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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다행히 길잡이는 수월하게 영입할 수 있었다.

        ​

        다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있었다. 분명 법의 처벌을 받아서 우릴 돕게 된 건데, 이상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

        “지하 수로는 워낙 깊은 곳에 있어서 환기가 잘 안 됩니다. 그런데 이곳이 하수로로 쓰이는지라 악취도 심합니다. 그렇다고 향수를 쓰는 건 들키기 쉬워서 안 됩니다. 악취를 막아주는 마스크를 마련하셔야 할 겁니다.”

        ​

        “현금은 들고 다녀도 의미 없습니다. 어차피 저쪽에서 거래는 금 조각으로만 이뤄지니까요.”

        ​

        “이런 말이 의심스러우실 순 있겠지만, 갑옷을 입고 다니는 건 절대 해선 안 되는 일입니다. 들키는 순간 모두에게 노려지는 목표가 됩니다.”

        ​

        스스로를 미아라고 소개한 종업원은 진지하게 우리가 준비해야 될 것을 알려주었다. 물론 나도 기본적인 것들은 알고 있긴 했지만, 오직 이곳만의 특징을 알고 있는 건 그녀이기 때문에 나도 귀담아들었다.

        ​

        뭐, 의욕이 넘쳐서 나쁠 건 없으니까.

        ​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솔직히 그렇게 고민되진 않았다. 나와 마리아가 기사도 못 되는 사람들에게 당할 이유가 없었다. 그나마 걱정거리일 마리아도 요새 열심히 순간적으로 방어 마법을 사용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

        공격이 어렵지, 방어가 문제인 건 아니니까.

        ​

        “이 정도면 충분한 거 맞아?”

        ​

        “충분합니다.”

        ​

        마침내 며칠을 묵을 준비를 모두 끝내고, 드디어 하수 시설로 진입하는 날이 다가왔다.

        ​

        ―――

        ​

        “으윽.”

        ​

        “냄새가 좀 심하긴 하네.”

        ​

        주변을 주시하며 우리는 점점 아래로 향했다. 굉장히 거대한 시설이라기에 몇 미터씩 되는 거대한 시설을 기대했었지만, 하수로의 초입은 그런 건 아니었다.

        ​

        물론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고대 제국의 미스터리 시설 같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딱 파리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런 하수도 같다고나 할까. 대도시의 하수처리를 담당하는 시설다운 스케일이긴 했지만….

        ​

        뭔가 뭔가다.

        ​

        “그런데, 여기는 왜 온 거야?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없는데?”

        ​

        내 개인적인 감상이야 아무튼,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

        성국의 예측으로는 아마 여기서 몇 층 정도 더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미아가 안내하는 길은 아무리 봐도 내려가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

        “이 길이 맞습니다.”

        ​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 막다른 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

        혹시 얘가 우릴 속인 게 아닐까.

        ​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있을 때, 미아가 벽에 손을 가져다 댔다.

        ​

        딸깍.

        ​

        드르륵.

        ​

        그리 힘을 많이 주지도 않았건만, 벽이 열리고 그 너머로 통로가 나왔다. 나도, 마리아도 눈을 깜빡이며 그 통로를 가만히 바라봤다.

        ​

        “여기가 지하 수로, 아뇨, 저희 말로는 사우스포라고 부르는 도시로 가는 통로입니다.”

        ​

        아니, 그건 알겠어.

        ​

        기사단이 도저히 통로를 찾지 못해 의뢰를 걸었을 정도로 꽁꽁 숨겨진 장소였으니 비밀통로가 있을 것이라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었다.

        ​

        그런데, 그런데.

        ​

        “1층에 바로 출입구가 있었다고…?”

        ​

        이 새끼들 대체 무슨 배짱이야?

        ​

        다른 곳도 아니고, 현재진행형으로 개보수가 이뤄지는 하수 시설이잖아. 그런데 바로 거기에 통로를 만들어 뒀다고?

        ​

        “괜히 저 깊은 곳에 출입구를 만들어봐야 오가는 것만 불편할 뿐입니다. 저희가 몸만 오가는 것도 아니고, 상품도 옮겨야 하니까요.”

