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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피가 낭자한 현장.

       

        그 앞에 선 양하나의 심장이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할 수 있어. 아니, 해야해!’

       

        이미 상황을 물어볼 필요도 없이,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였다.

       

        기괴한 생김새의 괴수와 그 앞에 널부러진 철퇴. 거기에 더해 주인을 잃고 나뒹구는 신체 일부분.

       

        우우웅!

       

        <뇌전검>의 장기, ‘절삭력 강화’가 중첩된 그녀의 검이 맑은 검명을 토해냈다.

       

        “뇌전검이다!”

        “저 자식을 찢어버려!”

       

        쏟아지는 환호성 속에서도 그녀는 집중을 잃지 않았다.

       

        신검합일.

       

        어릴적 처음 그녀가 검을 잡을 때부터 할아버지가 누누히 강조하던 부분이다.

       

        ‘신검합일이라는 경지가 있단다. 무릇 검사라 불리는 자는 그 경지를 향해 모든 걸 내던져야하는 법이지.’

       

        어린 양하나는 할아버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모든 걸 던져야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뿐이었다.

       

        사아악!

       

        ‘7등급 괴수…….’

       

        그런 양하나의 등장에 괴수는 끈적한 적대감을 그녀에게 드러내고 있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랭커’의 존재. 이 엄청난 괴물을 S급 히어로인 양하나가 단독으로 처치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겠지.

       

        하지만.

       

        “쓰러트려!”

        “보여줘! <뇌전검>!”

       

        아이러니한 사실은 양하나를 위협에 빠뜨리는 것이 대치 상태를 이루는 괴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변에 벌떼처럼 몰려든 구경꾼들. 그들이 양하나의 속을 타들어가게 만들고 있었다.

       

        “젠장! 피하십시오! 여긴 승천전 결투장이 아니란 말입니다!”

        “서둘러 대피하세요! 실제 상황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곳이라고요!”

        “……!”

       

        학생회 소속 학생들의 비명이 현장을 처절하게 울렸다.

       

        하지만, 돌아오는 구경꾼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 없었다.

       

        “이런 재미있는 기회를?”

        “내가 왜? 그리고 당신. 나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

        “……!”

       

        대치한 괴수가 천천히 접근한다. 그 정신이 아득해지는 긴장감 속에서, 양하나는 솜털이 곤두서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상하지 않나?

       

        저들의 말이, 행동이, 마치 게임이나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대하는 모습이 소름끼쳤다.

       

        “하앗!”

       

        먼저 움직인 것은 양하나였다.

       

        그녀가 기다리는 건 학생회장, <재창조의> 한유리나 서기 <비를 내리는> 송수아. 랭커 수준의 능력자가 필요한 싸움이었지만…….

       

        통제에 따르지 않는 구경꾼이 그녀의 생각을 가로막은 것이다.

       

        “키에엑!”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던 괴수의 얼굴에 ‘입’이 나타났다. 끈적한 액체로 가득한 놈의 입은 방금 잡아먹은 사람의 뜨거운 피가 가득 묻어있었다.

       

        번쩍!

       

        “……!”

       

        괴수와 충돌하기 직전, 몸을 날린 양하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초능력?!’

       

        하지만 이미 상황이 늦었다. 출수한 검과 날린 몸이 멈추기엔 이미 늦었다는 소리다!

       

        후웅!

       

        놈과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 양하나는 그녀의 장기인 뇌전의 검을 휘둘렀다.

       

        새하얀 에너지가 중첩된 검이 나아간다.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그 공격은 과거, <현상거절>과 결투를 벌이던 때에 비하면 미약하기 그지 없었지만, 분명 평범한 수준의 힘은 아니었다.

       

        콰아아앙-!

       

        얼핏 연약해보이는 괴수의 주먹과 양하나의 검이 충돌했다.

       

        ‘인간’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진 듯한 괴수의 창백한 신체는 연약해 보였지만, 검에 느껴지는 충격은 절대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크읏!”

       

        검을 타고 느껴지는 아릿한 충격에 양하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등 뒤엔 수많은 시민들이 가득하다. 지금 물러나는 건, 분명 수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후웅!

