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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구, 구해줘서 고마워.”

       

       갑자기 빙글 돌아간 벽 너머의 구멍으로 빠질 뻔 했다가 이유하로부터 구해진 홍옥례는, 창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 이유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

       

       하지만 이유하는 대답 없이, 구멍 곁으로 다가서서 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돌로 된 나선 계단이 저 아래 어두운 곳까지 이어져 있었다.

       

       이유하는 몸을 돌려 홍옥례를 바라보며 물었다.

       

       “혹여 그대는, 이것이 무엇인지 아는 바 있소?”

       “어…… 나, 나는 몰라!”

       

       홍옥례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외쳤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유하는 재차 물어보았다.

       

       “전에 백철연과 함께 이곳에 오지 않았소?”

       “저, 저번에는 저런 거 없었어!”

       “정말이오?”

       “정말이야!”

       

       이유하가 보기에도 홍옥례 역시 저런 것은 처음 보는 듯 했다. 하긴, 알고 있었다면 제 스스로 빠질 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홍옥례는 전혀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이유하는 생각했다.

       

       ‘혹시, 백철연이?’

       

       양가 계집과 함께 이 아래로 내려간 것일까? 저 아래가 어디로 통하는지는 몰라도, 이렇게 숨겨져 있는 곳이라면 남녀가 아무도 몰래 밀회를 가지기에 더없이 적절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 때, 창고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시라바야시 놈은 어디에 있냐!』

       

       하고 외치며 들어오는 도복 차림의 남학생. 분명 먼저 하교했을 무라사끼였고, 그 뒤로는 송병오도 헐레벌떡 안으로 따라들어왔다.

       

       이유하와 홍옥례 두 여학생으로서는, 저 무라사끼가 갑자기 백철연을 찾는 것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어 그저 가만히 있으니, 무라사끼는 다시

       

       『뭐얏? ……없어? 어디에 숨긴 것이냐! 값비싼 조선인!』

       

       하고 이유하를 보며 외쳤지만 이유하도 달리 대답해줄 말은 없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듯 하오만, 나도 그를 찾으러 온 것이오.』

       『웃기지 마라!』

       

       무라사끼는 씩씩대며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한쪽 벽이 돌아가며 드러난 지하통로를 발견하고 외쳤다. 

       

       『저 쥐구멍은 뭐냐!』

       『그건 우리도 잘……』

       

       이유하가 말을 흐리자, 무라사끼를 뒤따라온 송병오는 구멍 가까이 가서 살펴보더니 안경을 올리며 말했다. 

       

       『글쎄…… 열기가 올라오는 것으로 보아하니, 저 아래에 보일러실이나 그런 것이 있지 않겠나.』

       

       그 말에 무라사끼는 ,

       

       『옳지! 저 안으로 달아난 모양이군! 여자들을 놔두고 자기만 도망쳐 숨는 겁쟁이 놈!  네 녀석은 이제 자루 안의 쥐다!』

       

       하고 외치고는 칼을 빼어들고 주저없이 나선계단을 달려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송병오 역시, 『어어! 잠깐 기다리게!』하고 그를 뒤따라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

       

       다시 둘만 남게 된 창고 안. 이유하는 난데없이 몰아닥친 상황에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곧 침착하게 이 상황을 파악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무라사끼는 백철연에게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저 아래에 정말 백철연이 있다면, 필히 싸움이 나게 될 터.

       

       물론 백철연이 무라사끼와 싸워서 지거나 다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된다면 백철연이 종종 강조해왔고 기껏 분대에 자리잡기 시작한 ‘팀 워크’니 협동이니 하는 것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유하는 나선계단을 내려가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다. 이유하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아직 주저앉은 채로 언 발을 녹이고 있는 홍옥례가 있었다.

       

       “그대도 함께 가겠소?”

       “어? 아? 나는……”

       “그대가 내키지 않는다면, 굳이 함께 가자고는 하지 않겠소. 저 아래에 백철연이 있을지도 확실치 아니하고……”

       

       이유하는, 그저 홍옥례와 백철연의 관계가 의심스러워 대질하려는 이유만으로 저 아래의 무엇이 있을지도 모를 곳으로 홍옥례를 끌고가는 것은 도를 지나친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홍옥례의 뜻에 맡긴 것이었는데, 홍옥례로서도 이것은 이유하로부터 벗어날 기회로 생각되었다.

