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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9

    <469 – 수치를 모르는 자>

     

    서귀연의 서열 4위, 옐친 브라우니.

    대공자와의 인맥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으로 가장 험난한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중간고사까지 버텨왔던 그도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

     

    “서귀연이 화전촌을 불사르든 화전민을 노예취급하든 지금 그게 중요하냐? 합리적인 이유로 저 미친 혈음악단의 연주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분간을 할 줄 모르는 멍청한 동기들을 향한 통렬한 지적!

    할 말은 꼭 해야 하는 성질머리를 못 이겨 독설을 퍼붓자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그들을 비호했던 교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옐친 브라우니 1점 감점. 피크닉에 고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난 당신 의견이 맞다고 거들어준…!”

     

    억울해서 펄쩍 뛰려던 그는 손가락을 들고 뒤를 가리키는 교관의 행동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방금 전까지 서귀연의 비정함을 매도하던 학생들이 입을 싹 닫고 비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서귀연의 엘리트 귀족인 내가 기초적인 도발에 당하다니!’

     

    정의로운 평민, 명분을 중시하는 고리타분한 꼰대.

    그런 동기들은 이 자리에 없었다.

    오크노디 덕분에 꿀 빨고 감점 없이 잘 버티던 경쟁자들에게 감점을 먹일 좋은 기회를 이용한 교활한 경쟁자들만이 있었을 뿐.

    권모술수가 판치는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시험장.

    어설픈 자는 감점을 피할 수 없다!

     

    “기죽지마라, 옐친.”

    “대공자님?”

    “귀족이 아닌 경쟁자로 저들은 우리를 바라보아야 할 관점을 새롭게 재정비했다. 가장 견제되는 경쟁자로 인정받았다는 말이다. 그 말은 반대로 지금 이 시험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조가 우리라는 뜻이다.”

     

    티타임을 즐기듯이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대공자.

    그의 눈이 차갑게 번뜩였다.

     

    “그렇다면 우리도 서귀연이 아닌 유력한 우승조로서 저들을 대하면 된다.”

    “정확히 무엇을 바라시는 겁니까?”

    “경쟁자 제거. 협력을 거부한 이상, 경쟁자를 쳐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 않은가.”

    “!!”

    “오크노디. 이 뒤는 내게 맡겨라.”

    “음. 어떡할까요. 고민되네~”

    “…”

    “하비라면 과격한 수를 쓰는 혁명가와도 기꺼이 손을 잡겠죠. 좋아요. 한 번 믿어드릴게요!”

     

    오크노디의 묵인마저 허락받았다.

    동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경쟁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뒷걸음질을 쳤다.

     

    “설마 귀족 분들이 평민에게 손찌검이라도 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서귀연은 평민들의 평판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까.”

    “서귀연은 평민들을 지킨다. 분명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하하. 그럼 이쯤에서 화해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직 시험도 끝나지 않았고 언제 다시 공격이 시작할지 모르는데…”

    “아, 그건 신경 쓰지 마라.”

     

    하라는 연주는 안하고 멀뚱멀뚱 서있던 괴인연주가가 여러 개의 팔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한참 흥미진진한데 보던 거는 마저 보고 시작해주마. 마음대로 지지고 볶아도 좋다.”

    “…”

     

    완전한 방관태세의 혈음악단!

    안데르센 대공자도 가볍게 목례하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군. 그럼 입장정리를 마저 하지. 서귀연은 평민을 지킨다. 그러나… 지키는 평민은 우리에게 충성을 바치는, 지킬 가치가 있는 평민뿐이다.”

     

    평민이 귀족을 경쟁자로 보기 시작하는데 귀족만 고고한 명예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

    불을 일으키는 파이어키트와 바람을 부르는 창문이 평민 동기들을 향해 나란히 놓였다.

     

    “오침 후에는 준비한 차를 마시며 20분간 느긋하게 바람을 만끽하고 돗자리를 접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바람이 불바람이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지.”

