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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8

       중년에서 슬슬 장년으로 넘어가는 남성 하나와 십 대 소녀 세 명이 마주 보고 서 있는 모습은 다소 기이했다.

        

       심지어 세 사람은 모두 자기 몸과 비교했을 때 매우 큰 가방을 메고 있었다. 심지어 평균적인 남성보다 키가 큰 황제마저도 자기 몸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큰 배낭을 메고 있었다.

        

       안에는 가지고 갈 물건들이 엄청나게 들어있었다.

        

       사실 우리는 물건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갈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내가 이쪽으로 올 때 입고 있던 옷을 생각하면 몸에 닿아있는 물건은 가지고 올 수 있겠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원래 이런 설정은 조금 애매하지 않은가. 차라리 그냥 몸만 왔다 갔다 하는 거면 또 몰라도, 가지고 있는 물건 중 어느 정도의 물건만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내용은 작품마다 그 설정이 천차만별이다.

        

       우리는 부디 우리 생각이 맞기를 바랐을 뿐.

        

       참고로 클레어는 혹시 모른다면서 사진 중 가장 아끼는 것들을 옷 안주머니에 넣어두었다. 만약의 사태에 가방만 두고 가는 한이 있더라도 사진 몇 장 정도는 건지겠다는 의지였다.

        

       “그럼…… 다들 준비됐지?”

        

       클레어가 말했다.

        

       우리 네 사람은 클레어가 내민 ‘지보’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저 손가락 끝만 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제대로 꽉 잡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나는 이쪽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아제르나에서 훨씬 많은 것을 이루었다.

        

       나는 내가 한 일을 모두 단번에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성격이 시원하지는 못한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이루어낸 해피엔딩의 뒤를 꼭 직접 겪어보고 싶었다.

        

       앨리스도, 클레어도 같은 마음이다.

        

       황제는—

        

       나는 클레어가 힘을 발동하기 직전, 황제의 얼굴을 한 번 보았다.

        

       황제의 표정은 무표정에 가까웠다. 안도하는 우리 표정과는 조금 달랐다.

        

       저쪽 세상으로 돌아가면— 황제는 자기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아무리 싸워서 졌다고는 하지만, 자기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결국 잃게 된다는 것은 황제로서는 절망적인 상황일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황제는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이쪽에서 주식 부자로 지내는 것보다는 ‘전 황제’ 타이틀을 선택한 것이다.

        

       그 생각이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하고, 이해가 가지 않기도 했다.

        

       하긴, 내가 황제에 대해서 완전히 이해할만한 날은 절대 오지 않겠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런데, 뭐, 그건 모든 인간이 다 똑같지 않겠는가.

        

       클레어는 눈을 감았다.

        

       앨리스도, 황제도 눈을 감는 것을 보고, 나도 눈을 감았다.

        

       클레어는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지보에 자기 힘을 흘려 넣어서—

        

       *

        

       “으꺅!?”

        

       정말 오랜만에 그런 비명을 질렀다.

        

       딛고 있는 땅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나는 놀이공원의 놀이기구는 꽤 잘 타는 편이지만, 내가 그런 놀이기구를 탈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내 몸이 무언가에 단단히 고정되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등에 메고 있는 가방 말고는 몸에 고정되어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허공으로 내던져지는 건,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메고 있던 가방이 꽤 도움이 되곤 했다.

        

       나는 뒤로 그대로 넘어졌다. 가방이 땅에 먼저 닿으면서 충격을 상당량 흡수해주어서, 나는 아무 데도 다치지 않을 수 있었다.

        

       뒤로 넘어진 건 나 뿐만은 아니었다.

        

       “아야…….”

        

       가방에 딱딱한 것을 많이 넣어놨는지, 배낭 위쪽으로 튀어나온 부분에 뒤통수를 가격당한 앨리스는 얼굴을 찡그린 채 손으로 뒷머리를 만지고 있었다.

        

       “으으…… 그래도 지난번만큼 아프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이쪽으로 넘어올 때 앨리스, 황제와 맨바닥에 그대로 떨어졌던 클레어는 그래도 이번에는 배낭 덕분에 다행이라고 하며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음.”

        

       나는 황제도 넘어질 줄은 몰랐는데.

        

       배낭을 깔고 누워서 천장을 보면서 팔짱을 끼고 있는 그 모습은 어딘가 코믹해 보였다. 꼭 평소에는 엄청 진지하면서도 몸 개그 장면은 자주 보여주는 개그 만화의 캐릭터 같았다.

        

       나는 굳이 배낭을 등에 멘 채로 일어나는 헛수고를 하지는 않았다.

        

       등산배낭 특유의 벨트를 전부 풀어서 몸에 단단히 고정해놓았던 어깨끈에서 팔을 빼내고 옷을 툭툭 털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모습과 거의 완전히 똑같았다.

        

       ……아니, 그래도 조금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바닥에 마구 널브러져 있던 기사들은 누군가 치운 듯했다.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 주민들도.

        

       여기저기 깨지고 부서진 부분은 아직 그대로 남아있긴 했지만.

