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69

   창조를 위해서 기존의 것을 참고하는 옳은 일이나 기존의 것에 잡아먹혀서는 안 된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무언가를 알 듯 모를 듯한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한 걸음만 더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내리막길이 펼쳐져 속도를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한걸음이 너무도 힘들어서 다리가 굳어버린 듯한 답답함 속에서 얼굴을 구기고 있으려니 속에서 할아버지가 고함을 내질렀다.

   

   <헛소리! 내가 관념에 사로 잡혀 있다고!? 그까짓 고집 따위 진즉에 다 내다버렸다! 헌데도 저 지랄을 해!?>

   

   할아버지의 감정이 이토록 격한 것은 오랜만이었기에 난 잠시 고민을 뒤로 미루고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루시! 저 놈에게 물어라! 네가 이야기하는 관념이란 게 도대체 뭔 지랄이냐고!>

   ‘괜찮겠어요? 제 입 바깥으로 나가면 엄청 왜곡될 텐데?’

   <오히려 왜곡되면 좋다! 저 놈이 열이 뻗쳐서 날뛰는 모습을 봐야겠어! 무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샌님주제에 헛소리나 지껄이다니!>

   ‘무슨 일이 생기면 그걸 감당하는 건 저거든요?’

   

   뭐. 재밌을 것 같으니 하기는 하겠지만.

   

   “꼰대 할배가 방구석에 처박혀서는 자기가 그린 마법진을 보며 헥헥거리는 변태 샌님이 뭘 아냐고 그러는데?”

   “뭘 아냐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너보다는 내가 더 잘 알지! 네가 뒈져버리고 나서도 난 한참 동안 지상에 머물렀으니까! 이 퇴물 자식아!”

   <그러니까 뭘 아는데! 그렇게 자신만만하면 지껄여봐!>

   “좆도 뇌도 없는 놈이 왜 좆도 모르면서 허세를 피워? 입은 달려있으니까 나불대봐. 네 이야기 들으면서 잔뜩 비웃어 줄게. 라고 하네.”

   “오냐! 일단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루엘 네가 널 종착역으로 삼는다는 거다! 네 녀석이 대단한 성기사라는 걸 부정하지 않겠다! 허나 모든 이들에게 있어 네 방식이 정답은 아냐!”

   

   해골이 지적하는 부분은 할아버지가 성기사의 종점을 자신의 모습이라 여긴다는 점이었다.

   

   할아버지가 내놓은 결과물은 분명 하나의 정답이지만 그것이 모두의 정답이 될 수는 없다고. 그 길을 종착역으로 놔둔 채 중간의 과정만을 바꾸니 지지부진한 게 당연하다고.

   

   해골은 이빨을 딱딱 부딪혀가며 소리를 쳤다.

   

   <내가 정답을 정해두고 있다고!? 내 머릿속에 들어와보기라도 했나!? 난 기존의 것을 모두 내다버리고 루시를 위한 움직임을 찾고 있다! 부정하려면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근거를 내어봐라!>

   “새로운 취향에 눈을 뜬 허접 할배는 내 호의를 사려고 자존심을 모두 내다버렸다는데? 그러니까 당신이 골이 빈 허접 약골 샌님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으면 근거를 대래.”

   “근거?! 근거야 차고 넘치지! 너처럼 성질 더러운 꼰대 새끼랑 협력하느라 골머리를 앓은 세월이 얼만데!”

   

   땍땍대며 소리를 치던 해골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한 쪽 손을 폈다. 그러자 바닥의 돌이 부서져 올라오더니 둔기의 형상으로 조각되어 그의 손에 도착했다.

   

   “루엘! 네 놈의 둔기는 네 대가리만큼이나 딱딱하다! 어떤 시련 앞에서도 수호상마냥 굳건히 서서 버텨냈기에 그 버릇이 혼에 새겨졌지! 봐라! 방금 전에 펼쳤던 이 동작! 팔이고 다리고 버텨낼 생각밖에 하질 않고 있잖나!”