        ​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천장을 가리켰다.

        ​

        “저 위가 바로 골목으로 이어집니다. 거기서 조금만 더 가면 저희 가게가 있던 곳이지요.”

        ​

        미친놈들.

        ​

        이 말 말고는 해줄 말이 없었다.

        ​

        “안 들킬 자신은 있던 거야?”

        ​

        미아는 어깨를 으쓱였다.

        ​

        “사우스포가 세워진 지도 벌써 백 년이 훌쩍 넘었는데, 기사들은 여전히 감도 못 잡고 있지 않습니까?”

        ​

        귀납적 추론이라는 건가.

        ​

        하긴, 백 년 넘게 무탈했으면 들킬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긴 하다. 나도 내가 직접 찾은 게 아니라 길잡이를 고용해 찾은 거니까.

        ​

        “그런데, 왜 너희 가게 근처에 있는 거지? 그럼 다른 조직 사람들이 오가며 습격을 당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

        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

        “조직마다 다들 다른 통로를 씁니다. 그 통로들은 저도 모릅니다.”

        ​

        무슨 흰개미 집도 아니고, 도시 하나에 대체 얼마나 많은 조직이 기생하는 거야.

        ​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니 마리아가 물었다.

        ​

        “저 아래에서 지금 올라올 사람이 있나?”

        ​

        “없습니다. 저희는 이 통로의 사용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이를 어기면, 이유를 불문하고 반드시 죽입니다. 함부로 이용하다 통로가 들키면 곤란한 건 분명하니까요.”

        ​

        마리아는 잠시 통로를 바라봤다. 나도 그녀의 옆에서 통로를 살폈다. 딱히 계단처럼 편의성을 위한 시설이 있진 않았다. 애초에 통로도 그렇게 넓은 편은 아니었다. 좌우로 넓긴 했지만, 상하로는 허리를 살짝 숙여야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이었다.

        ​

        하긴, 범죄조직이 통로를 만들 때 무슨 편의성을 생각하고 만들 건 아니니까.

        ​

        하지만 이러면 곤란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도망치기가 어려웠다. 다행히 다른 이들이 들어오진 않는다지만, 움직이기 어려운 환경 자체가 문제였다. 이래서야 나도 전투가 불가능했으니까.

        ​

        다행히도 그 고민은 마리아가 해결해 주었다.

        ​

        우드득, 우득.

        ​

        마리아의 손짓에 따라 흙이 움직였다. 마리아는 흙을 이리저리 움직여 세 명이 들어갈 만한 상자 비스무리한 걸 만들었다. 그리고는 겉을 얼음으로 감쌌다.

        ​

        “이걸 타고 가죠.”

        ​

        역시 마법은 무적이다. 마리아는 신이고.

        ​

        ―――

        ​

        몇 분이나 되는 기나긴 롤러코스터 끝에, 우리는 마침내 바닥에 도달했다. 역시 마법의 도움이 있으니 손쉽게 바닥에 내려갈 수 있었다. 물론 벽에 부딪히기 전 마리아의 마법과 벽에 박은 검으로 속도를 줄였기에 착지도 안정적이었다.

        ​

        “우웨에엑….”

        ​

        “끄, 으흡.”

        ​

        문제는, 저 두 사람이 롤러코스터를 탄 사람들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

        속이 울렁거리는지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그나마 마리아는 내 앞이라고 어떻게든 참으로 했지만, 그게 참는다고 참아지나.

        ​

        나는 굳이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고 귀를 막았다.

        ​

        어쩐지 우웩 하는 소리가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지만, 아무튼 난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었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마침내 소리가 잠잠해졌다. 그제야 나는 뒤돌아볼 수 있었다.

        ​

        두 사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한 모습과 단정한 옷매무새를 갖추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한 건 그대로였지만.

        ​

        “그래서, 저 문을 넘어가면 바로 너희 조직의 본진이야?”

        ​

        “그건 아닙니다. 그랬다간 습격을 당했을 때 그대로 통로가 노출됩니다. 그래서 본진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파뒀지요.”

        ​

        미아는 그렇게 말하며 앞장섰다.