        

       나는 팔을 휘휘 돌리면서 몸을 풀고, 앨리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버둥거리는 앨리스의 몸에서 등산 가방을 빼내고 일으키는 걸 도와주었다.

        

       “헤헤, 언니.”

        

       클레어는 일부러 나를 기다리는 듯 가만히 누워있었다. 나는 피식 웃어 보이고는 클레어도 앨리스처럼 그대로 일으켜 주었다.

        

       그리고, 황제는—

        

       “실비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쪽으로 엄청나게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은발 머리카락이 내 시야를 확 가렸다.

        

       샤를로트가 내 품에 뛰어든 것이다.

        

       아까 배낭을 메고 있었을 때처럼 뒤로 휘청이며 쓰러질 뻔했다가 겨우 멈췄다.

        

       “어디로 사라졌다가 온 거에요!?”

        

       나를 한번 끌어안았던 샤를로트는 옆으로 가서 앨리스와 클레어도 한 번씩 끌어안아 주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 사람들이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내가 이쪽 세상에서 사귄 친구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마지막 전투에서 협력해 준 모든 사람.

        

       “……말하자면 복잡합니다. 일단 상황을 정리하고 제대로 말씀드리도록 하죠.”

        

       나는 일단 뛰어온 샤를로트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

        

       해야 할 말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저희가 이쪽에서 얼마나 사라졌던 겁니까?”

        

       “……12년이요.”

        

       샤를로트가 눈을 문지르면서 그렇게 말했다.

        

       “……네?”

        

       “당연히 거짓말이다.”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12년씩이나 지났다면, 나 같은 늙은이는 몰라도 너희같이 젊은이들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일 수는 없지.”

        

       “…….”

        

       내가 샤를로트를 보자, 근처까지 다가온 레오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한 시간이야. 모두 한 시간 사라졌어.”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황제가 느긋하게 이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뒤처리는 어떻게 하기로 했지? 내가 체포되면 되는 것인가?”

        

       “…….”

        

       샤를로트는 황제를 노려보았다.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있는 거의 모든 이가 황제를 노려보았다. 설령 노려보지 않더라도 그 눈빛에 적대감이 담긴 것은 똑같았다.

        

       ……그렇구나.

        

       우리는 그래도 황제와 꽤 오랜 시간 지내면서 조금씩 황제 개인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기준으로는 그저 황제가 갑작스럽게 사라졌다가 고작 한 시간 뒤에 돌아온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직, 이들은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다.

        

       황제도 그걸 알고 있고.

        

       황제가 포박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조금 착잡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내 눈빛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는지, 샤를로트가 조금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다 말해주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 앨리스와 클레어를 보았다.

        

       두 사람도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았다.

        

       할 일이 산더미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나는 한참 쉬다가 온 셈이니까.

        

       그러니 이제부터 할 일은 마저 해결해야지.

        

       *

        

       지보는 사라졌다.

        

       세상을 뛰어넘는다는 일을 두 번이나 해서 그랬던 걸까? 어쩌면 강력한 힘을 결국 버티지 못하고 가루가 되거나, 환한 빛에 타서 재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일은 순서대로 척척 해결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머리 아픈 일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쉽게 해결되었다. 제국과 왕국의 차기 수장들이 서로 친구 사이라는 건 이럴 때 꽤 도움이 되었다.

        

       “……다른 세상에 다녀오는 건,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나는 전투가 끝나고 나를 따라온 그리폰의 앞에선 채 말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눈이 꽤 진지했지만, 저게 그냥 그렇게 생겨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말을 알아들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알아듣더라도 그렇게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빗으로 그리폰의 날개를 쓸어주었다.

        

       사실 이 정도 크기의 빗으로 쓸어주기에는 너무 큰 날개이긴 했지만, 그리폰은 그래도 날개를 옆으로 쫙 펼쳐서 내가 잘 빗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뭐, 그리폰에게 도움이 될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도움이 되었다. 생각을 정리하는 데 좋았으니까.

        

       그렇게 날개를 쓸어주고 있는데—

        

       “언니!”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클레어?”

        

       나는 뒤로 돌아섰다.

        

       이쪽으로 손을 흔드는 클레어의 얼굴이 무척 밝다.

        

       혹시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걸까?

        

       “앨리스는……?”

        

       내가 빗을 내려놓자, 뒤쪽에서 그리폰이 불만스러운 울음소리를 냈지만, 나는 손을 살짝 흔들어주고 클레어에게 다가갔다.

        

       “해야 할 일이 있다더라. 그래서, 언니한테 먼저 알려주려고.”

        

       “무엇을 알려주시려고 그러십니까?”

        

       내 질문에, 클레어는 씩 웃었다.

        

       그 웃음에서 불안함을 느낄 틈도 주지 않고, 클레어는 내 손목을 덥썩 잡았다.

        

       그리고,

        

       “으꺅!?”

        

       나는 정말 오랜만에 발 아래 있던 땅이 사라지는 기분을 다시 느꼈다.

        

       이게 무슨?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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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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