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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표정이 왜 그래요? 그렇게 맛있어요? 아님 감동하신 건가?”

       “…….”

       

       실비아는 내가 케이크를 텁, 하고 받아먹자 자연스럽게 포크를 내 입술에 걸치며 깔끔하게 쓱 뺐다. 

       

       이제는 무를 수도 없다. 안 먹을 거였으면 포크가 빠지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어야지.

       

       아니, 사실 이런 생각이 들기 전에 이미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혀는 입 안에 들어온 티라미수 케이크 조각을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뱀처럼 휘감고 있었다.

       

       양이 조금 모자라다고 외치고 있던 중 마침 들어온 모카 버터 크림과 진한 카카오 향에, 나의 미각과 후각이 환호성을 질렀다. 

       

       ‘맛있긴 진짜 맛있… 아니지, 레온 이 멍청아! 이렇게 순순히 받아 먹으면 어떡해?’

       

       분명 방금까지 ‘지금으로선 저 정체 모를 여자를 항상 조심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게 최선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 주는 음식을 곧바로 낼름 받아먹어 버리다니.

       

       ‘그리고 분명히 조금 전까지 내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어느 틈에 내 바로 옆자리로 온 거지?’

       

       아무리 내가 티라미수 케이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4성의 검사가 분명 실력자인 건 맞지만, 암살자도 아니고 이렇게 기척이 안 느껴지다니.

       

       수상하다. 수상해.

       

       ‘혹시 진짜 암살자인 건 아니겠지.’

       

       나는 일부러 더 눈빛에 의심을 담아, 실비아를 노려보았다.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를 자신의 몫까지 양보해 가면서 준 사람에게 보낼 눈빛은 아니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자기방어적인 선택이었다.

       

       ‘이렇게라도 상대에게 경계심을 심어 줄 필요가 있어.’

       

       상대도 4성의 검사지만, 나 역시 3서클의 마법사(아님)다. 

       

       ‘4성 초입인지, 5성을 앞두고 있는 4성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긴 하지만…. 만약 4성 초입이라면 나에게도 승산은 충분히 있어.’

       

       아무리 근접전이 뛰어난 검사라고는 하지만, 내게는 복잡한 마나 연산이 필요없는 상태창의 스킬 시스템이 있다. 

       

       아이스 실드나 아이스 월 같은 방어적인 마법이 필요할 때, 다른 마법사들은 연산 작업이라는 예열이 필요하지만 나는 딴 생각을 하다가도 그저 영창만 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해 준다는 말씀. 

       

       지나치게 지근거리에서 기습하는 게 아니라면 나도 충분히 대처를 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정말 여차하면 모든 정신력을 쏟아부어서 5서클의 플레임 캐논을 쓸 수도 있고.’

       

       만약 5성에 가까운 4성이라는 최악의 상황일 경우, 후유증을 감안하고 최대 출력을 가동하면 어떻게든 뚫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나에겐 아르가 있다.’

       

       물론 보호자 된 입장에서 이렇게 내 품에 안겨 꾹꾹이를 하며 뀨우 소리를 내는 뽀짝한 해츨링한테 지원을 바라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적어도 아르가 마법에 있어서는 나보다 훨씬 천재니까.’

       

       마력 스탯도 나보다 훨씬 높고, 마법의 연산 속도나 응용력 면에서도 천재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아르와 함께 싸운다면 4성의 검사 정도는 이길 수 있으리라. 

       

       ‘그러니 방심만 안 하면….’

       

       되는데….

       

       “후후, 아르도 더 먹고 싶은 모양이네요. 아르야, 한 입 더 줄까? 아, 해 보렴.”

       “쀼우!”

       

       실비아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노려보고 있음에도 생글생글한 눈웃음을 지으며 케이크를 큼지막하게 잘라 아르의 입에 넣어 주었다. 

       

       “쀼움!”

       

       아르는 안 그래도 실비아가 나한테 케이크를 주는 모습을 보고 군침이 돌았던 모양인지, 실비아가 내민 케이크를 냉큼 받아 먹었다. 

