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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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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오, 이번에는 꽤 먹을 만한 놈들이 있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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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처에 산책 나온 사람처럼 느긋한 걸음으로 투기장에 들어오기 무섭게 마검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
    ​
    강한 마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철창 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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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촤르르륵,철컹!
    촤르르륵!
    ​
    ​
    무수히 많은 철창이 전부 열리더니 안에서 수십, 수백의 마물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투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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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오오오오!”
    “끼야아아악!”
    ​
    ​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들으며 마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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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렇게 많은데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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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이 몸을 뭐로 보는 거냐? 이 정도는 간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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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은 저번과 같은 자세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순순히 자세를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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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러드 웨이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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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달려드는 마물들이 순식간에 피의 바다 위에 서게 된다. 피바다는 자비 없이 요동치고 마물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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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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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만 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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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에에엑!”
   “크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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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가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몇 마리의 마물이 살아남은 것이다. 물론 멀쩡한 꼴은 아니었지만 죽어가는 꼴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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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흐, 역시 먹을 만한 놈들만 남았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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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는 입도 없으면서 침 삼키는 소리는 어떻게 내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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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생각을 하며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족보행 하는 코끼리처럼 생긴 괴물은 팔이 여덟개나 되었다. 팔마다 칼등이 휘어진 칼을 들고 있었는데 검의 크기가 나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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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웅,후우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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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들리는 칼날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대기가 작게 울음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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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거 이길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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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법이 없다면 잡아먹힌 후 배를 뚫고 나오는 방법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면 잡아먹힐 때 목에 칼을 박아서 목을 막아버리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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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 당연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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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행히 기분 나쁜 괴물의 입속에 들어갈 필요 없이 해결 방법이 있는 듯했다. 마검은 검을 땅바닥에 박으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검을 똑바로 들어 바닥에 박아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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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챠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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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긴 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따로 스킬 명을 생각 안 했는지 마검이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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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물로 이루어진 선은 거의 코앞까지 다가온 코끼리 괴물에게 닿았다. 핏물이 괴물의 발끝에 닿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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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촤아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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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핏물이 허공에 넓게 솟구치더니 괴물을 집어삼켰다. 마치 어둠에 삼켜지는 것 같은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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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아아앙! 쿠에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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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이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온몸을 집어삼킨 핏물을 막을 순 없었다. 괴물이 서 있던 곳엔 괴물의 덩치만 한 핏물 공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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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기장에 침묵이 내려앉을 정도로 위압적인 장면에 눈깔을 뒤집고 달려오던 괴물들이 발걸음을 멈춘 채 핏물 덩어리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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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구궁,촤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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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공에 떠오른 핏물 덩어리는 겉에 압력이라도 가해진 것처럼 꾸욱, 꾹 눌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덩어리 아래로 밝은색의 붉은 핏물이 쏟아져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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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레몬을 착즙기에 넣은 것처럼, 괴물이 핏물 덩어리로 인해 짓눌려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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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닥에 쏟아진 핏물은 바닥을 기어 마검에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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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아앗,하아 -..맛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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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음 비슷한 걸 흘리며 식사하는 마검의 모습에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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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피가 맛있어 아니면 저 괴물의 피가 맛있어?”
    [ 응? 당연히 계약자의 피가 훨씬 맛있지. ]
    ​
    ​
    그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자랑스러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핏물 덩어리는 어린아이 주먹만큼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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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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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벌한 소리와 함께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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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 다음 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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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이 난 목소리가 들려오고, 마검에서 이어진 핏물이 열 갈래로 나뉘어 굳어있는 괴물들을 향했다. 순식간에 열 개의 핏물 덩어리가 생겼다. 그 뒤의 일어날 일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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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직,콰직,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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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한 소리가 연달아 울리고 녹색, 파란색, 붉은색 등 다양한 핏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마검은 게걸스럽게 피를 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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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게 먹었는데도 별 변화가 없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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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피를 흡수했을 때 마검은 크기도 커지고 반질반질해지기까지 했었다. 그에 비해 괴물의 피를 흡수했을 땐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
    ​
    [ 그야 양이 다르잖아. 너한테서 흡수한 양이 호수 크기 정도 된다면 이놈들의 핏물은 숟가락 한 스푼도 안될 거다. ]
    ​
    ​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투기장에 남은 건 나와 마검 뿐이었다. 바닥에 박혀있던 검을 뽑아낸 후 침묵이 내려앉은 투기장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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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이런 깜빡했군. ]
    “응? 뭐가?”
    [ 너무 신이 나서 습관적으로 살기를 풀어버렸어. ]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 그야 넌 내 계약자니까 그렇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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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기는 사냥을 할 때 꽤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상대의 몸을 둔하게 만들고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다. 그 틈에 마검을 수확을 하듯 먹잇감을 사냥한다 -..고 마검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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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이 틈에 들어가야겠다.’
    ​
    ​
    경기가 끝날 때마다 기웃거리는 진행자가 불편한데다가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에 퇴장할 때까지 살기를 거두지 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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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끄윽…크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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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보다 마검의 살기가 강한지 통로를 지키는 덩치 큰 노예가 그륵그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눈을 뒤집은 채 움찔거리는 꼴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
    ​
    ‘이 새끼 분명 저번에 아이리스 보고 욕했던 놈이지.’
    ​
    ​
    의도치 않게 복수를 하게 되었지만, 기분이 매우 좋았다. 마검에게 살기를 거둬들이라고 말한 후 통로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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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웅성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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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기가 사라지자 침묵이 내려앉았던 투기장에 혼란이 내려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웅성거리던 소리는 어마어마한 함성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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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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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오오오오!”
   