       

       “미, 미안! 나는 이만 돌아가볼까 하는데!”

       “그러시오. 외려 나야말로 늦은 시간까지 고생시켜 미안하구려.”

       

       이유하는 그렇게 사과하고는, 무라사끼와 송병오를 따라 지하의 나선계단을 내려갔다. 주저앉아있던 홍옥례는 벌떡 일어서며 생각했다.

       

       ‘좋아!’

       

       애당초 오늘 저녁에 타기로 한 원산행 기차는 이미 늦었지만, 야간 열차, 혹은 내일 첫차라도 타면 되는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고 창고를 나가려는데, 창고 밖에서 사내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란이야? 이 근처에서 난 소리 같은데.』

       『설마 아까 그 놈들, 들여보내줬더니만 먼저 들어왔던 여자애들이랑 모여서 뭘 하고있는 거 아니야?』

       『젠장, 애초부터 그럴 목적으로 여자끼리 남자끼리 따로따로 들어왔구만? 붙잡아서 이 학교 생도주사한테 데려가자고.』

       『글쎄, 불온죄로 경찰에 넘겨야 하는 거 아니야?』

       

       경비원들의 목소리였다. 홍옥례는 깜짝 놀랐다.

       

       ‘경찰? 경찰이라니?’

       

       경비원들의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더니, 결국 창고의 문을 벌컥 열었다.

       

       『뭐야? 여기에 없네?』

       『분명 여기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황급히 비밀계단 안쪽으로 들어간 뒤 빙글 돌아간 회전벽도 원상복귀시킨  홍옥례는, 숨소리조차 쉬지 않고 긴장한 채로 숨어있었다. 그런데, 경비원 한 명이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뭐, 기왕 들어온 거 여기서 시간이나 때울까. 어차피 여기서도 문 열어놓으면 신사 입구는 보이잖아?』

       『그러자고.』

       

       ‘뭐야? 이곳에 있겠다고?’

       

       경비원들이 나갈 낌새를 보이지 않자 홍옥례로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여기서 빠져나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적어도 저 아래로 먼저 내려간 애들에게도 알려줘야 했다. 

       

       자신만 여기 숨어있다가 먼저 내려간 애들이 영문도 모른 채 떠들면서 올라오면 다같이 들킬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니까. 

       

       ‘어쩌다가 이렇게……’

       

       본래 오늘 밤 원산으로 떠날 예정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홍옥례는 먼저 내려간 일행을 따라 어두운 나선계단을 내려갔다.

       

       

       

       ***

       

       

       

       『시라바야시 상. 다 온 것 같군요.』

       

       지하 비밀 통로의 끝은 굵은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그 너머로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엊그제 렌까와 함께 들어왔다가 갇혔던 함정이 있으리라.

       

       나는 쇠창살 가까이 다가가,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살펴 보았다. 확실하진 않아도 일단은 아무도 없는 듯 했다. 

       

       『렌까. 쇠창살을…… 아니지.』

       

       통로를 막고 있는 쇠창살 앞에는 커다란 발판이 있었다. 마수 축사로부터 통로를 따라 내려온 마수가 여기까지 와서 발판을 밟으면 자동으로 문이 열리게 되어 있는 구조인 듯 했다.

       

       나는 발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걸 밟으면 열리는 것 같은데.』

       『과연, 그렇군요. 그럼, 제가 올라가 볼까요?』

       『잠깐만.』

       

       나는 교복 안주머니를 뒤졌다. 쇠창살 너머로 인기척은 없는 듯 하지만, 혹시 모르니 아오끼 소좌의 장갑을 껴 두려는데…… 어라. 교복 안주머니에 있어야 할 장갑이 없다. 

       

       ‘어디선가 흘렸나?’

       

       저번에 홍옥례를 기절시켰을 때 이후로 그 장갑을 쓸 일이 없었기에 잊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 흘렸던 것이라면…… 글쎄, 몸이 뒤집혀서 상의가 거꾸로 향하지 않는 이상에야 흘릴 일이 없는데.

