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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아샤… 그건 말이 안 돼. 내가 제일 먼저 확인해본 게 관문 유치장인데 거기에 그 사람들은 없었어.”

         

         “…….”

         

         전에 나보고 너무 아름다운 시각으로 이 도시를 바라본다고 빈정거리던 누군가가 떠올랐다.

         

         ‘밀입국자들은 밖으로 추방되지 않았다.’

         

         보는 눈과 듣는 귀가 도처에 깔린 근무지로부터 벗어나 집에 돌아와서 겨우 알아낸 사실을 전달해주니 이런 반응이다.

         

         경찰조장 헬레나에게 있어서 ‘구류’ 처분이란 논리적으로 ‘유치장 행’과 동일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부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그런 대답을 한 당사자도 설명하기 힘든 찝찝함과 어수선함을 느끼는지 불안해 보였다.

         

         내가 연구소를 탈출하면서부터 닮고자 했던 헬레나 발렌타인의 정의감.

         그 공명정대함에 한줄기 의혹이 피어나는 게 서투른 내 눈에도 똑똑히 새겨졌다.

         

         그런데 아직 제일 수상한 프로젝트에 관한 얘기도, 앤에 관한 걱정도 꺼내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렇게 불안한 표정을 지으시면 저도 곤란한…… 아.

         

         “……왜 트레일러만 따로 나간 건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사고로 죽은 사람은 없다는 거니까… 괜찮아 언니.”

         

         “그건… 그렇지만.”

         

         자기가 옳다고 믿고 한 일이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는 초조함을 나는 이해한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찬 사람이 바로 여기 있는데 어찌 그걸 모를까.

         

         달래주는 게 명백한 말에,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걸까… 하고 머뭇거리는 헬레나를 보며 내가 지나치게 그녀를 영웅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프롤로그의 시점의 헬레나와 엔딩 시점의 헬레나가 다른 인물인 것처럼, 현재의 그녀는 아직은 미숙하고 충분히 냉정하지 못하다.

         

         잘못된 걸 발견했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지까지는 잘 모르는 미완성의 영웅(Heroine).

         명쾌한 적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 영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럼 너무 걱정하지 마. 언니가 모든 구역에 다 접근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엔 있겠지.”

         

         “……응, 그래.”

         

         노골적으로 주제를 덮어버린다.

         물론 나는 이대로 미진하게 끝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또 동생을 돌보는 건 진짜 손윗사람의 책무일진대 무책임하게 방폐할 수는 없으니까… 여기서부턴 혼자서 걸어야 하는 길이다.

         …뭣하면 최초 신고자로서의 책임감이라고 해도 좋다.

         

         끼긱…!

         

         “……? 어디가게? 데려다 줄게!”

         

         “잠깐 산책.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소파 언저리에 벗어 놨던 신발을 다시 챙겨 신기 시작하니, 뚱한 표정으로 카타나 날을 조명에 비춰보던 헬레나가 반응했다.

         

         목적지가 어디 인지도 모르면서 일단 교통편부터 무작정 제공하려는 그녀에게 편히 쉬기나 하라고 핀잔을 주고 집을 빠져나왔다.

         

         …거짓말은 안 했습니다?

         

         단지 답답한 가슴도 해방시킬 겸 산책하는 길에 내 접속 신호를 변조해줄 단말기도 구해야 했고, 그녀에게는 들려주기 애매한 전화도 걸어봐야 했기에 자리를 바꿨을 뿐이다.

         

         함부로 연결부터 시도하기 전에, 기차역에서 챙긴 자칭 정보상의 번호를 네트워크 뒤편 용병 커뮤니티에 슬쩍 조회해봤다.

         

         어디어디….

         

         [ 일처리는 확실한데…! 좋은데! 그냥 얼굴마담인지… 사장인지 모를 인간이 존나게 변태 같음;; 관찰 당하는 느낌이 아주…. ]

         [ 찌질하게 해커만 굴리는 게 아니라 직접 사람 쓰는 방식인 건 좋은데… 단순하게 약속을 잡는 것만으로도 위장을 핑계로 기본 요금 청구하는 건 좆같네 좀? 씨발년 같으니라고. ]

         [ 다른 건 몰라도 손님이나 의뢰자를 노출한 전과는 없는 업자니까, 어설픈 새끼들은 얌전히 하라는 대로 따라해라. ]  

         

         “……호평 일색이네?”

         

         개인적인 비난은 빼고 보면 후줄근한 옥외 광고와는 다르게 실력은 괜찮은지 꽤 준수한 업자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이건 전혀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수확, 이 정도면 믿고 써먹어 볼만 할지도 모르겠다.

         

         삐리리릭—!!

         

         요란한 신호음이 머리속을 울렸다.

         오랜만은 아니고… 사실 엊그제도 네오 헤이븐에는 대체 언제 놀러 올 거냐며 한바탕 소란을 피운 메이와 전화했었다.

         

         낮에 다닐 학교도, 마음 편하게 같이 나가서 놀 또래친구도 없는 성장기 아이의 잉여체력은… 정말 어마무시하다. 슬슬 미안해서라도 여행계획을 잡아야 할지도….

         

         –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저희 사무소에서 어떤 서비스를 원하시는지 말씀해 주신다면,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

         

         “어…… 뒷조사를 좀 의뢰하려고 하는데요.”

         

         진중함과는 거리가 먼 늘어지는 말투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까먹었다.

