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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사제는 말을 잃고서 가만 내 얼굴을 보다 이내 정신을 차리곤 웃음을 지었다.

   

   “영애님. 저를 놀리시면 곤란합니다.”

   

   ‘아니 진짠데요.’

   “내가 거짓말을 한단 거야?”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는 아니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게 훤히 보였다.

   

   이게 양치기 소년의 심정인가.

   

   근데 나는 왜 내가 하지도 않은 거짓말 때문에 양치기가 되어야 하는 거지?

   

   억울하네. 진짜로.

   

   <여아야. 아르마디님의 사도로 간택되었단 것이 사실이더냐?!>

   

   사제를 어찌 설득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려니 할배까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제가 말 안했던가요?’

   <그래! 너는 어디까지나 아르마디께 구원을 받았다 했을 뿐이지 않더냐!>

   

   그러고 보면 어제 정신이 없어서 말을 한다는 걸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구나.

   

   ‘어제 아르마디님이 구원을 해줄 적에 저를 사도로 삼으시겠다 말을 했어요.’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여태까지 잊고 있었다니. 여아야. 너는.>

   

   할배는 답답하다는 듯 평소처럼 잔소리를 내뱉으려다 말을 삼켰다.

   

   <아니다.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구나.>

   ‘왜 그러세요?’

   <일단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숨기거라. 마침 저 자가 거짓이라 생각을 하고 있으니 거기에 편승을 하자꾸나.>

   

   신의 사도가 된 걸 숨기라는 건가?

   

   왜?

   

   소울 아카데미 세계관에 신의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결코 흠이 아니다.

   

   오히려 자랑을 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하늘에 있는 위대한 초월자가 한 사람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여 자신의 사도로 삼은 것인데 이를 왜 숨기겠는가.

   

   게임 내에서 등장을 했던 신의 사도들도 자신이 모시는 것이 악신이 아닌 한은 신의 사도가 되었음을 알리고 다녔다.

   

   그런데 어째서 할배는 사도가 되었다는 걸 숨기자고 그러는 걸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할배의 어투가 너무 진지했기에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여태까지 할배가 내게 해가 되는 일을 시킨 적은 없으니까.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믿건 말건 알아서 해. 허접 사제.”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세례를 받을 생각이십니까?”

   

   ‘네.’

   “그럴 건데 왜. 문제 있어?”

   

   “아시겠지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사제는 다 알고 있는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떠들어 댔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의미라느니.

   

   그를 위해 지켜야 할 일이라느니 뭐니.

   

   나는 그 이야기들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사제가 사도와 관련된 이야기를 잊어버린 듯 하자 할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잘 했다. 여아야. 허나 이런 중요한 일이 있다면 미리미리 말을 좀 해다오!>

   ‘그걸 잊은 건 죄송하게 생각해요. 근데 왜 사도가 되었다는 걸 숨겨야 하는 거에요?’

   <그야 아르마디께서는 사도를 두지 않으시니까.>

   

   할배는 주신 교회의 성경에 나오는 것이라며 내게 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내용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니만큼 상당히 과장되어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러했다.

   

   아르마디는 신들의 중심을 지켜야 하기에 누군가를 편애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자그마한 도움과 자비를 내려주실지언정 누군가를 사도로 두진 않는다.

   

   개인적으론 할배가 해준 이야기가 허접 주신이 게으르고 무능한 걸 어떻게든 변호하려한 결과물이라 느껴졌지만 그를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랬다간 또 할배한테 한 소리를 들을 것 같았으니까.

   

   <알겠느냐? 아르마디의 사도는 있어선 안 되는 존재다.>

   ‘그치만 전 사도가 된 걸요.’

   <네가 말을 하는 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네가 아르마디의 사도임이 입증되는 순간 교회의 권위가 흔들린단 것이다.>

   

   성경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거라면?

   

   아르마디의 사도가 나타나지 않았던 데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라면?

   

   여태까지는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성경에서 말한 대로 아르마디의 사도가 나타나지 않았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아르마디의 사도가 등장한 순간부턴 이 대전제가 무너져 내리고 만다.

