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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47 – 고인물이 강의를 고르는 기준>

     

    마하바라타는 성격은 나빠도 학생들이 알아야 할 정보는 제대로 전달해주었다.

     

    “앞으로 여러분은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공통강의>와 <학부강의>, <교양강의>를 듣게 될 겁니다.”

    “공통강의는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강의이며 선택의 자유는 없습니다.”

    “학부강의는 자신이 고른 학부 내에서 정해진 학점만큼 강의를 골라 수강해야 합니다.”

    “교양강의는 그밖에 자신이 원하는 강의를 임의로 고를 수 있는 강의입니다. 순수하게 교양을 늘리기 위해 듣는 강의이죠. 학점을 포인트로 환산하겠다는 불순한 목적으로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있지만 여러분은 부디 순수한 학교열로 듣기를 바랍니다.”

     

    이사벨이 사각사각 필기를 적어 페이지를 보여주었다.

     

    교양강의 좋아 보이지 않아? 포인트를 벌 수 있대.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대학원생을 바라보는 눈으로 이사벨의 아카데미 생활에 동정을 표했다.

     

    나중이 고달파질 거예요.

    저라면 포인트를 벌려고 강의를 더 듣진 않겠어요.

     

    ?

     

    강의에서 버는 포인트보다 강의 도중에 받는 감점이 더 클지도 모르잖아요.

     

    진짜?

    그럴 것 같아?

     

    나야 충고해줬다.

    들을지 말지는 본인이 정하는 거지.

     

    “학부강의는 학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우선은…”

     

    아카데미의 학부는 다섯 개로 나뉜다.

    기사학부. 마법학부. 행정학부. 모험학부. 생산학부.

    기사. 마법사. 행정가. 모험가. 생산직.

    각기 다른 클래스의 육성을 목표로 하는 학부다.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전장을 돌아다니는 종군기사, 영주에게 고용된 영지기사, 왕실에 고용된 왕국기사, 특정종족을 수호하는 수호기사 등도 있다.

    목표에 따라 같은 직업도 부르는 법이나 요구되는 기술이 달라진다.

     

    ‘그런 클래스들은 기프트 아카데미가 가르치려는 세계제일의 인재랑은 방향이 다르지만.’

     

    아카데미도 일단은 지원이 필요하다.

    그래야 운영이 가능하니까.

    이런 자잘한 클래스들은 대부분 각국의 눈치를 보아 만들어진 보여주기용 직업이다.

    …라고 게임에서는 알고 있었는데.

    드래곤 교장이 했던 말을 봐서는 그냥 돈 받고 팔려고 적당히 만든 열등생 코스전용 하급직업이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는다.

     

    ‘하급직업과 상급직업의 차이라.’

     

    교장의 발언이야 어쨌건, 이 수강신청에서부터 될성부른 싹과 나머지가 갈라진다고 생각해야 한다.

    아카데미가 원하는 인재상.

    상위성적으로 졸업하기 위한 길은 특수한 클래스를 얻고 교수들의 세계제일의 지식을 전수받는 수제자가 되는 것.

    자신만의 금기를 규정하여 의를 행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기사>는 단순한 전투기술을 연마한 직업상의 기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마법사도, 행정가도, 생산직도, 모험가도 무엇을 택하든 모두 마찬가지다.

    요컨대, 수강신청에서 학점날먹과 쉬운강의만 노리면 장래가 불안정해진다.

     

    “그럼 한 시간 동안 어떤 강의를 들을지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마법시계의 수강게시판에 올라온 강의계획표를 보고 고민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사벨이 물었다.

     

    “오크노디는 어떤 학부에 들어갈 거야?”

    “언니는요?”

    “물어볼 것도 없지. 모험학부.”

    “아하. 언니는 모험가였죠.”

    “같이 하자. 오크노디라면 분명 훌륭한 모험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해도 그렇긴 하다.

    이 세계의 비밀을 상당수 알고 있는 내가 모험가가 된다면 앞으로 발견할 보물과 던전, 신비와 위험이 어찌나 많은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떨릴 정도의 부와 명예가 함께 하겠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기사학부도 고민이 되는걸요.”

    “기사학부가? 아아. 지난 대결에서도 검을 잘 썼지. 오크노디는 검만 다루기도 하고. 분명 검술이 배우고 싶은 거지?”

    “네? 아닌데요?”

     

    생각해보라.

    몸의 라인이 잡히는 갑옷을 입은 여기사 vs 노출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냉혹한 모험가세트 기본복장 모험가.

    벨런스만 봐도 전자가 압도적이지 않은가.

