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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바로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기타는 정해진 순서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내 차례는 아직 남아있었기에.

         

       나는 손가락을 꼼질거리며 순서를 기다려야만 했다.

         

       입을 다문 채로 멍하니 앉아 있으면, 학생들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노는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

         

       -윤리는 우리 심장의 타투……

         

       -뜨거운 불 위 손 얹는 상상하지……

         

         

       열정적으로 고성방가를 해대는 아이들과 호응하며 박수를 쳐주는 교수들.

         

       노래의 뒤로 섞여드는 웃음과 박수는 선율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나쁘지 않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휩쓸리자,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튀어나왔다.

         

       부드럽게 휘어진 입가는 어딘가 어색함이 가득했다.

         

       누가 볼세라, 재빠르게 뻣뻣한 표정을 지워냈다.

         

       나는 입가를 쓸어내리며 괜히 눈을 굴렸다.

         

         

       -타닥타닥…

         

       방황하던 시선이 닿은 곳은 다름 아닌 모닥불이었다.

         

       장작을 거침없이 탐하며 주위를 따스하게 비추는 불꽃은, 칠흑 같은 밤하늘 아래에서도 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부서진 태양의 한 조각처럼.

         

         

       “……”

         

         

       서늘한 가을 공기는 모닥불의 열기로 잔잔하게 데워지고.

         

       어둠의 곁으로 나란히 선 달과 별들은 우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나는 고요로 물든 배경을 감상했다.

         

       그렇게 잠시 넋을 놓고 있으면,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기타가 나에게로 돌아왔다.

         

         

       “야, 망나니. 네 차례야.”

         

       “그래.”

         

         

       내가 마지막 차례였던 것인지, 금태양과 마하렛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의 순서가 지나간 뒤였다.

         

       참고로, 금태양은 수도에서 유행하는 최신 길거리 노래를 불렀다.

         

       의외로 꽤나 들어줄만 했다.

       

       감미로운 금태양이라니… 뭔가 끔찍하지만.

         

         

       마하렛은 금태양과 달리 조금 연식이 있는 선곡을 보여줬다.

         

       노래가 어땠는지는… 공녀님의 이미지 보호를 위해 노코멘크 하도록 하겠다.

         

         

       “기타 치는 방법은 알지?”

         

       “어느 정도는.”

         

       “그래서… 뭐 부를 거냐?”

         

       “뭘 부르냐라… 글쎄.”

         

         

       나는 금태양의 물음에, 품 속의 기타를 톡톡 두드렸다.

         

       사실 부를 노래는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다.

         

       내가 제대로 부를 줄 아는 노래는 하나 밖에 없었으니까.

         

       부르고 싶은 노래도 이것 밖에 없었고.

         

         

       “부를 노래는 정했다.”

         

       “무슨 노래인데?”

         

       “말해줘도 모를 거다.”

         

         

       나의 전생… 그러니까 현대의 음악이니까.

         

       이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알고 있을리 없지.

         

       이건 창호 형의 추천으로 처음 듣기 시작했던 노래이자,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였다.

         

       일생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버티도록 도와줬던 곡이기도 했다.

         

         

       나는 가볍게 기타를 튕기며 반주를 시작했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라 진득한 울림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침울한 멜로디로 분위기를 적당히 가라앉히고 있던 와중, 마하렛과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복잡한 감정들이 녹아있는 적색 눈동자.

         

       나는 그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첫소절을 내뱉었다.

         

       

       -문턱은 넘어서면 어지러워.

         

       -내게 편한 나의 경계선이어서.

         

       -심장만 어지럽혀, 치워둔 쓸모없는 감정은 먼지 덮여.

         

       -여길 벗어나면 죽음, 익숙한 슬픔보다 낯선 행복이 더 싫어서.

         

       -걸음 버린 나 헌 신발이 될까만 겁이 나.

         

       -세상, 세월, 사람 날 꺾어 신어서.

         

         

       기타의 선율과 함께 나의 목소리가 어둠 위로 울려퍼진다.

         

       잔잔한 음성은 허공을 매우며 밤을 채워간다.

         

       나는 너무 급하지 않게, 천천히 음들을 읊어갔다.

         

         

       -내게 행복할 자격 있을까?

         

       -난 왜 얕은 상처 속에도 깊이 빠져있을까?

         

       -사는 건 누구에게나 화살 세례지만, 나만 왜 마음에 달라붙은 과녁이 클까?

         

         

       주변 학생들의 대화 소리가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

         

       시끄럽게 떠들던 아이들도 하나 둘, 입을 다물며 이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나의 음정은 고요를 만들어내고.

         

       나는 그 고요를 다시금 나의 음정으로 매꾸어 갔다.

         

         

       -감정이 극과 극 달리고.

         

       -걸음 느린 난 뒤떨어져 숨 막히고 내 맘을 못 쥐어.

         

       -세상을 놓쳐, 몇 걸음 위 행복인데 스스로 한 단씩 계단을 높여.

