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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돈키호테. 내가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표절한 전생의 문학이자, 최초의 근대소설.

       

       마지막 기사문학.

       

       스페인의 성경. 작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소설. 최초의 베스트셀러. 언어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소설이라는 문화가 존재하는 한 불멸할 만세(萬世)의 스테디셀러.

       

       중세의 끝을 알리는 소설.

       

       그 소설 속 주인공, 라 만차의 돈키호테가 지금 나의 눈 앞에 서있었다. 중세에서나 존재할 법한 편력기사 행색을 하고서, 종이로 만든 투구를 뒤집어쓰고서 말이다.

       

       

       “만나서 반갑소. 나는 카페터의 공작인 앤디라는 사람이외다.”

       

       

       그 사람은 스스로를 카페터 공작 앤디라고 소개했다.

       

       공작이라면 입헌군주국인 제국에서 몇 안 되는 영구(永久)적인 영지를 소유한 귀족이었다.

       

       현대의─ 그러니까 이 세계의 ‘백작’들은 고전적인 작위 체계에서 ‘궁정백’에 속하는 귀족들이다. 이에 대한 역사는 ‘공정왕’이라고 불리는 옛 황제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는데, 중요한 것은 귀족들의 권리는 전부 ‘제국’에 귀속되어있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인 ‘장원’은 소유할 수 있었으나, 특정 영지의 세속적 지배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편하게 앤디라고 불러주시오.”

       

       

       하지만 이 앤디라는 사람, 그러니까 ‘공작’은 달랐다.

       

       이들은 영지의 세속적 지배자이며, 제국의 헌법에서 규정하는 제한 내에서의 절대적인 권리와 절대적인 책임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프리덴 백작께서는 이런 ‘공작’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카페터의 공작이시라고요…?”

       “그렇수다.”

       

       “그으, 행색을 보니 꽤 오래 기사행을 하신 것 같은데, 혹시 질문 하나만 해도 괜찮겠습니까?”

       “편하게 말하시오.”

       

       “영지는 어떻게 운영하고 계십니까…?”

       

       

       하루 24시간을 영지에 묶여서 일만 하는 불쌍한 인간들이라고 말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공작령의 경우 제국에서도 특히 주의를 기울여서 감사를 하는 편이다. 공정왕 시절부터 이어져오는 제국의 ‘입헌군주국’ 질서가 자칫 무너질 수 있는 탓이었다.

       

       의회의 귀족들 또한 언제든 공작을 그들과 같은 위치로 끌어내릴 준비가 되어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공작령이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말 미친듯이, 꼬투리 잡힐 일 하나 없이 모든 일처리가 완벽하게 이루어져야했다. 그런 탓에 공작들의 업무량이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의문을 담아 질문을 던졌고.

       

       카페터 공작의 대답은 간단했다.

       

       

       “아들내미에게 맡기고 왔소.”

       “네?”

       

       “영민한 녀석이니 알아서 할 테지.”

       “아하…. 아드님께서 굉장히 유능하신가 봅니다.”

       

       “그렇다오. 기사행을 떠나기 전에 편지를 남겨놨으니 스스로 어떻게든 하고있을 거요.”

       “어, 인수인계나 그런 것은….”

       

       “그런 걸 굳이 해야하오?”

       “…….”

       

       

       음. 편력기사 행색부터가 그렇지만, 이 카페터 공작이라는 사람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 이상으로 마이페이스일지도 몰랐다.

       

       그런 나의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카페터 공작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소.”

       “어린왕자를 읽어주셨군요…?”

       

       “기사행을 하면서도 책은 꾸준히 찾아 읽고 있다오. 호메로스 작가님의 책이라면 특히 그러하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을 하나 해도 괜찮겠소?”

       “아, 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카페터 공작은 책 하나를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돈키호테 1부, 그것도 이제는 천금으로도 구할 수 없다는 초판본이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책의 옆부분이 조금 닳아있었지만, 표지나 종이에는 얼룩 하나 보이지 않았다.

