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7

        처음 겪어보는 A+급 게이트.

        유진이 느끼기에, 이곳은 평범한 A급 게이트와는 궤를 달리하는 곳이었다.

        당장 눈 앞에서 공격을 퍼붓는 마물만 봐도 그랬다.

        

        

        [Gruwaaahh!!]

        

        ‘입학 시험 때랑은 천지차이네.’

        

        

        유진이 상대 중인 마물의 명칭은 ‘처형자’.

        A급 게이트에서부터 발견되는 촉수형 괴물.

        비록 환영이긴 했지만, 입학 시험에서 별 문제 없이 해치웠던 녀석인데…

        

        

        ‘A급에서 나올 수준은 절대 아니야. 강화된 모양이네.’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공격 속도.

        스치지도 않았는데 풍압에 옷이 찢길 정도 아닌가.

        속도는 곧 공격력이니, 공격을 제대로 허용하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고.

        

        과연 A+급 게이트라고 할 만 하네.

        천화 클랜이 공략대를 보냈어도 고전을 면치 못했겠어.

        이런 생각에 혀를 내두르는 유진이었다.

        

        그러나,

        

        

        ‘동작이 커서 패턴 읽기 쉬우니, 오히려 좋아.’

        

        -휙.

        

        

        강화된 마물이나, 그때 상대했던 환상이나.

        유진에겐 별반 차이 없었다.

        

        눈으로 쫒기 힘든 공격?

        그땐 뭐 보고 피했나. 유도하고 예측해서 피했지.

        회귀 전에 신물 나게 잡은 것들이니, 패턴 파악 정도는 간단해.

        

        압도적인 스펙 차이?

        확실히 세졌지만, 나도 꽤 강해졌거든.

        시아와의 진심 헬스 수련법으로 얼추 1. 지난 4일간 스승님과의 땀 범벅 운동으로 0.3.

        합쳐서 힘과 민첩이 그때보다 1.3이나 올랐다 이거야.

        

        여전히 완벽에 가까운 패턴 숙지.

        그때보다 확연히 오른 피지컬.

        

        두 가지가 합쳐져, 유진의 카타나는 이번에도 아름다운 보랏빛 궤적을 그렸다.

        촉수들 사이를 너울너울 춤추며. 방해되는 것들을 전부 양단하며.

        그저 자유롭게. 아름답게.

        

        

        ‘무엇보다….’

        

        -파아앙!!!

        

        ‘이상할 정도로 나한테만 어그로가 끌리니까. 상대하기 편해.’

        

        

        기이한 부분은, 마물의 촉수 공격이 유진에게만 향한다는 점이었다.

        공격 유도 최면을 걸 필요도 없이.

        

        이상한 일이었다.

        마물 ‘처형자’가 악명 높은 이유는, 공략대 중 가장 약한 이들부터 공격하는 습성 때문이건만.

        지금은 척 봐도 강한 남자에게만 공격 집중.

        뒤에 있는 두 여자에겐 촉수 하나조차 휘두르지 않고 있지 않은가.

        꼭 유진을 노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명백히 이상했지만…

        유진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남자 좋아하는 촉수 괴물? 이게 무슨 수요 없는 공급이야.’

        

        

        전투 중에 한가롭게 사색이나 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으니.

        그냥 암컷 촉수신가 보다- 하고 넘긴 것.

        

        우연히도, 후열의 앨리스 역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까 전부터 희열에 떨고 있던 탓이었다.

        

        

        ‘유진이 저한테 힘을 빌려달라 했어요…!!!’

        

        

        환희에 부들대는 입가.

        겁 많은 앨리스답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그녀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던전을 공략한다길래, 아직 모자란 자신은 당연히 놓고 갈 거라 생각했던 그녀 아닌가.

        

        싫었다.

        그가 위험한 싸움에 나서는 것도.

        약한 자신은 그걸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도.

        꼭 몇십, 몇백 번은 겪은 것처럼 진저리가 났다.

        

        한데…

        그 유진이 선뜻 손을 내밀었다.

        나 혼자로는 힘드니, 힘을 합쳐 싸워달라고.

