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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69

       “……그렇게 되었습니다만.”

        

       “그렇구나. 잘 되었구나.”

        

       “…….”

        

       클레어가 지보의 힘을 그대로 흡수해 우리가 세상을 왕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지 2주일 정도 지났다.

        

       그동안 나는 내 친구들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아파트가 있으니 장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새로운 친구를 데리고 갈 때마다, 우리가 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신분증도 생겼다.

        

       사실 아마 몇십 년 뒤에는 문제가 생기긴 할 거다.

        

       지금이야 친구들끼리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먼 미래가 되면 시간을 내기 어려워질 테니까.

        

       한 오십 대 정도 된다면 어떨까. 그 이후로 영원히 지구로 가보지 못하게 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망신고조차 되지 않고 방치된 신분증이라.

        

       뭐, 그렇게 되지 않도록 꾸준히 데리고 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리고 그런 상황 중 가장 위험한 사람이 바로 황제였다.

        

       “아직은 연구 중입니다. 어째서 우리가 저쪽으로 갔을 때 돌아오는 장소가 언제나 출발했던 장소인 것인지, 반대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갈 때도 어째서 비슷한 결과가 나오는지.”

        

       수십 층 짜리 아파트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다. 내 생각에, 아마 우리가 지구로 갈 수 있는 기간에는 유지되겠지.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이쪽에 있는 사이에 아파트가 사라진다면?

        

       우리는 저쪽 세상으로 가자마자 수십 층 상공에서 나타나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것도 여신이 보정을 해줄까? 허공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신은 생각할까?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하는 건 조금 곤란하지 싶었다.

        

       뭐, 지금 당장 걱정할 일은 아니긴 했지만.

        

       “저쪽 세상 사람들도, 당신을 꽤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냐?”

        

       내 말에 황제는 웃었다.

        

       “예. 단순히 주식으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방송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던 순간이 즐거웠다더군요. 화술이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음, 그래도 평생 정치판에 있었던 것이 헛수고는 아니었구나.”

        

       황제는 아직 연금되어있다.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 함부로 쳐들어갔던 것은 사실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밝힐 수 없어도, 적어도 그 일에 관련되었던 국가의 수뇌부들은 황제가 지녔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냥 쉽게 풀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그냥 감옥에 넣어두는 것도 곤란했다.

        

       그 결과, 지금처럼 이렇게 저택 안에 따로 연금해 두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만나 보았느냐?”

        

       “아직 다른 세상에 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대안이요.”

        

       “그래. 이쪽 세상에 가두어두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른 세상에 풀어주는 거다.”

        

       “……이제 와서 연민의 감정이라도 생긴 것입니까?”

        

       나의 말에 황제는 정말 흔치 않게도 말을 그만두었다.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꽤 침통해 보였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법을 알게 되셨군요. 그렇게 오래 지나지도 않았는데 말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사람답게 살아본 적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는 당신을 아직 완전히 믿지 못합니다.”

        

       “아마 그럴 거다.”

        

       “그러니 제…… 형제, 자매들을 저쪽 세상으로 보내는 것은 보류해두도록 하겠습니다.”

        

       황제가 지구로 갈 가능성을 생각해두지는 않았을 거다. 애초에 갈 수 있다는 걸 알았어도, 상황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는 갈 생각 자체가 없었을 것이고.

        

       당연히 황제의 아이들더러 저쪽 세상을 장악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을 거고, 그럴 틈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황제를 볼 때마다 만에 하나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구나.”

        

       황제는 그저 담담하게 말했을 뿐이다.

        

       나는 잠깐 입을 다물고 있다가, 황제에게 말했다.

        

       “어쩌면, 저도 그중 하나기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저도 온전히 깨끗하다고 할 수 있는 인간은 아니니까요.”

        

       그렇다. 나도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이다.

        

       단순히 미아의 아버지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고 다시 돌려놓은 적이 있다. 황궁의 내부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울 때,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내부를 파악할 때도 내가 직접 총을 들고 들어갔으니까.

