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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7

       나는 근본이 오타쿠라서, 능력의 컨셉을 굉장히 따지는 성격이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볼 때, 게임을 할 때도 그렇다. 어차피 온라인 게임은 거의 하지 않으니 캐릭터를 내 취향대로 적당히 키우곤 한다. 물론 JRPG처럼 캐릭터의 컨셉이 확실하다면 굳이 다른 방식으로 키울 생각은 하지 않지만.

        

       아무튼, 그래서 이쪽 세상에서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때 어떤 식으로 돌아갈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

        

       방송을 틀어두고 화려하게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그냥 조용히 돌아갈 것인가.

        

       우리가 내린 결론은 조용히 돌아가는 것이었다.

        

       황제도 특별히 우리가 돌아가는 것을 티 내고 싶어 하지 않았고, 앨리스나 클레어도 나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는 지보가 환하게 빛나는 것을 확인하고, 일주일 정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느긋하게 생각하며 두고 갈 것과 들고 갈 것을 정하기로 한 것이다.

        

       앨리스는 책을 많이 골랐다. 돌아가서도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해결책을 세워보겠다는 것이 앨리스의 생각이었다.

        

       클레어는 대부분 사진이었다. 우리가 이쪽에서 지내며 쌓은 추억들을 버리기 싫다는 모양이었다. 그 외에는 기념품을 몇 개 챙긴 모양이었다.

        

       황제는…… 앨리스와 비슷했다.

        

       “저쪽에 가서 정치를 다시 할 생각이십니까?”

        

       “이건 내 생각이다만, 말해도 되겠느냐?”

        

       “……말씀해보십시오.”

        

       나의 말에 황제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내 그림자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다. 물론 나는 꽤 오랫동안 연금되겠지. 황제 자리도 잃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형에 처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

        

       거기까지는 나도 생각한 바였다.

        

       “그리고, 연금 중에도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겠지. 정적들은 내가 ‘살아있다’라는 것만으로도 쉽게 앨리스를 공격하진 못할 거다.”

        

       그 말에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이름을 이용하라는 뜻입니까?”

        

       “그렇다. 그리고 나도 나 나름대로 조언을 해줄 수도 있고.”

        

       “…….”

        

       내가 황제를 노려보자, 황제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 않으냐.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고 해봐야 이 지식들에 제국의 현 상황을 대입해서 어느 정도 예상하는 정도다. 앨리스가 제국의 정보를 모두 넘기지 않는 한 내가 앨리스를 조종하는 것은 불가능해. 그리고, 나는 내 딸이 그 정도 감언이설에 넘어가도록 키우지는 않았다.”

        

       앨리스는 황제를 흘겨보았지만, 황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

        

       “세상을 내 손에 넣는 것은 실패했지. 하지만 제국은 여전히 내 조국이다. 쉽게 무너지게 둘 수는 없지. 그리고, 설령 내가 앨리스를 조종하고자 해도 네가 앨리스 곁에 있을 생각이 아니더냐?”

        

       그건…… 그랬다.

        

       물론 내가 황제가 될 생각도 없고, 어떤 공식적인 지위로 올라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일단 앨리스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나는 황위 계승 서열 1위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당연히 앨리스를 전력으로 도와야 했고, 도울 생각이기도 했다.

        

       “그러니……음, 내가 이런 말을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알겠습니다.”

        

       나는 결국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챙긴 짐들을 거실에 가져다 놓았다. 커다란 등산 배낭이 거의 꽉 찼다. 솔직히 매고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들고 아제르나로 갈 수만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네 이쪽 세상의 가족 말이다만.”

        

       황제는 나에게 말했다.

        

       “돈을 줄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그렇습니까.”

        

       “그래. 정답은 역시 ‘그냥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아이디어는 몇 가지 떠올랐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가장 간단한 법은 그냥 세금을 물리고 돈을 주는 것이지.”

        

       “…….”

        

       “그러니 상대를 직접 만나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앨리스가 말했지만, 황제는 나만 똑바로 보고 있었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도록 하마.”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을 할지는 생각해 두셨습니까?”

        

       “그래.”

        

       황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가족을 직접 만날 생각은 없었다.

        

       아무래도 말을 걸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봤다가는 울거나 엄마라고 부르거나 뭐 그런 짓을 할 것 같아서.

        

       결국 선택한 것은, 내가 가족의 외모를 설명하고, 이름을 말하고, 아무튼 그런 거였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가족사진이 있는 곳 정도는 쉽게 찾을 수 있었으니까. 내가 쓰던 컴퓨터는 자취방에 그대로 있었고, 우리는 이사 올 때 그 컴퓨터도 들고 왔다.