         

         

       시선이 느껴졌다.

         

       옆에서도, 앞에서도, 그리고 뒤에서도.

         

       모두가 하던 것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 했다.

         

       과도한 관심들이 부담스러웠던 나는 조용히 눈꺼풀을 덮었다.

         

       어느새 노래는 하이라이트 부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젠 눈물 없이도 운다.

         

       -그저 숨 쉬듯이 또 운다.

         

       -집이 되어버린 슬픔을.

         

       -한 걸음 벗어나려 해도 문턱에서 운다.

         

         

       가사를 한 줄 한 줄 읊어갈수록 가슴이 시큰거렸다.

         

       눈가는 뜨겁게 열기가 번지는 듯 했고, 목구멍은 답답하게 매여왔다.

         

       나는 짧은 날숨과 함께 울컥거리는 감정들을 진정시켰다.

         

       공허한 귓가로는 그리운 과거의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는 중이었다.

         

         

       -응? 뭐하냐고? 음… 그냥 노래 듣고 있었는데.

         

       -한 번 들어볼래?

         

       -내가 힘들 때마다 항상 드는 곡이거든.

         

         

       창호 형이 알려줬던 노래였다.

         

       시궁창 같은 나의 인생을 구해주려 했던, 유일한 사람이 나에게 새겨준 선율이었다.

         

       비록 형은 사라졌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고 떠나가게 되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집이 되어버린 내 슬픔 속에 그대를.

         

       -집이 되어버린 내 슬픔 속에 그대를 초대해도 될까?

         

         

       나는 감긴 눈에 힘을 주며 꿋꿋이 노래를 이어갔다.

         

       이 쓰라린 고독의 회상이 끝날 때까지.

         

         

         

       ***

         

         

       “……”

         

         

       마하렛은 넋을 놓은 채로 멈춰있었다.

         

       그녀는 귀에 닿는 먹먹한 가사들을 곱씹어보는 중이었다.

         

         

       -집이 되어버린 슬픔을.

         

       -한 걸음 벗어나려 해도 문턱에서 운다.

         

         

       자신을 몰아붙이는 세상을 피해, 익숙한 슬픔 안으로 스스로를 밀어 넣는다는 이야기.

         

       담담해지다 못해, 이제는 집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 비애 속에서 화자는 가라앉고 있었다.

         

       동시에 천천히 익사해가고 있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거운 감상이 들도록 만드는 내용이었다.

         

         

       소녀는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을 응시했다.

         

       분명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의 주변으로 눈물이 맴돌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소년은 이리도 구슬픈 음색을 내는 것일까.

         

       무엇이 그리도 슬퍼서, 이런 가사를 입에 담는 것일까.

         

       마하렛은 문득 노래가 시작되기 이전, 자신과 라이덴의 시선이 마주쳤던 순간이 생각났다.

         

       잠시 굳어들다가 이내 씁쓸한 미소를 그려내던 소년.

         

       그는 지금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

         

         

       마하렛은 머릿속이 복잡하게 어질러지는 느낌을 받으며 입술을 씹었다.

         

       형용하기 힘든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증오와 경멸만이 가득했던 그녀의 마음 속으로, 티끌 같은 의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씩 크기를 키워갔다.

         

       결국 마하렛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라이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띵… 툭.

         

       노래를 마치고 울림이 멈춘 기타를 바닥에 내려놓던 때.

         

       나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노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저들끼리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던 학생들이.

         

       입을 멈추고 내 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

         

         

       뭐야…? 반응이 왜 이러지?

         

       설마 너무 못 불러서 이러는 건가?

         

       나는 살짝 움츠러들며 주위를 살폈다.

         

       허나,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오히려 반대라고 해야 하나.

         

       마치 감동을 받았다는 듯한 표정.

         

       대부분의 학생들이 젖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고.

         

       걔 중의 몇몇은 훌쩍거리고 있기까지 했다.

         

         

       “……”

         

         

       잘 끝난 건가…?

         

       나는 긴가민가 하며 턱을 쓸었다.

         

       그때, 익숙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띠링!

         

       [서브 퀘스트 완료!]

       제목:나의 선율을 그대에게

         

       [당신에 대한 아카데미 학생들의 호감도가 200 상승합니다.]

       [포인트 500이 즉시 지급됩니다.]

         

         

       “잘 끝났나 보네…”

         

         

       상태창이 떠오르고 나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나는 허공이 띄워진 푸른 창들을 지워내며 쭉 기지개를 폈다.

         

       마지막 일정이 마무리 되어서인지, 시간은 어느새 밤 12시가 넘어있었다.

         

       밝게 타오르던 모닥불도 어느새 사그라들어 불그스름한 잔불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작은 하품과 함께 피로한 몸을 일으켰다.

         

       다른 학생들도 자리를 떠나며 텐트로 들어가는 분위기였다.

