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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타오르는 금빛 성전이 그곳에 있을 터이니.

         

       그 누가 금안족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엘랑카야를 보게 하라.

         

       **

         

       도서관은 꽉 찬 상태였다. 중간고사 기간이 시작되었다는 방증이었다.

         

       자리가 생길 기미가 안 보인다. 이렇게 된 이상 열람실에서 죽치고 살긴 글렀다. 그나마 책 몇 권을 대출해서 기숙사로 돌아오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시험공부를 하느냐? 그건 또 아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1학년에선 더 배울 만한 게 없었다. 예습을 3년동안 했는데 모르는 내용이 있으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 아닐까.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간이 남아도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이 기간에는 다른 친구들이 공부하느라 부실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는다. 연구를 하고 싶으면 혼자서 하는 수밖에.

         

       그래서 그동안 쓰고 있던 논문이나 마무리 짓기로 했다.

         

       [■ 개발 완료 : 베테-파인만 방정식]

         

       플레어의 수율을 계산하는 작업은 금세 이루어졌다. 여기까지 온 이상 핵무기의 개발 진척은 눈에 띄게 빨라진다.

         

       그래, 재료만 있다면 말이다.

         

       고전적인 방법으로 열핵폭탄을 만들려면 기폭제 역할을 할 재료가 필요한데, 이쪽 세계에 오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우라늄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라늄은 마치 내 눈동자 색처럼 누르스름한 빛깔을 띠는 방사성 원소다. 사람들에게는 원자폭탄의 원료로 알려져 있는 녀석이었다.

         

       문제는 당장 그 우라늄이 산적한 광상을 찾을 수도 없거니와, 겨우 찾는다고 해도 채굴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거기까진 어떻게든 갔다고 치자. 정제와 농축은 어떻게 하는데?

         

       또 우라늄을 플루토늄으로 변환해서 핵분열을 일으킬 때는 어떻고? 그런 게 되려면 중수로쯤은 만들어야 하는데, 그 짓까지 하려고 했다가 프레이가 도망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우라늄을 취급하는 건 안전 문제를 동반한다. 스크롤과 광학기기로만 작동하는 플레어와는 달리, 우라늄은 방사능을 내뿜으니까.

         

       물론 원자폭탄을 만들려는 건 아니다.

         

       내 목표는 수소폭탄이다. 마왕을 때려잡는데 기왕이면 파괴력이 막강한 것으로 선택해야지 않겠나. 심지어 이쪽 세계에선 공계마도의 보조 덕분에 원자폭탄보다 열핵폭탄을 만드는 편이 쉬웠다.

         

       또한, 레이저를 사용한다면 굳이 우라늄을 채굴하지 않아도 개발이 가능하다.

         

       그 첫 단계를 지금에 이르러서야 완성했다.

         

       [■ 개발 완료 : 플레어(Flare)]

         

       “씨이이바아알…. 드디어 끝냈다…!!”

         

       [(완성) 최상급 화계마도 ─ 플레어(Flare)]

         

       [# 태양, 제4의 상태, 그리고 다섯 번째 길이 이곳에 있나니.]

         

       [고온 고열을 지닌 화계의 원소를 결맞음 상태로 내보내는 최상급 마도. 격발에 필요한 문턱값은 높으나, 한 번 사용하면 금속을 태워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 정도로 절륜한 출력을 자랑한다.]

         

       [◆ 업적 달성!]

       [이 마도는 당신이 개발했습니다.]

         

       초고출력 레이저와 금속판 하나만 있으면 플라스마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 플라스마를 반사율과 열내구성이 좋은 캡슐 내부에 가둬놓고, 온도와 기압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주기만 하면 핵융합 발생 조건을 충족하는 데 무리가 없으리라.

         

       그러려면 우선 베릴륨 같은 물질을 구해야겠지. 리튬도 필요하겠고, 플레어가 만들어 낼 중성자만으로는 부족하니까 바닷물에서 중성자를 끌어올 수계마도 전공자도 필요하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네.”

         

       [왜 다른 길로 새려고 해요? 과제물 제출하러 안 가요?]

