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9화. 부유하고 말하는 섬
드워프의 등장은 다가올 새로운 시대를 암시한다.
대사제는 자신이 알아낸 놀라운 사실을 널리 알렸다.
“과연…. 다섯 종족과 다섯 신, 침묵의 시대와 하나 된 분의 은혜까지.”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줄이야.”
“놀라운 혜안에 감탄했습니다.”
대사제들 사이에서도 딱히 반대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들이 듣기에도 제법 그럴듯한 가설이었기 때문.
더군다나 이틀 후에 심연이 지상에 올라오게 될 것이다.
두 개의 세상이 하나가 되는 것이니, 마땅히 대격변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면 무엇이 새로운 시대란 말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더 많은 드워프분들이 지상으로 올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성지에는 다른 드워프 형제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수가 거의 200명에 달한다고 하시는군요.”
“으음.”
적다.
한 종족의 전체가 200명이라고 하면 터무니없이 적었다.
“드워프분들은 대지의 축복을 받은 일꾼들이시죠. 아마 잘 번성하고 생육하실 겁니다.”
엘프나 인어, 밤의 일족도 전체적인 숫자는 드워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인간보다 월등하게 긴 수명이다.
오래 사는 만큼 번식을 많이 할 것이니.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의 숫자는 빠르게 늘 것이다.
예외적으로 오크, 수인들은 인간과 수명이 비슷했다.
개체수는 오크가 훨씬 더 압도적이었지만.
“드워프들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본인들이 새로운 시대를 나타내는 신호로서 지상에 왔다는 것을 알고 계신가요?”
“모르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알려드리도록 합니다. 앞으로 계속 지상에서 지내게 되실 것 같은데, 이런 일은 당사자들이 먼저 알고 있어야죠.”
하나 된 분께서 드워프들에게 이유를 설명하시지 않았다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대사제들은 윤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설명을 해주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뭐… 뭐요? 뭐라고?”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 들은 드워프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느지막한 저녁 와중에 끌려와 술을 거하게 먹은 드워프도 취기가 번쩍 깬 얼굴이었다.
지금, 뭐라고?
저 늙은 인간들이 도대체 뭐라고 떠드는 거야?
우리가 앞으로 지상에서 살게 될 것 같다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라고?
“아, 아니…. 잠깐, 잠깐만….”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야아! 이 미친 늙은이가!”
“다 때려 부숴! 노망 난 노인의 헛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어!”
와장창!
크게 놀란 드워프도 있었고, 발끈하여 한바탕 들고 일어난 드워프도 있었다.
세듀스 팔라과 트리비우스 팔락은 후자였고, 오푸스 팔락은 전자였다.
“으와아아악! 경비병! 경비병!!”
“수염! 수염 좀 놔주십시오!! 으아악!”
씩씩거리는 드워프들은 달려온 성기사들에게 제압되었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발버둥 치는 모습은 성난 멧돼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드워프들은 하나 된 분의 손에서 태어나고, 성지에서 나고 자랐다. 드워프들에게 하나 된 분은 신이자 부모였다.
하나 된 분께서는 우리를 아무 말씀도 없이 지상으로 보내기로 하셨다고?
허튼소리! 저 미친 늙은이의 수염을 모조리 뽑아버려!
수염을 두 번째 심장처럼 여기는 드워프들에게 수염 뽑기가 최악, 최흉의 형벌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분노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진정해라.”
“형님!”
맏형, 오푸스 팔락이 앞으로 나섰다. 아우성치던 드워프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맏형의 권위를 존중했다.
가장 오랫동안 하나 된 분의 곁에서 일했으며, 가장 능숙한 대장장이가 바로 오푸스 팔락이었다.
“당신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는 거요? 확신할 수 있는 거요?”
오푸스 팔락의 눈빛은 단단하고 굳셌다.
