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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7

        

       청의 고향에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는 말이 있다.

       달리 말해서, 웅덩이 하나를 흐리는 데는 미꾸라지 한 마리면 충분하다는 소리다.

         

       물론, 본래 단단한 암반, 혹은 자갈이 잘 깔려 흙을 눌러놓은 웅덩이는 미꾸라지가 아무리 몸을 비틀어봐야 흐려지지 않는다.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려면 애초에 더러운 것들이 수면 바닥에 자욱하게 깔려있어야 하는 법이므로.

         

       그래서, 사파가 괜히 사파인가.

       저들끼리도 눈빛이 교활하게 번들거리며 함께 일하면서도 서로 더 챙겨갈 속셈으로 견제와 방해를 일삼는 놈들이다.

       그런 사파들이 잔뜩 모인 산에서, 아주 제대로 이간질을 벌인다?

         

         

         

       강패천의 일계위 무사가 눈을 부릅뜬다.

       가슴팍에 타인의 손이 박히고 나면, 부릅뜨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자동이다.

       

       “어째, 서……?”

         

       “어째서? 크흐흐. 몰라서 묻나?”

         

       절낙성 성존 준기충이 손을 뽑는다.

       손아귀에는 싱싱한 심장을 움켜쥔 채로.

       그리고는 보란 듯이 꽉 쥐어 뭉개버리는 것이다.

         

       그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는 시선이 하나.

       강패천의 이계위 제자다.

         

       절대로 태시만호 준기충이 두려워서 숨은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서 저 간악한 절낙성 놈들의 습격을 본대에 알려야만 하지 않겠나.

       무려 절낙성의 성존이 직접 이끄는 습격이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 살아야 한다면 그건 바로 자신이었다.

          

       어째서 절낙성 놈들이 이러한 짓을 벌이는가에 대해서는 딱히 고민할 필요도 없다.

         

       본래 사도십대천성이란 오대천 오대성을 아울러 부르는 말이다.

       정파 식으로 말하면 오대세가와 십대세가 쯤 된다.

       즉, 세가 강한 다섯 사파를 오대천, 세가 덜 강한 다섯 사파를 오대성이라 하고 둘을 합쳐 십대천성이라 부르는 것이다.

         

       당연히 오대성은 오대천을 제끼고 성 자 떼고 천 자를 붙이고 싶어한다.

       그러니 혈교의 습격을 받아 전력이 대폭 줄어든 강패천의 비급 탐색조를 지워버리려는 수작이 아니겠느냐고.

         

       강패천의 무사가 더욱 숨을 죽인다.

       그래서 더욱 들켜서는 안 된다.

       이 음모를 알리고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 죽어나가는 형제들을 눈에 새기고 보고해야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절대 두렵고 무서워서 숨어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나가 칼을 휘둘러 저 비열한 놈들을 베어내고 한 목숨 장렬하게 불태우고 싶지만, 보고를 해야 하니까.

       정말로 안타깝다, 어쩔 수 없구나.

       헉, 여기 본다. 흡.

         

       그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꾹 눌러 참으며 목숨을 건진 강패천 제자다.

       절낙성 습격조가 사라지고도 반 시진이 넘도록 눈치를 살피다가, 그제야 부리나케 뛰어 본대에 소식을 전한다.

         

       “뭐야? 절낙성 놈들이!? 왜!”

         

       “이참에 저희를 제끼려 드는 것이……”

         

       “크흠.”

         

       강패천 장로가 낭패감에 신음을 삼킨다.

         

       그야 그렇겠지.

       한바탕 도시를 뒤지며 소란을 떨었으니, 혈교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질 만도 하다.

         

       오해거나 음해라는 생각은 안 한다.

       그야 쳐들어올 만한 놈들이 쳐들어왔으니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겠구나 싶지.

         

       그리고 오해나 음해여도 마찬가지다.

       이미 강패천의 형제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이후에 적과 대화를 나눌 것도 아닌데.

         

       그리하여 두 집단이 보물은 일단 저 뒤로 미루고, 은밀하게 몸을 낮춰 서로를 물어뜯기 시작한 것이다.

         

         

         

       특이하게 마두들은 여럿이 돌아다닌다.

       그야 딱 죽기 좋은 짓들만 저지르고 다니는 놈들이 아니겠나.

       그러다 보니 원한도 무럭무럭 자란다.

       하나는 약하지만 여럿은 강한 법.

       마두들이 유난히 의형제 맺어 우르르 몰려다니는 이유다.

         

       이렇게 나쁜 놈들은 동네와 숫자, 죄질에 따라 달리 부른다.

         

       가장 조무래기는 견이다.

       예를 들자면 장안삼견, 뭐 이런 식으로.