         

       아, 맞다. 그랬지.

         

       이런 건 여름방학이 되고서 천천히 생각해봐도 될 문제다. 나는 깃펜을 내려놓고는 서류철로 수십 장의 종이를 고정했다.

         

       “논문 다 썼다!”

         

       그러고는, 맥주를 사러 나가는 프레이가 된 것마냥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제립 학회가 있는 건물로 헐레벌떡 들어간 나는 논문 투고란에 57페이지짜리 작품을 던져놓았다. 데스크에서 서류 업무를 보고 있던 상대방이 눈을 돌렸다.

         

       “심사 신청할게요.”

         

       나를 본 데스크 직원이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화계마도 분야에 제출하실 거 맞으신가요?”

       “네.”

       “정말로요?”

         

       왜 똑같은 걸 여러 번 물어보는데?

         

       몇 번을 더 확인받은 뒤에야 논문을 심사 대기 상태로 돌려놓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심사비로 접수원에게 은화 한 닢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마음 아팠다.

         

       논문의 제1저자는 물론 나다. 그렇지만 로테나 프레이에게 공저자의 자리를 내주었다. 이건 나 혼자 이룩한 업적도 아니었고, 또한 내가 두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 이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로테는 살리에르 백작가의 딸이라 돈이 궁핍하지는 않다. 프레이 또한 백날천날 술을 사다 마시는데도 불구하고, 돈 부족하다고 떽떽거리지 않는다. 둘 다 금전적인 문제는 없는 듯하다. 애초에 이 세상에선 성씨 있는 사람들이 배를 곪는다는 게 말이 안 됐다.

         

       그렇다면 수고비 말고 다른 걸 줘야만 거래가 된다.

         

       명예. 상류층 상대로는 그만한 게 없겠지.

         

       대학교 1학년생이 SCI급 저널에 논문을, 그것도 공저자로 게재했다는 얘기가 나돈다고 생각해보자. 온 난리가 날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비리나 표절 의혹을 제기할 테고, 만약 실제 업적이라는 게 명확해진다면 선망과 질투를 한 몸에 받겠지.

         

       버멜에게도 감사하다는 얘긴 전했지만, 여기서 끝내기엔 양심이 찔렸다. 그래서 세 사람의 시험공부를 도와주는 것으로 거래를 마치기로 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기브 앤 테이크. 윈윈이라는 단어는 이런 곳에서만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며 등을 돌리려고 할 때였다.

         

       “저, 그런데…. 혹시 에테르 양 맞으신가요?”

       “네? 네. 전데요.”

         

       내가 제출한 논문을 넘겨보던 데스크 직원이 난데없는 침음을 흘렸다.

         

       “저번에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에 대한 논문을 내신 분 맞으시죠?”

       “네. 그런데요.”

       “어제부로 그 심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

         

       ‘마소-에너지 교환성 정리’는 내가 대략 두 달 전쯤에 증명했던 정리다. 

         

       언제 되나 했더니, 이렇게나 빨리 심사 여부가 나왔을 줄이야. 

         

       “어떻게 됐나요?”

         

       논문 심사 결과를 듣는 건  언제나 두근거리는 일이다. 불안함과 기대감이 동시에 피어오르는 경험은 많지 않으니까. 마치 대학교 최종합격 여부를 확인하러 입학처 홈페이지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였다.

         

       잠시간의 정적.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다시 한 번 확인할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단 한 마디가 내 귓가에 벼락같이 내리꽂혔다.

         

       “축하드려요! 억셉입니다.”

         

       게재 승인(Accept).

         

       학계에 내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

         

       중간고사가 시작됐다. 학생들이 열심히 필기구를 놀리는 동안, 교수진은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거의 다 해 가네요.’

         

       클라이스에겐 가뭄 중 내린 단비와도 같은 날이었다. 온전히 플레어를 연구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하스펠트 가문의 비원, 플레어.

         

       북방전선에서 절멸급을 처음 조우했던 선대 하스펠트 공작의 지시 아래 개발이 착수된 플레어는, 지금에 이르러 완성되려 하고 있었다.