         

       나 또한 그들을 따라 우리 조의 텐트로 향하려던 순간, 마하렛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다.

         

         

       “……”

         

         

       그녀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시선으로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텐트 쪽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 어색한 걸음으로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잠시 어색한 적막이 흐르던 와중, 금태양이 우리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뭐야, 다들 자려고?”

         

         

       촐싹거리는 녀석의 물음에 나는 간단히 답했다.

         

         

       “시간이 늦었다. 내일도 활동이 있을 텐데, 취침에 들어야지.”

         

       “그럼~ 나도 자러 가볼까~?”

         

       “그래.”

         

       “텐트면… 바이올렛이 먼저 자고 있겠지?”

         

       “먼저 들어갔으니, 아마 그렇겠지.”

         

         

       우리는 대충 말을 주고 받으며 걸었다.

         

       그렇게 캠프 파이어를 하던 숲을 조금 벗어나니, 커다랗게 세워져 있는 4인용 텐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자고 있을 바이올렛이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

         

         

       그 시각, 섬 반대편에 위치한 들판.

         

       과거 마족과의 전쟁 당시 목숨을 바쳤던 기사들이 묻혀있는, 일명 ‘별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장소.

         

       수십에 달하는 묘비가 정렬해 있는 공동묘지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었다.

         

         

       -쿠드드드… 콰콱, 쿠국…

         

       묘비들이 자리한 토양이 뒤틀리며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대고 있었다.

         

       께름칙한 분위기를 풍기는 칠흑색 오라가 주변의 대기를 휘감듯이 일렁였다.

         

       그 불길한 풍경의 중심에는, 한 노인이 서있었다.

         

       온몸을 검은 로브로 둘러싼 채로 기괴하게 생긴 책 한 권을 들고 있는 노인.

         

       그는 바닥에 깔려있는 무덤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리는 중이었다.

         

         

       “망자의 혼을 다시 부르고, 죽음을 초월하여 종을 울리리라……”

         

         

       소름 끼치는 음성이 허공을 타고 흘러내린다.

         

       마치 온 세상의 비명과 울음을 압축해놓은 것 같은 섬뜩한 목소리.

         

         

       “고결한 영웅들의 육신을 되살려 정당한 피와 살을 탐하려 하니…”

         

         

       죽음의 강을 건너며 영원한 사의 길에 오르라.

         

         

       “……그리고, 나의 염원을 이루라.”

         

         

       노인의 손에서 불길한 기운들이 휘몰아친다.

         

       손끝으로부터 뚝뚝 흘러내린 새까만 구정물들은 서서히 무덤 속으로 스며들었다.

         

       노인은 들고 있던 책을 펼치더니, 손가락에 상처를 내어 한 방울의 피를 그 위로 떨어트렸다.

         

       핏방울은 몽글몽글 부풀어오르더니 이내 검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묘비들을 감싸고 있던 어두운 오라들이 붉은빛으로 번지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그 광경을 향해 고요히 속삭였다.

         

         

       “위대한 마왕, 루게티나 토브 디 아트라하시스. 그 분의 세 번째 종, 사천왕 파이렌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기사들이여.

         

         

       -콰곽!!

         

       노인이 마지막 문장을 읊는 순간, 한 개의 손이 땅을 뚫고 올라왔다.

         

         

       -콱, 콰곽! 콱!

         

       그리고 뒤를 이어 수많은 손들이 무덤을 파헤치며 빠져나왔다.

         

       1000년 전, 마족들과 용맹히 싸웠던 전사들이 죽음의 기사들로 다시금 태어나고 있었다.

         

         

       “마왕님의 부활을 맞이하기 전… 좋은 제물들이 되겠구나.”

         

         

       노인은 자신의 앞으로 무릎 꿇은 수십의 언데드들을 내려다보며 낄낄거렸다.

         

         

       “주인이시여, 저희에게 명을.”

         

         

       죽음의 기사들 중 가장 선두에 서있던 하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노인은 흉흉하게 빛나는 안광과 함께 명했다.

         

         

       “이 섬 안에 있는 인간을, 전부 죽여라.”

         

       “받들겠습니다.”

         

         

       곧바로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드는 기사들.

         

       파이렌은 다시 한 번 낄낄거리더니 미친 사람처럼 홀로 중얼거렸다.

         

         

       “마왕이시여… 드디어 당신을 맞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음 순간, 노인은 사라져있었다.

         

       그곳에 남아있는 것은 몰살을 명 받은 죽음의 군대 뿐.

         

         

       -처컥처컥…

         

       기사들의 요란스러운 발소리가 밤하늘 위로 울려퍼졌다.

         

       그 사신의 걸음들이 향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레이놀즈 아카데미의 베이스 캠프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02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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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s a Bastard Aristocrat

A Depressed Kendo Player Possessed by a Bastard Aristocrat DKPBA 망나니 귀족에 빙의한 우울증 검도 선수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Mom.

This time I will be truly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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