   <루시의 싸움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뭐라도 되는 것마냥 떠들긴! 버텨낼 생각밖에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버텨내기에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여자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동정이 난봉꾼이라도 된 것마냥 재잘대는 게 꼴사납다고 하시네? 음. 이건 나도 좀 그런 것 같긴 해. 여자한테 말 걸 생각도 못하는 해골이 자신만만해져선 소리치는 게 좀 꼴불견이긴 하잖아?”

   “내가 여자에 서툰 게 이거랑 무슨 상관이야! 난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할아버지와 해골 사이의 토론은 점점 더 열기를 더했다.

   

   처음에는 서로가 잘했니 잘못했니에서 시작되던 것이 어느새 내 동작 하나하나를 보며 이것이 옳니 저것이 옳니 하는 이야기로 넘어간 것이다.

   

   그 사이에 낀 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전함과 동시에 두 사람의 실험쥐가 되어 이런저런 동작을 취해야만 했다.

   

   “아냐! 이 꼬맹이가 추구하는 것은 좀 더 부드러워야 한다! 춤을 추듯이 움직여야한단 말이다!”

   <루시가 바라는 것이 무대 위의 무희가 되는 것이더냐! 이 이상 움직임에서 힘을 빼버리면 그것은 공격도 방어도 되지 못한다! 이 멍청한 놈아!>

   

   신기한 것은 두 사람이 극한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새 점점 의견 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최초에는 해골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도 없는 이야기로 치부하던 할아버지가 어느새 해골의 말처럼 종착지를 바꿔야한다는 데에 동의했으며.

   

   할아버지를 꼰대로 치부하던 해골 또한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뒤바뀌는 것은 옳지 못한 일이라는 데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목소리만 높일 뿐 무척이나 건전한 토론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하긴. 서로의 말을 귀에 담지 않을 만큼 사이가 안 좋았더라면 악신과의 대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

   

   할아버지가 자신만만하게 펼치는 기적에 에르기누스의 이름이 끼어들 여지도 없었을 테고 말야.

   

   “그것보단 이 쪽이!…”

   <틀렸다! 그래서는!…>

   

   둘의 사이에서 가만 이야기를 듣던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춤이라.

   

   소울 아카데미 속의 세계에서는 아니지만 내가 아는 다른 창작물 속에서는 춤을 자신의 무술로 사용하는 이들이 여럿 있었다.

   

   탄압을 피해 춤 속에 무의 이치를 숨겼다던가. 아름다움과 강함 둘 다를 추구하는 무술이라거나. 상대를 홀려버리는 무술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나라고 못할 거 없지 않나?

   

   아니 오히려 나라서 할 수 있는 거 같은데?

   

   속이 어떻건 간에 일단 외견적으로는 변태 까마귀가 군침을 흘릴 만큼 예쁜 나니까.

   

   으음. 일단 한 번 움직여보자.

   

   숨을 크게 들이쉰 나는 온 몸에 신성을 퍼트린 후 자세를 다잡았다.

   

   시작이 되는 자세는 오래 전에 찾아뒀다.

   

   미적감각과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노가다를 해서 겨우 만들었지.

   

   이후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불완전하긴 해도 어느 정도 방향성은 잡아 두었다. 남는 시간마다 이 짓거리만 하고 있는데 아무런 발전이 없을 리 있나.

   

   다만 여기저기에 문제가 있어서 실전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생각을 했을 뿐이다.

   

   평소의 동작에서 좀 더 힘을 빼고 부드럽게.

   

   아니. 아냐. 이건 너무 흐느적거려. 나는 어디까지나 춤 같은 무술을 다루고 싶은 거라고. 이래서야 전후가 반대잖아.

   

   이것도 별로고. 이것도 좀 이상하고.

   

   아아. 진짜. 조금만 더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그래. 첨언. 너 조언 좀 해줘! 여기에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요정의 날갯짓을 기억하라.]