       

       작품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 책을 내밀며, 공작은 당당하게 선언했다.

       

       

       “서명 부탁드리오.”

       “…네?”

       

       “기사행을 하면서 가장 이루어내고 싶던 목표 중 하나라오. ‘돈키호테’에 호메로스 작가의 서명을 받는 것 말이오. 설령 사악한 용을 무찌르더라도 이것을 받을 수 없다면 의미없는 일일 테지.”

       “아, 네…. 서명 정도는 그냥 해드리겠습니다.”

       

       .

       .

       .

       

       카페터 공작은 굉장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기사행을 하면 꽤 많은 것을 봤다오. 행성에서 가장 더운 곳에 있다는 세계수에도 가보았고, 극점에 있다는 지저의 입구에도 가보았지.”

       “호오….”

       

       

       정확히는, 흥미로운 경험을 많이 해본 인물이었다.

       

       돈키호테를 출판한 이후로 몇 년 동안이나 기사행을 하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카페터 공작은 말 그대로 ‘세계일주’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

       

       

       “그곳까지 배가 다니지는 않을 텐데, 어떻게 가셨습니까?”

       “이것저것 사람들에게서 얻어 타고 다녔고… 길이 없는 곳이라면 물 위를 걸어서라도 갔을뿐이라오. 어쩌다보니 길을 잘못 들어 이상한 길로 빠졌던 것이지.”

       

       “물 위를…?”

       “작은 재주요. 기사라면 누구나 제 의지를 행동으로써 관철시키는 법 아니오.”

       

       

       카페터 공작은 대수롭지 않다는듯 그리 대답했다.

       

       

       “그렇군요….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옛 여행기나 상인들의 수기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를 얻을 기회였다.

       

       후에 ‘걸리버 여행기’나 ’80일간의 세계일주’를 집필할 때 도움이 될 수도 있었고. 새로운 이야기는 그 자체로 흥미롭기도 했다.

       

       지구에서의 삶을 기억하는 나에게 있어서 이 세계는 그 자체로 판타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세계를 여행한 여행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판타지 소설처럼 들렸다. 아예 기행문의 작성을 부탁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흐음, 그래.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군. 사실 그렇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은, 이 ‘돈키호테’ 복장의 덕분도 크오. 돈키호테를 읽은 사람들이 내가 기사행을 한다는 것을 알고 기차나 마차, 기구 따위에 태워주고는 했으니. 워낙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전부 설명하려면 시간이 부족할 테지.”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아있는 것들만 이야기해주셔도 됩니다.”

       

       “흐음. 알았소. 그래. 그러면 세계수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겠군…. 세계수는 하늘 위까지 자라있는 거대한 나무였는데─. 무척이나 더운 곳에 있는 울창한 밀림의 중심에 있었지. 원주민들은 그곳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렀소. 극점과 극점의 중심, 세계가 회전하는 꼭대기에 놓인 장소. 태양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적도라고 하였지.”

       

       .

       .

       .

       

       세계수는, 뭇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푸르고 생명력으로 넘치는 나뭇잎을 가지고있지 않았다.

       

       오히려 칙칙하기 그지 없는 회색의 나뭇잎을 가지고 있었다. 그 나뭇잎이 달려있는 세계수의 가지는 저어 구름 위에 달려있는 탓에, 세계수의 주변에서는 항상 검은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빛을 흡수하는 회색의 비가 말이다.

       

       천상에서 내려오는 ‘회색빛 이파리’는 숲에 내려앉아, 토양에 섞이고 썩어 숲이 자라는 양분이 되었다.

       

       

       “높은 산을 보면, 그 꼭대기를 올라가보고 싶어하는 게 도리 아니겠소? 나 역시 세계수를 타고 올라가 얼마나 높이까지 자라있는지 시험해보았지.”

       “그렇군요. 얼마나 높았습니까?”

       

       “제국의 단위계로… 음, 새로 만들어진 단위계는 익숙하지가 않소만, 대략 30,000km 정도 되는 것 같으오.”

       “…네? 혹시 30,000m를 잘못 말하신 게 아닙니까?”

