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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검술학부 연무장에는 묘한 침묵이 감돌았다.

         

       “크흠….”

       “으음.”

       “뭐, 뭐지?”

         

       무어라 말을 꺼내고 싶어도 지금은 인사말조차 제대로 떠올리기 버거운 바.

       장장 29일 만에 복귀한 학부 동기들이다.

       모두가 경쟁자나 다름없는 검술학부 생도들에게 동기애는 희미한 감정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간만에 만나는 거니 반가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덕담 아니면 안부 인사 정도는 하고 싶긴 한데, 지금 그들을 보고 있자니 이를 말하는 것도 어렵다.

         

       그도 그럴게.

         

       ‘왜, 왜 곰 가죽을?’

       ‘저거, 직접 잡은 것 같은데….’

       ‘몸이 엄청나게 부풀었군,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으음.’

         

       곰 가죽을 쓴 18인.

       새싹 생도라 불렸던 허약한 이들이었다.

         

       29일 전만 해도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반 생도에 불과했다면, 지금은 특이하기 그지없다.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일단 인상이다.

       날카로워졌다.

       어딘지 유약했던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고, 금방이라도 베일 것만 같은 예기(銳氣)마저 감돈다.

       허나 인상보다 더욱 시선을 사로잡는 건 최소 세 배는 강건해진 ‘육체’다.

         

       찌익…!

         

       학술원 생도 교복이 터지려고 한다.

       살이 쪄서 저런 게 아니라, 근육이나 뼈대가 전체적으로 커진 거다.

       그렇다고 마냥 근육을 비대하게 키운 느낌보단, 필요한 부분만 키워 날렵함도 갖춘 것이 감탄이 나올 완성도라 할 수 있으리라.

       기세와 육체. 허점이 보이지 않는 몸가짐까지.

       전사, 아니 당장이라도 싸움에 임할 ‘투사’가 떠오른다.

         

       그때.

         

       “레, 레비 폴트? 폴트 영애가 맞나요?”

       “맞아요, 루노 영애. 그동안 평안하셨는지요.”

       “저, 저야 뭐 괜찮았지만, 포, 폴트 영애께선 많이 변하셨군요.”

         

       루노라 불린 귀족 영애는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레비 폴트의 몸을 발끝부터 머리까지 그대로 슥 훑고 말았다.

       실례되는 무례함.

       예의범절을 중요시 여기는 귀족으로선 감히 해선 안 될 행위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한 달도 안 되어 사람이 이토록 달라졌다는 것이 믿기 힘들었기에.

         

       그리고 이는 다른 영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세, 세상에, 손이 너무 거칠어지신 거 아닌가요?”

       “휴, 흉이라니…! 다, 당장 치료해야만 해요!”

       “그런데 얼굴이나 다른 곳 피부는 왜 그렇게 촉촉하고 예쁘신 건가요? 아이린 영애도 그렇고….”

         

       레비 폴트는 다른 영애들보다도 아담했던 소녀였다.

       그렇다고 연약하다는 뜻은 아니었고, 그저 남들보다 좀 더 말랐다 보면 되었다.

       한데 지금은 아니다.

         

       마른 건 비슷하지만, 과거보다 확연히 탄탄해진 몸을 보면 도저히 유약하다는 표현을 쓸 수 없다.

       그렇다고 마냥 우락부락하지 않은 건강-미(美)가 돋보인다.

         

       신장도 좀 자랐다.

         

       150cm의 신장이 이젠 160cm는 될 법하다.

         

       무려 10cm나 신장이 더 자란 것인데….

         

       아무리 성장기라 할지언정 30일도 안 되는 단기간에 사람이 이토록 크는 게 말이나 되는 건가?

         

       ‘벼, 병아리가 왜 갑자기 백조가 된 걸까요?’

         

       교관의 말에 빗대자면 병아리에 불과했던 소녀는 백조로 탈바꿈했다.