        ​

        문손잡이를 잡고 그녀는 우리에게 당부했다.

        ​

        “여기서부터는 사우스포의 중심입니다. 두 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만, 장담컨데 여기 사는 이들의 사고와 행동 방식은 여러분의 상상을 뛰어넘을 겁니다.”

        ​

        그리고는 마리아를 가리키며 다시 당부했다.

        ​

        “사모님께서는 특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밖에서는 몰라도, 이곳 사우스포에서는 아름다운 외모란 곧 저주입니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다 해도 언제 어디서 습격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항상 후드를 뒤집어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십시오.”

        ​

        “사, 사모님…?”

        ​

        “…혹시 미혼이십니까?”

        ​

        “응….”

        ​

        “…죄송합니다.”

        ​

        잠시 어색한 침묵이 지나가고, 헛기침을 한 미아는 다시 입을 열었다.

        ​

        “아무튼, 행동거지를 꼭 조심하십시오. 절대 눈에 띄어선 안 되며, 돈이 많은 척을 해도 안 되고, 언제나 사방을 주의하십시오.”

        ​

        “알았어.”

        ​

        여전히 혼자 ‘사모님, 사모님….’을 되뇌는 마리아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쳤다. 그제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

        당부를 마치고, 미아는 다시 정면을 향했다. 그녀는 손잡이를 잡은 채 내게 말했다.

        ​

        “이 앞에는, 항상 통로를 지키는 병사들이 있습니다. 셋을 세고 문을 열 테니, 기사님께서는 바로 그들을 제압해주십시오.”

        ​

        “문제없지.”

        ​

        꽈악.

        ​

        태도는 아쉽게도 너무 눈에 띄었기에 여기는 들고 올 수 없었다. 그 대신 삼아 황금방패 기사단에게 검을 쥔 손에 힘을 넣었다.

        ​

        베는 건, 아무래도 속도에 있어 좀 불리했다.

        ​

        대신 검을 치켜들어 찌를 준비를 했다.

        ​

        “하나, 둘….”

        ​

        다리에 힘을 넣고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미아가 손가락으로 병사가 서 있는 곳이라고 가리킨 곳을 계속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

        “셋!”

        ​

        “흡!”

        ​

        푸푹!

        ​

        문이 열림과 동시에 병사 둘이 쓰러졌다. 한 사람은 목에 구멍이 생긴 채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사람은 목에 검이 박힌 채 파들파들 떨었다. 정확히 목뼈를 끊었는지 둘 다 반항 한 번 못하고 숨이 멎었다.

        ​

        “어, 어어―”

        ​

        촤악!

        ​

        다른 이들이 반응하기 전, 목에 박힌 칼을 크게 휘둘러 빼내 바로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채 검을 빼내기도 전에 목을 베어내니 경비병 다섯 명 모두가 아무런 소리도, 경고도 남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

        “…정말 강하시군요.”

        ​

        “기사쯤 되면 다들 이 정도는 할걸.”

        ​

        미아의 감탄에 어깨를 으쓱였다.

        ​

        허언이 아니었다. 물론 나만큼 속도가 빠르진 못하겠지만, 기사 정도면 마력도 못 쓰는 일반인들 상대하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나 다름없었다. 반응하기도 전에 움직이는 정도까진 아니어도, 다들 상대가 허튼짓 하기 전에 침묵시키는 건 얼마든지 가능할 거다.

        ​

        적어도 우리 집안 기사단은 그랬다. 황실은 그 정도는 거뜬해 보였고.

        ​

        “…….”

        ​

        어쩐지 조용해진 미아를 뒤로하고, 마리아가 통로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함께 선 채 주변을 둘러봤다.

        ​

        그리고 우린 한동안 말을 잃었다.

        ​

        “…아주, 도시를 만들어놨네.”

        ​

        마리아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과 천장을 잇는 몇 층 높이의 기둥들에 잔뜩 창문과 입구가 달린 지하도시의 광경이었다.

        ​

        그 크기는, 적어도 대륙에서 손꼽히는 대도시 오소독스의 3분의 1은 되어 보였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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