         

       국가적인 지원이 점차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클라이스가 플레어를 꾸준히 연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아버지가 지속적인 지원을 해 왔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클라이스의 부친은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 극강의 화계마도가 완성되길 기대했다.

         

       이제 그 기대에 보답할 차례였다.

         

       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전선에서 죽어나간 수많은 동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도 화계마도의 위력에 한계가 있다며 도망친 비겁자들에게 통쾌한 일격을 날리기 위해서라도.

         

       플레어는 완성되어야만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하스펠트 가문의 손안에서.

         

       실제로 클라이스는 중간고사가 시행되는 동안 논문 작성의 막바지에 다다랐다. 가문에서 내린 개발 지원금과 자신이 공작으로서 벌어들인 세수를 털어 연구자금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 실험한 결과가 슬슬 나오는 중이었다.

         

       요구 마력량이 높은 플레어를 격발시키는 방법을 찾기 위해 클라이스가 선택한 방법은 단순했다.

         

       바로 플레어를 구성하는 마법진을 각 부분별로 쪼갠 뒤, 그것을 나중에 합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증폭시키는 것이었다.

         

       실험 결과, 초기 효율은 별로였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재앙급 마수의 외피를 깎아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만한 위력이면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어차피 실전에선 한 발만 쏠 게 아니니까요. 여러 발을 동시에 퍼부으면 절멸급도 꼼짝 못 할 게 분명해요.’

         

       빨리 가문에서 칭찬받고 싶었다. 비록 아버지는 정계 일선에서 물러났고, 지금 가주는 자신이었지만… 그래도 윗사람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듣길 원했다.

         

       클라이스는 실험 데이터와 제반 이론을 담은 페이지를 그러모아서 동봉하기 직전에 이르렀다. 이 시점이 5월이었다. 슬슬 교정의 기온이 올라가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려던 클라이스를 한 사람이 찾아온 건 그 무렵이었다.

         

       “하스펠트 교수님, 제안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클라이스도 잘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황립 학회에서 보낸 연구원이었다.

         

       황립 학회는 제국의 모든 연구논문을 관리 및 심사하는 기관이었다.

         

       학술의 보고이자, 모든 마도사들의 요람. 클라이스도 그런 황립 학회의 일원이었다.

         

       어쨌건 제립 학회에서 사람이 왔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학계에서 권위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 저자세로 찾아오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제안이라뇨?”

         

       클라이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을 한데 모았다.

         

       궁금증과 짜증이 교차했다. 지금 클라이스는 논문을 완성해야만 한다는 일념 하나 때문에 사소한 인간관계에는 신경을 쏟을 시간이 없었다.

         

       “네, 2주 전쯤에 어떤 사람이 화계마도에 관한 논문을 냈거든요. 교수님께서도 흥미로워하실 만한 내용이라서요. 꼭 좀 심사해주면 좋겠다 싶어서 이렇게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화계마도요?”

       “네.”

         

       표정이 절로 구겨졌다. 자신도 논문을 쓰느라 한창 바쁠 때인데, 다른 사람 논문까지 심사하라니.

         

       그러고 싶진 않았다.

         

       ‘별 대단한 주제도 아니겠지요.’

         

       플레어 연구가 막혔더라면 읽어보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한창 일이 잘 풀릴 때였다.

         

       실험은 완벽하고, 계산에는 흠이 없다. 디스커션을 다듬는 것에만 열중한다면 당장 일주일 내로 제출하고도 남을 수준의 완성도였다.

         

       “제안은 거절할게요.”

       “네? 좋은 기회인데 정말 거절하시게요?”

         

       클라이스는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일이 바빠서 볼 시간이 없어요. 나중에 게재 승인이 난다면 그때 가서 확인할게요.”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실례했습니다.”

         

       텅, 하고 연구실 문이 닫혔다. 그 여파 때문인지는 몰라도, 방을 밝혀주고 있던 백열등 하나가 짧게 점멸하더니 이내 꺼져버렸다.

         

       수명을 다한 전구를 보며, 클라이스는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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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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