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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7

        

         

       진성은 나머지 둘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지금 등장하지도 않았으며, 이미 바뀌기 시작한 미래에 확정적으로 등장한다는 보장 또한 없었기에.

       그리고 지금 말한다고 하더라도 의미가 없는 것이었기에.

         

       그렇기에 나머지 두 개는 그녀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장난 같은 요소로 남겨두고는, 대신에 품에서 카드 뭉치 하나 또 꺼내 들었다.

         

       복채를 받았으면 마땅히 점을 쳐 줘야 하는 법.

         

       그녀들에게 점을 봐줄 시간이 왔다.

         

       “자아,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고…. 이제 점을 쳐보도록 하지요.”

         

       진성은 방긋 웃으면서 테이블 위에 카드 뭉치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앞서 부채꼴 모양으로 늘어놓았던 카드 뭉치 위에 다시 한번 부채꼴 모양으로 펼치면서 카드가 겹치게 했고, 그렇게 카드가 겹친 것을 확인하고는 천천히 두 손을 부채꼴 위에 가져다 댔다.

         

       스으윽.

         

       그리고는 그는 카드 뭉치를 흐트러트리기 시작했다.

       부채꼴 모양으로 질서 있게 놓여 있던 카드 뭉치는 혼돈처럼 변해가며 사방으로 퍼졌고, 규칙성 따위 없이 흩어졌다.

         

       그렇게 테이블 위가 지저분해졌을 때.

         

       그제야 진성은 테이블 위에서 손을 떼고는 팔짱을 꼈다.

         

       “준비는 끝이 났습니다. 자아, 가장 먼저 프라우 라이히께서 점을 보시면 되겠군요.”

         

       “저, 말인가요?”

         

       “네.”

         

       아그네스는 자신을 지목하는 진성의 말에 왜 자신이 먼저 봐야 하냐는 듯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 이유는 프라우 라이히께서 저의 가장 앞에 서 있기 때문이지요.”

         

       “아.”

         

       하지만 이유는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다.

         

       그냥 가장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순서가 상관없는 것이라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봐주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아그네스는 별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자 머쓱한 듯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방법은 간단합니다. 테이블 위에 손을 뻗으세요. 주로 사용하는 손을 사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카드 뭉치 위에요?”

         

       “아뇨. 카드에 손이 닿지 않도록, 적당한 위치에서 멈춰주세요. 네. 허공에 손을 뻗되 테이블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가듯이.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테이블의 인력에 이끌려 내려간다는 느낌으로…네. 잘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눈을 감아주세요. 그리고 몸에 힘을 빼고, 팔에 신경을 집중해주세요. 힘을 빼되 정신은 팔 쪽으로 향하는 것처럼….”

         

       진성은 천천히, 하지만 귀에 잘 꽂히는 목소리로 아그네스의 행동을 유도했다.

       마치 최면이라도 걸듯이.

         

       “팔이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고 생각해주세요. 팔에는 뿌리가 있어서 어깨에 둥그스름한 모양으로 얽혀있습니다. 그리고 그 줄기가 뻗어나가고, 그 끝에 손가락이 있어요. 그리고 손가락 끝에 보이지 않는 열매가 열려 있다고 생각해주세요. 열매는 흐릿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묘하게 온도가 다른 느낌입니다. 손끝을 간지럽히는 느낌이 살짝 들기도 합니다…. 그 열매는 하나로 점점 합쳐지고,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가 되었습니다.”

         

       “네….”

         

       “그것을 조심스럽게 움켜쥐어보세요. 조금만 세게 잡으면 터질 것 같으니 아주 약하게, 아주 조심스럽게 잡아야 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움직여 주세요. 손가락이 오므려지고, 손바닥에 감촉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묘한 감각이 느껴지는 바로 지금, 이 순간…예. 지금, 이 순간 멈춰주세요.”

         

       “….”

         

       “자아. 손에 열매가 쥐어져 있습니다. 탐스럽게 맺힌 열매입니다. 그리고 다 익어서 바닥에 떨어질 것만 같은 열매입니다. 이 열매가 익어가며 나뭇가지가 아래로 쳐지기 시작합니다. 인력에 이끌려서, 중력에 이끌려서 천천히 가지가 처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열매는 바닥에 떨어질 듯 위태롭게 달려 있어요. 당신은 그 열매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그대로 움켜쥐고 있지만, 열매는 너무 물러서 조금만 힘을 줘도 터질 것 같기에 제대로 잡을 수가 없어요…. 그렇기에 온 신경을 열매에 쏟은 채, 계속해서 당신은 열매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어. 가지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

         

       “가지가 조금씩 흔들립니다. 자라난 나무를 망가뜨리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산들바람이지만, 당신의 손가락이 조금 흔들리게 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쥐고 있던 열매가 손끝에서 점점 빠져나오기 시작합니다. 손가락에 힘을 줘 보지만 열매가 미끄러집니다. 무른 껍질에 손가락이 파고들기라도 한 것인지 열매는 반쯤 터진 채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중력에 이끌려서, 인력에 이끌려서 바닥으로 향합니다. 당신은 그것을 주워 담기 위해 나뭇가지를 움직입니다. 열매가 잡힐 듯 잡히지 않을 듯 아슬아슬한 거리를 벌리고 있습니다. 열매는 계속해서 떨어지고, 마침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바닥에 떨어지고, 그리고….”

         

       말을 이어 나가던 진성은 아그네스의 귓가에 두 손을 천천히 가져갔다.

       그리고는 충분할 정도로 거리를 벌리더니….

         

       짜악-!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거대한 박수 소리를 내었다.

         

       “꺄악!”

         

       덜커덩!

         

       아그네스는 진성의 말에 빠져 있다가 박수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찌나 놀랐는지 의자를 덜컹거리기까지 했다.