    ​
    거대한 함성이 아련하게 울리는 장소, 방음 마법이 걸린 토토겐의 숙소였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의자에 주저앉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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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방을 노리고 전액 투자했다가 망한 사람의 표정과 비슷했다.
    ​
    ​
    ‘어떻게..저럴 수 있지?’
    ​
    ​
    토토겐에게 리안은 ‘미지’ 그 자체였다. 새 하얀 백지 같은 순수함은 너무나 쉽게 더럽혀진다는 말과 같았다. 
    ​
    ​
    그런데 리안은 정반대였다. 새 하얀 백지에 아무리 새카만 이물질을 들이부어도 코팅이라도 해둔 것처럼 한 점의 더러움도 묻지 않았다. 
    ​
    ​
    그 모습은 고고해 보이기도 했고, 자신의 더러움이 부각되어 보여 화가 치밀기도 했다. 
    ​
    ​
    토토겐은 ‘순수한 아이들을 더럽힌다.’라는 목표를 잊어버렸다.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승리욕과 오기뿐이었다.
    ​
    ​
    ‘수백이 안 된다면 수천을 준비하면 될 일이다!’
    ​
    ​
    그는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텅 빈 투기장을 바라보았다. 
    ​
    ​
    “그럼 다음 경기는! 바로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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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기분과 상관없이 투기장의 이벤트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다음 경기는 검투사끼리의 싸움이었다. 
    ​
    ​
    ‘…!’
    ​
    ​
    토토겐은 성큼성큼 투기장 안으로 들어와 검을 휘두르는 두 노예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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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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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 강해서 수십, 수백의 마물도 하찮게 느껴진다면 정신적 충격을 주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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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노예 놈의 다음 경기는 검투사 싸움으로 잡아!”
    “예, 알겠습니다.”
    ​
    ​
    토토겐은 비열하게 클클 웃으며 소파에 깊게 몸을 파묻었다.
   
