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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그녀가 이성을 되찾은 것은 플레티넘으로 가는 승격전을 만들었을 무렵이었다.

       

       아무리 이성을 잃었어도 엔리는 방송인이었다.

       

       그녀는 혼자 승급을 하고 방송을 키면 사람들이 얼마나 난리를 칠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엔리는 게임을 더 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아피스를 껐다.

       

       “그 때가 몇 시였나요?”

       [아침 일곱시요.]

       

       일어나야 할 시간 아니더냐. 그 때까지 게임을 하고 있었다고?

       

       엔리도 바보는 아니었다. 눈을 감았다간 오늘 내가 오기로 약속한 시간까지 깨어나지 못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예 오늘 하루를 샐 생각을 했다.

       

       커피를 진하게 타 마시고 아예 밤까지 버틸 생각을 한 것이다.

       

       “근데 오늘 아침에 이상할 정도로 원두 향기가 좋더라고요.”

       “네?”

       “향기가 너무 좋아서 잠에 들었어요.”

       

       탁자에서 쓰러진 그녀는 내가 전화를 걸고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설명했다.

       

       하하. 그러니 다급한 게 당연했지.

       

       “솔직히 지금도 혼이 반쯤 나가있는 것 같아요.”

       “그럼 오늘 일정을 나중으로 미룰까요?”

       “아뇨. 커피 마시면 괜찮아져요.”

       

       그리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커피가 완성됐다.

       

       나는 별 생각없이 엔리가 따라 준 커피를 한 입 머금었다.

       

       약간 시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입 안을 감싸고 슬며시 쓴 맛이 스쳐가더니 뒤를 따르듯 희마한 단맛이 붙었다.

       

       맛있었다.

       

       평소 먹던 커피는 단순히 쓰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것은 달랐다.

       

       “맛있죠?”

       “그렇네요.”

       

       진지하게 매일 마시고 싶을 정도였다.

       

       “평범한 커피랑 많이 다르네요. 무슨 차이에요?”

       “원두죠. 가성비 따위 신경 안 쓰고 좋은 것만 썼으니까.”

       

       돌아가는 길에 이 원두에 대한 것을 물어봐야겠구나. 나중에 단 것을 먹을 때 이것을 곁들인다면 분명 기분이 좋겠지.

       

       “아라 씨. 마음의 준비는 하셨나요?”

       “그 정도까지 해야 하나요?”

       “물론이죠! 오늘 아라 씨가 할 게 어디 쉬운 건 줄 아세요?”

       

       엔리가 저리 말을 하는 것을 보면 오늘 하루가 그리 순탄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뭐어. 그래봐야 게임에 불과하지 않으냐.

       

       아무리 괴상하고 어려운 것이어도 결국에는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 진 것.

       

       내가 게임을 하며 고통을 받으리라 생각되지는 않는구나.

       

       커피를 모두 다 마신 후 엔리가 방송을 할 때 쓰는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방에는 두 대의 컴퓨터와 여러 개의 조명. 마이크. 카메라.

       

       그리고 캡슐이 있었다.

       

       “저게 엔리의 VR기기인가요?”

       “네. 방송을 할 때 쓰려고 꽤 비싼 걸 샀죠.”

       “성능이 다른 가요?”

       “나중에 한 번 느껴보세요. 저는 체감이 그리 크지 않았지만 아라 씨라면 다를 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방송이 끝나고 나면 한 번 저 기기를 사용해봐야겠구나.

       

       “그보다 자! 앉으시죠! 방송을 해야 하니까요!”

       “그 꼴로 방송을 해도 돼요?”

       

       평소 VR세계에서 방송을 할 때라면 현실의 몰골이 아무리 처참하더라도 상관 없다. 어차피 시청자들이 보는 것은 아바타니까.

       

       하지만 지금은 현실에서 방송을 하는 것 아닌가. 엔리의 저 모습을 본다면 있던 팬도 달아날 것이 분명했다.

       

       “캠 안 킬 거니까 상관없어요.”

       “그래도 돼요?”

       “싫으면 보지 말라 그래요.”

       

       매번 엔리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다룰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차이가 극명한 사람이다.

       

       잘 아는 부분에 관해서는 저렇게 대담한데 자신이 어설픈 부분에 대해서는 바보 같이 움직일 때가 많으니.

       

       참. 아피스를 할 때에도 이렇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엔리가 기본적인 방송 설정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 후 방송을 키자 무섭도록 빠르게 시청자들이 차올랐다.