        

       ……여신은 내 가족사진은 세상의 질서를 해치는 정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하긴, 그걸 가지고 있다고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쪽 세상에서 내 ‘전생’은 이미 죽은 사람이었고,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이니까. 그런 사진은 내 가족의 컴퓨터에도 들어있겠지.

        

       가족사진으로 얼굴을 외우고, 이름과 주소, 연락처를 외우고.

        

       황제가 생각해낸 방법은 간단했다.

        

       통장 하나를 만들어 돈을 넣고, ‘당신 아들이 코인을 해서 대박 난 적이 있다. 나는 그 돈을 보호하고 있다가 드디어 당신의 소재를 찾아 전할 수 있었다.’라고 하는 거다. 그리고 그 돈을 굳이 건네는 이유는 ‘주식 투자할 때 종잣돈을 투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구슬픈 사연을 만들었지만, 굳이 하나하나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다 지어낸 이야기니까.

        

       얼핏 들어서는 좀…… 허술한 작전이었지만, 이건 황제의 화술에 기댈 수밖에 없고.

        

       나와 앨리스, 클레어는 내 가족이 살던 아파트 근처의 카페 2층에 자리를 잡고 거리를 보았다.

        

       밖에선 황제가 내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20분쯤 기다렸을까.

        

       “아.”

        

       저 멀리 가족이 보였다.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먼 거리였는데도, 나는 보지 못한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나는 여전히 내 가족을 알아보았다.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동생.

        

       세 사람은 화목하게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황제도 내 가족을 발견한 모양이다.

        

       전혀 망설이지 않는 태도로, 그는 우리 가족을 향했다.

        

       황제가 말을 걸자— 세 사람은 몹시 당황한 듯 보였다.

        

       나는 천천히 커피를 목으로 조금씩 넘기며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

        

       황제가 이야기하자 세 사람은 처음에는 긴가민가한 반응을 보였다가, 황제가 통장을 넘기자 그게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다.

        

       절정은— 내가 쓴 편지였다.

        

       지금의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내 손으로 직접 유서를 쓰는 것이었다.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투자금은 모두 가족들에게 보내주세요’라고, 그리 길지는 않은 문장.

        

       하지만 내가 쓴 글이라는 건, 아마 알아볼 수 있을 거다. 내 유품 중에는 내 글씨가 들어간 것이 많을 테니까.

        

       필적 감정을 한다면 분명히 내가 쓴 것으로 나오겠지. 애초에 내가 쓴 것이었으니까.

        

       어머니가 통장과 유서를 받아 가슴에 끌어안았다.

        

       황제는 그런 어머니에게 몇 마디 더 하고, 아버지와 동생과 악수를 한 번씩 했다.

        

       그리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보이고, 돌아섰다.

        

       세 사람은 황제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천천히 돌아서 아파트 쪽으로 들어갔다.

        

       “괜찮겠어?”

        

       “네?”

        

       앨리스가 갑자기 말을 걸어서, 나는 어깨를 흠칫 떨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앨리스가 조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잔에 있는 음료는 전혀 줄지 않았다.

        

       “직접 만나보지 않아도, 괜찮아?”

        

       “…….”

        

       사실, 그렇게 괜찮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걸로 충분했다.

        

       세 명 모두 큰일은 없다는 걸 알았고, 적지 않은 돈이 전달되는 것도 보았으니까.

        

       편지에 길게 쓰지 않은 이유는 혹시라도 내용을 읽다가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할까 봐, 그리고 내가 ‘진심 어린 유서’로서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30대 남성이 누군가에게 투자하며 유서를 쓰면서 누가 진지하게 내용을 쓴단 말인가? 적어도 내 성격은 그렇지 않다.

        

       쓰라고 해서 썼다, 그런 분위기를 풀풀 풍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네, 괜찮습니다.”

        

       분명,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니.”

        

       클레어가 내 어깨에 부드럽게 손을 얹었다.

        

       “…….”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세 사람은 천천히 단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 결국 아파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공동현관의 불이 켜지면서 세 사람의 얼굴이 멀리서도 선명히 보였다. 조금…… 슬퍼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이거면 충분합니다.”

        

       나는 잔을 내려놓으면서, 입가에 살짝 미소 지은 채 말했다.

        

       “지금의 가족은, 여기 있으니까요.”

        

       내 말에 앨리스와 클레어도, 조금 미소 지었다.

        

       그래, 이제 다시 황제를 만나러 가야지.

        

       그리고…… 오늘만큼은 고맙다고 해야겠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외전도 앞으로 몇 화 정도 이어집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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