       남다른 기세마저 감돌았고, 어딘지 성숙함이 감도니 보고 있는 영애들은 홍조가 살짝 섞인 시선으로 레비 폴트를 힐끔힐끔 관찰하게 되었다.

         

       매력적인 여성은 같은 여성마저 동경심을 이끌어내는 바였으니.

         

       “…시선이 좀 부담스럽네요.”

         

       그러한 부담스러운 시선이 낯부끄러운지 소녀는 쑥스러움을 드러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레비 폴트가 맞긴 하다.

         

       다만, 더는 목소리가 소심하고 연약했던 소녀는 없었다.

       당당히 제 의견을 밝힐 줄 아는 강직함이 그녀에게 서려 있었으니까.

         

       “사형들에 비하면 전 아무것도 아닌걸요.”

       “사형이요…?”

       “나흘 전에 사제관계를 맺기로 했어요. 제가 가장 어리기도 하고, 배움이 미숙하여 막내가 된 셈이지요.”

       “그, 그렇군요.”

       “…그, 그런데 혹시 폴트 영애. 실례가 안 된다면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왜 저분들은 저런 흉물을 쓰고 계신 건가요?”

       “저거 말인가요.”

         

       레비 폴트는 이런 질문이 나올지 알았다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걸기 어렵던 도련님들과 병아리들은 살며시 그녀들의 대화에 집중했고, 레비 폴트는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듯 답했다.

         

       “으음, 복귀 행군 도중 마주친 마물의 가죽이에요.”

       “마, 마물이요!?”

       “네에, 아무래도 변종 같았어요. 가끔 있잖아요? 마물들의 살점을 먹은 동물이 변이를 일으키는 경우가.”

       “세상에….”

         

       그들도 잘 안다.

       사람이나 동식물이 정제되지 않은 마물의 살점이나 피를 섭취하는 건 독을 섭취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즉, 먹는 순간 그대로 즉사하는 게 다반사.

       허나 가끔 생명력이 강인한 동식물은 독을 견뎌내는데, 이러한 경우 폭력성과 잔혹함을 가진 마물로 변절하고 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 마물 수해였고, 영지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태이기도 했다.

         

       한데 그런 마물들을….

         

       “자칫 마을로 갈 것 같아서 교관님께서 사형들에게 명령을 내리셨죠. 마물을 모두 잡으라고.”

       “…교, 교관님이나 다른 분들은 나서시지 않고요?”

       “네에. 아시잖아요, 엄격하신 분인 거. 로엔 공자는 물론이고 실력자들은 모두 대기시키셨죠.”

       “…….”

         

       그럼, 저 말은 마물로 변한 곰들을 저들이, 새싹이라 놀림받던 유약한 하층민 생도들이 잡았다는 것인가?

         

       …교관이나 다른 실력자들의 도움도 없이?

         

       “정확히 열여덟 마리가 있었고, 사형들도 열여덟 명이니 숫자가 딱 맞았죠. 그리고 그 싸움으로 인해 옷이나 짐마저 다 찢겨졌으니, 어쩔 수 없이 곰 가죽을 입고 복귀한 거예요. 딱히 여러분에게 위압감을 주려고 저러시는 게 아니라요.”

       “…생도복을 입은 지금은 왜 입고 계신 건가요?”

       “방어구도 같이 부서졌거든요. 저 곰 가죽, 상당히 두껍고 튼튼해서 방어구 대용으로 쓰기 좋아요.”

       “…….”

       “왜 그러시나요? 더 궁금하신 점이라도…?”

       “아, 아니에요.”

         

       …역시 이 소녀도 좀 이상해진 것 같다.

         

       아니, 방어구를 잃어버렸으면 아카데미에 문의해서 다시 받으면 그만이지, 그렇다고 곰 가죽을 계속 입고 다닌다고?

         

       ‘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도 이상하지만, 폴트 영애도 이상해졌어요.’

         

       약간 상식이 이상해졌다고 할까?

       비상식적으로 변한 그들이었다.

