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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이상과 같이 원고들은 이미 소멸한 권리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 사실관계를 왜곡하며 부당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위와 같은 점을 고려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눈을 감고도 쓸 수 있는 상투적인 문구로 서면을 마무리한 이예리는, 긴 한숨과 함께 몸을 깊게 뒤로 뉘였다.

        

       아직 저녁 9시.

        

       오늘따라 집중이 잘 된 덕분에, 일이 비교적 빨리 끝난 편이었다. 

        

       어제부터 독촉을 해대던 상사에게 서면을 넘길 차례. 이메일 계정에 접속하자, 마지막으로 받은 이메일이 자동으로 떠올랐다.

        

       [이 변호사,

        

       이 사건 서면 어떻게 되고 있나요.

        

       고객하고 협의는 됐나요?

        

       -나의 iPhone에서 보냄]

        

       주 업무가 독촉인 상사의 이메일.

        

       ‘술이나 처먹으러 다니면서 핸드폰으로 이메일 쳐 뿌릴 시간에 일이나 좀-’

        

       -똑똑.

        

       그라데이션처럼 차오르던 분노를 폭발시키기 직전, 개인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하- 네. 들어오세요.”

        

       나름, 지금 사람과 교류하고 싶은 상태가 아니라는 마음을 듬뿍 담아 대답했으나-

        

       “아, 이예리 변호사님! 오늘도 야근이세요? 비도 오는데 어서 들어가시지!”

        

       들어오라는 허락을 받은 이상 거리낄 것 따위 없다는 듯이, 문을 벌컥 여는 것과 동시에 재잘거리며 사무실로 들어오는 한 여자.

        

       더럽게 눈치가 없는 그녀의 3년 후배였다.

        

       “……네. 바쁘네요. 변호사님은요?”

        

       나는 지금 정말 바쁘니, 사무실에서 후배와 대화하고 싶은 상태가 전혀 아니다- 라는 마음을 물씬 담아서 대답했지만,

        

       “저어도 진짜 죽을 것 같아요……오늘도 새벽 퇴근 확정이에요.”

        

       전혀 전달되지 않은 듯했다.

        

       조잘조잘, 지금 어떤 건이 왜 어렵고, 어느 변호사가 자기한테 얼마나 많은 일을 쏟아부었는지 이야기하는 후배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리며, 이예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찌 보면, 저런 태도 덕에 나오나를 하려면 좋은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거기도 했다.

        

       나오나에도, 컴퓨터에도 관심없는 그녀에게, 요즘 이 게임이 진짜 유행인데 해보셨나요, 패러데이 게임즈 우리 고객이던데 같이 일 해보셨나요, 그런데 게임은 이름도 들어본 적 없으신 건가요, 그럼 평소엔 취미생활 어떤 거 좋아하시나요……그딴 무의미한 질문을 끝없이 폭격한 끝에, 동생이 나오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끄집어냈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의미가 없지는 않은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컴퓨터 구매를 도와준 것도 고맙긴 했다.

        

       물론……요청한 적이 없었음에도 컴퓨터를 사신다면 아무 곳에서나 사시면 안 된다부터 시작해서, 이 보드는 이 그래픽카드랑은 안 맞는다, 파워가 덜 중요하게 느껴지실 수 있겠지만 (이예리는 뭐가 중요한지는 커녕, 컴퓨터 안에 그렇게 다양한 부품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디 브랜드는 피하고 넉넉하게 하셔야 한다 등등……온갖 얘기를 쏟아내고 가더니, 새벽 1시에 갑자기 컴퓨터 스펙 견적 샘플 5개를 장단점 별로 깔끔하게 정리한 이메일을 보내왔지만.

        

       그러고는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해서 본래 써야 했던 서면을 이메일로 회람한 것을 보고, 조금 감동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가서 서면이나 쓰라고 쫓아내지 못하는 이유였다.

        

       “그러고보니, 동생분께선 컴퓨터 괜찮다고 하세요?”

        

       한 쪽 귀로 흘러가던 말 중, 주의를 잡아채는 키워드가 들려왔다.

        

       “네. 덕분에 너무 고맙다는 얘기도 들었네요.”

        

       이예리는 내친 김에 톡을 열어 동생이 보내온 기특한 감사 인사를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객관적으로, 21살 먹은 동생이 감사하다고 톡을 보낸 게 자랑거리까진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앞선 탓이었다.

        

       “게이밍 키보드? 라는 것도 있던데, 게임하는데 도움이 좀 되나요? 다음 생일에 선물할까 싶어서요.”

