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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왜에에에에에엥ㅡ!!

       

       메시지를 수신 받고 채 몇 분도 안되어 율리아가 머물고 있던 숙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닌 밤 중에 울려퍼지는 긴급 사이렌과 발작하듯 방에서 뛰쳐나와 상황을 파악하려는 사람들.

       

       율리아와 베르너는 서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은 채, 방을 빠져나와 각자의 길로 사라졌다.

       

       ‘이 문제에 대해서 마저 연락해요.’

       

       베르너 그라임은 멀어지는 율리아의 눈빛에서 그 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어쨌거나 핵폭발이다.

       

       레아의 전역에 그레이브야드 요새가 관련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베르너는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맘 같아서는 당장 헬기의 기수를 돌려 그레이브야드로 가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안보전략국의 국장이라는 직책 이외에도 그에게는 무엇이든 이 세계의 끝을 보아야 한다는 회귀자로서의 의무도 존재했다.

       

       무엇이 중요한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베르너 그라임은 그 길로 안보전략국 동부지부로 되돌아왔다.

       

       당직을 서고 있던 연락장교는 몇 시간 전과는 다른 의미로 사색이 되어 있었다.

       

       “베, 베, 베르너 국장님…!”

       

       “인원들을 긴급 소집해서 대기할 수 있도록. 전군에 1등급 전투준비태세가 발령되었어.”

       

       “또 다른 전쟁인 겁니까…?”

       

       연락장교가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베르너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대답했다.

       

       “그럴지도.”

       

       

       

       ***

       

       

       

       올 때는 직접 조종간을 잡았지만, 갈 때는 조종간을 잡을 수 없었다.

       

       안전국 본부에서부터 최고사령부, 나름대로 긴밀하게 협조하고 있던 제국군 정보사령부까지.

       

       쉴새없이 쏟아지는 전화와 문자를 받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핵폭발 맞습니까?”

       

       “예, 현지에 있던 정보원이 직접 확인했습니다. 보스타니아의 상징적인 도시 하나가 날아갔습니다.”

       

       세인트 프랜시스.

       대전쟁 이전 첨단 기술을 선도하던 거대한 연구도시. 

       

       그게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베르너 그라임은 순간적으로 아찔한 기분에 휩싸였다.

       

       당장 지난번 국가정상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만 하더라도 전쟁의 기폭제가 되기엔 충분하고도 남았건만….

       

       “사고입니까? 테러입니까. 아니면 공격입니까.”

       

       “정확한 정황은 파악 중입니다만, 반정부군이 해당 무기를 탈취해서 기폭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정보가 갱신되는대로 곧바로 말씀해주세요. 저희쪽에서도 알아낸 것이 있으면 공유해드리겠습니다.”

       

       “제기랄…. 알겠습니다. 고생하십쇼.”

       

       혼란, 공포, 무기력함.

       

       다양한 감정이 담긴 한숨을 마지막으로 정보사령부와의 통화가 종료되었다.

       

       “후우우….”

       

       통신을 끊자 어지럼증이 몰려왔다.

       

       핵폭발이라니.

       

       물론 핵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이번 회차만 하더라도 재래식 원자폭탄 뿐만이 아니라, 수소폭탄과 중성자탄에 이르기까지.

       

       전쟁 이전에는 핵무기로 분류되어 철저하게 금지당했던 무기들조차 망설임 없이 사용했다.

       

       티탄은 기본적으로 유기체에 기계장비가 매달린 듯한 생명체였다.

       

       기본적으로 두터운 장갑을 보유하고 있는 개체가 아닌 이상 폭발에는 취약했고, 동시에 핵무기 사용시 발생하는 EMP에도 취약했다.

       

       그러다보니 한번에 넓은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핵무기는 불리했던 전황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서 여겨지기도 했다.