         

       “-오해하지 말도록. 저 가죽은 정말 말 그대로 엄청 튼튼하다. 아카데미에서 지급해주는 방어구보다 두 배는 더. 장인 길드에서도 저 정도로 튼튼한 방어구를 얻는 건 어렵다.”

         

       “교관님….”

         

       도중 교관이 나타났다.

       곰 가죽 사태 때문에 학장에게 또 불려갔다 온 것이었다.

         

       “귀족들이라면 알 텐데? 최상품 방어구 하나가 가진 값이 얼만지.”

       “…좀 나가긴 하죠.”

       “그래, 너희 입에서도 비싸다는 소리가 나오지. 한데 쟤들 신분으로 좋은 방어구 얻는 게 쉬울 것 같나?”

       “아….”

       “그래, 이해했으면 됐다.”

         

       호쾌한 설명이었고, 그들은 저 가죽이 그 정도로 상질(上質)의 물건인지 이제야 알았다며 감탄했다.

         

       …동시에.

         

       ‘그럼, 최상급 방어구와 맞먹는 방어력을 가진 곰 마물을 상대로 저들이 이겼다는 소리가 아닌가?’

       ‘1대1이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 정도면 못해도 중상급 마물은 될 텐데….’

         

       저만한 마물을 ‘저들’이 이겼다는 점이 감탄스럽다.

       강해졌다는 건 윤곽만으로 보였으나, 중상급 마물과 1대1로 싸워 이길 수준까지 올랐다는 것이 경악스럽다.

         

       집중 강화 훈련.

       말만 강화 훈련이 아니라, 정녕 어마어마한 성과를 손에 넣고 온 것이 분명하리라.

         

       그것도 이토록 단기간에-!

         

       ‘억지로라도 따라갔어야 했나?’

       ‘아쉽군.’

         

       아카데미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남아 있던 생도들은 부러움과 아쉬움, 질투 등을 느꼈다.

       급성장한 그들이 부러운 것이리라.

         

       다만.

         

       “아, 그래도 수업 시간까지 방어구 착용은 하고 있지 마라. 이제 복귀도 했는데, 뭘 그러고 있냐.”

       “…괘, 괜찮습니다. 저희는 이게 편합니다.”

       “교관이나 보는 사람들이 불편하다. 얼른 탈의할 수 있도록.”

       “…….”

       “-개기냐?”

       “아, 악! 타, 탈의 하겠습니다!”

         

       교육이란 무섭다.

       이한이 목소리를 낮게 깔자말자 그들은 반항심 전부가 사라지며 즉각 곰 가죽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대머리?”

       “응? 저분들 머리가 왜?”

       “원래 머리칼이 없으셨었나….”

         

       -…….

         

       새싹, 아니 대머리들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차마 이런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특히 소녀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늘.

         

       그들의 눈이 촉촉하게 변해갔고, 이한은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크흠, 사소한 부작용에 불과하다. 투기법을 익힌 놈들은 괜찮던데, 투기법을 배우지 않은 놈들은 경을 배우고 나니 머리칼이 빠지더군. 뭐, 영구적인 장애는 아니다. 나중에 자랄 테니.”

       “그, 그럼 폴트 영애는…?”

       “쟤는 내가 좀 친절히 가르쳐줘서 괜찮고. ‘과격’하게 가르친 놈들은 저렇게 되더군. 사소한 실수지, 다음부터는 실수 안 하면 될 테지, 하하….”

       “…….”

       “…미안하다. 말실수였다.”

       “……차라리 사과하지 마십시오, 마음껏 미워할 수나 있게.”

         

       대머리들은 서글피 울먹였고, 나머지 인원들은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또한.

         

       ‘다행이다, 안 따라가서.’

         

       그냥 남아 있던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안도하기도 했다.

         

       * * *

         

       검술학부는 일찍 해산했다.

       수업이고 뭐고, 내일은 드디어 워 게임이다.

       컨디션이 중요하고, 힘들었던 여로의 피로도 풀어야 하니 자유 시간을 준 것.