       

       ‘아. 그 때였나.’

       

       아마 엊그제 신사 창고에서, 지하로 떨어질뻔한 렌까를 구하려다가 몸이 아래로 쏠리는 바람에 지하 어딘가로 떨어졌으려나. 그것 이외에는 달리 잃어버릴 만한 일이 없었다.

       

       ‘나갈 때 찾아봐야겠다.’

       

       생각을 마친 나는 렌까에게 말했다.

       

       『자, 발판을 밟자. 중상급 마수가 밟아야 작동하는 스위치니, 두 사람이 한 번에 올라타야 할 거야.』

       『알겠습니다. 이찌, 니!』

       

       하나 둘 하는 구령에 맞춰 함께 발판 위로 올라서자 쇠창살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와 렌까는 발판에서 내려와 쇠창살 아래를 통과했다. 

       

       그리고 몇 걸음 지나지 않아서, 뒤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쇠창살이 다시 내려왔다. 발판 스위치가 눌리지 않으면 자동으로 닫히는 구조인 모양이었다. 

       

       ‘이 쪽으로 나가긴 힘들겠는데.’

       

       기껏 함정으로 만들어놓은 공간이니, 탈출을 막게 하기 위함이겠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대적일 수도 있는 공간에 들어왔을 때는,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을 파악해 놓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쇠창설 너머의 공간은 과연 엊그제 마수들이 튀어나왔던 그 함정의 안쪽 공간이었다. 마수들은 다 치워져 있었지만 그 때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던 방화벽은 그대로 쳐져 있었다. 

       

       하지만, 전에 렌까가 뚫어놓았던 구멍은 보이지 않았다. 용접해놓은 건가? 아니, 훨씬 두꺼워진 방화벽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으음.’

       

       하룻밤 만에 이렇게 시공을 해놓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아마 1·2차 방화벽이 따로 있는 것이겠지.

       

       저번에 들어왔을 때에는 ‘박사’가 먼저 들어와 있었으니 방화벽을 걷어놓았다가 우리가 들어오자 급하게 1차 방화벽만 내렸던 것이고, 지금은 2차 방화벽으로 견고하게 막아놓은 것일 터였다.

       

       아무튼, 이곳에 들어온 목적인 진공관 컴퓨터를 살펴보려면 우선 저 방화벽을 뚫어야 하는데.

       

       『렌까. 이 벽, 뚫을 수 있겠어?』

       『흐음……』 

       

       렌까 역시 방화벽을 두어 번 두드리고, 엊그제보다 더 두꺼워져 있는 것을 알아채고는 입을 열었다.

       

       『저번처럼 크게 구멍을 내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사람 한 명이 겨우 통과할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각성자라면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 렌까의 마력에도 한계는 있었다. 저번에는 방화벽이 얇은 철판이었기에 렌까는 칠판에 커다란 원을 그리듯이 크게 구멍을 낼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뚫어야 할 철판의 두께가 두꺼우니만큼 힘이 곱절로 드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튼 그래도 뭐, 사람이 통과할 정도의 개구멍만 내면 되는 거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부탁해.』

       『예. ……하압!』

       

       렌까는 붉게 달아오른 검신을 방화벽에 찔러넣었다.

       

       

       

       ***

       

       

       

       원통형의 내벽을 따라 나선형으로 아래를 향해 뻗어있는 돌계단.

       

       그 돌계단을 걸어내려가던 이유하는, 문득 발밑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주워보니, 그것은 오른손 한 쪽만 있는 검은 색 가죽장갑이었다.

       

       ‘이건……!’

       

       이유하는 한 눈에 알아보았다. 백철연이 종종 끼고 다니던 그 장갑이었다. 

       

       이유하는 가죽장갑을 집어들어 두 손으로 쥐었다. 백철연이 이 곳에 와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대체 무엇을 위해 이 수상한 지하에 온 것인가?

       

       ‘어쩌면, 내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었을런지도.’