       

       물론 방사능이라는 부작용 때문에 자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티탄을 잡아내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지역 전체가 방사능에 오염되었으니 부대를 진주시켜 영토를 수복할 수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지역을 수복시킬 필요가 없다면…?’

       

       정말로 반군이 터트린 거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이미 보스타니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보스타니아 긴급 내각이 인정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내전임이 기정사실이었다.

       

       실제로 세인트 프랜시스는 대표적인 친정부 도시. 

       

       거기다 공화국 제 4병기창이 존재하는 전략적 거점 중 하나였으니 반군이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핵무기로 타격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렇게 믿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보스타니아 반군의 가장 큰 목적은 더 많은 지역의 탈환이었다.

       

       일단 반군인 이상 많은 지역의 지지를 사로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베르너가 알고 있기론 세인트 프랜시스는 점차 그 여론이 반군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는 곳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전에는 9대1이었던 비율이, 오늘날에는 7대3까지 그 격차가 줄어들었다.

       

       내전이 격화되면 격화될수록, 잃어버린 소중한 사람들과 이 시대의 자유의 가치를 되찾자는 슬로건을 건 반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반군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프랜시스에 공격을 가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합류할 수도 있는 도시에 굳이 척을 처서 뭐 하겠나.

       

       이는 단테의 보고서로도 교차검증이 된 사실.

       

       그런 상황에서 난데없이 핵을 터트린다라….

       

       ‘앞 뒤가 맞지 않아.’

       

       그렇기에 베르너는 세인트 프랜시스의 소멸에 얽힌 배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인트 프랜시스의 중요성은 오로지 보스타니아 공화국 기준이었다.

       

       제국이 점령하면? 좋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동반될 수 밖에 없는 기반시설 파괴는 세인트 프랜시스를 그저그런 해안 도시로 만들 것이 분명했다.

       

       다시 말하자면, 공들여 점령할 전략적 가치가 전무하다는 뜻이다.

       

       항구야 밑에 있는 디에고를 점령하여 사용하면 된다.

       

       애초에 해안 도시라는 특성상 육군을 주로 운용하는 제국이 활용하기에는 그 값어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걸 제외하면 남는 것은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식의 보고 정도.

       

       그런데 미하일 총통이 언제 그런 것을 신경쓴 적이 있었던가?

       

       제국의 역사조차도 제 좋을대로 편집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이러면 개입 명분도 착실하게 쌓을 수 있었다.

       

       보스타니아 내전에 개입하여 제국의 괴뢰 정권을 설립한다는 ‘작전계획8293’에 따르면 제국이 취할 스탠스는 반정부군이 아닌 정부군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행사에 참여해서 총통이 죽을 뻔 했는데, 그 테러를 저지른 반정부군을 지지한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

       

       와중에 반군이 핵폭탄을 대도시에서 기폭시켰다.

       

       다른 것도 아니고 핵무기다.

       

       이때 반군을 적극적으로 규탄하며 병력을 파견시킨다면?

       

       안 그래도 국내외 혼란을 채 진정시키지 못한 웨일즈 왕국과 스바로그 연방이 여념이 없을 때, 보스타니아 공화국을 홀라당 먹어치울 수 있는 것이다.

       

       맙소사.

       베르너는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었다.

       

       미하일 총통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이래서야 완전히 권력과 영토 확장에 미친 전쟁의 악마나 다름없지 않은가.

       

       어디까지나 이 모든 것이 기우이면 좋으련만, 총통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씨발….”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설이었다.

       

       이제야 안식을 되찾았다고 생각했건만, 이제야 그녀들에게 평화를 선물해주었다고 생각했건만.

       

       베르너의 앞에는 저 총통이라는 작자가 권력에 눈에 멀어 일으킬 전쟁이 어느새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총통을 제거한다.’

       

       그 다음 일은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가 폭주를 시작하고 있다면, 그 안에 탑승한 승객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조기에 충각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결국 또 한번 세계를 되돌리는 일이 있더라도 말이다.