        

       시간을 돌리는 것과 별개로, 사람을 사살한 적도 있다. 본의 아니게 그리폰을 구출했던 그 전투에서 나는 명백하게 살인을 저질렀다. 전투 상황이었다고는 하지만.

        

       절대로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 하리라. 설령 시간을 돌리더라도 돌릴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은 저의 아버지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자조적인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서 배운 것이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살았지만…… 글쎄요. 실제로는 아주 많은 것을 배운 모양입니다.”

        

       “……음.”

        

       황제는 그저 침음할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당신과 마주 앉아서 당신에게 마냥 좋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수년간 쌓인 의심과 감정은 한순간에 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테이블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렇게 하니 황제의 표정이 보일 듯 말듯 했다.

        

       그 얼굴을 똑바로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결국 얼굴을 보긴 봐야 하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이런 어중간한 자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손가락을 깍지 껴 배 위에 올려두고, 의자에 몸을 한껏 기댄 채 나는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말했다.

        

       “하지만, 제 전생의 부모님께 당신이 해주신 일은 분명 감사할 일입니다.”

        

       세상만사 모든 게 돈으로 다 해결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많은 돈은 그래도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내 가족에게 그런 완충재가 생겼다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니까…… 예. 저는 그 일에 대해, 당신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어쩌면, 그게 당신의 진심이었다고도, 조금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맙구나.”

        

       황제의 말에 나는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더 해야 할까.

        

       “……제 형제자매들은, 다른 곳에 모두 따로 연금되어있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잃은 이들은 아무도 없지요.”

        

       황제는 대답이 없었다.

        

       “부디 언젠가, 시간이 오래 지난 뒤라도. 그들에게 하나하나, 그런 일을 해주실 기회가 오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와 당신이 그런 것처럼, 서로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알겠다.”

        

       “……분명 어려운 일일 겁니다. 제 생각이긴 하지만, 제 형제자매들의 성격은 모두 저보다 모난 편이니까요.”

        

       “알고 있다마다.”

        

       황제의 말에 나는 시선을 조금 올렸다.

        

       입가에 미소 짓고 있는 그 표정은, 언제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물론 나는 네가 가장 다루기 어려운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만.”

        

       …….

        

       좋아해야 하나?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언젠가…… 다시 지구로 가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조치해드리겠습니다. 돈 모으는 것, 나름 즐겁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만.”

        

       “그래, 그랬었지.”

        

       “언젠가 그쪽의 자산도 필요하겠지요. 아제르나의 망가진 부분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려면 그쪽의 정보와 기술, 발명품들이 필요할 겁니다.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배우는 데 당신의 재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런 중요한 일에 끼어들어도 되겠느냐?”

        

       “그러니까, 언젠가, 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나는 대답했다.

        

       “언젠가…… 정말로 서로를 의심할 필요가 없게 되면. 그때가 되면…… 앨리스도, 저도 진지하게 고민해보겠지요.”

        

       “…….”

        

       황제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의자를 밀어 넣었다.

        

       “……그럼,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기다리고 있으마.”

        

       나의 말에 황제가 그렇게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주춤주춤 뒤로 돌아 방을 나갔다.

        

       *

        

       “어땠어?”

        

       밖에서 기다리던 클레어가 물었다.

        

       “……생각보다는, 괜찮았습니다.”

        

       내 대답에 클레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깐 걸을까.”

        

       클레어가 그렇게 말하고 먼저 걸어서,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우리는 건물 앞에 세워둔 자동차 앞을 지나서도 한참 동안 그저 말없이 걸었다.

        

       제도에서 조금 떨어진 이곳에서는 하늘을 덮은 매연이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파랗다. 아마 저런 하늘은 지구에서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언니 덕분에, 이것저것 많은 기술이 도입되고 있잖아. 매연 같은 것도 아마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거야.”

        

       하늘을 보는 나를 보고 클레어가 말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쪽에서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지구 쪽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될 거야, 분명.”

        

       클레어는 웃으며 대답했다.

        

       파란 하늘 아래, 나부끼는 파란 머리카락이, 퍽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마 이번 외전은 두 화정도 더 쓸 것 같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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