     

    안데르센 대공자의 오른손이 창틀 아래에 달린 버튼을 눌러 창문을 개방했다.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나와 학생들의 머리 위로 불을 쏘았다.

     

    “으아악! 정말로 불을 쐈어!!”

    “기권, 기권이요!”

    “사람 살려!!”

     

    일부는 갑작스러운 불쇼에 놀라 기권했지만 나머지는 동시다발적으로 무기를 꺼내들었다.

     

    “우리 같은 못 배운 것들은 티타임이 뭔지도 몰라. 그래도 아는 바람이 딱 하나 있긴 해. 피바람.”

    “대공자도 살을 베이면 피가 흐르는 인간이다. 마도구를 쓰지 못하게 쓰러뜨려!!”

    “어림없는 소리를. 서귀연, 발검!”

     

    안데르센 대공자를 따르는 귀족들과 그들에게 충성을 바치며 서귀연에 편입한 아돌프가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느긋한 불바람이든, 느긋한 피바람이든 모든 바람은 우리의 손으로 일으킨다. 티타임의 시작이다.”

     

     

    * * *

     

     

    갑작스레 벌어지는 내분에 히틀러는 할 말을 잃었다.

     

    ‘1학년은 이런 실수도 저지르는구나!’

     

    학생들이 시험 도중 경쟁을 벌이는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상대평가로 이루어지는 시험이라면 내가 잘나가지 못해도 남이 나보다 못하기만 하면 되니까.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끌어내리는 처참한 대결도 종종 벌어진다.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교수가 적인 이런 시험에서까지 서로를 적대하지는 말아야지!’

     

    절대평가로 점수를 측정하는 시험.

    누가 봐도 절대적인 기준점을 충족시키기도 어려운 시험에서는 모두가 손을 잡아야 한다.

    평민학생들은 그 사실을 망각했다.

    시험의 압박감이 지나치게 과한 나머지, 시험의 채점기준마저 망각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궁지에 몰린 까닭이었다.

    귀족학생들도 평민들의 반기에 단단히 열이 받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칼을 겨누고 칼부림을 벌이기 시작하니, 이제 이 시험은 누가 이기든 끝장이었다.

     

    ‘남은인원이 적을수록 연주가들이 마나를 밀집시킬 공간은 적어지고 받게 될 데미지도 커지겠지.’

     

    괴인연주가는 어렵게 힘을 들이는 대신, 방관을 하며 학생들의 싸움에 불을 붙이는 것으로 편리하게 이득을 취하였다.

     

    “히틀러 교관. 애들이 이러면 감점은 누구한테 얼마나 매겨야하냐…?”

    “규정위반은 없다.”

    “뭐? 칼부림이 벌어지는데도 규정위반이 아니야? 그거 진심이냐?”

    “이 시험에는 피크닉을 즐기기 위해 지켜야 할 준수사항만이 있을 뿐. 준수사항 외의 행동이 모두 금지된 것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피크닉에 칼부림은 선 넘었지!”

     

    히틀러는 조소했다.

     

    “피크닉에 혈음악단을 초청해서 연주를 하는 건 말이 되고?”

    “…!”

    “데모니카 교수는 간접적으로 선언했다. 이 시험은 평정심을 검증하는 시험. 평정심을 유지하며 규정을 준수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는 한, 규정위반에 걸릴 이유는 없다.”

     

    단순히 시험에 끌려가는 것을 넘어서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를 이용한다.

    안데르센 대공자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일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그 사실을 염두에 둔 히틀러의 입장에서는 그를 감점할 이유가 없었다.

     

    ‘의외인 건 대공자 안데르센이라는 자의 결단력과 역량이야. VIP의 표적이야 범상치 않은 아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보통 변방귀족의 자제가 저렇게 심지가 굳건할 리가 없는데.’

     

    히틀러 본인이야 노이즈캔슬러까지 양도하면서 지켜주고 싶은 아돌프 학생이 VIP표적 오크노디와 안데르센 대공자와 같은 조라서 실드를 쳤을 뿐이지만 평민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리는 안데르센 대공자의 모습은 정말로 악덕귀족처럼 보였다.