       아마 운동신경이 좋지 않았다면 실제로 뒤로 넘어갔을 수도 있었으리라.

         

       “까, 깜짝 놀랐잖아요….”

         

       아그네스는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가슴 위에 손을 올린 채 진성을 흘겨보았다.

       놀란 까닭인지, 그것도 아니면 추태를 보였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은 살짝 붉어져 있었으며, 가슴이 부풀었다가 줄어들면서 움직였다.

         

       “하하. 죄송합니다. 평소 점술에 연이 없으신데다가 점에 대한 불신이 좀 있으신 것 같아서, 일부러 극약처방을 좀 했습니다.”

         

       진성은 아그네스의 투정 섞인 불평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 이것은 장난을 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점술을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이다.

         

       “그 증거로…보시지요. 훌륭하게 카드들이 선택되지 않았습니까?”

         

       그는 방긋 웃으며 아그네스의 손길이 닿았던 카드들을 골라내었다.

       진성의 말에 홀린 듯 테이블 위에 얹어놓았을 때 닿았던 카드부터, 아그네스가 깜짝 놀라며 건드렸던 카드들까지.

         

       그 카드들의 숫자는 총 10장이었다.

         

       진성은 흐트러진 카드들을 옆으로 치우고는 골라낸 카드들로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 장을 꺼내 가장 윗부분에 놓고, 그 아래에 두 장, 그 아래에는 세 장, 그 아래에는 네 장.

         

       카드로 만들어진 피라미드 모양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타락 이전 에덴동산의 상징 다이어그램입니다. 황금여명회에서 사용하던 다이어그램으로써, 원시적 순수성과 무지의 행복을 상징하고 있지요. 점괘에 대해서 잘 모르고 계시던 프라우 라이히와 잘 어울리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황금여명회…라면. 들어본 적이 있긴 한데….”

         

       “유럽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단체이니 아예 생소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 다이어그램은 그곳에서 신입회원들에게 제공되곤 했는데, 카발라와 관련된 주술적 상징을 한껏 품고 있기도 하지요.”

         

       진성은 카드의 배치를 설명하며 천천히 카드를 뒤집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윗부분부터 아랫부분까지 순서대로 뒤집는 대신 중간에 놓인 카드부터 뒤집기 시작하였는데, 대체 어떤 기준으로 카드를 뒤집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카드들은 전부 뒤집혔고, 특이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니, 특이하다기보다는…어찌보면 엉망진창이라고 해도 무방한 모습을 말이다.

         

       트럼프 카드에서부터 타로, 어디에서 사용하는지 모를 기괴한 그림이 그려진 카드까지.

       온갖 종류의 카드들이 뒤집혀 있었다.

         

       게다가 그뿐만이 아녔다.

         

       그렇게 뒤집힌 카드들조차도 한 종류가 아니었다.

       당장 똑같은 타로가 다른 그림이 그려진 채 뒤집혀 있기까지 했으니….

       정말 엉망진창처럼 보였다.

         

       진성은 그것을 보고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그네스를 바라보았다.

       아그네스는 엉망진창인 카드의 모습에 ‘이게 맞나?’하는 의문이 담긴 시선으로 진성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나마 진성이 실력 있는 주술사라는 인식이 박혀있는 덕분인지 그 불신은 크지는 않은 듯했다.

         

       “일단 점을 살펴보니…. 흐름. 현재 프라우 라이히께서는 말입니다. 날개를 접고 쉬는 나비에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나비…요?”

         

       “예. 나비입니다.”

         

       진성은 아그네스가 선호하는 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점괘를 늘어놓았다.

       나비라는 단어에 강세를 주어서 귀에 또렷하게 박히도록, 그리고 나긋나긋하고 느릿하되 지루하지는 않게 할 속도로 말이다.

       자기 말에 아그네스가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서.

         

       “일단 점괘를 보아하니 프라우 라이히께서는 여행을 참 잘 다니시는 것 같더군요. 세상 곳곳을 떠돌아다녔음이 점괘에서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잘 다닌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성질을 지닌 것은 아니지요. 어떤 사람은 순수하게 여행이 좋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성지 순례를 위해 움직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직업 때문에 세상을 떠돌아다니기도 하지요. 어떤 사람은 불가피하게 세상을 떠돌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연구를 위해서 한 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기도 합니다. 이토록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이유는 많고 다양하지요.”

         

       “….”

         

       “그렇기에 여행자들은 수많은 표현으로 비유할 수 있지요. 순례자, 방황하는 자, 황야의 방랑자, 민들레 홀씨, 구름, 물고기, 목줄이 풀린 개, 새 등등….”

         

       진성은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더니 방긋 웃었다.

         

       “하지만 수많은 비유가 있다고 한들 그중 하나인 법이 아니겠습니까? 프라우 라이히께서는 나비입니다.”

         

       “어째서인가요?”

         

       “세상을 떠돌아다니기는 하되 신념이나 광기에 가까운 목적이 없으니 순례자도 아니고, 목적도 의미도 없이 돌아다니지 않으니 방황하는 자나 방랑자도 아니지요. 그렇다고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니 동물이라고 할 수도 없고, 다른 이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으니 민들레 홀씨나 구름도 될 수 없으며, 주위를 둘러싼 환경이 특이하지도 않으니 물고기도 아니며, 멀리 날지도 아니하니 새도 아니며, 어딘가에 속박되지 않았으니 가축도 아닙니다.”

         

       “….”

         

       “그리하여 나비. 자신의 의지로 하늘을 훨훨 날 수 있고, 꽃향기를 따라 움직여 꿀을 빨며 나아가고, 아름다운 것을 탐하며 돌아다니며, 내려앉을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하는 나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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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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