       

        <뇌전검>이자, 아카데미 최고의 검수답게 그녀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우상단에서 좌하단으로 이어지는 베기 공격 이후 쏟아지는 화려한 검격. 그 공격 하나하나에 그녀의 ‘절삭력 강화’가 감겨있었다.

       

        쾅! 콰광!

       

        하지만, 괴수는 그때마다 주먹이나 팔을 뻗어 검을 막아냈다. 비늘이나 갑주 따위가 없는 연약한 신체가 보여줄 수 없는 경도였다.

       

        ‘이건… 신체 강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양하나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놀랍다는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일이다. 어떻게 타차원의 침략자인 괴수가 초능력을 쓴다는 말인가.

       

        “…….”

       

        허나, 지금 상황에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양하나는 검을 세게 잡았다. 다시 놈의 피부를 꿰뚫기 위한 맹공을 준비하는 순간.

       

        팟!

       

        “어, 어……?”

       

        괴수의 몸이 그녀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말 그대로 증발한 것처럼, 새하얀 몸의 괴수가 모습을 감춘 것이다.

       

        촤아악!

       

        “끄아아악!”

        “도, 도망쳐! 도망치라고!”

       

        괴수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그녀의 뒤, 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공간 격리를 위한 역장을 펼친 곳이었다.

       

        “아?”

       

        양하나는 눈을 의심했다.

       

        괴수가 외부로 도주할 것을 우려해 펼친 방어계 능력이다. 역장의 장점은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는 건 자유롭지 않지만,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것.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수많은 구경꾼이 학생회의 경고를 무시한 채 역장 내부에 들어와있었다. 그 구경꾼들이 괴수의 간단한 손짓에 처참히 도륙난 것이다.

       

        “하, 하아.”

       

        믿기지 않는 현실에 양하나의 두 눈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뇌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감각에 그녀의 가지런한 호흡이 순간적으로 흐트러졌다.

       

        “키에에에엑!”

       

        피를 흩뿌린 괴수가 공포스러운 포효를 내질렀다.

       

        진화를 하는 걸까. 애당초 눈, 코, 입, 귀 따위가 달려있지 않는 놈의 얼굴엔 어느덧 입과 코가 생겨있었다.

       

        마치 그로테스크한 게임 속 몬스터처럼, 그 짧은 순간에 지구에 적응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푸욱! 촤악!

       

        “꺄아아아악!”

        “도와줘! <뇌전검> 미친년아!”

        “……!”

       

        양하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지금 그녀가 할 행동은 간단했다.

       

        인류를 수호하는 히어로 아카데미의 S급 히어로. 그녀는 사람들을 지켜내고 괴수를 토벌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타닷!

       

        자리를 박찬 양하나가 사람들을 도륙하는 괴수에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쩌어엉!

       

        놈의 팔과 양하나의 검이 충돌한다. 이전보다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손에 느껴지는 아릿한 감각은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커어억!”

       

        그 순간에도 사람들의 몸이 찢겨나간다. 당장 조금 전, 양하나에게 역정을 뱉던 구경꾼 하나가 이승을 하직했다.

       

        “여, 역장 밖으로!”

       

        역장 내부에 들어와 자리를 깔았던 정신 나간 사람들이 모두 푸른 막 밖으로 몸을 날렸다.

       

        “모두 이 현장에서 최대한 멀리 피하세요!”

       

        숨을 크게 들이마신 양하나가 현장에 울리는 외침을 내뱉었다.

       

        7등급 괴수란 이런 존재다. 이 히어로 아카데미라는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난 사람들의 지독히 떨어지는 현실감각이 저주스러웠다.

       

        하지만.

       

        “절삭력 강화!”

       

        그녀는 물러날 수 없었다. 본디 그녀란 그런 사람이니까.

       

        카아앙!

       

        <뇌전검> 양하나가 능력을 전개하는 동안, 괴수는 그녀를 노리지 않았다.

       

        애당초 양하나의 검은 놈의 피부를 꿰뚫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주변에 둘러씌워진 역장이라는 장막을 공격할 뿐이었다.

       

        쩌엉! 파앙!