     

    ‘이 녀석, 고향에서는 정말로 화전촌에 불 지르고 다니면서 티타임을 즐기는 거 아니야?’

     

    심지어 움직임 하나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무기 없이 몸으로 날먹하기>강의를 들은 것처럼 자연스러운 체술로 덤벼드는 평민들을 쓰러뜨리고 <믿음 없이 신성술 쓰는 법>을 배운 것처럼 신체의 강건함이 대단하여 완력으로 몽둥이를 부러뜨린다.

     

    “이얍!”

     

    덤벼드는 학생들이 하도 많다보니 불시의 공격 하나가 안데르센 대공자의 어깨에 적중하기도 했다.

     

    “아악!”

     

    정작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떨어뜨린 것은 안데르센 대공자를 공격한 학생이었다.

     

    “실드마법인가?!”

    “<실드 없이 방어하기> 강의로 연마한 방어술이다. 피격 직전에 피격부위에만 집중적으로 마나를 투영해서 적의 힘을 같은 힘으로 받아치는 기술이지.”

    “거짓말! 공격의 최대속도는 음속에 도달하는데 그 속도에 같은 힘으로 정확히 반응했다고?!”

    “<시계 없이 시간보기> 강의로 정확한 시간감각을 깨우친 결과물이다.”

    “거짓말! 전부 네가 귀족이라서 그런 거잖아. 어차피 조기교육의 힘이겠지!”

     

    현실을 부정하는 동기에게 안데르센은 유감이라는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흔해빠진 강의만 들어왔던 평범한 1학년에게는 감당할 수 없겠지. 그래도 이것이 현실이다. 학점날먹만 꿈꾸고 적당히 쓸 만한 강의만 찾아 돌아다녔던 너희로서는 가장 어렵고 힘든 강의만 들어온 나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 증거가 여기 있는 아돌프다.”

     

    길 가다보면 어디서나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생기 없는 연한 금발의 머리카락을 지닌 시고르자브종 개에 비견되는 사내, 아돌프.

     

    “그는 농부출신이지만 대공자인 나를 따라잡겠다며 내가 듣는 모든 강의를 수강했다. 그리고 서귀연의 여느 귀족 못지않은 강함을 손에 넣었지.”

    “말도 안 돼!!”

    “가라, 아돌프. 네 손으로 지난 한 학기동안 네가 쌓아올려온 강함을 보여주는 거다.”

     

    아돌프는 어설픈 자세로 습격자에게 달려들었다.

    검속은 느리고 검술은 어설펐다.

    그러나 정확한 타이밍에 받아치는 반격과 강인한 신체는 안데르센 대공자가 보여준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오직 한 학기동안 수강했던 강의의 차이만으로 아돌프는 같은 하급반 생도를 능가해낸 것이다.

     

    “크흑. 우리의 패배다. 기권하겠어.”

     

    오크노디와 안데르센, 서귀연의 귀족 두 명에 더해 유일하게 특색이 없는 서귀연 소속 평민학생 아돌프의 분전에 습격학생들은 수치심을 느꼈다.

    실력보다도 더한 각오의 차이가 그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새겼다.

    쓸쓸히 등을 돌린 채 떠나가는 그들의 모습에 괴인연주가가 여러 개의 손으로 박수를 쳤다.

     

    “감동실화 잘 봤다. 그럼 다시 연주해도 되냐?”

    “…그렇지만 너희의 분투에도 나름의 각오가 담겨있겠지! 포기하지 말고 다시 검을 들어라. 내 오늘 너희를 아돌프와 같은 경지로 끌어올려주마!”

     

    끝난 싸움을 억지로 연장시키려는 안데르센 대공자의 뻔뻔한 발언에 학생들이 이건 좀 하는 눈으로 수치심도 자괴감도 다 깨진 얼굴로 그를 흘겨보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치도 모르는 철면피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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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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