        대신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고. 

        

        그 말 한 마디가 마음에 퇴적된 무언가를 싹 씻어내렸다.

        제 약함에 대한 서러움이라던가, 기다릴 수밖에 없는 자의 외로움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전부.

        

        앨리스는 지금 제 회한을 원 없이 풀고 있었다.

        

        

        ‘게다가 그, 유진이 안아줄 때. 아랫배로 거기 계속 건드렸으니까… 절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잘 싸우면 유진도 용서해 주겠죠?’

        

        

        어째 좀 그런 이유도 하나 섞이긴 했지만. 아무튼.

        때문에 그녀는 관찰했다.

        유진의 싸움을. A급 각성자의 전투를.

        절호의 찬스를 찾기 위해.

        

        

        -퍼억!!

        

        “앨리스, 지금!!”

        

        

        때마침 들린 목소리.

        촉수 다발의 공격을 쳐내 빈틈을 만들어낸 유진의 신호였다.

        

        다만, 딱히 필요는 없는 신호였다.

        그녀의 완드에선 이미 푸른 화염구 하나가 혜성처럼 쏘아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슈욱.

        

        “네!!”

        

        

        신입생 생도라고 보기 힘든, 마력 능력치 5점 후반대. 

        드물디 드문 마법 계열의 S급 고유 재능.

        마지막으로, 유진의 힘이 되겠다는 의지.

        

        세 가지가 섞인 막대한 화력이 마물을 덮쳤다.

        

        

        -콰아아아앙!!!!!

        

        [Arrrrrggghhhh!!!!!]

        

        

        귀가 먹먹해지는 폭탄 소리.

        허공에 비산하다 까맣게 타 재가 되어 흩날리는 살점들.

        뒤늦게 훅 불어닥치는, 피부가 익을 것만 같은 열풍.

        마물이 격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소리.

        

        마지막으로…

        

        

        [Graaaw…!]

        

        “……!!!? 유진!! 아직 살아….”

        “괜찮아. 내가 마무리할게.”

        

        -서걱.

        

        

        살점이 터져나간 자리에 드러난 코어.

        그곳에 사선으로 그어지는, 아름다운 보랏빛 궤적.

        

        어지간한 A급 각성자도 단신으로는 못 쓰러트릴 마물은, 그저 힘 없이 쓰러질 뿐이었다.

        털썩- 하고.

        

        

        “…휴우.”

        “해, 해냈어요 유진!! 저희 해냈어요!!”

        “앨리스 덕분이야. 역시 화력은 마법이지. 암!”

        

        

        완벽한 팀워크에 하이파이브하는 두 각성자.

        그리고…

        

        

        “그나저나 감독님. 보셨죠? 진짜 위험하니까, 입구 쪽으로 돌아가서 얌전히….”

        “각서도 썼잖아요! 제발, 제발 찍게 해주세요!! 이걸 찍을 수 있다면 죽어도 좋으니까!!”

        

        

        둘의 뒤. 큼지막한 ENG 카메라를 어깨에 맨 여성 한 명.

        

        전열 하나, 후열 하나. 짐꾼 하나로 구성된 파티가 던전 1층을 클리어한 순간이었다.

        

        

        * * *

        

        

        시간을 조금 돌려. 계단을 막 내려갈 때.

        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리길래, 기습인 줄 알고 카타나부터 휘둘렀는데…

        

        

        “히잇!?”

        “……!!!!!?”

        

        -멈칫.

        

        “감독님!!?”

        

        

        몬스터가 아니라 감독님이더라.

        

        어후. 잘못하면 살인범 될 뻔했네.

        천 한 장 차이로 팔 빼서 망정이지.

        

        

        “들어오지 말라니까 대체 왜….”

        “그, 그게 있죠!? 제가 실은.”

        

        -사륵.

        

        “앗.”

        

        

        …풍압에 옷이 베이는 것까진 어쩔 수 없어서, 감독님 스웨터가 임산부용 수유복처럼 화끈한 언더붑 패션이 되긴 했지만.