        

       기왕 후배가 사무실에서 나가지 않고 뭉그적거리는 마당에, 정보나 좀 뽑아보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던진 질문.

        

       “아, 동생분이 나오나 하신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럼 어차피 키보드는 게임할 때 쓸 일 거의 없어서요! 그보다는, 혹시 없으시면 헤드기어 보조장치가 좋을 거예요! 저도 이번에 월급 입금되자마자 샀는데 대만족 중이거든요. 이게 기능이 정말 다양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TMI가 듬뿍 첨가된 반대의견이 돌아왔다. 그러고보면, 나오나는 VR기기가 필요하다고 얘기해준 것도 이 후배였다.

        

       “동생은……키보드 마우스로 나오나를 한다고 해서요.”

        

       “네?”

        

       키보드 마우스로 자동차 운전을 한다고 했어도 이 정도로 황당한 반응은 안 나오지 않을까 싶은 표정으로 반문한 후배는,

        

       “키보드마우스로 나오나 하는 사람은 없……아니, 있긴 하네요. 근데 스트리머여서 그런 걸 거고…… 보통 사람들은 다들 VR기기로 할 걸요?”

        

       라고 말하고는, 늘 그랬듯이 ‘아 그런데, 키보드 마우스로 하면서 엄청 잘하는 사람도 있긴 하더라고요, 저번에 지튜브 쇼츠로 봤는데 반해서……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그런 거 같아서 멋있는데, 동시에 좀 빡치는? 아 이건 표현이 좀 그랬네요 죄송해요, 그런데 변호사님 혹시 인터넷방송은……’ 로 시작되는, 정말이지 조금도 관심이 가지 않는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차라리 남자 후배가 편한 이유 중 하나였다. 남자 후배들은 이런 사담을 시도하려다가도, 이예리가 무표정으로 모니터를 보며 ‘아, 네.’ 한 마디만 하면, 일하러 가보겠다고 바로 떠나는 편이었으니까.

        

       조잘대는 목소리에 맞춰 적당한 추임새만 넣어주면서 딴짓을 하던 이예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동생에게 톡을 보냈다.

        

       [예나야, 집이야? 저녁 잘 챙겨 먹었어?]

        

       누구로부터든 핸드폰으로 연락이 오는 것을 너무나 싫어하던 그녀의 동생은, 언제부턴가 먼저 편하게 톡을 보낼 정도로 변했다.

        

       답장이 오래 걸리는 걸로 봐서는, 아직도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숫자 1이 없어지고도 5분 가까이 답장이 없던 그녀의 동생은,

        

       [응. 부추전 먹으려고.]

        

       라고 짧게 답장을 보내왔다.

        

       [부추전 샀어? 언니가 사다 줄까?]

        

       [아니야. 하는 중.]

        

       [ㅎㅎㅎㅎ요리해? 지튜브 추천해줄까?]

        

       [괜찮아. 도와줄 사람들 있어서]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와줄 사람들……?”

        

       “네?”

        

       조잘거리던 후배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 * * *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눈을 뜬 순간, 나는 이미 결심했다.

        

       아, 오늘은 전을 먹어야겠어- 라고.

        

       그리고 어디서 시켜 먹을까 고민하며 배달앱에서 리뷰들을 뒤적거리던 나는, 한 리뷰를 계기로 새삼 방송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사장님이 요청사항도 잘 챙겨주시고 피드백도 빨라요! 소통하는 사장님 최고]

        ㄴ 안녕하세요 요리하는후라이팬2061님, 저번에 해물파전 시켜주신 분이시지요? 오늘도 맛있게 드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바삭하고 고소한 해물파전을 문 앞까지 신속하게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소통.

        

       소통이라.

        

       그러고보면, 내 시청자들은 유독 소통에 대한 갈증이 커보였다. 만약 스트리머 평가 어플이 있었다면, 나한테는 ‘소통이 부족해요’라는 문구의 1점 리뷰가 수십개는 달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

        

       억울했다.

        

       급증한 트위트 팔로워로 인해, 위게더 – 트위트 스트리머들 별로 운영 가능한 게시판을 제공하는 사이트 – 게시판 신청이 가능해진 것을 보자마자, 소통의 장을 위해 게시판도 하나 만들었는데.

        

       ……구체적으로는, 나오나 갤러리에서 [야 생각해보니 이 시발련 카페도 없고 위게더도 안 하는데, 손편진지 뭔지 받을 주소 쓸 비밀글 게시판이 없는 거 아니냐?]라는 글에, 능지상승이니, 보이스피싱이니, 로맨스스캠이니 하는 댓글들이 달린 걸 보고, 발 빠르게 만들었다.

