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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8

    전시장은 그야말로 눈깜짝할 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모했다.

    찢어질 듯한 비명과 그 뒤를 따르는 폭발음.

    그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 지옥같은 장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고, 그 과정에 타인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다.

    서로 뒤엉키고, 넘어지고, 잡아끌고, 밟으며.

    그렇게 모두가 하나의 점을 향해 미친듯이 질주하기에만 급급했다.

    그리고 그 지옥같은 광경을 직접 만들어낸 인물이자, 그 모든 것을 관망하듯 지켜보던 그는 작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질서라곤 요만큼도 찾아볼 수 없구나.”

    아쉬움보다는 한탄에 더 가까운 목소리였다.

    그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그들이 보기엔 지금 자기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일테니까.

    그야 폭발의 굉음과 드래곤피어를 한꺼번에 사용한 등장이다.

    난리가 나지 않을리 없지.

    그 대답을 들은 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뭐, 실제로도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긴 하지.”

    사실 자신은 단지 그들을 도망치게 하기 위해서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 뿐.

    그들을 향해 해코지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지만, 결과로 따지면 그들에게는 어차피 동일한 이야기였다.

    이곳에 남아있다면 자신이 죽이려하지 않더라도 목숨을 잃고 말테니까.

    이곳을 향해,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고있었다.

    모든 생물에 대한 끔찍한 악의와 살의, 그리고 증오를 담아서.

    현대에서 자신보다 권한이 높을거라 생각할 수 있는 존재는 몇 되지 않는다.

    예상컨대 시가르마타, 과거 딜런트의 아티팩트를 제작했을 것으로 보이는 흑마법사, 어쩌면 과거 세계수의 ‘보호’를 뚫고 그 뿌리를 불태웠다던 니드호그정도일까.

    허나 시가르마타는 아직 차원이 아물지 못해 모습을 드러낼 수 없고, 흑마법사는 지금껏 한번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이런 곳에서 마주할 수 있을 가능성은 낮았고, 굳이 ‘제물’이 될 이들에게 그런 증오와 살의를 내비칠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니드호그’겠지.

    세이어, 그에게는 제물을 하나하나 선별할 생각따윈 없었어.

    어차피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제물을 통해 흑마법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움직이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사실 흑마법은 이미 완성되어 지하를 통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 세심한 ‘제단’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고, 모습을 드러낼 필요도 없었던 것이지.

    그에게 필요했던 건 대략적인 좌표와 간단한 계획 뿐.

    그는 처음부터 루체스트의 투자자들까지 전부 죽이려고 했던 건가?

    현재 사업설명회로 루체스트의 수석연구원을 비롯하여 중요 투자자들이 한데 모여있다는 사실에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설마하니 루체스트는 이대로 니드호그를 세상에 드러낼 생각이란 말인가?’

    그 실체조차 각국에서 철저하게 숨겨오던 ‘니드호그’를, 이런 생뚱맞은 장소에서 공개한다니.

    어째서 지금일까?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추측해볼 수 있다.

    더이상 니드호그를 숨길 수 없어졌거나, 아니면 더이상 니드호그를 숨길 필요가 없어졌거나.

    어쩌면, 후자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걸까.

    그렇게 그가 상념에 젖어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으으윽, 살려줘. 다리가-”

    “도, 도와주세요…”

    “으아아앙!!”

    -멈칫.

    작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신음소리에 흙먼지와 잔해를 무심하게 넘어가던 그의 발걸음이 문득 멈췄다.

    그곳에는 걸을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을 입은 이, 쓰러져서 정신을 잃은 이, 그 쓰러진 자의 곁에서 목놓아 통곡하는 이가 한데 어우러져 마치 전쟁을 연상케하고 있었다.

    -역시나 이렇게 되었네요.

    안타깝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그도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것은 폭발에 의한 부상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폭발로 다쳤던 이들은 모두가 예기치못한 폭음과 흙먼지로 정신이 없던 순간에 모조리 회복시켜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사람들이 뒤엉켜 도망치는 과정에서 밀쳐지고 밟혀서 낙오된 자들이었다.

