 세상과의 인연 자체가 없었을 테니.”

        

       “…….”

        

       그 말에는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방법은 차근차근 생각해보자꾸나.”

        

       “……알겠습니다.”

        

       황제의 그 말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그리고 잠시 뒤, 뒤에서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클레어가 내 쪽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앨리스는 이 거리에서 보기에도 잠에서 다 깨지 못한 표정으로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서 있었다.

        

       “자매들에게 가겠느냐?”

        

       “예. 여기 계시겠습니까?”

        

       “옆에 호위 없이 바다를 보는 경험도 꽤 괜찮더구나.”

        

       황제의 그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내 자매들과 남은 시간을 즐기기 위해 두 사람을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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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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