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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8

       엔리가 나에게 내밀었던 메이드 복은 하나 같이 이딴 걸 옷이라 불러야하나 싶은 것들뿐이었다.

       

       대체가 말이다. 하나 같이 실용성은 내다버린 지 오래인 것들 뿐인 게 말이 되느냐?

       

       다른 이에게 아양을 떨기 위해 만들어졌을 뿐인 것을 어찌 옷이라 부르겠는가.

       

       엔리 그 녀석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었을 때 어떤 꼴이 될지 짐작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옷을 고르는 데 관여를 해야만 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이거 어때요. 꽤 괜찮지 않아요?’

       ‘너무 고리타분하잖아요. 이런 건 제가 허락할 수 없어요.’

       

       그나마 옷다운 옷을 골라 가리키면 재미가 없다고 투정을 부리고.

       

       ‘그럼 이건 어때요? 멋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는데.’

       ‘…으엑. 진짜 아라 씨는 패션 센스가 괴멸적이네요. 어떻게 이런 걸 고를 수가 있죠?’

       

       기껏 타협하여 괜찮은 것을 골랐더니 이런 재미없는 옷은 허락할 수 없다며 한 소리를 하고.

       

       ‘바루님. 바루님. 이거 봐요. 이게 아라 씨랑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흠. 어울리기야 하지 않겠느냐? 아라는 옷걸이가 좋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것보단 이런 게 낫잖아요!’

       ‘확실히 네 말이 옳구나. 다른 옷들에 비하면 이건 너무 별로야.’

       

       결국 나를 빼어 놓고서 바루와 함께 이런저런 토의를 시작하더니 마지막에 가서는 자기들이 선별해놓은 것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는 식이 되었지.

       

       ‘이거 말고 다른 건 없어요? 하나같이 뭔가 좀.’

       ‘아라 씨. 이게 아라 씨의 벌칙 의상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죠? 자꾸 그러시면 진짜 제 마음대로 하는 수가 있어요.’

       

       엔리의 협박을 이길 수 없었던 나는 그 중에 하나를 골라야만 했더랬다.

       

       그 때에는 최악 중에서 최선을 골랐다고 생각을 했다만 의상의 실물을 눈으로 보게 되니 생각이 좀 달라지더구나.

       

       “와아! 실물로 보니 훨신 좋네요! 역시 제 안목은 탁월하다니까요!”

       “엔리. 그대의 안목이 아니라 본인의 안목이다. 이는 내가 고른 것이니 말이다.”

       “그렇네요! 역시 바루님이에요! 완전 대단해요!”

       “그럼. 그럼.”

       

       저들끼리 웃고 떠드는 이들의 목소리를 뒤로 넘긴 채 의상을 착용해 보았다.

       

       옷을 입는 것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구나. 무림의 복장을 입을 때 고생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

       

       “…어라? 약간 작나요?”

       “그런 것 같네요.”

       “어. 어떡하죠? 저 수선 같은 거 할 줄 모르는데?!”

       “괜찮아요. 옷이 몸에 안 맞으면 몸을 맞추면 되니까.”

       

       대충 몸을 조절해서 의상을 착용한 나는 방 한켠에 장식된 거울 속 본인을 살폈다.

       

       검은색을 기조로 한 서양의 의복 위에 하얀 색의 앞치마를 걸친 의상은 그럭저럭 정상적으로 보였다.

       

       다소 딱 달라붙는 느낌이 있긴 하다만 이 이상 육신을 줄이면 헐렁할 듯하니. 의상 자체가 달라붙는 것으로 몸의 선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 봐야겠지.

       

       허나 자세히 살피면 부족한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우선은 팔의 천이 부족했다.

       

       어깨를 간신히 가리는 옷은 착용자의 두 팔을 그대로 드러내게 만들었지.

       

       뭐. 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팔의 천이 적은 편이 움직이는 데에 불편함이 덜 하니까.

       

       왜 팔은 그대로 드러내면서 장갑을 껴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꾸나.

       

       “그런데 도대체 왜 이리 하의의 천이 짧은 것인가.”