    같이 수업을 듣는 동기가 여기사인 수업을 어떻게 참냐고.

     

    “그래서 날 버릴 거야?”

    “……으으으.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요. 다른 강의에서 만나면 되잖아요.”

     

    설득이 통하지 않자 이사벨은 작전을 바꿨다.

     

    “오크노디의 키에 기사학부는 분명 무리야. 맞는 갑옷도 없을 거라고.”

    “내년이 되면 30cm는 커질지도 모르잖아요!”

    “응 절대 안 커.”

    “클 거거든요!”

     

    도발은 당연히 역효과를 초래했다.

    이사벨이랑 같은 강의 안 들을 거야!

     

     

    * *

     

     

    이사벨이 준 나무열매를 뫙냥냥 먹으며 손잡고 수강신청을 하러 가는 길.

    복도는 다른 수강신청생들로 인해 굉장한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으하핫! 쥐방울만한 것들아. 다 비켜라!”

    “우아아아악!”

    “저 무식한 원숭이 자식, 몸으로 다 들이받고 있어!”

     

    육탄돌격으로 강의실을 향해 최단거리로 달리는 원숭이수인 겸 인간전차 손오천.

     

    “갸하핫! 총 맞고 싶은 놈들은 어디 내 앞으로 나와봐. 나보다 빠른 놈은 다 쏴 죽여주마!”

    “으아악 미친년이다!”

    “자, 잠깐! 빨리 가라고 기다려주는데 왜 이쪽으로 달려오는 거야!”

    “아무도 내 앞에 서질 않으니까 쏠 수가 없잖아! 얼른 앞으로 오라고. 그리고 죽어!!”

     

    도망치는 학생들을 쫓으며 복도를 역주행하는 터무니없는 사략해적 지고쿠.

     

    “굉장하네. 우리도 서둘러야할까?”

    “지금 정도가 딱 좋아요. 괜히 교관한테 들켜서 감점 받고 싶지는 않은걸요.”

     

    입학식에서처럼 엄청난 감점을 받지는 않겠지만 복도에서 소란을 피우면 경중에 따라 감점으로 포인트가 10점에서 100점 사이로 까인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천방지축 날뛰다간 과속카메라에 잡혀 벌금폭탄을 받는 심정을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첫 강의신청을 모험 강의로 해도 괜찮아?”

    “상관없어요. 경쟁률이 높은 강의에는 그다지 관심 없거든요.”

     

    그보다는 우리랑 같은 방향으로 따라오는 지젤이 마음에 걸린다.

     

    “지젤아저씨는 모험강의 들어서 뭐하려고 따라오세요? 암상인이면서. 생산학부의 상인클래스 강의를 듣는 편이 낫지 않아요?”

    “후후. 오크노디는 아직 아이라서 모르나보군요. 야지에서 도움이 절실한 모험가에게 무거운 짐을 빨리 덜어낼 기회를 준다면 1000%가 넘는 폭리도 가뿐히 취할 수 있답니다. 모험가들의 사고방식을 읽는 강의야말로 상인에게는 더욱 가치가 있죠.”

    “…악마세요?”

     

    게임에 가끔 등장하는 엄청나게 비싼 값에 소모품을 팔고 전리품은 싼값에 뜯어가는 인간이 이런 아저씨였구나!

    티켓제철(?)에는 티켓암상인으로, 평상시에는 필드상인으로 뛰어다니다니.

    정말 부지런한 소악당이시다.

     

    “여기가 모험학부가 모인 구역이네.”

    “저기 안내표지판이 있어요.”

     

    <모험학부>

     

    대망의 모험학부.

    수강신청이 가능한 목록은 이러했다.

     

    <모험가의 기초체력증진>

    <모험가 기초무기술훈련>

    <모험가 보급학>

    <모험가 함정학>

    <모험가 야생요리학>

    <안목 기르기>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현실성이 느껴지는가.

    그렇다.

    이중 어디에도 던전탐사학 같은 건 없다.

    1학년 1학기 기초교육과정에 그런 게 있으면 오히려 문제 아니냐고.

    정 듣고 싶다면 편법이야 있다.

     

    ‘월반을 하면 2학년 강의도 들을 수 있지. 포인트와 학점만 충분하면 월반신청이 가능하니까.’

     

    한 학년 위의 선배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

    특정인물의 구원이나 전용이벤트 해금을 목표로 스피드런이나 전용공략을 노리는 플레이어들이 간혹 이용하곤 하는 기능이다.

    당연히 고인물인 나도 해본 기억은 있지만 지금은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

     

    ‘인류멸망의 위기가 부쩍 다가온 것도 아니고, 이번 회차는 대체로 운이 좋은걸.’