        

       우연이었지만, 그래도 발 빠르게 만들었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튼,

        

       개설 1일차인 신상 위게더 게시판에서도, 게시글의 3할 이상은 소통의 부족을 꼽고 있었다.

        

       억울했다.

        

       지난 번 방송에서도 게임 사이사이에 한참을 시청자들과 소통을 했는데.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내 방송을 보러 와주는 사람들은 저스트 채팅을 비롯한 소통 방송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인 듯했다.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본래 소통과 대화를 중시하는 걸까.

        

       그래.

        

       소중한 후원자이자 잠재적 활동가들인데, 내가 맞춰야지.

        

       벌써 네 번째 방송이니, 한 번 정도는 소통 방송을 할 때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냥 앉아서 소통하기엔 조금 심심할 수 있으니……요리에 관한 조언도 구하며 소통도 할 겸, 부추전을 굽는 동안 방송을 하면 되지 않을까.

        

       집 근처의 마트에서 신속하게 부추전 재료를 사서 돌아오니, 밖에는 어느새 제법 거센 장대비가 내리치고 있었다.

         

       전을 굽기 시작하기엔 최고의 시점이다.

        

       마침 눈에 띈 이모지까지 적어넣고 나니, 방송 준비가 모두 끝났다.

        

       뿌듯한 기분으로 핸드폰으로 방송을 키고, 재료 준비를 시작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님이 방송 중입니다!]

       [도적부흥운동 설명회 – 소통 및 부추전🤢]

        

       * * * *

        

       『아따먹이…소통?』

       『화면 왜 이럼』

       『폰 방송인가』

       『오 캠방인거같은데』

        

       진정한 슈퍼스타는 빠와 까를 동시에 미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이예나는 결코 슈퍼스타는 아니었으나, 빠와 까를 동시에 미치게 하는 것 하나는 꾸준하게 달성하고 있었다.

        

       데뷔 방송으로 잔뜩 어그로를 끌어 모아놓고는 한참 방송을 유기하더니, 갑자기 돌아와서 챌린저의 목을 따고, 시청자들을 강퇴하며 스트리머로 강제 데뷔를 시킨 그녀는,

        

       초심으로 돌아와, 핸드폰 방송을 킨듯 했다.

        

       아직은 카메라를 가렸는지, 검은 화면만 송출되고 있었지만.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선생님 캠이 안 보여요】

        

       《아, 잠시만요.》

        

       부스럭대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가 책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요리 지튜브 등에서 흔히 나오는, 부엌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수직으로 촬영하는 각도.

        

       책상 위에 놓인 부침가루와 생부추, 양파, 당근, 기름 등 각종 식재료가 화면에 담겼다.

        

       《오늘은 비가 와서, 부추전을 구워보기로 했어요. 맛있게 만드는 방법 관련 훈수 자유입니다.》

       

       『ㄹㅇ요리방송임?』

       『육수 우리기 ON』

       『센세 여캠으로 전환하셨나요』

       『제발 여캠해』

       『훈수 자유? 아 ㅋㅋ 딱대라』

       『맛알못이네 비오는 날은 해물파전이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제법 우호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요리방송은 시청자들과의 티키타카로 오디오를 채우기 좋은 포맷이다. 더군다나, 방제에 무려 ‘소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고- 자유롭게 훈수를 하라고 공언까지 한 상황 아닌가.

        

       도적부흥운동 설명회라는 말머리가 다소 불안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드디어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소통을 시작할 거란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ㅇㅇ 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제목에 토하는 얼굴은 왜 넣어 놨나요】

        

       《아. 그거. 작게 보면 부추를 듬뿍 넣은 부추전처럼 보이지 않나요?》

        

       『…??』

       『저거의 어디가 부추전인데』

       『나 갑자기 존나 불안해』

        

       약간,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예나는 음정과 박자 모두 불안정한 콧노래를 부르며, 책상 위에 놓여있던 큼지막한 그릇과 부침가루, 물을 들어올려 화면에서 빼고는-

        

       《자, 그러면 우선 부엌에서 반죽을 만들어 올게요.》

        

       라는 말과 함께, 발소리를 남기고 떠나갔다.

        

       조금 멀어진 거리에서 들려오는 콧노래와, 탁-탁하고 숟가락으로 그릇을 치는 듯한 소리만이, 정말로 저 멀리에서 반죽물을 만드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

       『텐련아 만드는 걸 보여줘야지』

       『아니』

       『아 시팔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요리하는 모습은 안 보여주는 쿡방의 시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공사다망님, 17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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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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