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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딩동.

     

    치킨에 맥주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에 소파에 앉았던 몸을 일으켜 재빨리 움직였다.

     

    문을 열자, 배달원 아저씨가 하얀 봉투를 스윽 내밀었다.

     

    “맛있게 드세요.”

     

    볼일이 끝났다는 듯 바쁘게 떠나는 배달원에게 치킨과 맥주를 건네받은 후 문을 닫았다.

     

    “어, 배달시킨 거 왔나 보네요.”

     

    화장실에서 문을 열고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아름다운 은발에서 물기가 조금씩 떨어지는 것을 수건으로 닦으며 나오는 수정이.

     

    훈련장에서 샤워까지 마치고 기다렸던 나와 달리 수정이는 일을 끝내자마자 왔기에 배달 주문 후 바로 샤워하러 들어갔다.

     

    당연히 갑작스럽게 오게 되었기에 잠옷은 전혀 준비되지 않았고, 수정이 또한 챙기기 귀찮다며 내 옷들을 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가슴팍에 이제는 인기가 끝난 거대한 노란색 오리 그림이 그려진 흰색 긴 팔 티셔츠와 회색 반바지를 건네줬다.

     

    체격의 차이가 있다 보니 팔길이가 맞지 않아 수정이의 팔은 마치 어른의 옷을 입은 아이처럼 다 나오질 못했고, 옷 자체의 길이와 너비 또한 맞지 않아 무릎 위까지 티셔츠가 덮었다.

     

    반면 회색 반바지는 중학교 시절 아직 본격적인 성장기에 돌입하기 전에 입었던 거라 허리 사이즈를 제외하고 길이는 맞았는지 티셔츠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이거 은근 묘한데….’

     

    본의 아니게 오버핏 셔츠 느낌으로 입게 된 수정이의 모습은 마치 아래에 아무것도 안 입은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키며 하의 실종 패션을 선보였다.

     

    거기에 화룡점정은 티셔츠에 그려진 오리는 평소보다 더 큰 크기를 자랑하며 늘어졌다는 점이다.

     

    ‘이래서 여자친구한테 자기 옷을 입히고 싶어하는 건가?’

     

    그때는 이해 못 했지만, 코앞에 있으니 확실히 눈과 마음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수정이의 존재 자체가 페로몬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매혹적인 면이 커서 그런 것도 있지만.

     

    “원우님, 왜 가만히 서 계세요. 어서 먹어요! 저 배고픈데.”

     

    “아, 응. 얼른 준비할 게.”

     

    식탁에 치킨과 맥주가 담긴 봉지를 올린 후 하나씩 꺼내서 세팅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수정이는 컵을 2개 가져와 각자 앞에 놓았다.

     

    “와, 진짜 오랜만에 먹는 거 같아요, 치맥!”

     

    눈앞에 나타난 순살 반반 치킨을 보며 신나 하는 수정이. 젓가락을 꺼내 뜯더니 바싹하게 튀겨진 치킨을 입에 넣었다.

     

    “크으, 이 맛이지.”

     

    그렇게 감탄사를 내뱉은 후 그 옆에 놓인 양념치킨을 집어 먹었다.

     

    치킨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수정이. 다른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 차갑고 도도한 얼굴을 하던 최수정이 치킨을 먹으며 좋아하는 이 모습을 말이다.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는 광경에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는 주황색 페트병의 뚜껑을 열어 수정이 앞에 놓인 컵을 들어 기울인 후 맥주를 부었다.

     

    거품이 많은 맥주는 죄악이기에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적당량을 컵에 채우고 수정이에게 권했다.

     

    “이거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먹어.”

     

    그 말에 수정이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얀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

     

    “남자친구 앞에서 너무 내숭도 없이 배고프다고 막 먹어서 별로인가요…?”

     

    “풉.”

     

    그 말에 웃음이 튀어나와서 입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까지 엉큼한 마음을 품었던 것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로 너무 귀여웠다.