        

        감독님은 딱히 부끄러운 기색 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실은 CF가 아니라 영화 감독 지망이었는데….”

        

        

        요약하자면, 블록버스터급 작품 하나 찍어서 영화 감독으로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싶다나 뭐라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죽어도 상관 없어요! 이거, 죽으면 온전히 제 잘못이라는 각서도 써왔.”

        “절대 안 됩니다.”

        

        

        뭐? 죽어도 상관 없어?

        저래놓고 막상 죽을 위기 되면 살려달라 꺄꺄 소리 지른다에 내 유진도를 건다.

        내 성격상 그걸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테고.

        

        쓸데없이 짐을 늘릴 생각은 없었다.

        

        

        “그, 클랜 보면 짐꾼들도 고용하잖아요! 짐꾼이라 생각하고 부려먹어주세요! 뭐든지 들 테니까….”

        “짐꾼 씨는 저희 파티에서 추방입니다.”

        “그러지 마시고, 제발! 이걸 못 찍으면 전 평생 화장품 광고나 찍으며 살 거라고요!!”

        

        

        추방 선언에도 끈덕지게 집착하는 감독.

        안 데려가면 몰래 쫓아올 기세였다.

        

        난 어쩔 수 없이 최면을…

        

        

        “계단 입구로 돌아가서….”

        

        -멈칫.

        

        “…음?”

        

        

        최면을 걸려다 멈칫했다.

        

        잠깐. 우리 CF 찍고 있었지?

        그런데 갑자기 빌런이 난입하고. 게이트가 터져서…

        

        

        “감독님. 혹시 저희 빌런 잡는 것도 찍었어요?”

        “물론이죠!”

        “오.”

        

        

        이건 좀 혹하네.

        빌런 5연속 퇴치에 이어, 게이트까지 파죽지세로 공략한다?

        괜히 발연기로 광고 찍는 것보단 이게 더 좋아 보이는데?

        

        언더붑 짐덩이가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어차피 앨리스는 무조건 지킬 거니, 한 명 정도는…?’

        

        

        우리 소중한 앨리스 지키는 와중에 한 명 정도 더 지키는 거야 뭐, 나한텐 별 짐도 아니지.

        

        짧은 고민 끝.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안 데려가 주시면, 진짜 여기서 혀 깨물고….”

        “어쩔 수 없네요. 실랑이할 시간 없으니, 따라오시려면 따라오셔도 됩니다.”

        “……?!! 그게 정말.”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물론, 그냥 데려갈 생각은 없었다.

        

        첫째. 전투 중엔 방해되지 않게 입 닫고 있을 것.

        둘째. 그녀의 전리품 배분은 0%.

        셋째. 앨리스에게서 50센티 이상 떨어지지 말 것.

        

        

        “이 세 개만 지켜주시면 가능한 지켜드리겠습니다.”

        “……!!! 그럼.”

        “대신. 우리 앨리스가 최우선입니다.”

        

        

        넷째.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난 무조건 앨리스의 안위를 우선한다.

        

        감독의 얼굴이 멍해졌다.

        

        

        “…우리?”

        “예. 저 믿고 이 위험한 데에 따라와 줬는데,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켜줘야죠.”

        

        

        반대로 난 표정을 굳혔다.

        매정하게 들릴 말을, 차갑게 쏘아붙이며.

        

        

        “혹시 앨리스가 위험에 처한다면, 전 감독님이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당신의 목숨은 3순위에 불과합니다.”

        “유, 유, 유진……? 그게 무슨.”

        “참고로 제 목숨은 2순위. 1순위가 앨리스입니다. 그리 아시길.”

        

        

        내 냉혈한스러운 말에 당황을 금치 못하는 앨리스.

        

        …쩝. 또 호감도 떨어졌겠네.

        기부도 하고 착하게 굴던 놈이 이러면 더 나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말야.

        아무리 자길 지켜준다는 말이어도 좀 무섭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못 박아놓고 가야 여차할 때 딴 소리 안 나오니까.

        사람 죽는 걸 내버려둔 놈보단, 냉정하긴 해도 합리적인 놈이 더 나았다.