       

       “쀼우우…!”

       

       그리고 아르 역시 곧 케이크의 황홀한 맛에 표정이 풀어지며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잘 먹네에, 아르. 자, 마저 먹으렴.”

       “쀼우…?”

       

       아르는 실비아가 어느새 조금밖에 남지 않은 케이크 조각을 통째로 포크로 찍어 내밀자, 입을 벌리려다가 멈추고 망설이는 눈빛으로 실비아와 케이크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쀼….”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조각을 먹기에는 눈치가 보이는 모양.

       

       하지만 실비아는 그 모습에 더더욱 입꼬리가 올라간 채 케이크를 더 가까이 내밀었다. 

       

       “나 생각해 주는 거니? 기특해라. 하지만 나는 괜찮으니까 아르 먹으렴. 아르가 맛있게 먹으면 그걸로 됐단다.”

       

       케이크가 코앞까지 오자, 진한 카카오 향을 맡은 듯 아르의 작은 콧구멍이 살짝 벌렁거렸다.

       

       “쀼우…!”

       

       결국 아르는 케이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꼬옥 감은 채 실비아가 내민 케이크를 한 입 가득 물었고. 

       

       “뀨움.”

       

       마침내 케이크를 깔끔히 먹어치운 아르는 실비아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쀼우, 쀼! 쀼!”

       “응, 그래. 아르가 맛있게 먹으니 나도 기분이 좋네.”

       

       실비아는 그런 아르를 마주보며 함께 환하게 웃어 주었다. 

       

       “쀼웃! 쀼우!”

       

       내게 안겨 있던 아르는 조금 신이 났는지, 나를 올려다 보면서 쪼그만 앞발로 실비아를 가리켰다. 

       

       대충 ‘맛있는 거 양보해 줘써! 조은 사람인 거 가타!’라고 말하는 거 같긴 한데….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더욱 경계심이 들었다.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의 마지막 한 입까지 양보해 가면서 아르의 경계심을 풀어 버리다니, 역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해.’

       

       옛말에 호의는 돼지고기까지라는 말이 있다.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으며, 소고기 사 주는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상황 역시 마찬가지. 

       

       ‘호의는 첫 입까지지.’

       

       이렇게 맛있는 고급 케이크를 한 입도 아니고 두 입이나, 그것도 마지막 남은 조각까지 준다? 

       

       이거야말로 수상한 한 입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렇다고 지금 이런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대놓고 인상을 구기면서 ‘저런 사람을 조심해야 되는 거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일단 나부터 실비아가 내민 케이크를 받아 먹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허허허, 이것 참 보기 좋은 광경이로군요.”

       

       그때, 이 모든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 보고 있던 마이어 씨가 말했다. 

       

       “당일 제조해 당일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 케이크라 더 가져오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만…. 그래도 아직 다른 간식들이 많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 마침 케이크도 다 드셨으니 이걸 드시지요.”

       

       마이어 씨는 그렇게 말하며 다른 가방을 열어, 안에서 우유가 든 유리병 세 개를 꺼내 우리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마침 목이 조금 말랐는데….”

       “쀼우!”

       

       나는 먼저 아르 몫의 우유병을 따서 아르에게 준 뒤, 내 것을 따서 입에 대고 마셨다. 

       

       “…!”

       “쀼웃…!”

       

       평범한 우유인 줄 알고 천천히 마시려던 나는, 첫 모금을 마시자마자 그대로 쭉쭉 절반 정도를 해치우고서야 우유병을 입에서 뗐다. 

       

       “이건….”

       

       아래를 내려다 보니 우유병을 두 손으로 꼬옥 잡고 마시던 아르도 맛에 놀랐는지 커다란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실비아였다. 

       

       “꿀이 들었네요?”