    ​
    ‘이번에야말로…!’
    ​
    ​
    토토겐은 오늘도 헛된 희망을 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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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이.”
    “…?”
    ​
    ​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저번에 방을 찾아왔던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번에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세 명 정도의 노예와 함께였다.
    ​
    ​
    “네 녀석 비앙카님께 버려졌다면서?”
    “예?”
    ​
    ​
    저게 무슨 소리지?
    ​
    ​
    “허,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이미 비앙카님께 들은 얘기니까.”
    ‘아, 제자 얘기인가?’
    ​
    ​
    소문이라는 게 퍼지다 보면 과장되기도 하는 법이다. 제자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아무래도 와전되어 이상하게 퍼진 것 같았다.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남자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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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녀석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어디서 그럴듯한 아이템 하나 구해서 승승장구하는 거 같은데 -.”
    ‘헉, 어떻게 알았지?’
    ​
    ​
    속으로 뜨끔하며 자신도 모르게 제 손등을 바라보았다.
    ​
    ​
    “그게 진짜 네녀석의 실력일 리 없잖아? 그치?”
    ​
    ​
    마검을 강화시킨 피에서 내 피의 비중은 못해도 98%는 되니, 그가 사용하는 힘의 98%는 내 덕분이라는 말이된다. 그러니 98%는 내 실력이다…라고 설명하면 너무 구차해 보일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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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놈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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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같은 허접한 쓰레기 때문에 우리가 고생하는 거야. 분수를 알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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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 내 어깨를 꾹꾹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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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납득 못하겠다는 얼굴인데?”
    “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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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듣는 것처럼 한 귀로 듣고 전부 흘리고 있었는데 저게 무슨 말인가? 내 평온한 표정 어디에 불만이 가득하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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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놀랐는지 나도 모르게 애교 부리듯 “넹?”이라고 대답해버렸다. 놈들은 내가 약 올린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을 싹 굳히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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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녀석 수준을 알려줄 테니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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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상으로 따라와 수준의 시비가 걸려버렸다. 아이리스를 보러 가야 하기에 거절하려 했는데, 어느새 내 주변으로 다른 노예가 다가왔다. 다른 곳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포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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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휴, 하는 꼴 보니까 계속 귀찮게 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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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한 번에 해결하고 귀찮아질 문제를 피하는 게 나았다. 나는 굳이 반항하지 않고 그들을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연무장이었다.
    ​
    ​
    챙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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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하자마자 놈이 나에게 검을 던졌다. 평범한 철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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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기이한 검만 없으면 네 녀석도 평범한 잔챙이에 불과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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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놈은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떨어진 검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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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서 들어. 수준 차이가 뭔지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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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무적인 개그캐에게 덤벼드는 다크 판타지 주민들…이젠 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벌레 잡는 기계에 뛰어드는 나방들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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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오, 이번에는 꽤 먹을 만한 놈들이 있군! ]

근처에 산책 나온 사람처럼 느긋한 걸음으로 투기장에 들어오기 무섭게 마검이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강한 마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철창 쪽을 바라보았다.

촤르르륵,철컹!

촤르르륵!

무수히 많은 철창이 전부 열리더니 안에서 수십, 수백의 마물들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투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졌다.

“우오오오오!”

“끼야아아악!”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들으며 마검에게 말했다.

“저렇게 많은데 괜찮아?”

[ 하, 이 몸을 뭐로 보는 거냐? 이 정도는 간단하다! ]

마검은 저번과 같은 자세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순순히 자세를 잡아주었다.

[ ‘블러드 웨이브’ ]

나에게 달려드는 마물들이 순식간에 피의 바다 위에 서게 된다. 피바다는 자비 없이 요동치고 마물들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촤아아악!

다만 전과 다른 점이 있었다.

“키에에엑!”

“크르릉..”

파도가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몇 마리의 마물이 살아남은 것이다. 물론 멀쩡한 꼴은 아니었지만 죽어가는 꼴도 아니었다.

[ 크흐, 역시 먹을 만한 놈들만 남았군! ]

마검이 군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는 입도 없으면서 침 삼키는 소리는 어떻게 내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괴물을 바라보았다. 마치 이족보행 하는 코끼리처럼 생긴 괴물은 팔이 여덟개나 되었다. 팔마다 칼등이 휘어진 칼을 들고 있었는데 검의 크기가 나만 했다.

후웅,후우웅 -.

흔들리는 칼날이 얼마나 위협적인지 대기가 작게 울음을 토했다.

“저거 이길 수 있어?”

방법이 없다면 잡아먹힌 후 배를 뚫고 나오는 방법도 좋을 것 같았다. 아니면 잡아먹힐 때 목에 칼을 박아서 목을 막아버리던가.

[ 하, 당연하지! ]

다행히 기분 나쁜 괴물의 입속에 들어갈 필요 없이 해결 방법이 있는 듯했다. 마검은 검을 땅바닥에 박으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검을 똑바로 들어 바닥에 박아넣자.

챠아아악!

바닥에 긴 선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따로 스킬 명을 생각 안 했는지 마검이 조용했다.