        뭐, 혹시 해서 말해두는 것뿐이고. 그녀한텐 기껏해야 돌멩이나 좀 튀고 말겠지만.

        

        

        “…어머? 어머, 어머? 제가 눈치가 없었네요. 후후.”

        “……!!!?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저랑 유진은, 그게!!”

        “좋을 때다, 좋을 때야.”

        

        

        어째 3순위 본인은 오히려 웃었지만.

        진짜 영화에 미친 사람인가.

        

        아무튼. 그렇게 순위까지 정립한 후.

        제대로 던전 공략에 임한 우리였지만…

        

        결국 다 헛짓거리였다.

        

        

        -콰앙!!

        

        ‘울스크까지 패턴 똑같네. A+니 뭐니 하더니만, 피지컬만 바뀐 거였냐고.’

        

        

        난 마물 1마리씩 최면으로 유인해서 회피 탱킹.

        내 뒤, 순간 화력만큼은 이미 A급 최상위인 앨리스가 기회를 노리다 폭딜.

        두 개가 조합되니 보스 룸까진 30분도 안 걸렸으니까.

        목숨이 위험하기는커녕 여태껏 노 히트였다.

        

        이 조합에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유진!! 해냈어요!!”

        “……!!!? 앨리스!! 옷 다 탄다!!”

        “또요? 얼마나… 흐읏!!?”

        

        -홱.

       ​

        “한국 옷 너무 잘 타는 거 아니에요!!?”

        

        

        앨리스의 옷이 좀 얇아서 그런지, 잘 탄다는 것.

        

        …마법 쓸 때마다 중간중간 구멍 뚫리고 찢어지더니만.

        운동복 상의 빌려준다 해도 덥다며 거절하더니, 결국 이렇게 되나.

        

        황급히 겉옷을 벗어 던져줬다.

        

        

        “그거 메이드 인 차이나… 아무튼 앨리스, 이거 입어!! 감독님은 저거 찍지 마시고요!!”

        “걱정 마세요, 유진 씨 찍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필름 확인할 겁니다!?”

        “얼마든지요!”

        

        

        추가로 영상 단속까지.

        속옷 노출 사고는 그렇게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남은 건…

        던전의 최심부에서 기다리는 게이트의 주인.

        보스 몬스터 토벌 뿐.

        

        

        “크흠, 크흠. 그럼 갈까? 보스 몬스터 토벌 전까지, 게이트는 방심하면 안 되니까.”

        “네, 네!”

        

        

        각오를 다지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푸른 결계 장막 너머, 이쪽을 내려다보는 마물.

        두억시니를 토벌하고 게이트를 닫기 위해서.

        

        

        ‘뭐, 이번에도 금방 잡겠지. 위험할 건 없으니까.’

        

        -스윽.

        

        

        전열인 나부터, 먼저 결계를 통과했고…

        

        

        “앨리스, 내가 주의를 끌 테니까. 넌….”

        

        -콰르릉!!!!!

        

        “———제자야아아아아아!!!!!!! 살아있느냐아아아아!!!!!!!”

        “……!!!?”

        

        

        저 멀리 천둥소리처럼 울리는 스승님의 외침에 고막을 강타당했다.

        

        …엥. 게이트 출입 막힌 거 아니었나.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이파리 님 110코인, 비공개 희망 독자님 10코인, 크이크이 님 10코인, Jisss 님 10코인 선물 감사합니다!
    감사의 그랜절을 작가가 병약해서 쟤성하구 감사합니다아앗…

    + 걱정해주신 덕분에 감기는 많이 괜찮아졌슴니다!
    아직 미열이 좀 있긴 한데 요정도면 술 마셔도 될듯?

    다음화 보기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The Man with Hypnotic Powers Doesn’t Hold Back the Second Time Around

2회차 최면교배 아저씨가 능력을 안숨김
Score 5.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Since I regressed, I decided not to hide my abilities.

“Hypnosis, huh? That’s amazing! Hypnotize me too!”

“How about me, instead of that sly fox? If you join our clan… you, you can hypnotize me!”

…Maybe I exposed it too much.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