       

       “아니오. 행성을 한 바퀴 도는 것보다 조금 짧은 거리였으니, 아마 맞을 것이라오.”

       “나무의 높이가 말입니까…?”

       

       “하늘보다 높이 올라가면 오로라가 보이는데, 그때부터는 밤과 낮의 구분이 없어진다오. 그저 별을 품고있는 밤하늘만이 보이지. 숨 쉬기도 답답하고 피부가 따끔해서 그리 오래 버틸만한 장소는 아니었다오.”

       

       

       어. 정말로 그 높이가 맞다면 ‘오래’가 아니라 ‘잠시’도 못 버티고 죽지 않을까?

       

       아무래도 카페터 공작의 육신은 사람의 한계를 초월한 모양이었다.

       

       불 없이 차를 끓이는 마법사나 정신을 뒤흔드는 환상 공연도 보았지만, 이런 ‘초인’의 존재는 오히려 마법보다도 더 판타지스럽게 느껴졌다.

       

       

       “그곳에는 잔가지가 끝도 없이 펼쳐져있었는데, 갈라지고 또 갈라지며 수억개로 분화되는듯 보였소. 두꺼운 가지는 지상에서 본 그 어떤 나무보다도 거대했고, 가장 멀리 있는 가지는 일반적인 나무의 가지만큼이나 작았지. 그곳에 회색빛 나뭇잎이 풍성하게 매달려 밤하늘을 덮고있었소.”

       “그렇군요….”

       

       “그리고, 그 나무에서 살고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소. 전설에 나오는 요정… 엘프라 불리는 존재들이었지.”

       “예?”

       

       “전설처럼 마냥 아름다운 존재들은 아니었지만 말이오.”

       

       

       요정. 엘프들은 카페터 공작을 마주하는 순간 기겁하며 나무 안쪽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나무 안에는 행성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좁은 관─, 그러니까 물이 순환하는 식물의 모세관이 있었다. 요정들은 그 관을 통하여 우주와 행성을 오간다고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궤도 엘리베이터’였다.

       

       정지궤도와 행성을 연결하는 우주적 엘리베이터 말이다.

       

       세계수는 정지궤도에 잔가지를 뻗어 태양의 방사선으로 광합성을 하는, 바이오펑크 SF에나 나올 법한 궤도 엘리베이터였다. 회색빛 이파리 또한 모든 스펙트럼의 빛을 흡수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결과일 터였다.

       

       아니, 진화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았다.

       

       그런 거대하고 유일한 나무가 ‘자연선택’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그것은 조금 더 판타지적인 종류의 무언가였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이 세계의 신비다.

       

       

       “사람이 세계수의 꼭대기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듯이, 요정들 또한 지상에서 오래 버티기는 힘든듯 보이더군. 아무래도 요정과 사람이 서로 왕래하였다는 옛 신화는 거짓이었던 모양이오.”

       “허어.”

       

       “그리고, 음. 세계수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은 이정도라오. 말재주가 없는 탓에 뭐라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그렇군요.”

       

       “아, 반대로 행성에서 가장 추운 극점에는 지하로 파고드는 구멍이 있었소. 그 아래에는 거대한 빈 공간, 공동이 있었지.”

       “혹시 나치가 있었습니까?”

       

       “음? 그게 무엇이오?”

       “아, 아닙니다. 계속 말씀해주시죠.”

       

       “아무튼, 그 아래에서는 난쟁이들이 살고있었는데─.”

       

       

       카페터 공작의 설명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나는 이 세계가 내가 알고있는 것 이상으로 수많은 신비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신비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이야말로 이 ‘세계’의 문학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카페터 공작님.”

       “으음. 말씀하시오.”

       

       “혹시 여행기를 소설로 출판해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이건 ’80일 간의 세계일주’에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걸리버 여행기’와는 조금 닮은 구석이 있겠지만, 이 또한 충분하지는 않았다.

       

       아예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했다.

       

       아무래도 작가’들’의 도움을 받아야할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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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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