    “하아.”

    그러게, 처음 경보가 울렸을 때에 대피를 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꼭 재난이 눈에 보여야만 그제서야 움직이려고 한단 말인가?

    처음부터 경보대로 질서를 갖춰 잘 대피했으면 자신이 이렇게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쫓아낼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부상자도 나오지 않았을 테고, 모두가 대피하는데 걸리는 소요시간도 지금보다는 훨씬 짧았을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나 참, 시스템 오류라니. 쯧.”

    애초에, 지금 당장 대피하라고 자신이 친히 경보까지 울려주었건만, 어찌하여 경보를 무시하고 그런 방송을 내보낸단 말인가?

    일단 상황을 파악하겠다는 건 좋지만, 그래서야 시간이 늦는다.

    ‘옛날에는 적의 침공이 있다는 종소리가 울리는 즉시 모두가 대피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거늘…. 세상이 너무 평화로워진 건가.’

    마물과 몬스터의 습격이 생활의 일부나 마찬가지였던 5000년 전의 상황을 막연히 이번에도 비슷하리라 예상하고 있던 자신의 잘못이었던걸까?

    이래서야, 정말 위기가 닥치면 제대로 대피한다는게 가능하기는 한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이미 실제로 제대로 대피하지 못했군.’

    어쩌면 자신은 현대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품고 있었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모든 것이 5000년 전보다 발전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것은 오산이었던걸까.

    그렇게 생각하던 그는 문득 다른쪽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증이 생겼다.

    “서드, 그쪽은 부상자가 없느냐?”

    -예, 다행히 이쪽은 이상 없습니다. 모두 잘 대피했어요.

    “그런가.”

    상황이 나빠 급하게 부착해야했던 자신의 것과는 달리, 자신의 서드가 있던 방향의 폭발 스크롤은 처음부터 ‘도주용’으로 설치한, 사상자가 나오지 않도록 미리 철저하게 계산해둔 것들이었기에 별다른 사상자가 나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쯧, 그건 그나마 좀 다행이로군.”

    그는 그렇게 잠시 혀를 차고는, 그들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부상자가 생겨도 어느정도 대응이 가능한 이쪽과는 달리, 저쪽은 그런 대응조차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이 장소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간에 그들을 일일이 일으키고 다독여줄 시간은 없었다.

    그렇다고 처음 폭발을 일으켰을 때 휘말린 이들을 치료했던 것처럼 이들 역시 치료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여기서 더이상 신성력을 썼다간 옷을 입을 수가 없게 된다.

    미리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구매한 의상이라 어느정도는 몸에 맞춰 늘어나도록 인챈트를 걸어두긴 했지만, 여기서 더 성장한다면 정말 한계다. 

    옷은 지금도 충분히 답답했으니까.

    물론, 마법 연산력의 하락도 심히 걱정되는 부분이었고.

    그는 그들을 스윽 훑어보며 생각했다.

    ‘좋아, 서클이 새겨진 이는 아무도 없나.’

    아린세이아의 마력은 서클을 지닌 이에겐 너무나 이질적인 환경이기에 자칫하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 어쩔 수 없지만, 다행히 서클을 심장에 지닌 이들은 없었다.

    이 정도면 잠시 아공간에 처박아두는 정도는 괜찮겠지.

    잠시 후, 그녀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린 이들은 마치 발작이라도 하듯 모두가 온 힘을 다해 외치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흐어엉-! 저는 죽고싶지 않아요-!”

    “지, 집에 기다리는 가족이 있습니다, 제발!”

    “으아아아앙!”

    그런 그들의 아우성을, 그녀는 마력운용을 방해하는 가면을 얼굴에서 살짝 떼어내며 한마디로 일축했다.

    “조용히.”

    -팟!

    그것으로 끝이었다.

    모든 이들의 울음과 비명이 멎은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건 멎었다기보다는 없어졌다고 해야 정확하리라.