         초장부터 기선제압 당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본 멘트에 기시감이 들었다.

         

         – 안타깝지만 저희 사무소는 비대면 의뢰는 받지 않는 주의래서 말이죠…. –

         

         “…….”

         

         그럼 홍보방식이 글러먹지 않았냐는 지당한 의문이 치솟았으나. 조금만 더 집중하면 이 어조의 주인이 생각날 것 같아서 정신을 다잡던 찰나… 놈은 멋대로 정답을 공개했다.

         

         – 도시 상층부에 있는 호텔, 호라 도라다로 찾아와 주셔서 접수대 직원에게 ‘미리 전화로 예약하고 왔다.’ 고 말씀해주시면 되겠습…. –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결을 끊어버리곤 가까운 승강장이나 기차역을 찾기 시작했다.

         

         이 변태는 아무리 봐도 일은 핑계고 진짜 그냥 인간관찰이 좋아서 사는 것 같다.

         

         

         

         

         여전히 눈을 아프게 하는 황금 기둥들과 경비를 지나친다.

         짧은 체류였음에도 인상깊은 만남이 많았던 장소여서 그런지 좀 익숙하다.

         

         …이쪽을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짓는 누군가는 예외로.

         

         “아리따운 고객님…! 또 찾아주셨군요…? 마침 전에 묶으셨던 방이 비어 있는데… 어떻게, 숙박으로…?”

         

         “…아니, 이번에는 미리 전화로… ”아…! 이번에는 특별한 서비스를 위해 재방문 해주셨군요? 감사드립니다…!” ……그래.”

         

         피차 마찬가지로 상대를 짐작했으면서 시치미부터 떼는 능글맞은 태도 좀 보라.

         항상 반 발자국 앞선 접객정신은 칭찬해줄만 하나… 아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의뢰인이 아닌 투숙객의 시선으로 판단할 필요는 없었다.

         

         고용할 이가 유능하다는데 사소한 걸로 불만을 가질만큼 나는 여유롭지 않았으니까.

         

         “부디, 안쪽 사무실까지 동행해 주시겠습니까…?”

         

         정중하게. 그렇지만 딱딱하기보단 우아한 느낌으로 손짓한 그는 나를 뒤쪽 직원전용 통로로 인도했다.

         

         “…접수대를 저렇게 막 비워 놔도 되나?”

         

         “그건 다른 직원분들로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이 서비스는… 제가 아니면 힘들기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덜컹…!

         

         친절한 안내에 따르자 도착한 곳은 휴게실처럼 꾸며진 외딴 방.

         원래는 조사할 거리만 후딱 던져준 뒤, 요금을 내고 빠져나올 예정이었지만… 이 인간은 나와 오래오래 떠들 생각이 만만한 것 같다.

         

         “그래서… 숙녀분께서 원하시는 조사란…?”

         

         부담스럽게 들이밀어진 얼굴을 피하기 위해 나는 반대로 의자에 등을 딱 붙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해봐도 중성 마녀의 성별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이런 의뢰는 조사범위가 좁으면 좁을수록 비용이 절감되는 걸로 아는데… 맞아?”

         

         “정확히는 그 과정에서 따라오는 위험도가 더 크게 작용하지만…. 네, 맞습니다. 그러니 어서 말씀해주시지요. 쟁쟁한 넷 해커들을 모조리 제친 인재께서 구태여 남의 손에 맡기려는 일이 뭔지 너무 궁금하군요.”

         

         “읏?!”

         

         얼굴에 열이 확 오른다. ……시발! 그 해괴한 면접은 진짜 있어서는 안 됐다.

         게다가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그런지, 정보 좀 다루는 이들 사이에선 어물쩍 입소문까지 났나 본데… 경찰 신원보호는 어디로 갔는지 난 모르겠다.

         

         “…근래 들어서 도시 생활을 목표로 한, 여기로 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한 인근 주민들. 혹은 실종 신고 현황을 좀 조사해줘.”

         

         “……도시민이 아니라 인근 주민입니까? 황무지의…?”

         

         이상하게 들리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런다고 필요한 정보가 달라지는 게 아니래서 큰 문제지만.

         

         “정확해. 그리고….”

         

         마른 입술을 살짝 혀로 축이고, 뻑뻑한 근육을 이리저리 움직여본다. 여기까지 왔으니 말만 꺼내면 된다. …앤 그리샤의 행적을 조사해달라고.

         

         하지만 직접 얘기해본 것도 없는 주제에, 음습한 짐작만으로 이런 일을 벌여도 되는 걸까?

         앤이나 헬레나가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우연히라도 알게 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쟁점이 아니다. 내가 이 선택을 품은 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더 심란한거지.

         

         “……이게 끝이야. 내야할 대금이나 알려줘.”

         

         급하게 의뢰를 마무리한다.

         

         이제는 침착하게 때를 기다리면 끝.

         위험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파라다이스 사의 프로젝트는, 그 근원으로부터 가까운 내가 감당해야할 주제다.

         

       

       

         …그리고 그 기회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기껏 정보상을 이용한 보람도 없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 손가락이 정상적으로 작동을 했다면 원래는 10-1 로 올라갔을 내용입니다. ㅜ

    연참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손가락 관절염이 심해지면 자판을 누르기가 너무 힘드네요… 죄송합니다.

    …익명의 독자분께서 쿨한 3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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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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