안토니오 대사제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오푸스 팔락의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책임…, 확신까지는 저희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가장 높은 가능성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 된 분께서는 이틀 뒤, 대격변을 말미암아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알리실 것이고. 여러분께서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으로서 지상에 오셨다고 말이죠.”
“……그리고 우리는 지상에서 지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구먼. 알겠수다.”
안토니오의 대답을 들은 오푸스 팔락은 아무 말 없이 뒤돌았다.
다른 드워프들도 오푸스 팔락의 뒤를 따라 만신전 바깥으로 나왔다.
“형님! 왜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그냥 참는 거요!”
세듀스 팔락이 씩씩거리며 고함쳤다. 다른 드워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푸스 팔락은 대답 없이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너희들, 솔직하게 말해봐라. 지상으로 와서, 하나 된 분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 있었냐?”
흠칫.
세듀스 팔락이 몸을 떨었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가는 듯하더니, 손발이 덜덜 떨려왔다.
“……어, 없었……”
“그렇지?”
피식, 오푸스 팔락이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오락, 음주, 음악, 열정 가득한 견습 대장장이, 다양한 종족과 놀거리.
성지에서 저들끼리 부대끼며 생활하던 드워프들에게 지상은 강렬한 자극으로 가득했다.
“지상은 온갖 즐거운 것이 가득한 곳이지. 우리한테는 자극적일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다른 것보다 드워프들을 더욱 미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여기서 우리는 생각만 하던 것들을 실제로 만들 수도 있다. 마음껏.”
이건 드워프들에게 마약이나 다름없다.
지상에 두 번이나 와본 오푸스 팔락은 이 사실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다양한 실험, 창조, 그리고 영감.
대장장이자 장인으로서 끊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나도 잠깐이지만, 성지로 돌아가기 싫다는 생각을 했었다. 너무 즐거웠거든.”
“형님!”
크게 놀란 세듀스 팔락이 오푸스 팔락의 어깨를 붙잡았다.
방금 발언은 크나큰 불경이었다.
“말은 안 했지만, 아마 너희들도 비슷한 심정이리라 생각한다.”
“그, 그건….”
부정할 수 없다.
세듀스 팔락도 지상이 즐겁기는 미찬가지였으니.
드워프들이 술렁거렸다. 지상에 있으면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렇다면 이것은 하나 된 분에 대한 배반이란 말인가?
“솔직하게 이야기하겠다. 나는 성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 혀, 형님!!”
오푸스 팔락의 발언에 세듀스 팔락이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이건 이전의 발언과 차원이 다른 수준의 폭탄이었다.
“너희들은 어떠냐.”
“……나, 나는….”
맏형의 질문에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입술이 달싹거린다.
“하나 된 분께서 우리를 아무 말 없이 지상으로 내치실 분이 아니다. 아마 머지않은 시일에 우리는 다시 성지로 돌아가게 되겠지. 거기에 우리만 지상으로 온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아마 선발대 같은 느낌일 거다.”
“선발대?”
이건 하나의 직감이자, 신앙이었다.
하나 된 분을 가장 오랫동안 곁에서 모셨기에 그분의 성향을 대충 알고 있는 오푸스 팔락의 감.
“저 늙은이들의 말대로, 하나 된 분께서 우리를 지상으로 보내기로 마음먹으셨다면. 그에 앞서 우리가 지상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해 보고 싶으셨던 거다. 그리고 아마도….”
밀 끝을 흐리는 오푸스 팔락도, 그의 형제들도 이미 알고 있다.
지상은 즐거웠다. 하나 된 분께서 보고 계셨다면 마음을 굳히셨으리라.
“……아마 우리는, 지상으로 향하게 되겠지.”
“크흡!”
마음 여린 몇몇 드워프가 눈물을 훔쳤다.
성지는 그들에게 고향이자 일터였으며, 집이다.
이를 영영 등지고 떠나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울지 마라! 엘프들을 기억하고 밤의 일족을 떠올려라! 그들 모두 성지에서 지상으로 떠나갔다. 이제 차례가 돌아온 것뿐이다.”