핏물로 이루어진 선은 거의 코앞까지 다가온 코끼리 괴물에게 닿았다. 핏물이 괴물의 발끝에 닿는 순간.

촤아악 -.

핏물이 허공에 넓게 솟구치더니 괴물을 집어삼켰다. 마치 어둠에 삼켜지는 것 같은 꼴이었다.

“크아아앙! 쿠에엑!”

괴물이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렀지만 온몸을 집어삼킨 핏물을 막을 순 없었다. 괴물이 서 있던 곳엔 괴물의 덩치만 한 핏물 공이 생겼다.

투기장에 침묵이 내려앉을 정도로 위압적인 장면에 눈깔을 뒤집고 달려오던 괴물들이 발걸음을 멈춘 채 핏물 덩어리를 노려보았다.

쿠구궁,촤아아악!

허공에 떠오른 핏물 덩어리는 겉에 압력이라도 가해진 것처럼 꾸욱, 꾹 눌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덩어리 아래로 밝은색의 붉은 핏물이 쏟아져나왔다.

마치 레몬을 착즙기에 넣은 것처럼, 괴물이 핏물 덩어리로 인해 짓눌려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바닥에 쏟아진 핏물은 바닥을 기어 마검에게 돌아왔다.

[ 흐아앗,하아 -..맛있다. ]

신음 비슷한 걸 흘리며 식사하는 마검의 모습에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내 피가 맛있어 아니면 저 괴물의 피가 맛있어?”

[ 응? 당연히 계약자의 피가 훨씬 맛있지. ]

그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걸 자랑스러워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핏물 덩어리는 어린아이 주먹만큼 줄어들었다.

콰직!

살벌한 소리와 함께 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 자, 다음 식사! ]

신이 난 목소리가 들려오고, 마검에서 이어진 핏물이 열 갈래로 나뉘어 굳어있는 괴물들을 향했다. 순식간에 열 개의 핏물 덩어리가 생겼다. 그 뒤의 일어날 일은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콰직,콰직,우드득!

잔혹한 소리가 연달아 울리고 녹색, 파란색, 붉은색 등 다양한 핏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마검은 게걸스럽게 피를 탐했다.

“그렇게 먹었는데도 별 변화가 없네?”

내 피를 흡수했을 때 마검은 크기도 커지고 반질반질해지기까지 했었다. 그에 비해 괴물의 피를 흡수했을 땐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 그야 양이 다르잖아. 너한테서 흡수한 양이 호수 크기 정도 된다면 이놈들의 핏물은 숟가락 한 스푼도 안될 거다. ]

실없는 대화를 나누는 사이 투기장에 남은 건 나와 마검 뿐이었다. 바닥에 박혀있던 검을 뽑아낸 후 침묵이 내려앉은 투기장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 아,이런 깜빡했군. ]

“응? 뭐가?”

[ 너무 신이 나서 습관적으로 살기를 풀어버렸어. ]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 그야 넌 내 계약자니까 그렇지. ]

살기는 사냥을 할 때 꽤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상대의 몸을 둔하게 만들고 도망치지 못하게 만든다. 그 틈에 마검을 수확을 하듯 먹잇감을 사냥한다 -..고 마검은 설명했다.

‘그럼 이 틈에 들어가야겠다.’

경기가 끝날 때마다 기웃거리는 진행자가 불편한데다가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기에 퇴장할 때까지 살기를 거두지 말라고 말했다.

“끄윽…크르륵..”

생각보다 마검의 살기가 강한지 통로를 지키는 덩치 큰 노예가 그륵그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눈을 뒤집은 채 움찔거리는 꼴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새끼 분명 저번에 아이리스 보고 욕했던 놈이지.’

의도치 않게 복수를 하게 되었지만, 기분이 매우 좋았다. 마검에게 살기를 거둬들이라고 말한 후 통로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웅성웅성.

살기가 사라지자 침묵이 내려앉았던 투기장에 혼란이 내려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웅성거리던 소리는 어마어마한 함성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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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오오오!”

거대한 함성이 아련하게 울리는 장소, 방음 마법이 걸린 토토겐의 숙소였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의자에 주저앉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방을 노리고 전액 투자했다가 망한 사람의 표정과 비슷했다.

‘어떻게..저럴 수 있지?’

