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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뭔가 분위기가 엄청나게 불편해졌다.

        

       아니, 편해졌다고 해야 하나?

        

       ……편한데 불편하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도 그럴게, 지금 당장 내 양옆에 여자애들이 딱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아니, 그래. 전부 내가 부탁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니까…… 나랑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만들겠다는 거.

        

       솔직히 학생이라곤 한 명도 안 보이는 카페 안에서까지 그렇게 붙어있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솔직히 그래도 한쪽 손은 좀 놔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모든 음식을 입으로만 받아먹는 것은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힘들었다.

        

       몸이야 편하긴 했지만.

        

       그래. 몸은 편했다.

        

       내가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니까.

        

       “저, 그, 그런데, 이제 슬슬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은데.”

        

       나는 내 입 앞에 들이밀어진 신소희의 포크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신소희가 내 입 앞에 가져다 댄 티라미수는 벌써 세 개째다. 아무리 작은 정사각형으로 잘린 디저트라고 해도 너무 많이 먹으면 저녁을 먹을 때 애로사항이 생긴다. 예사라의 위장은 아직도 너무 작았으니까.

        

       “흥. 그래?”

        

       신소희는 포크를 살짝 뒤로 물리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주는 건 이제 받아먹고 싶지 않다는 말이야?”

        

       “어, 아니…….”

        

       그게 아니잖아!

        

       그냥 물리적으로 내 위장이 견디지 못한다고! 너무 많이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진다고!

        

       “아니면?”

        

       신소희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얼굴에 표정은 없다. 서 있을 때도, 앉아있을 때도 나보다 확실하게 키가 큰 신소희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평소에 꽤 다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그녀였기에 무표정으로 가만히 바라보자 조금 무서웠다.

        

       뭐, 뭔가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오를 것 같다.

        

       “아, 아냐.”

        

       “그치?”

        

       신소희는 바로 빙긋 웃으면서 내 입 앞에 포크를 들이밀었다. 티라미수의 초콜릿 가루가 내 입술에 살짝 묻었다. 결국 나는 입을 열어서 그 조각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

        

       직후에, 신소희는 다시 티라미수 한 조각을 집어 자기 입 안에 넣고는 맛있다는 듯 입을 오물거렸다.

        

       “…….”

        

       옆에 앉아있던 이수아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입술에 묻은 가루를 닦아주었다.

        

       ……지금 나 아기 취급 당하는 건가?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겠네.

        

       “어, 저기, 얘들아. 그러니까 내가 부탁했던 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해달라는 거였는데— 라는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단것만 먹으면 입 안이 너무 달지 않아? 자, 커피도 마시면서 먹어.”

        

       벌린 내 입에 빨대가 불쑥 들어왔다. 유하늘이 내 입에 커피잔을 들이민 것이다.

        

       “…….”

        

       결국 나는 그저 그 빨대를 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살짝 과일 향이 나는 것 같은데.

        

       고급 원두로 만든 커피에서는 이런 향도 나는 건가?

        

       *

        

       그렇게 한참 동안 카페에 앉아있다가 겨우 밖으로 나왔다. 오래 앉아있었던 것 치고는 별다른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아니, 아예 대화가 없었던 것 같기도. 머리에 피가 너무 많이 몰린 나머지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었다.

        

       내가 전생에 여자들과 엄청나게 친하게 살았거나, 하다못해 진짜 여자였기만 했더라도 그 자리에서 냉정 침착하게 있을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전생의 나는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모태솔로였던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소녀의 몸속에 들어오더라도 이건 별로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아, 그래. 나 지금 생각난 게 있어.”

        

       한동안 말없이 걷다가, 한 편의점 앞에서 신소희가 손뼉을 짝 치면서 말했다. 짝하는 소리에 놀라 지나가던 몇몇이 이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나와 내 양옆에 붙어있는 하늘이와 이수아를 보더니 자기네들끼리 수군거렸다.

        

       ……아니, 이런 효과까지 노리고 있던 건 아닌데.

        

       뭔가 나쁜 짓도 안 했는데 나쁜 놈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동성끼리 아무렇지도 않게 사귀는 세계라는 것은 생각보다 살아가기 피곤한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잠깐 편의점 좀 들를게. 괜찮지?”

        

       다행히도 그렇게 말하는 신소희는, 카페에서 보인 묘하게 빡친듯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대체 카페에서 뭐에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는 모르겠어도, 지금은 그렇게 화가 나보이지는 않으니 다행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셋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금방 다녀올 테니까.”

        

       신소희는 얼른 편의점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말했던 대로, 금방 나왔다.

        

       “미안. 잠깐 뭐 하나 살 게 있어서.”

        

       그렇게 말하는 신소희에게 어깨를 으쓱이려다가, 내 양팔에 매달려있는 두 사람을 다시 한번 의식했다.

        

       “…….”

        

       이제는 부축 안 해줘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왠지 말해도 안 놔줄 것 같아서, 나는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

        

       오늘이 저번 주와 같은 날이었다면, 나는 이 세 사람에게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돌아가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바깥을 더 돌아다니기에는 너무 피곤한 하루였다.

        

       관종이 되는 길은 멀고도 험했고, 특히 그 관심을 끄는 대상을 잘못 선정했다간 개고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육체적으로 깨달았다. 전생에는 운동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지라 운동하는 사람 앞에서 어그로를 끌면 어떻게 되는지 온몸으로 겪었으니, 다음에는 그런 짓은 절대로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게 그 헬스장에서 야한 냄새 풍기면 달려들어 헬창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그걸까? 뭐, 그것보다야 강도가 훨씬 약하긴 하겠다만.