       

        전투적인 놈의 공세에 주변을 격리하던 역장이 반응한다. 짧은 찰나의 순간 흐려지기도, 작은 구멍이 뚫리기도 한 것이다.

       

        “절삭력 강화!”

       

        양하나는 서둘러 능력을 전개했다. 중첩된 ‘절삭력 강화’가 지금의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이니까!

       

        “하, 한계입니다!”

        “다들 물러서!”

        “선배님!”

        “대피를 준비해!”

        “……!”

       

        먼저 현장에 도착한 학생회 대원들의 목소리. 그걸 들은 양하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또다시 패배하고 싶지 않아.

       

        그 목소리가 그녀의 입안에 맴돌았다. 이상하게도 이 절체절명의 순간, 그남자가 떠올랐다.

       

        며칠 전 치뤄진 승천전 본선에서 마주친 남자. 그녀가 가진 모든걸 부딪혔으나, 고작 와이셔츠의 앞섶 조금을 배어낸데 그친 능력자.

       

        “하아아압!”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양하나가 땅을 박찼다. 이대로 가다간 걷잡을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그녀의 앞에서 더이상의 출혈은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도약이었다.

       

        그런데 그때.

       

        카앙!

       

        푸우욱!

       

        완벽히 괴수의 뒤를 점했다고 생각했는데, 별안간 복부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괴수가 초능력을 사용한다는 걸 알아냈다. 간단한 ‘신체강화’나, 열화판 텔레포트’ 공간도약’을 사용한 덕에 알아챈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 초능력이 괴수가 가진 힘의 전부가 아니었다. 놈에겐 지능이 있다. 괴수가 몸을 순간적으로 틀더니 갑작스레 바닥에 떨어진 ‘창’을 던진 것이다!

       

        “커흐윽!”

        “야, 양하나 선배!”

       

        검을 비틀어 창을 쳐냈으나, 담겨진 힘이 워낙에 막강했던 탓에 좌측 복부를 꿰뚫고 지나갔다. 자연히 어마어마한 통증과 이어지는 출혈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

       

        “키르륵!”

        “……!”

       

        양하나는 괴수가 비웃음을 짓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녀가 아닌 누구라도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비틀!

       

        갑작스레 드리운 현기증에 양하나의 다리가 크게 휘청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상황 속.

       

        파각!

       

        그녀는 땅에 검을 꽂았다.

       

        검을 수련하고, 보물보다 검을 소중히하는 같은 검사가 보았다면 기본이 안 되었다고 코웃음 칠 장면.

       

        “나는…… 쓰러질 수 없어.”

       

        주르륵!

       

        입가에 한줄기 피를 흘린 양하나가 괴수를 노려보았다.

       

        절삭력 강화? 검기?

       

        ……애석하게도 그녀가 가진 현재의 힘으로는 저 정체불명의 괴수를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양하나의 마음은 아직 꺾이지 않았다.

       

        “사람들을… 지킬 거야.”

       

        그게 양하나가 품은 소망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셀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 괴물에게 죽임을 당할 테니까.

       

        “키륵.”

       

        슉!

       

        양하나의 곧은 눈동자를 마주한 괴수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가 품은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놈의 주먹이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허공을 갈랐다.

       

        쩌엉! 쾅!

       

        “으읏!”

       

        간단한 주먹에 담긴 힘이 평범하지 않았다. 이미 큰 상처를 입은 양하나가 힘을 버티지 못하고 멀리 날아가 쓰러졌다.

       

        터벅터벅.

       

        괴수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초능력과 지능을 품은 타차원의 침략자가 원하는 것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놈이 양하나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키에에엑!”

       

        괴수가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웬만한 둔기보다 강력한 저것이 떨어진다면 즉사를 면치 못할 상황.

       

        양하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제고 그 남자에게 자신의 검이 닿기를 소망했다.

        그 남자가 우연히 ‘인식저해’를 뚫고 나타났을 때 느꼈던 반가움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끝이다. 괴수와 전투 중에 전사라니. 등짝의 상처는 검사의 수치라 울부짖던 할아버지는 충분히 이해해주시겠지.

       

        그런데.

       

        “현상거절.”

       

        믿기지 않는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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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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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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