       “허허허! 그렇습니다. 맛이 괜찮지요? 히파르 외곽 쪽에 양봉업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수확한 꿀을 신선한 우유에 적당한 비율로 넣어 파니 아주 불티나게 팔리더랍니다. 그래서 저도 히파르에 들를 때마다 사 먹기도 하고, 캐머해릴 쪽에서도 이 우유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렇게 대량 주문을 해 바로 납품하기도 합니다.”

       “오오…. 그런 것까지 고려해서 동선을 짜시는 거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역시 레온 님은 이해가 빠르시군요.”

       

       그냥 한 번에 모든 물품을 실어다가 차례로 납품하면서 덜어 내는 것이 다가 아니라, 물품을 새로 받아서 납품할 것까지 고려해 동선을 짜는 모양이었다. 

       

       나는 우유를 한 모금 더 마신 뒤 감탄하듯 말했다.

       

       “꿀을 넣은 우유라곤 해도 이렇게 달달하면서 깔끔한 맛을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비율 배합 연구를 많이 하셨나 봐요.”

       “허허, 그렇지요. 우유도 가장 신선한 것을 사용하고, 꿀이야 원래부터 고급으로 유명했던 곳이라 품질이 보장돼 있습니다.”

       

       어느새 내 옆에 더 바짝 붙어 앉은 실비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품질 자체가 좋기도 하고, 꿀뿐 아니라 소금도 조금 들어간 것 같은….”

       “허엇! 시, 실비아 님. 그걸 어떻게….”

       “아, 영업 비밀이었나요? 죄송해요.”

       

       실비아는 살짝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마이어 씨는 손수건으로 살짝 난 땀을 닦으며 말했다. 

       

       “허어…. 그걸 한 입에 알아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저도 친구에게 들어서 알게 된 것이었는데…. 실비아 님, 혹시 이건 비밀로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사실이 퍼지면 친구 녀석이 제가 퍼뜨렸다고 생각할 게 분명해서….”

       “물론이죠. 아무에게도 말 안 할게요.”

       “저도 말 안 할게요.”

       “쀼우!”

       

       실비아가 싱긋 웃으며 말하자, 나와 아르도 고개를 끄덕이며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쀼움.”

       

       평소에도 우유를 잘 먹던 아르는 꿀을 넣은 우유가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거의 쉬지도 않고 남은 우유를 꿀꺽꿀꺽 들이켜고는 쪼그만 혀로 우유병 입구에 묻은 우유를 한 방울까지 깔끔하게 핥아 먹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입가에 묻은 우유를 앞발 젤리로 쓱 닦아 핥기도 했다.

       

       “아르야, 그래도 입가에 묻은 건 손수건으로 닦아야지.”

       “쀼우….”

       

       아르는 내 말에 살짝 시무룩해진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피식 웃으며, 손수건으로 아르의 입가를 깨끗이 닦아 준 뒤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뀨우.”

       

       그러자 아르는 금세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 꼬리로 내 팔을 톡톡 두드렸다. 

       

       “뀨우웅….” 

       

       케이크도 거의 한 개 반을 먹었겠다, 달달한 우유도 마셨겠다, 아르는 졸린 듯 하품을 하더니 반쯤 감긴 눈을 끔벅였다. 

       

       “졸리면 자도 돼.”

       

       나는 아르의 뚠뚠해진 배를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아르는 자신의 배 위에 올려진 내 손을 또 다시 꼬옥 안은 채 잠들었다.

       

       “큐우우…. 큐우….”

       

       아르가 잠들고 새근새근 조용한 숨만을 내쉬자, 마차 안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하암…. 나도 졸리네.’

       

       배 부르면 졸린 건 해츨링만이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

       

       나는 깊게 잠든 아르를 내 허벅지에 조심스레 뉘어 놓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벌써 길이 조금씩 험해지고 있어서 마차가 덜컹거리긴 했지만, 졸음이 한 번 밀려오기 시작하자 3분 안에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귀에 속삭이는 실비아의 나긋한 목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레온 씨도 제 허벅지 베고 누우실래요?”

       “…아뇨. 잠 다 깼어요.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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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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