    그들은 절규하는 목소리뿐 아니라, 모습까지 함께 소멸했으니까.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

    그리고 그녀의 발치에서 목숨을 구걸하던 이들이 눈 한번 깜짝하는 순간에 모조리 증발해버리고 마는 광경은, 도망치던 이들에게는 색다른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으아아악!”

    “살려줘, 도망쳐!”

    “엄마아아!”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다시 가면을 얼굴에 고쳐씌우며 한숨을 이어 쉬었다.

    그는 출구에 잔뜩 몰려서 난리를 피우고 있는 장면이 이제는 답답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줄 수도 없는 노릇.

    자신은 현재 그들이 도망쳐야할 대상이자, 공포의 매개체가 되어야 하는 역할이니까.

    굳이 그런 짓을 했다간 오히려 자신의 의도를 오해하는 역효과만 일어날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두었다간 그들과 맞닿을 지경이다.

    맞닿는다한들 아무런 해코지를 할 계획이 없는 그로서는 그런 어색한 상황은 그저 피하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전부 아공간에 처박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린세이아는 웬만한 대국가 수준으로 넓지만, 아린세이아의 하위차원인 아공간은 그렇지 않다.

    별개의 차원이나 다름없는 아린세이아와는 달리, 아공간은 그저 차원의 겹층 중 하나를 주머니처럼 이용할 뿐이니까.

    그렇다보니 차원미아현상 없이 아공간에 안정적으로 적재할 수 있는 용량은 기껏해야 컨테이너박스 한개 분량.

    이 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담을 수 있을 리 없다.

    허나 갑자기 천천히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면 또 의문을 품을 것이 분명한데….

    잠시 궁리하던 그는 곧 답을 찾았다.

    ‘옳지, 탈출구라도 더 넓혀줘야겠구나.’

    아무래도 몰린 사람들에 비해 탈출구가 너무 좁아서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 같은데, 조금 떨어진 장소의 벽을 몇개 터트려서 출구를 늘려주면 그래도 알아서 잘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몇번을 생각해봐도 꽤 괜찮은 해결책이 아닌가 싶었다.

    그는 다시 가면을 살짝 얼굴에서 떼어내며 마력을 쏘아보냈다.

    -콰콰쾅! 쾅-!

    그러자 의도한대로 깔끔하게 출구가 크게 늘어나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제는 모두 흩어져서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될 터.

    “꺄아아악!”

    “으아아아앙!”

    “사, 살려주세요! 도망치지 않을게요!!”

    “제, 제발!”

    하지만 폭음에 일제히 귀를 부여잡고는 주저앉아 대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멈춰버리는 반응에 그녀는 당황하고 말았다.

    -더 난리 났네요.

    “…그러게 말이다.”

    아니, 눈앞에 밖이 보이면 당장 도망쳐야지, 왜 가만히 주저앉는다는 말인가?

    그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탈출구를 늘려주려고 했던 자신의 행위가 도망치지 말라는 위협으로 인식한 건가?

    당황하여 피어에 더욱 힘을 실어 내보내도 얼어붙어 꼼짝할 생각이 없다.

    ‘미치겠군, 지금 시간이 없는데-‘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의도가 뻔히 드러나더라도 강풍이라도 불러일으켜서 모두를 건물 밖으로 내동댕이쳐야하는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런 짓은 이제 그만두시지!”

    -쾅!

    돌연 등 쪽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충격.

    마법이었다.

    그는 크게 당황했다.

    ‘이 내가 눈치채지 못한 기습적인 공격이라니, 이 정도 수준의 마법사는 대체 어디서 나온 거지?’

    심지어 수준높은 방마코팅으로 인챈트된 후드케이프를 착용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라도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을지 모를 위력.

    자신을 향해 그 놀라운 공격을 건넨 이를 확인보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그는 놀랄만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시루드?’

    자신을 향해 적개심을 내비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11살짜리 엘프 꼬마였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난세에 영웅은 등장한다…!

    예기치못한 두번째 스승과 제자의 대결!

    위악과 선의 승부!
    과연 그 승자는!?

    같은 문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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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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