       

       여기에 무슨 철학이 담겨 있는지 낡디 낡은 본인으로써는 추측하기가 어렵구나.

       

       “걱정 마세요! 그래서 타이즈랑 속바지가 있는 거니까요!”

       

       투덜거림을 들은 엔리는 내가 걸치지 않은 의상을 집어 들고서 소리를 높였지만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똑같았다.

       

       “그게 무슨 차이가 있나요. 전 그저 이 나풀거리는 의상이 짜증날 뿐이랍니다.”

       

       이런 의상을 만들어낸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참으로 할 말이 많구나. 본인의 앞에 있었더라면 설교를 참을 수 없었을 것이야.

       

       “하아.”

       

       그래도 어쩌겠느냐. 이미 입기로 해버린 것을.

       

       복슬복슬 보슬보슬한 천국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문제일 터.

       

       얼굴을 쓸어내린 나는 내 얼굴 위에 가면을 덧씌웠다.

       

       지금 이 의상에다 과거 엔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양을 떠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소 천이 부족하기는 하다만 그래도 나름 정복의 흉내를 내려 한 부분이 보이니까.

       

       이 옷에 어울리는 가면은 다소 딱딱하고 철저해 보이는 쪽이겠지.

       

       입술을 굳히고. 눈가에 날을 세우고. 눈동자를 선명하게 하고. 눈썹에 약간의 불만을 담는다.

       

       목소리는 차갑고 사무적으로. 다른 이들이 차마 끼어들 수도 없도록.

       

       행동거지는 예의에 어긋나는 부분이 없어야 할 터이다만 본인은 서양의 하급자가 써야 하는 예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니 본인이 알고 있는 무림의 예의를 빌리자꾸나.

       

       “아아.”

       

       표정을 바꾸고 목소리를 몇 번 내어보면서 가면의 조정을 끝마친 나는 멍하니 내 변화를 구경하던 두 사람 쪽으로 몸을 틀었다.

       

       “엔리님. 바루님. 가시죠.”

       

       앞으로 남아있는 일정도 있는데 계속해서 시간을 끌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슬슬 움직여야지.

       

       “…어. 그래. 아라야. 가야지.”

       “…언제 봐도 신기하다니까요.”

       

       두 사람을 데리고 바깥으로 나갔더니 문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호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고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그대로 굳어버렸다.

       

       평소라면 내 바로 타박을 했을 터이나 오늘은 가면을 쓴 채로 움직이기로 했으니 말을 자제하자꾸나.

       

       “백호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가시죠.”

       

       회사의 녀석들이 각자의 세계가 대단함을 주장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을지. 참으로 기대가 되는 구나.

       

       *

       

       아라가 만들어낸 균열을 넘어 회사의 건물 앞에 도착한 엔리는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여기가 바로 아피스를 만들어 낸 회사.

       

       이야. 진짜 크네. 하나의 도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잖아. 하기야 백호님 같은 대단한 분들이 머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겠지.

       

       “엔리님.”

       “네헷?!”

       

       얼마나 신기한 분들이 많을까 생각을 하던 엔리는 아라의 목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

       

       “기품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엔리님께선 이 곳의 손님으로 온 것이니까요.”

       “주의하겠습니다아아…”

       “말꼬리를 늘리지도 마십시오. 품위 없어 보입니다.”

       

       딱딱한 어투로 주의를 주는 아라에게서는 평소의 무심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으니. 지금의 그녀는 옛날 만화에서 나올 법한 딱딱한 스타일의 메이드 그 자체였다.

       

       으으으.

       

       내가 바라던 메이드는 이런 본격적인 메이드가 아냐!

       

       나는 고양이귀 메이드에 나오는 것처럼 귀염뽀짝한 메이드를 바랐다고!

       

       물론 이것도 매력적이라는 걸 부정할 순 없어!

       

       딱딱한 표정에 차가운 어투를 사용하는 아라 씨 완전 카리스마 넘치는 걸!