   

   <내 지금의 교회가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는 모른다. 허나 내가 있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면 아르마디의 사도임을 밝혀서 좋은 일은 없을 거다.>

   

   보통 교회는 신의 사도가 나타남을 반기지만 주신교회의 경우엔 다르다.

   

   수백 년 간 나타나지 않았던 아르마디의 사도가 갑작스레 등장한다는 건 곧 지금까지 주신 교회가 쌓아왔던 것이 흔들린다는 소리.

   

   주신 교회는 결코 아르마디의 사도를 반기지 않는다.

   

   <일이 안 좋게 흘러가면…>

   

   할배는 내게 어두운 부분을 들려주지 않으려는 것인지 말을 아꼈지만 그 뒷내용을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최악의 경우엔 교회 측에서 나를 지우려 들 수도 있겠네.

   

   주신 교회는 깨끗하기만 한 곳이 아니니까 말야.

   

   그를 깨닫고 나니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려 내렸다.

   

   할배가 있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내가 아르마디의 사도라고 뭣 모르고 떠들고 다녔다면…

   

   분명 그 결말은 밝지 못했겠지.

   

   허접하고 치졸한 무능 주신 같으니!

   

   이런 식으로 나를 암살하려 들어?!

   

   자길 모욕하려고 한 게 꼴 받았다면 그냥 천벌을 내릴 것이지 이런 음습한 방식으로 묻으려 하다니!

   

   양치기 소녀여서 다행이다.

   

   만약에 내가 신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할 리 없는 신실한 사람이었다면 무슨 꼴을 당했을지.

   

   “이해하셨습니까?”

   

   허접 주신에 대한 원망을 담아서 투덜거리고 있자니 사제가 확인하듯이 내게 물음을 던졌다.

   

   죄송합니다만 무슨 이야기랄 하셨는지 몰라서 대답을 하기가 그런데요.

   

   <그냥 알겠다고 그래라. 어차피 저 놈도 제대로 들었을거라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하긴 이런 설명 같은 건 일종의 약관동의서 같은 거잖아.

   

   설명해주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별 신경 안 쓰고 하는 거겠지.

   

   ‘네.’

   “허접 사제. 날 뭘로 보는 거야?”

   

   내가 뻔뻔스럽게 고갤 끄덕이자 사제가 애써 웃음을 지었다.

   

   “절차라서요. 이해해주시기 바라겠습니다.”

   

   그 후에 사제는 나를 데리고서 교회 안 쪽에 있는 어느 방으로 향했다.

   

   그 곳은 세례를 위한 장소보다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곳처럼 보였다.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영애께 세례를 내려 줄 사람을 데려오겠습니다.”

   

   아아. 일단 사람을 데려오려는 거구나.

   

   근데 너도 사제니까 세례를 할 수 있는 거 아냐?

   

   내가 귀족이라서 높은 분이 나와야 하는 건가?

   

   그렇게 응접실 의자에 앉아 얼마를 기다렸을까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안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그녀가 지닌 금색의 눈동자였다.

   

   밤하늘의 달이 새하얀 유리에 박힌 듯한 부드러운 눈.

   

   허리 근처까지 길게 늘어진 눈이 스며든 것처럼 하얀 머리카락.

   

   하얗다 못해 창백하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은 피부.

   

   거기에 티끌 하나 없는 순백의 수녀복.

   

   백이라는 색깔이 사람의 형상을 이루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아름다운 소녀는 나를 보자마자 악마조차도 정화되어버릴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알른 영애님. 저는 주신 교회의 페이비라고 합니다. 과분하게도 성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소울 아카데미 캐릭터 중에서 인성으로만 따지면 최고라 불리던 캐릭터.

   

   외모로 순위를 매기면 언제나 상위권에 속하던 분.

   

   거기에 성녀라는 호칭답게 힐러계열 캐릭터 중 최고라 성능충의 마음까지 사로잡던 갓 히로인.

   

   일부 사람들에게 너무 착함 일변도라서 외모 빼면 재미도 매력도 없는 캐릭터라는 음해를 당하기도 했지만 그 헛소문을 퍼트리던 작자들조차 자신의 성능으로 품어주던 선인.

   

   나의 애캐 중 하나!