“…형님!”
“영원히 둥지에 머무르는 새끼 용은 없는 거다. 언젠가 둥지를 떠나 자신만의 세상으로 날아가야 하는 법. 하나 된 분께서는 이제 충분히 때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하셨을 뿐이다.”
“크흡! 크흐흑….”
“끄흑….”
곳곳에서 소리 죽인 울음이 터져 나온다.
오푸스 팔락의 눈시울도 붉게 충혈된 채였다.
드워프들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한참 동안 울음을 죽였다.
심연과 지상이 합쳐지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
달이 휘영청 떠올라 어둑한 하늘을 밝히는 깊은 밤에, 드워프들은 짧은 섬광과 함께 지상에서 사라졌다.
* * * * *
드워프 선발대가 성지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들끼리 부둥켜안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 뭐야, 재밌게 잘 놀다 온 거 아니었어?”
드워프들을 지상으로 보내고, 틈틈이 녀석들의 동향을 확인했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길까 봐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을 썼다.
‘뭐지? 내가 별빛으로 만든 방범벨은 울리지 않았는데?’
무슨 불상사라도 생기면 즉각 대처하는 별빛 방범벨은 작동하지 않았다.
아무런 사건 사고도 없었다는 뜻.
땅딸막하고 울끈불끈한 드워프들은 한참이나 훌쩍이다가 나를 바라봤다.
– “어흑, 크흐흐흑! 하나 된 분이시여…!”
– “영원토록, 태양이 빛을 잃더라도 당신의 자비로움과 위대함을 기억하겠습니다…!”
“……??”
뭐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질질 짜는 드워프들의 말을 듣고 있던 나는 이마를 ‘탁’ 쳤다.
‘이것들이 지상으로 보내려는 걸 눈치챘구나!’
드워프들이 우는 걸로 봐서는 확실했다.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화면 옆을 바라봤다.
퀘스트 창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퀘스트 : 잊힌 다섯 종족을 찾으세요.
진행 상황 : (5/5 – 완료 -> 진행 중)
보상 : ■
드워프들이 지상에 있을 때는 완료라고 나왔던 것이 다시 진행 중으로 바뀌었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드워프들은 지상으로 가야 한다.
…나 또한 보내주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필요한 일이다.
《…자식은 부모의 품에서 떠나가며 어른이 되고, 그렇게 장성한 자식은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러하다.》
– “흐어어어엉!”
– “크흐흑! 흐으으읍, 끄흑!”
이제는 거의 대성통곡을 하는 드워프들.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성지에서 화면을 돌렸다. 녀석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휴우…….”
착잡하다.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뽀짝 뽀짝
앙증맞은 걸음 소리와 함께 SD 케넬름과 리아가 나타났다. 내 얼굴이 조금 침울했는지,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 “하나 된 분이시여….”
– “……괜찮으신가요? 상심이 크시겠지만, 부디 마음을 다잡으시고….”
“휴우…. 이제 성지는 공터가 되겠지.”
쓸쓸한 공간이 될 것이다. 푸릇하지만 인기척 없는 삭막한 곳이 되겠지.
나는 텅 빈 초원을 보며 드워프들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정 드워프들이 보고 싶으면 그냥 지상으로 가서 보면 되긴 하지만.
그건 감동이 없는 행위다.
갖고 싶은 캐릭터의 스샷을 갤러리에 저장하면 안 되냐는, 인간의 마음을 모르는 인싸 괴물의 마인드나 다름없다.
“성지가 텅…… 비어버렸어……. 휴우.”
-“ 어, 그으. 으음. 아!”
발을 동동 구르던 리아가 손뼉을 쳤다.
– “아르고스! 여기서는 아르고스를 쓰죠?!”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무지막지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인간의 축복은… 여기서 몰래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속닥속닥) 이랍이다…!!! 어디가서 소문내시면 큰일납니다!!! 독자님과 저의 씨크릿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