       

       행동 하나하나에 예의를 갖추면서 은근 노출이 많은 복장을 입고 있는 것도 완전 갭이 넘쳐서 좋아!

       

       그렇지만! 그렇지마아아안!

       

       이루 말할 수 없는 불만족 속에서 엔리가 입술을 곱씹건 말건 아라는 한껏 들떠 있는 바루에게 주의를 주었다.

       

       신령이라는 존재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덕분에 풀이 죽어버린 바루가 꼬리를 축 내린 걸 본 아라는 주변을 살펴보고는 바루의 귓가에 무어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바루가 눈을 한껏 빛내더니 이내 신령다운 당당함을 되찾았다.

       

       …뭐지? 방금 아라 씨가 뭐라고 했길래 바루님의 힘이 넘치게 된 거지?

       

       “오늘 잘 하면 반그로우님의 요리를 다시 대접받을 수 있게 하겠다 말씀드렸답니다.”

       

       엔리가 의문을 표하자 아라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었다.

       

       “반그로우님이요?”

       “네. 제가 아는 요리사 중에서 가장 요리를 잘 하는 분이에요.”

       “그 정도에요?”

       “엔리님께서도 한 번 대접을 받아 보시겠어요? 분명 탄성을 내실 거랍니다.”

       “넵! 꼭 부탁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엔리님께서도 예의를 잘 지켜주신다면 반그로우님께 이야기를 드리죠.”

       “…어라? 저도요?”

       “네. 엔리님도요.”

       

       자기도 모르는 새 자연스레 예의를 지키겠다 약속을 해버린 엔리는 메이드 모드 아라가 지닌 무서움을 깨닫고 어깨를 떨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양이귀까지 씌울 걸 그랬어.

       

       “자. 백호님. 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안내를 해주시죠.”

       

       백호의 안내를 따라 회사 건물 안을 걷는 동안 엔리 일행은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게 되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VR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아라가 메이드 복을 입고 등장한 데다가.

       

       그 옆에는 여우 신령인 바루와 똑같이 생긴 아이가 있고.

       

       거기에 더해 뒤 쪽엔 나름대로 유명한 스트리머인 엔리까지 있으니.

       

       복도를 지나가다 마주친 직원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호기심과 친밀감을 드러냈다.

       

       허나 일정 구획을 지났을 즈음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여러 삼엄한 경비를 지나쳤을 때부턴 호기심보단 경악이 담긴 눈이 더 많아졌으니까.

       

       “…저거. 아라님?”

       “그 분이 왜 저런 옷을.”

       “기품이 넘치긴 하는데…”

       “뭐지? 내가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메이드복을 입은 아라를 볼 때마다 더해지는 소란에 엔리는 당혹을 느꼈다.

       

       메이드 아라 씨가 등장한 게 신기할 수는 있어. 그렇지만 저 반응들은 단순한 신기함이나 놀람보다는 좀 다른 쪽 같은데.

       

       “별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 저들은 그저 아라님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을 뿐이니.”

       

       엔리의 의문을 눈치챈 걸까. 앞서 나가던 백호가 넌지시 설명을 건네주었다.

       

       “당황이요?”

       “으음. 엔리. 자네 혹시 크툴루라는 것을 아는가?”

       “미지의 공포를 말씀하시는 거죠? 알긴 해요.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지. 그 미지의 존재가 갑자기 시종의 복장을 입고 등장했다고 생각해봐라.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

       

       백호의 설명을 들은 엔리는 다른 이들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지 대충 이해는 했지만 차마 고개를 끄덕이진 못했다.

       

       그러기에는 옆에서 백호를 바라보는 아라의 시선이 너무 무서웠으니까.

       

       “백호님?”

       “…예!”

       “일 끝나면 기대하세요.”

       “네? 아니. 저기. 아라님? 아라님! 죄송합니다! 제가 말 실수를 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실수에는 책임을 지면 되는 거니까요.”

       

       차디 찬 아라의 목소리를 들은 엔리는 바루를 데리고서 슬쩍 옆으로 물러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절망에 빠진 백호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백호의 야근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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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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