       ‘그 짓’ 하느라 힘을 다 쓰고 오는 놈들이 있을까 걱정이 들기도 하다만.

         

       ‘젊은 수컷 놈들을 한 달 동안 강제 금욕하게 만들었으니, 원.’

         

       템플 스테이를 시킨 것보다 더욱 가혹하게 굴렸고, 고통을 매일 줬으니 욕구를 해소하러 가도 이해는 해줘야 할 터.

         

       …하지만 만약 가볍게 피로를 푸는 수준이 아니라, 골골대는 상태로 내일 온다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필히 굴리고 또 굴려 응징을 가할 것이니!

         

       ‘절대 내가 배알 꼴려서 그런 게 아니야.’

         

       내가 못 하는 걸 남이 할 수 있다.

       그따위 추잡한 질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란 걸 분명히 밝히는 바였다.

         

       …1%의 사감이 섞여 있다는 건 부정하지 못하겠지만.

         

       “부러운 새끼들….”

         

       이한은 내심 이를 갈았다.

       내일 지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어느새 생도들을 상대로 불합리한 분노를 불태우는 그였고, 한 달 동안 쌓인 교관 업무를 하고 있을 조교나 조지러 가자 싶을 때였다.

         

       “기사님!”

       “…시녀님?”

         

       레이라 윈터.

       그녀가 특유의 활기참을 간직한 코 맹맹한 음성으로 달려왔다.

         

       ‘…어, 저러면.’

         

       꽈당!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멋진 슬랩스틱을 보여주시는 시녀님이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넘어짐.

       실로 코뼈가 부러질 정도의 충격이 전해진다.

         

       뭐.

         

       “괜찮으십니까?”

       “헤헤, 네에. 안 아파요.”

       “…안 아플 수가 없는데.”

       “넹?”

       “……아닙니다, 아무것도.”

         

       상처 하나 없으신 우리의 시녀님.

       대단하다.

       역시 경이적인 맷집이다.

         

       ‘이 애는 정말 뭘까?’

         

       벌써 같이 지낸 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해하지 못할 불가사의함.

         

       실상 회귀자나 빙의자보다 신기하다.

         

       이한은 애써 이러한 심경을 숨기며, 어차피 집에서 만날 거면서 자신을 이토록 다급히 찾은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다른 게 아니라요, 공주님이 오신대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정말요!?”

       “학장한테 불려가서 들었죠.”

         

       학장한테 혼나면서 겸사겸사 들은 소식.

         

       아이시스, 그 누님이 아카데미에 방문한다는 얘기였고, 워 게임을 관람한다는 통보였다.

       이한으로선 할 짓이 없어서 그런가 싶은 왕족에 대한 불경함이 절로 들었지만, 그 누님이 마음대로 행동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닌지라 그저 그럴 뿐이다.

         

       ‘오면 오는 거지, 내가 뭐 신경 쓸 거 있나.’

         

       아카데미 교원들이나 생도들 입장에선 쓰리 스타가 부대 방문을 하는 수준의 사안일 테지만.

       이한은 좀 귀찮은 지인이 오는 것에 불과했다.

       어차피 일이야 다른 인간들이 할 테고.

         

       ‘숨어 있지, 뭐.’

         

       어차피 생도들이 싸우지, 자신이 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큰일도 아닌데요, 뭘. 그냥 우리 할 일이나 하는 게….”

       “근데 공작님도 오신대요!”

       “……?”

       “갈라하드 공작님이요, 그분도 관람하러 오신다고 하던데요?”

       “……네?”

         

       이상한 얘길 들은 것 같다.

       귀가 잘못된 걸까?

       이한은 무어라 하려고 입을 열려 했으나….

         

       “아, 그리고 공작님 말고도 라이오넬 대공님도 온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오늘 왕성에서 똑똑히 들었어요!”

       “…네?”

       “그렇게 중요한 분들이 다 온다고 하니까, 국왕님도 오실지 모른대요! 헤헤, 손님들이 아주 많을 것 같아요!”

       “……네에?”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계속 되묻고 말았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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