       

       0이었던 숫자가 순식간에 백을 넘고 이내 천을 돌파하더니 수천이 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 오늘 VR아니네? 무슨 일임?

       – 캠도 안 키고. 무슨 중대발표라도 할 거 있음?

       – 혹시 화령님 벌칙 수행하러 온 거야?

       – 화령님이랑 현실 합방임? 진짜로?

       

       “엔하! 지금 여러분이 추측하시는 대로 제 옆에는 화령 씨가 있답니다. 화령 씨. 인사해주세요!”

       “안녕하세요. 화령이라고 합니다.”

       

       – ?

       – 화령님이요? 천마 말투 어디 감?

       – 이건 화령님이 아니야!

       

       저들은 내가 VR세계에 있을 때 어투밖에 듣지 못했으니 내 한국어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천마로 지낼 때의 어투와 한국어를 할 때의 어투는 느낌이 많이 다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미안한데 화령 씨 맞아요. 목소리 들으면 알잖아요?”

       

       – 그렇긴 한데…

       – 혹시 화령님 외국인임? 한국어가 좀 어눌한 거 같은데.

       

       “네.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 그럼 한국어가 어설퍼서 컨셉질 못 하는 거임?

       – 아 ㅋㅋㅋ. 언어의 한계가 여기서.

       – 근육신사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님들 화령님이 평소 그 얼굴로 우물쭈물대면서 어설픈 한국어 한다고 생각해보셈.]

       

       – 오.

       – 새끼. 잘알이네.

       – 그렇게 생각하니까 좀 괜찮은데?

       

       “뭐가 괜찮아 이 인간들아! 적당히 안하면 밴 할꺼니까 알아서 해요!”

       

       – ^^7

       – ^^7 충성. 충성.

       

       도대체 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눈짓으로 엔리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는 시선을 회피하며 답을 미룰 뿐이었다.

       

       – ㅇㅇ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혹시 여우 씨가 화령님이랑 동일인물인가요?]

       

       “맞습니다. 그 때는 재밌었어요. 인형들이 귀여워서 좋았죠.”

       “그 때 귀엽다고 하던 거 진심이었어요?”

       “? 당연하죠.”

       

       그 아이들이 귀엽지 않으면 세상에 귀여운 것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는 것이냐.

       

       내 꼭 집에 데리고 가고 싶은 이들이 한 둘이 아니었거늘.

       

       – 역시 엔리 친구는 정상이 없구나.

       – 천마 컨셉질에 그렇게 진심인데 정상은 아니지.

       

       “아니 꼭 내가 이상한 것처럼 이야기하지 마요. 이번은 화령 씨가 특이한 거라고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내가 별종처럼 보이지 않으냐.

       

       그대들의 감성이 이상한 거지 왜 내 감성에다 대고 무어라 하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자.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VR이 아니라 현실 방송을 킨 이유는 화령 씨에게 욕조 게임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 캬. 큰 거 왔다.

       – 천마님 샷건 치는 거 볼 수 있는 거야?

       

       욕조 게임? 그것이 무엇이길래 이들이 저리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

       

       사람들에게 똥겜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은 다양하게 돌아온다.

       

       버그가 너무 많아서 진행을 할 수가 없는 게임.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도저히 앞으로 갈 수가 없는 게임.

       

       스토리가 이상하거나, 그래픽이 안 좋거나, 조작감이 이상하거나.

       

       이 중에서 엔리가 아라에게 시키려하는 게임은 의도적으로 유저를 화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똥겜이라고 불린다.

       

       어제 아라를 골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엔리는 고민했다.

       

       분명 아라의 가르침이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고맙다는 마음이 크기는 했으나 그만큼이나 복수를 하고 싶단 마음도 강했다.

       

       적어도 자신이 구른 만큼 아라도 괴로웠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 것은 인간으로써 당연한 욕구였다.

       

       어떤 걸 시키면 좋을까 고민을 하던 엔리였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일단 현실에서 단 둘이 하는 일은 제외해야했다.

       

       엔리와 아라의 약속은 방송에서 이루어진 것.

       

       시청자들이 납득할만한 무언가를 쥐어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러니 방송 내에서 끝낼 수 있는 컨텐츠가 되어야만 했는데 역시 제일 좋은 건 게임이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어떤 게임을 시킬까가 문제였다.