     

    “아, 역시 막 정이 떨어지고 그래요? 인터넷을 보니 그런 이야기가 있다고는 하던데. 막 돼지처럼 퍼먹는 느낌 들면 싫어진다고.”

     

    그렇게 말하며 살짝 시무룩해지는 수정이.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 버릇처럼 그녀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전혀 그렇지 않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이 예쁘고 귀여워서 그랬어. 다른 사람들은 못 볼 거 아냐. 치맥 먹으며 행복하게 웃는 수정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면서 달래듯이 말하자, 수정이도 금세 배시시 웃었다.

     

    “원우님은 절 너무 잘 달래줘요. 가끔은 내가 너무 쉽나 싶어서 걱정도 되지만.”

     

    “전혀 안 쉬우니까 그런 생각은 하지마. 항상 소중하게 생각하고 조심스러우니까.”

     

    “치, 이렇게 말 잘해서 나 달래고 꼬시는 거 보면 원우님도 은근 바람둥이 같은 면이 있단 말야. 조심해야겠어.”

     

    괜히 쑥스러운 듯 걸고 넘어지며 투덜거리는 수정이를 보며 어떤 마음인지 이미 잘 알기에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었다.

    “그것보다 어서 같이 한잔해요!”

     

    수정이는 내 컵에도 맥주를 부어 가득 채웠다.

     

    “난 너무 많이 부은 거 아냐?”

     

    “에이, 맥주니까 괜찮아요. 짠!”

     

    그렇게 컵을 내게 들이대며 말하는 수정이. 나도 컵을 들어 수정이의 컵에 부딪혔다.

     

    컵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고, 시원한 맥주를 음미하기 위해 입을 댔다.

     

    “크으! 오랜만에 마시니까 시원하고 좋아요.”

     

    수정이는 단번에 잔을 비워내며 탄산의 기운이 느껴졌는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나 역시도 오랜만의 술이라 수정이처럼 한 번에 비우지는 못했지만, 목을 축이면서 넘어가는 감각과 시원함을 즐겼다.

     

    “아앙. 안주 드셔야죠, 원우님.”

     

    작은 치킨 조각의 젓가락을 들며 말하는 수정이. 예전이었다면 부담스러웠겠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먹었다.

     

    “여기 치킨 무도 드셔야죠.”

     

    그렇게 치킨 무까지 내게 먹이고 나니 만족한 듯 자신 또한 양념치킨을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

     

    강현석 집에서 훈련하는 동안 계속 같이 있었지만, 이렇게 여유롭게 보낸 시간은 얼마 없었기에 이 순간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 다 안 드셨네요. 어서 드세요. 제가 또 한 잔 드릴게요.”

     

    “응? 아 그래.”

     

    수정이가 잔을 가리키며 말하자, 얼른 마신 후 앞으로 내밀었다.

     

    다시 잔이 채워졌고, 수정이 또한 자신의 잔을 채웠다.

     

    “짠!”

     

    또다시 잔을 부딪친 후 원샷을 해버리는 수정이.

     

    살짝 술 마시는 속도가 빠르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량이 좀 센 편이야?”

     

    수정이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원우님, 저 S급 헌터 최수정이에요. 겨우 이 정도 술에 제가 취하겠어요? 걱정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아니면 혹시 제가 술에 뻗어버려서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될까 봐 그러시는 건가?”

     

    “절대 그런 거 아니거든!”

     

    은근슬쩍 놀리는 말에 강하게 부정하며 나 역시도 맥주를 마셨다.

     

    ‘저렇게까지 자신감 있게 말할 정도면 뭐 괜찮겠지.’

     

    하지만 이때까지도 몰랐다. 더 마시지 않게 수정이를 말렸어야 했다는 걸.

     

    *

     

    “아뉘이잉, 워누님도 지이이인짜아 너무해에.”

     

    “저기, 수정아? 많이 취한 거 같은데. 이제 그만 마시는 게 좋겠어….”