     

    변방 4지역의 국가재해급 이벤트도 벌어지지 않았다.

    재해급 이벤트에 대실패하면 벌어지는 종말급 이벤트인 <제국침략> 월드이벤트도 벌어지지 않는다.

    제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며 발생하는 <구국의 영웅> 이벤트도, 산산이 찢겨진 서부에서 활약하는 <난세의 영웅> 이벤트도 없다.

    굳이 타임어택을 해가면서 “흑흑 오늘 강의에서 A랭크를 받지 못했어. 내 바보같은 능지 때문에 지역주민 몇 만 명이 죽을 거야.” 하는 우울한 아카데미 생활이 시작되지는 않는 것이다.

     

    ‘전쟁세대에 아카데미 입학을 했으면 진짜 그 꼴을 봤을 테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요컨대, 이번 회차의 대륙은 평화루트다.

    위협은 있지만 인류가 딱히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것도 아니고, 엄청난 위협이 다가오는 것도 아닌 <현상유지>의 세계.

    이런 세계는 전투기술이 그다지 발달되지 않는 대신, 문화적인 발달이 주를 이룬다.

     

    ‘히트가 되는 기술은 제국문화를 주도하는 신성관련학문인가.’

     

    관련강의 목록도 얼추 떠오른다.

     

    <신성중앙제국의 유일신에 대한 이해>

    <12대신에 대한 이해>

    <동방의 소신격들에 대한 이해>

    <비주류신성술 입문>

    <믿음 없이 신성술 쓰는 법>

     

    은근 재밌는 강의도 있었지.

    마지막 강의가 특히 그랬다.

     

    -신체능력이 뛰어나면 20m 높이에서도 신앙의 힘이 없이도 무사히 착지할 수 있습니다.

    -예? 그런 신체능력이 없다고요? 그런데도 학점은 받고 싶다고요?

    -그럼 전신 마르크를 믿고 신앙에 귀의해서 <철괴>의 힘으로 지상에 착지하면 됩니다. 참고로 마르크 전사단의 입문사제는 무조건 B랭크를 보장합니다.

     

    마르크 믿고 B랭크 받을래, 극한의 훈련과 기술로 신성술 없이 20m 뛰어내리기 시험 치를래.

    극한의 약팔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은 눈물을 머금고 신자가 되거나, 다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종교는 못 믿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치료동 신세를 진다.

     

    “흠. 신의 힘이 없이도 신성술을 다루는 강의라. 구미가 당기는군.”

    “안데르센 대공자님께서 <믿음 없이 신성술 쓰는 법>을 들으신대!”

    “우리도 들어보자!”

     

    서부귀족연합 서열 1위의 잘못된 선택에 불나방처럼 따라가는 신입생들만 불쌍하다.

     

    “오크노디. 난 이미 골랐어.”

    “앗, 저랑 같은 거네요!”

     

    이사벨은 <안목 기르기>를 골랐다.

    안데르센 대공자에 비하면 이 강의는 백만 배는 우수한 선택이다.

     

    “나야 다른 건 모험가 생활을 하면서 터득해서 이걸 골랐지만, 오크노디는 <안목 기르기> 강의를 고른 이유가 있어? 분명 요리학을 들을 줄 알았는데.”

    “요리는 먹는 걸 좋아하지 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라구요.”

     

    물론 제대로 된 다른 이유도 있다.

     

    “별난 일이네. 신입들이 이 강의를 들으러 오다니. 1학년과 2학년이 동시에 듣는 강의에서 학점을 얻기는 힘들다는 건 알고 찾아왔니?”

     

    강의실의 교탁에 등을 기댄 채 삐딱하게 선 실크햇을 눌러쓴 백색정장 차림의 여교수.

    교차한 팔짱 위로 숨길 수 없는 존재감의 가슴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학점도 제일 짜게 주고 강의도 어려운 비주류 강의에 강의실도 모험학부 제일 구석에 박혀있지만 그래도 여길 찾은 이유가 바로 저기에 있다.

     

    어차피 뭘 골라도 전부 다 아는 강의들.

    고인물이 강의를 고르는 기준 1순위는 학점 따기 쉬운 강의나 적절한 시간표 분배, 강의 잘 가르치는 교수님 고르기 따위가 아니다.

     

    학점 따기 어렵고.

    시간대도 엉망이고.

    강의를 잘 가르치지 못해도 괜찮다.

     

    ‘D컵 글래머 백색정장차림 여교수는 못 참지.’

     

    고인물에게는 교수님이 섹시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착한 대학생들은 절대 따라하면 안 되는 수강신청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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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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