   

   성녀님이 왜 여기에 계세요?

   

   아니. 성녀님께서도 소울 아카데미의 입학시험을 치셨을 테니까 여기 있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왜 저를 만나러 오신 건가요?!

   

   아름답다못해 고귀하다 느껴지는 모습에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모니터 너머로 페이비를 볼 때는 고귀하다거나 성스럽다거나 하는 묘사가 나오더라도 공감이 되지 않았다.

   

   펑퍼짐한 수녀복 아래에서도 강하게 자신을 주장하는 몸매를 지닌 여성에게 성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지만 지금은 그 말이 너무나도 잘 와 닿았다.

   

   아아. 게임을 할 적의 나는 어찌 이 분을 앞에 두고 그런 삿된 생각을 했을까.

   

   음란마귀야! 물렀거라!

   

   여기는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알른 영애님?”

   

   ‘안녕하세요. 성녀님.’

   “반가워요. 허접 성녀님.”

   

   페이비가 지닌 성스러움에 감탄하다가 생각 없이 인사를 했더니 메스가키 번역이 허접 소리를 내뱉었다.

   

   아니. 야! 메스가키 스킬 너는 저 분이 지닌 성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거야?

   

   세상의 모든 만물이 감화되는 저 새하얌에도 허접 소리를 내뱉다니.

   

   너는 얼마나 악독한 악귀인 거냐!

   

   난 메스가키 스킬이 원망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접 성녀정도면 최악은 아니니까.

   

   만일 조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페이비를 커뮤니티의 별명으로 불렀다면.

   

   음란성녀라는 호칭을 듣고서도 페이비는 웃음을 지킬 수 있었을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

   

   페이비는 허접 소리를 듣고서도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후후. 거리낌 없이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애님.”

   

   허접이란 이야기를 듣고서도 오히려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다니.

   

   역시 성녀님이야.

   

   ‘여긴…’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우선은 감사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조이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른 영애 덕분에 조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페이비를 보면서 조이와 페이비가 어릴 적부터 친구였다는 설정을 떠올렸다.

   

   ‘조이는…’

   “얼빵 영애는 어떠신가요? 괜찮으신가요?”

   

   “푸흣. 얼빵 영애라니. 정말 그렇게 부르시는 거군요?”

   

   자신의 친구가 지닌 별명이 웃겼던 걸까.

   

   페이비는 고개를 돌린 채 웃음을 흘리다 간신히 진정을 하고 나서야 조이가 멀쩡하단 대답을 돌려줬다.

   

   약간의 외상이 있긴 했지만 자신이 다 치유를 했다고. 건강하다고.

   

   “오늘 아침에 파트란 공작가 측에서 데려가셨기에 지금 여기엔 없지만요.”

   

   ‘그럼 제이콥은요?’

   “그럼 그 조무래기 귀족은요?”

   

   “조무래기?… 제이콥 영식님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그 분도 멀쩡하세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거에요.”

   

   다행이다.

   

   둘 다 아무런 후유증도 남지 않았구나.

   

   연금술사의 정신공격에 당해서 어찌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 이름으로 불러주시는 사람이 없으신 건가 보네요. ”

   

   ‘그렇진 않아요.’

   “그렇지는 않답니다. 허접 성녀님.”

   

   앞에 바보니 허접이니 하는 단어가 붙긴 하지만 포셀이나 베네딕처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 걸요.

   

   무슨 조건으로 그렇게 되는 건지는 아직 모르지만.

   

   “그런가요?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그보다…’

   “그보다 허접 성녀님의 용무는 감사인사로 끝인가요?”

   

   “아뇨. 하나 더 있어요. 알른 영애님께선 오늘 세례를 받으시려 하신다 들었습니다.”

   

   어. 설마.

   

   “제가 그 세례를 맡게 되었습니다. 혹여 싫으시다면 다른 사람을 불러오겠습니다만.”

   

   ‘아뇨! 괜찮습니다!’

   “상관 없어요. 허접 성녀님이 해주건 허접 사제님이 해주건.”

   

   “아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세상에! 내가 성녀님에게 세례를 받는 날이 오다니!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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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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