   

   요정? 요정이라 그랬을 때 바로 떠오르는 건 닭장… 아니. 요정 여왕이랑 썩어가던 요정 무리들인데 이걸 기억하라는 건 아닐 테고.

   

   그렇다면 그 전.

   

   내가 모니터 너머에서 보았던 요정들의 춤.

   

   미래에 있을 지옥 같은 풍경과 대비되게 하려는 생각인지 이상할 정도로 공을 들여 만든 컷신.

   

   오랜 시간이 지나 흐릿해진 기억 속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떠올린다.

   

   톡톡 튀어 오르며 꽃들 사이를 거닐던 요정들의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따라 가볍게 움직인 순간 자연스레 입가에 웃음이 스몄다.

   

   이거야! 이거라고!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움직임은 이런 거였어!

   

   요 몇 개월간의 고생이 보답 받는 느낌에 신이 난 나는 주변의 모든 소리를 잊고 내 움직임에 집중했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움직이는 요정을 따라 팔을 뻗는다.

   

   *

   

   해골은 자신이 이상할 정도로 열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건방진 꼬맹이의 어투가 건방진 것이라던가, 자신의 친우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꾸역꾸역 지껄이는 것은 분명 열이 받을 것이었지만 이성을 뒤흔들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영웅이 되기 전에도. 영웅이 된 후에도. 세상을 구원한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온갖 이야기를 들었던 해골에게 있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흥분하는 상황은 거의 존재치 않았다.

   

   이를 눈치 챈 해골은 지금 무언가가 자신의 감정을 뒤흔들고 있음을 확신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현상을 인지하는 그조차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말이다.

   

   과거의 해골이었다면 다른 모든 걸 제치고서 이를 분석하려 했을 터이지만 해골은 그러는 대신 그냥 자신의 감정에 몸을 맡겼다.

   

   과거의 대마법사가 자신의 뜻을 남기기 위해 만든 가짜인 자신이 탐구심에 미쳐서 무얼 하겠는가.

   

   그럴 바에는 친구 놈 속이나 긁으면서 우리의 무능 때문에 고생할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는 편이 낫지.

   

   건방진 꼬맹이가 나아갈 길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해골이 목소리를 내던 중 중간에서 루엘과 해골에게 휘둘리던 여자아이가 갑자기 저 혼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안에 있는 루엘이 무언가 이야기를 한 거겠거니 생각한 해골이었지만 그게 아님을 확신하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여자아이의 움직임은 결코 루엘이 떠올릴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여자아이가 팔을 움직인다.

   

   강맹하면서도 장난스러운 동작. 저기에 누군가 겁을 먹었다면 겁쟁이라며 키득키득 웃을 듯한 공격.

   

   여자아이가 발을 움직인다.

   

   통통 튀는 듯한 가벼운 움직임. 보고 있으면 무심코 그 뒤를 쫓게 될 듯한 걸음.

   

   허공을 나는 듯 하던 여자아이가 갑작스레 대지에 자리를 잡는다.

   

   위로 방패를 치켜 든 모습은 누구라도 부술 수 있을 것처럼 연약해보였지만. 그렇다 하여 정말 부술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 그 누구도 확언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장난스러우며. 아름답고. 화려하나. 그 뿌리만큼은 대지에 깊게 내려 있는 움직임.

   

   해골은,

   

   에르기누스는,

   

   과거에 이러한 정경을 본 적이 있었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며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될 그의 죄.

   

   요정들의 춤.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던 여자아이의 춤은 어느 순간 갑작스레 멈춰버렸다.

   

   제자리에 선 여자아이는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춤이 끝남에 따라 현실로 돌아온 해골은 자신이 방금 전까지 하던 것도 잊고 무작정 발을 움직여 여자아이의 앞에 섰다.

   

   그리고 뼈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손으로 그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뭐 하는 짓이야? 드디어 네 추잡한 욕망을.”

   “너. 어떻게 요정의 춤을 알고 있는 거냐.”

   

   해골의 목소리에 이글거리는 열기가 담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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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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