토토겐에게 리안은 ‘미지’ 그 자체였다. 새 하얀 백지 같은 순수함은 너무나 쉽게 더럽혀진다는 말과 같았다.

그런데 리안은 정반대였다. 새 하얀 백지에 아무리 새카만 이물질을 들이부어도 코팅이라도 해둔 것처럼 한 점의 더러움도 묻지 않았다.

그 모습은 고고해 보이기도 했고, 자신의 더러움이 부각되어 보여 화가 치밀기도 했다.

토토겐은 ‘순수한 아이들을 더럽힌다.’라는 목표를 잊어버렸다. 그에게 남은 건 오로지 승리욕과 오기뿐이었다.

‘수백이 안 된다면 수천을 준비하면 될 일이다!’

그는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텅 빈 투기장을 바라보았다.

“그럼 다음 경기는! 바로바로…!”

그의 기분과 상관없이 투기장의 이벤트는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다음 경기는 검투사끼리의 싸움이었다.

‘…!’

토토겐은 성큼성큼 투기장 안으로 들어와 검을 휘두르는 두 노예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거다!”

너무 강해서 수십, 수백의 마물도 하찮게 느껴진다면 정신적 충격을 주면 될 뿐이다!

“그 노예 놈의 다음 경기는 검투사 싸움으로 잡아!”

“예, 알겠습니다.”

토토겐은 비열하게 클클 웃으며 소파에 깊게 몸을 파묻었다.

‘이번에야말로…!’

토토겐은 오늘도 헛된 희망을 품었다.

***

“어이.”

“…?”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저번에 방을 찾아왔던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이번에는 그 혼자가 아니었다. 세 명 정도의 노예와 함께였다.

“네 녀석 비앙카님께 버려졌다면서?”

“예?”

저게 무슨 소리지?

“허, 시치미 떼도 소용없어. 이미 비앙카님께 들은 얘기니까.”

‘아, 제자 얘기인가?’

소문이라는 게 퍼지다 보면 과장되기도 하는 법이다. 제자를 거부했다는 이야기가 아무래도 와전되어 이상하게 퍼진 것 같았다.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남자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녀석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어디서 그럴듯한 아이템 하나 구해서 승승장구하는 거 같은데 -.”

‘헉, 어떻게 알았지?’

속으로 뜨끔하며 자신도 모르게 제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게 진짜 네녀석의 실력일 리 없잖아? 그치?”

마검을 강화시킨 피에서 내 피의 비중은 못해도 98%는 되니, 그가 사용하는 힘의 98%는 내 덕분이라는 말이된다. 그러니 98%는 내 실력이다…라고 설명하면 너무 구차해 보일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

내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자 놈은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너 같은 허접한 쓰레기 때문에 우리가 고생하는 거야. 분수를 알아야지.”

그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 내 어깨를 꾹꾹 밀었다.

“뭐야? 납득 못하겠다는 얼굴인데?”

“넹?”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 듣는 것처럼 한 귀로 듣고 전부 흘리고 있었는데 저게 무슨 말인가? 내 평온한 표정 어디에 불만이 가득하다는 거지?

얼마나 놀랐는지 나도 모르게 애교 부리듯 “넹?”이라고 대답해버렸다. 놈들은 내가 약 올린다고 생각했는지 표정을 싹 굳히며 말했다.

“네녀석 수준을 알려줄 테니 따라와!”

옥상으로 따라와 수준의 시비가 걸려버렸다. 아이리스를 보러 가야 하기에 거절하려 했는데, 어느새 내 주변으로 다른 노예가 다가왔다. 다른 곳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포위하는 것처럼 보였다.

‘에휴, 하는 꼴 보니까 계속 귀찮게 할 것 같네.’

차라리 한 번에 해결하고 귀찮아질 문제를 피하는 게 나았다. 나는 굳이 반항하지 않고 그들을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연무장이었다.

챙그랑.

도착하자마자 놈이 나에게 검을 던졌다. 평범한 철검이었다.

“그 기이한 검만 없으면 네 녀석도 평범한 잔챙이에 불과하겠지.”

놈은 확신에 찬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떨어진 검을 가리켰다.

“어서 들어. 수준 차이가 뭔지 알려주마!”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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