       해봐야 술값 떼먹기 여인 희롱하기 남의 사업장에서 행패 부리기 노인 공격 싸가지가 개싸가지 등등의 경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이다.

         

       기이하기도, 악인의 자부심은 악행이다.

       그래서 견 급의 악인들은 스스로 견이라 지칭하지는 않는다.

       자기 스스로 견이라 부르기엔 모자람을 알기 때문에 겸손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쁜 짓을 저지르고 다니다 보면 사람들도 마두로 인정해주며 뒷글자를 바꿔준다.

         

       ~~흉이라 불리는 놈들은 흉악 범죄자.

       ~~살이라 불리는 놈들은 연쇄 살인마.

         

       그러면 악인들은 좋다고 제 입으로 우리는 장안삼흉, 멋지지 않냐 떠드는 것이다.

       실상은 끔찍한 놈이니까 상종하지 말라는 일종의 낙인과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청이 노산에서 여럿 만나보니, 흉과 살은 인간 능력 검정 시험을 응시할 필요도 없이 그냥 짐승 새끼들이더라고.

         

       “저는 그냥 산수유…… 애가 아파서 열이 막……”

         

       그놈의 산수유는 아주 징하게 팔아먹는 청이었다.

       사실, 의서에 따르면 산수유에는 해열을 하는 효과는 없다.

       황제내경과 본초강목에 따르면, 산수유는 남성의 정력 증진에 좋다고 한다.

       해열 작용은 없다.

         

       그런데 애가 펄펄 열이 끓는데 도대체 왜 산수유를 찾는 것인가.

       애는 이미 틀렸으니, 자식은 또 낳으면 되는 것이다 하고 남편에게 먹일 산수유를 찾는 것인가?

         

       정답은 청의 뿌리가 한민족이라 그렇다.

         

       어쩐지 산수유 열매라고 하면 그렇지?

       아픈 자식을 위해 눈밭을 헤치고 따오신 아버지의 절절한 부성애?

         

       물론, 그 아버지는 도대체 왜, 열이 끓는 아들을 위해서 그렇게 눈 내린 춥고 깜깜한 밤을 헤매시다 천연 정력제를 따오셨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여강육살 어르신들이다. 흐흐.”

         

       여강육살? 살이네?

       청이 애달프던 표정을 싹 지운다.

         

       “아. 그래요?”

         

       청이 딱딱 손가락을 튕긴다.

       그러자 부스럭.

       절낙성의 무복을 챙겨입은 천유학이 뒤로 둘을 척 두르고 나타나는 것이다.

         

       이간질을 하는 수단은 다양할수록 좋다는 청의 혜안이다.

       남을 골탕먹일 때만 영민한 청이었다.

         

       “누구냐!? 헉, 절낙성! 그, 절낙성의 대협분들께서는 어찌하여……”

         

       청이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마두끼리는 통하는 데가 있나?

       용케도 무복을 다 알아보네.

         

       하긴, 나도 구대문파 도복 정도는 눈으로 보면 곧장 알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감히 절낙성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그 죄값, 목숨으로 치러라!”

         

       천유학이 근엄하게 소리를 친다.

         

       여강육살은 억울하다.

       우리가 무슨 행사를 방해했다고?

       물론 억울하면 표현해야 알아주는 법.

         

       “그, 저희가 무슨……”

         

       천유학이 씨익 비열한 미소를 짓는다.

       청은 되게 잘 어울리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보물을 독차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쟁자를 모두 없애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에 챙챙 여강육살이 칼을 뽑아든다.

       하지만 천유학은 조용히 강환을 띄워올려 응수할 뿐이었다.

         

       여강육살의 어깨가 확 움츠러든다.

         

       “그, 저희는 이만 포기하고 물러날 터이니-”

         

       “안 되지. 감히 절낙성을 향해 칼을 빼든 놈들을 그냥 보내 주면 우리 체면이 도대체 뭐가 되나. 적어도 어디 한 군데는 내놓고 가야 계산이 맞지 않나?”

         

       “크윽.”

         

       “음. 절낙성의 딸을 건드렸으니, 너희도 여인이 되어보면 대충 계산이 맞겠구나. 자 너희 양물을 내어놓고 사라지거라.”

         

       그에 여강육살이 서로 눈치를 살핀다.

         

       “그, 어르신? 보통 손가락이라던가.”

         

       “양물.”

         

       “그러면 손가락 세 개 까지는-”

         

       “양물.”

         

       “어, 그. 차라리 손목 하나를 내어놓고 가겠습니다. 제발.”

         

       “양물.”

         

       거의 중립국을 연호하는 리 씨의 단호함과 맞먹는다고 하겠다.

       물론, 천유학의 뒤에 좌우로 시립한 진장명과 모용주희는 귀끝이 벌겋게 익어 차마 앞을 보지 못하고 진창을 관찰하는 중이다.