       

       그 어떤 게임을 시킨다한들 아라가 고생하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무서운 게임을 시켜 봐야 웃으면서 클리어를 할 게 뻔했고. 어려운 게임을 시켜도 재밌게 즐기다가 클리어를 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아예 괴상한 쪽으로 가자니 방송적인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외통수에 몰린 엔리는 결국 집단지성의 힘을 빌리기로 결정했다.

       

       수천 명의 생각은 대부분 이상한 쪽이겠지만 그래도 하나는 쓸만한 게 나오지 않겠는가.

       

       그녀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 화령님 기계치잖아요.

       

       “그렇죠?”

       

       – 그럼 현실에서 컴퓨터로 어려운 게임 시키면 곤란해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손발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우스와 키보드로 플레이해야하는 게임이라면 아라도 어려워하지 않을까.

       

       재밌는 발상이었다.

       

       그리고 꼭 한 번쯤 시켜보고픈 발상이기도했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캐릭터에 짜증을 내는 아라 씨라니. 보고 싶잖아.

       

       그 안을 채택하고 나니 게임을 결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엔리의 스트리머 경력이 몇 년이고 그 중에서 불판을 만든 게 몇 번이던가.

       

       그녀가 벌칙으로 한 똥겜만 해도 게임 플랫폼을 가득 채울 지경인데 그 중에서 아라가 어려워할만한 게임 하나를 못 고를까.

       

       “이 사람은 왜 욕조 안에 갇혀 있는 건가요?”

       “몰라요.”

       “네?”

       “제작자도 모르는 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이 게임을 만든 제작자조차 모근이 사멸된 남자가 욕조 안에 갇힌 이유를 ‘그냥’이라고 대답했는데 엔리가 어떻게 그 이유를 알겠는가.

       

       만약 욕조에 갇힌 알몸 대머리 남자가 망치로 등산을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겐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문학상이 주어져야 했다.

       

       “마우스를 움직이면 이렇게 망치가 움직이잖아요?”

       “네.”

       “이걸로 결승점까지 가면 돼요.”

       

       엔리가 선택한 게임은 흔히들 욕조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괴악한 조작감. 제멋대로 움직이는 망치. 볼 때마다 열 받는 대머리 남자.

       

       거기에 더해 한 번의 실수로 자신이 여태 진행했던 모든 것이 초기화 될 수 있다는 것.

       

       제작자가 대놓고 사람을 열 받게 하게 만든 게임이라 이야기한 이 게임은 많은 스트리머들에게 성대결절과 방송기기 파손을 불러일으킨 똥겜이었다.

       

       “그냥 위로 가기만 하면 되는 거에요? 이게 뭐가 어려워요?”

       

       이 게임을 하는 유저 누구나가 그렇듯 아라도 시작을 할 때는 이런 게 벌칙이냐는 말을 꺼냈다.

       

       그렇지만 10분 가량이 지났을 즈음엔.

       

       “망치에 기름이라도 발려 있나요?”

       

       말이 바뀌었다.

       

       마우스 왼쪽 버튼을 툭툭 두드리는 아라의 손가락에선 진한 짜증이 느껴졌다.

       

       한 번의 실수 때문에 저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으니 그럴 법 했다.

       

       아무리 아라가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몸을 움직이는 영역에 불과했다.

       

       마우스를 움직임으로써 개같은 조작감을 뚫는 데는 신체 능력 이외에 다른 것이 필요했다.

       

       엔리는 아라가 신경질을 내는 모습을 간식 삼아서 커피를 들이켰다.

       

       저렇게 헤매시는 걸 보면 쉽게 끝나지는 않겠네.

       

       다행이다. 아라 씨도 사람이었구나.

       

       마우스를 쥐자마자 이런 느낌인가? 라고 하면서 몇 분 만에 클리어하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성질을 낼락말락하는 아라를 보며 신난 것은 엔리보다도 시청자들이었다.

       

       – 벌써 화났음?

       – 천마도 사람이네.

       – 이제 시작인데 벌써 이러면 앞날이 어둡다.

       

       – 사랑해요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화났어요? 화났나요?]

       

       하이톤의 거슬리는 목소리를 들은 순간 아라가 마우스를 두드리는 걸 멈췄다.

       

       “이런 걸로 화가 나겠어요? 겨우 게임이잖아요.”

       

       엔리는 아라 몰래 방금 그 발언을 녹음했다.

       

       나중에 들려주면 좋아 죽어할 것 같아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최신화 조회수가 천을 넘겼습니다! 제가 1.0k를 보게 될 줄이야!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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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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