       

       백철연이 이곳에 온 것은 여색을 위함이 아니다. 저번 최성길 때처럼, 무언가와 싸우기 위해 이 곳에 온 것인가. 그렇다면 이 장갑은, 자신이 이곳에 있다고 자신에게 알리는 일종의 기별(奇別)인 것인가.

       

       저번의 구두처럼.

       

       ‘그대는…….’

       

       이유하는 한 쪽 뿐인 가죽장갑을 자신의 섬섬옥수같은 오른손에 꼈다. 

       

       그런데 문득, 위에서 누군가가 다급히 걸어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니 먼저 돌아가겠다던 홍옥례였다.

       

       “그대는 간다고 하지 않았소?”

       “그게……”

       

       위에 경비원이 와 있다고 설명하려던 홍옥례는, 이유하를 보고 다시 한 번 심장이 철렁하는 것을 느꼈다. 이유하의 오른손에 끼워져 있는 것은, 백철연이 자신을 기절시켰을때 썼던 그 장갑이 아닌가!

       

       그런 홍옥례를 보고 이유하가 물었다.

       

       “왜 그러시오?”

       “어, 아무것도 아니야! 

       “……? 그나저나 무슨 일이오?”

       “그게……”

       

       홍옥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설명했다.

       

       “위에 창고에 경비원들이 자리잡고 앉았는데, 우리 잡으면 생도주사한테 일러바치겠대.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바로 들키니까……”

       “과연, 그래서 일러주러 왔구려. 고맙소.”

       “그, 사내애들도 알아야 할텐데……”

       “그이들은 나보다 먼저 내려갔으니, 저 아래에 있지 않겠소?”

       “으응……!”

       

       마침내 맨 아래 바닥까지 내려가니, 과연 무라사끼와 송병오가 보였다. 무라사끼가 검을 든 채로 펄펄 뛰며 외쳤다.

       

       『똥! 시라바야시 녀석이 이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한데!』

       

       하지만, 이유하의 눈에는 이곳에 백철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유하가 묻자, 송병오가 대답했다.

       

       “글쎄, 저기 철문이 있지 않나?”

       “그렇소만.”

       “하지만 보다시피, 열쇠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게 잠겨져 있으니 말일세…….”

       “음…….”

       

       이유하는 잠금장치를 살펴보기 위해 철문 가까이로 갔다. 그런데 이유하가 철문 근처로 가까이 가자, 잠금장치에서 드르륵, 철컥!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

       

       

       

       ***

       

       

       

       『하아, 하아…… 되었습니다, 시라바야시 상.』

       『오. 수고했어.』

       

       나는 렌까가 방화벽에 뚫어놓은 구멍을 확인했다. 구멍 너머 역시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진공관 컴퓨터로부터 불규칙하게 점멸하는 불빛이 보였고, 역시 인기척은 없었다.

       

       ‘좋아.’

       

       그런데 렌까가 뚫어놓은 구멍으로 상체를 들이밀고 들어가려고 보니, 아무래도 안 될 듯 싶었다. 내가 말했다.

       

       『좀 작은데.』

       『예……?』

       

       체격이 작고 가느다란 렌까라면 몰라도, 지금의 나 역시 그리 건장한 체격은 아니었건만 일단은 남자였다. 이 좁은 구멍을 통과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으음…… 어쩔 수 없군요.』

       

       렌까가 말했다.

       

       『그래도 저는 들어갈 수 있을 듯하니, 제가 먼저 들어가 보죠. 그리고 저 너머에, 이 벽을 올릴 ‘스이치’가 있다면 찾아보겠습니다.』

       『음, 그게 좋겠다.』

       

       렌까는 구멍 건너편으로 자신의 검을 던져넣고, 허리를 숙여 자신이 뚫은 구멍으로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요잇쇼…… 앗.』

       

       그런데, 이영차 하며 상체를 밀어넣던 렌까는 갑자기 멈추더니, 그녀의 상반신이 있는 방화벽 너머로부터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 시라바야시 상?』

       『뭐야?』

       『들어가지지 않습니다만…… 뒤, 뒤에서 밀어 보시겠습니까?』

       

       렌까의 말대로, 손쉽게 허리까지 구멍에 밀어넣은 그녀는 더 이상 들어가지 못했다. 하반신의 골반이 걸려버린 탓이었다.