        

       게다가 아무래도 하늘이와 이수아는 나와 함께 있는 동안은 나의 계획을 철저하게 도와줄 생각인지, 내 옆에 찰싹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식사도 내 손으로 하지 못했고, 카페에서도 내 손으로 먹은 음식이 없다. 디저트고 음료수고 할 거 없이.

        

       ……바라본 적도 없는 호화스러운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영 마음에 걸린다. 아무래도 내 원판이 미성년자가 아니라 미성년자들과 이렇게 부대끼는데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는 걸까?

        

       아니, 그보다는 하늘이나 이수아, 그리고 신소희가 별다른 말이 없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그 분위기가 묘하게 불편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그래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 푹 쉬고 싶었다.

        

       저 멀리 저택이 보이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음, 역시, 솔직히 저기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는다. 그나마 이 세 명은 나와 동등한 존재지만, 저기는 남보다 못한 사용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니까. 관종짓거리로 관심이라도 끌어볼 생각이 드는 학교와는 다르게, 저곳의 사용인들에게는 그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오는 식사는 맛있긴 했지만……음, 그건 좀 다른 이야기고.

        

       뭐…… 내가 저기 가고 싶건 말건, 어쨌거나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그걸 아는지, 세 사람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분위기로는 같이 들어가서 식사를 한다고 해도 어색하기만 하겠지.

        

       ……역시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에, 우리는 저택 앞에 도착했다.

        

       마치 나를 삼키려고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이미 열려있는 대문. 그리고 대문 옆의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

        

       지난 두 달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익숙해져서 망정이지, 이 저택 바깥의 사람들이 보면 엄청나게 위압감을 느낄법한 분위기였다. 원래의 예사라가 저택 바깥으로 나가지 못했던 이유도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난 주말에 내가 저택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원래의 예사라도 저택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권한이 있었겠지만…… 어린 시절부터 문 앞을 지키던 저 사람들을 보고 자랐다면 근처에 가기만 해도 무서웠을 테니까.

        

       내 양옆에 있던 하늘이와 이수아도 내 옆에서 스륵 떨어졌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그럼, 오늘도 즐거웠어. 내일 보자.”

        

       내 말에, 하늘이가 빙긋 웃어 보였다. 이수아도 조금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 신소희는 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세 사람에게 살짝 웃어 보인 뒤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저택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내 뒤를 따라오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

        

       고개를 돌려보니, 신소희가 당당하게 내 뒤를 따라서 저택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

        

       내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경호원이 그 앞을 불쑥 막아섰다. 덕분에 신소희는 저택으로 들어오다가 그대로 길이 막혀버린 모습이 되어버렸다.

        

       한 발짝.

        

       저택과 저택의 바깥을 가르는, 커다란 철문이 오가는 길에서 딱 한걸음, 신소희는 저택의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자기보다 머리 한 개 반은 더 큰 경호원이 앞을 가로막았는데도, 신소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머지 발을 저택의 안쪽으로 들여보냈다.

        

       탁. 하고, 마치 선언이라도 하듯 땅을 딛고 선다.

        

       “여기는 사유지입니다. 외부인은 함부로 출입하실 수 없습니다.”

        

       낮게 깔린 경호원의 목소리를 듣고도, 신소희는 눈썹을 살짝 올려 보일 뿐이었다.

        

       “여기가 누구의 사유지인데요?”

        

       신소희가 그렇게 물었다.

        

       “……여기는 예사라 아가씨의—”

        

       “아, 쟤 땅이에요? 그럼 쟤한테 물어보면 되겠네.”

        

       그렇게 말한 신소희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내밀었다. 그랬더니 경호원의 팔 옆으로 얼굴만 삐쭉 내민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머리 뿌리 부분의 물이 살짝 빠진 신소희의 어중간한 금발이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아래로 휙 떨어졌다.

        

       생기발랄한 그 모습을 보고, 순간 나는 신소희가 살짝 귀엽다고 생각했다.

        

       “어때, 들어가도 돼?”

        

       “……아가씨께서는 휴식을—”

        

       “어어.”

        

       경호원이 다가가려고 하자, 신소희는 경호원을 제지하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여기서 밀치거나 내 몸에 손이라도 대면 그대로 막 소리 지를 거야. 알죠? 이 근처에 사람 많이 다니는 거. 그리고 지난번에도 밥 한 끼 얻어먹고 간 적 있거든요? 인제 와서 뭔 소리래.”

        

       그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나올 뻔했다.

        

       “그럼, 식사라도 할까?”

        

       내가 경호원을 놀리듯 그렇게 물어보자, 신소희는 어깨를 으쓱인 뒤, 옆으로 한 발자국 나왔다. 경호원에게 완전히 가렸던 그녀가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단추를 세 개쯤 푼, 엄청나게 정조 관념이 희박해 보이는 교복 셔츠와, 허벅지가 꽤 많이 드러나보이는 짧은 교복 치마였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양아치였다. 뭐, 솔직히 너무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양아치라 오히려 현실성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그야 당연히 식사는 하는 거고.”

        

       그리고 양아치답게도, 신소희는 그렇게 대답했다.

        

       상쾌할 정도로 명쾌한 대답이라, 바로 조금 전 까지의 우울한 기분이—

        

       “오늘 자고 갈 건데.”

        

       —하필이면 날아가면서 내 정신줄도 같이 끌고 가버렸다.

        

       “……어?”

        

       “자고 갈 거라고.”

        

       신소희는 순간 굳어버린 나에게 씨익 웃어보이며 말했다.

        

       “왜, 친구끼리는 그러기도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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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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