         

       청이 보기엔 조금 귀엽기도 하고.

         

       겨우 양물 소리에 부끄러워하기는?

       무슨 애도 아니고.

       아니지. 쪼그만하니까 애들이 맞나?

         

       “이대로 고자가 될 성 싶으냐! 쳐라!”

         

       양물을 지키기 위한 비장한 사투의 시작이었다.

         

       물론, 지키지 못했다.

         

       “크크, 어떠냐? 억울하냐? 억울해? 억울하면 언제든지 절낙성으로 찾아오거라. 이 계집들아. 큭, 계집 치고는 아주 사내답게 자알 생겼구나. 크하하하!”

         

       여강육살, 이제는 여강육고자다.

       천유학이 살살 약을 올리며 몸을 돌린다.

         

       청이 그 뒤를 따르고, 더러운 것을 보여줄 수 없어 저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장명과 모용주희가 일행에 합류한다.

         

       남겨진 여강육살이 피로 얼룩진 하반신을 하고서는 이를 우드득 간다.

         

       차라리 죽일 것이지!

       이 무슨 횡포, 이 무슨 치욕이란 말인가!

         

       그런데, 놀라운 사실 하나.

       궁형은 청의 발상이 아니다!

       천유학의 생각이었다.

         

       청은 그냥 조촐하게 손모가지만 날리면 되지 않겠냐고 했다.

       그러면 악인으로서도 하찮아지고 원한은 절낙성 그 죽일 놈들을 향하지 않겠냐고.

         

       하지만 천유학이 고개를 저었다.

         

       손목을 자르면 오히려 겁을 먹고 숨어서, 그 화풀이를 양민에게나 할 것이다.

       그러니 원한이 애먼 양민, 약하고 가여운 이들에게 향해 세상에 더욱 해악을 끼치고 말 것이다.

         

       그러니 궁형이다.

       청이 너는 사내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청은 억울했다, 많이 억울했다), 사내는 양물의 원한을 절대 잊을 수 없다.

         

       저 위대한 사마천 역시 거세형, 궁형을 당했으니, 기둥이 없어 소변을 가누지 못했다.

       그러니 늘 줄줄 새어 막역한 친우들조차 그 악취를 참지 못해 만나주지 않았다더라.

       그러니 그 참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것이고, 절낙성과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 것이다.

       제 몸 불태워서라도 복수하려는 복수귀가 되지 않겠느냐고.

         

       평소의 천유학이라면 절대 입에 담지 않을 끔찍한 발상이지만.

       천유학 역시 화가 많이 차올라서.

         

       촌락이 몰살당한 꼴을 몇 번이나 보았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다른 촌락들 역시 뻔히 같은 꼴을 당했으리라.

         

       게다가 일행에 이런 폭주를 막을 사람이 없다.

         

       진장명은 남을 사칭하여 신녀문에 피해가 안 가는 편이 좋아서, 그리고 모용주희는 마찬가지로 많이 화가 났기 때문에.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철혈검천의 거점이 절낙성에게 습격당함.

       초류북두천이 거점이 철혈검천에게 전소.

       광룡성의 거점이 초류북두천의 별동대에게 습격당해 큰 피해를 입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원한 돌리기였다.

         

       거기에 사도십대천성의 무사들이 자꾸만 중소 문파를 습격하며 경쟁자 제거에 열을 올리기까지.

         

       그 외에는 대거 등장한 고자들이 사도의 거대 문파를 향해 이를 갈았다.

       일부는 산에 남아서 몰래몰래 습격을 가하며 원한을 풀고, 일부는 훗날을 기약하며 물러나기도 하고.

         

       누가 보면 흡정마공 찾으러 와서는 내내 싸움만 붙이고 돌아다닌다고 할 꼴이다.

         

       하지만, 보물 찾기도 겸하는 중이다.

         

       다만, 직접 찾을 필요가 있나?

       찾던 놈들 조지면 그 결과를 공유받을 수 있었으니, 악인도 조지고 겸사겸사 이 산도 아닌가 보다 하고.

         

       그리하여 원한 돌리기의 결과, 이제는 산자락 어디에서도 어렵지 않게 시신을 찾을 수 있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조용히 능선을 타고 있으면, 죽어라! 소천주의 원수! 감히 누구를 건드리는 줄 아느냐! 하고 창창 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고작 네 명의 악질들이 온 노산에 피바다를 불러일으킨다.

       그야말로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리는 이치와 같다고 하겠다.

         

       다만.

         

       본래 미꾸라지가 웅덩이를 흐린 뒤에는 오히려 물이 맑아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미꾸라지 특유의 미끄덩한 점액이 부유물을 단단히 붙들고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악인이 서로 죽이는 이 참상이란 세상으로 보면 참으로 흐뭇한 꼴이 아니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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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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