       

       ‘……아이고야.’

       

       여자애의 몸에 손을 대기도 좀 그렇고, 어차피 억지로 민다고 해서 들어갈 것 같지도 않았기에 내가 말했다.

       

       『일단 다시 나와 봐. 역시 구멍을 너무 작게 뚫었어.』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구멍을 다시 뚫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려면 렌까가 고갈된 마력을 채워야 하니 시간이 좀 걸리겠지.

       

       나는 고개를 돌려 한쪽 벽에 박혀있는 커다란 철문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렌까와 함께 여길 들어왔을 때 이용했던, 신사 창고에서부터 이어진 철문이었다.

       

       ‘이 문부터 미리 열어놓을까.’

       

       드르륵…… 철컥!

       

       나는 철문의 잠금장치를 돌려서 열어 두었다. 좋아. 나갈 때는 이 쪽으로 나가면 될 거다.

       

       『……앗?』 

       

       그런데, 몸을 빼내려던 렌까는 다시 당황해서 나를 불렀다.

       

       『시, 시라바야시 상? 아직 그곳에 있나요?』

       『이번엔 또 왜?』

       『다름이 아니라, 패검용의 요대가 걸린 것 같습니다만……』

       

       검을 패용하기 위해 허리춤에 찬 벨트가 안쪽에서 걸린 모양이었다. 나는 물었다.

       

       『풀 수 있겠어?』

       『잠시만요……』

       

       그렇게 말하고도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잖아도 고리와 매듭으로 단단히 결속된 벨트였고, 벨트의 절반은 몸과 구멍 사이의 좁은 틈에 끼어있었던데다가, 그걸 허리를 숙인 불편한 자세에서 풀려고 하니 잘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쿠구궁……

       

       하고, 묵직하게 쇳덩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등 뒤의,  신사 창고로 통하는 커다란 철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젠장!’

       

       뭐지? ‘박사’인가? 신사 앞을 지키던 경비원들인가? 아니면 이곳의 비밀을 알고 있는 교수들 중의 누군가인가?

       

       누가 되었든,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들켜서 좋을 일은 없었다. 일단 이곳을 피해서 몸을 숨겨야 할 터. 다행히 여긴 어두우니, 철문에서 떨어진 구석에 몸을 숨긴다면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 시라바야시 상? 방금 무슨 소리죠?』

       

       문제가 있었다. 내 몸을 피하기 전에, 우선 벽에 끼인 렌까부터 빼내든가 구멍 안쪽으로 밀어넣든가 해야 했다.

       

       『젠장, 실례! 급하니까 어쩔 수 없어!』

       『갸앗?』

       

       나는 두 손으로 렌까의 허리를 붙잡고 힘껏 당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처 렌까를 빼내기도 전에,

       

       『시라바야시 네 녀석!』

       

       하고, 등 뒤에서 외쳐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곳에 있었…… 뭐, 뭐 하는 거냐!』

       “이, 이보게 백철연이 자네……?”

       

       익숙한 두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열린 철문의 틈새로부터 들어와 나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은 무라사끼, 그리고 송병오였다.

       

       쟤네들이 저기서 왜 나와?

       

       이것만으로도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무라사끼와 송병오가 끝이 아니었다.

       

       “백철연……?”

       “배, 백 동지……?”

       

       두 남학생의 뒤로, 익숙한 은발 댕기머리와 적갈색 포니테일의 여학생, 이유하와 홍옥례도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잠깐.’

       

       이곳에 쟤네들이 어떻게 무슨 이유로 줄줄이 소세지처럼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들이 보기에 지금 렌까와 나의 모습이 수상한 그림으로 보여질 것은 분명했다. 벽에 끼인 여자애의 뒤에서 허리를 붙잡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대여.”

       

       얼어붙은 듯한 분위기 속에서, 이유하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게 대관절 무슨 상황이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조금 늦었습니다! 월요일입니다!

    그리고…… 8월이네요! 휴가철인데 다들 휴가는 다녀오셨는지요……?

    다음화 보기


           


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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