       

       이윽고 베르너 그라임은 안보전략국ㅡ 포비든 레이크에 도착했다.

       

       새벽 다섯 시.

       여전히 깊은 어둠이 내려앉아있는 시각임에도 요새는 환한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헬리포트에 헬기가 내려앉자, 본부대장 존 홉스 대위가 그를 향해 다급하게 뛰어왔다.

       

       “국장님!”

       

       “이야기는 들었어. 지통실로 가지. 지금까지 보스타니아 공화국에 대해서 파악해두었던 동향 보고서를 가져오도록. 그리고….”

       

       “예, 말씀하십쇼.”

       

       “병기국과 기술연을 포함한 방위사업청 소속 관련 현황도 파악해봐.”

       

       “방사청이요? 그건 갑자기 왜… 아…?!”

       

       이미 작전계획8293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았던 존이다.

       

       그는 국장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국장님, 아무리 총통 각하가 막 나간다고 하셔도 이건…!”

       

       “확실하게 해서 나쁠 건 없잖나. 명심하게. 어쩌면 우리는 티탄보다도 더 끈질기고 치밀한 적을 상대해야할지도 몰라.”

       

       꿀꺽.

       존 홉스가 마른침을 삼켰다.

       

       갈 곳 없이 헤메이던 베르너의 총구가 마침내 제국의 꼭대기를 겨누는 순간이었다.

       

       무엇이 중요한가.

       

       베르너 그라임의 머릿속에 그 질문이 또 한번 떠올랐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나의 의무가 가장 중요하다.’

       

       세계의 끝을 확인한다. 절망과 죽음으로 덧칠해질 운명을 기어코 비틀어낸다. 벌어진 실수를 목숨으로 사죄하고, 남들은 결코 감당할 수 없는 길을 걸어나간다.

       

       그것이 제국의 파수꾼이자, 고독한 묘지기의 사명이었으니.

       

       나의 목숨을 깎아서라도 끝끝내 모든 것을 지켜내리라.

       

       ‘미안하다, 레아. 나의 독선으로 벌어진 이 일들은 내가 마무리 지어볼게.’

       

       베르너의 시선 너머에서 웅크려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레아 길리아드.

       그레이브야드에서 그녀가 무엇을 보았을 지, 베르너는 감히 상상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기억의 복구는 자신의 몫이 아닌 그를 믿고 따라와주었던 사람들의 몫이었다.

       

       베르너가 알 수 있는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기억 복구를 할 때마다 그들이 죽을 만큼 괴로워 했다는 것.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꼭 끌어안으며, 고생했다고 위로해주었다는 것.

       

       하지만 레아 길리아드는 지금 혼자일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겠지. 

       왜냐면 그것이야말로 애써 기억 복구를 하지 않았던 루터스 에단이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과연 그녀는 그저 홀로 울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외로워도, 고독해도, 슬퍼도, 그리워도.

       

       그저 꿋꿋히, 자신의 길을 뒤따르겠다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 자신을 만나면 활짝 웃으며 말을 걸어올 것이 분명했다.

       

       보고 싶었지만, 그렇기에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했다고ㅡ.

       

       그 목소리가 귓가에 일렁이는 것만 같아서 베르너 그라임은 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죽는 건, 내 실수를 마무리 짓는 건… 이 세계의 끝을 본 뒤여야만 해.’

       

       그는 웅크리고 있는 레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 이내 거둬들였다.

       

       ‘다음 회차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름은 달라졌을지 몰라도 그는 여전히 루터스 에단이었다.

       

       ‘그리고 그 때. 우리의 관계를 조금 더 깔끔하게 매듭을 지어보도록 하자, 레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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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r Hero With No Regrets

A War Hero With No Regrets

후회 안 하는 전쟁영웅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victory earned after forty regressions.

It was now my turn to leave their side.

Not by anyone else’s will, but by my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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