     

    평소와 달리 제대로 된 말을 구사하지 못하는 수정이. 볼은 평소보다 더 발그레해져 있었고, 눈 또한 살짝 풀린 상태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싶었는데 S급이라고 술까지 다 강한 것은 아니었다. 수정이는 예상보다 훨씬 술이 약했다. 맥주 3잔을 마시고 어지럽다고 하더니 금세 취해버렸다.

     

    “지그음 그게에 중요하안 것이 아니자나요오. 내가 매애앤날 조오타고 조오타고 해도 응? 건드리이지이도오 않으셔었으면서. 강 비서랑 그러언 짓이나 하구우.”

     

    오늘 있었던 일이 많이 충격적이었는지 또 한 번 혼내는 수정이. 게다가 자신의 유혹에 계속해서 넘어오지 않았던 점들이 자존심이 상했었나 보다.

     

    “치잇.”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한 상황에 있던 나를 보던 수정이는 혀를 차더니 흐느적거리며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내 무릎 위에 자신의 몸을 실으며 마주 보는 형태로 앉았다.

     

    수정이의 부드러운 허벅지가 바지 위로 느껴졌고, 눈앞에는 내가 입었을 때와 다른 오리 그림에 시선이 꽂혔다.

     

    평소와는 달리 수정이가 날 내려 보고 있는 상태. 그리고 자주 끼 부릴 때 짓던 표정을 하고 있다.

     

    양손으로 내 목을 감싸며 중심을 잡더니 귀에 자신의 입을 가져다 대고는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자기이. 나랑 있는 거 싫어어?”

     

    술에 취해 부정확한 발음이지만, 귀가 녹아내릴 듯이 애교가 섞여 간드러진 목소리에 심장이 평소보다 과하게 뛰기 시작했다.

     

    만난 이후 처음으로 내게 반말을 하는 수정이가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수정이는 양손에 힘을 주며 끌어안았다. 자연스럽게 내 얼굴은 오리 그림과 충돌했고 얼굴 한가득 채우는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하, 진짜 미치겠네.’

     

    많이 마신 건 아니지만, 알코올이 돌아서일까. 아니면 애초에 오늘따라 수정이를 향한 욕망이 끓어 올라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고,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면서 수정이의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더욱 묻었다.

     

    “읏, 원우님.”

     

    살짝 몸을 움찔하는 수정이. 몸에서 평소의 라벤더 향이 아닌 내가 사용하는 바디 워시의 향이 느껴지니 묘한 기분이 들면서 더욱 흥분감을 고조시켰다.

     

    “조그음만 부드러업게.”

     

    힘을 준 손이 아팠는지 조심스레 요청하는 수정이. 그 말에 힘을 빼고 품을 벗어난 후 수정이를 바라봤다.

     

    수정이 또한 날 바라보고 있었고 서로의 시선이 얽히면서 말하지 않아도 뭘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수정이가 먼저 몸을 살짝 내리며 완전히 내 위에 앉았고, 시선의 높이가 같아지자마자 거침없이 내 입술을 향해 왔다.

     

    평소의 달콤한 키스와 달리 조금은 거칠면서도 짐승처럼 서로를 갈구하는 느낌이었다. 상대의 입술을 깨물기도 하면서 흡입하듯 빨아들이며 입을 맞췄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건지 알지 못한 채 서로를 탐하다가 입을 뗐다.

     

    우리 둘은 숨이 부족한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고, 또다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수정이의 붉은 눈은 좀 전의 열락이 미세하게 남아있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고.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같이 침대가 놓인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평소와 달리 본능적으로 조금은 거칠 수 있지만, 수정이를 침대에 던지듯이 눕혔다.

     

    술 때문에 살짝 피곤한지 눈이 살짝 풀린 상태의 수정이가 아까와 달리 수줍게 물었다.

     

    “저기이…. 원우님. 그거어 있나요? 저어 무서우니까. 처음이기도오 하구우. 안전하게 하고 싶어요오.”

     

    “아, 응. 있어.”

     

    수정이가 말하는 그것은 좀 전에도 확인했기에 자신감 있게 대답했다.

    아무리 달아올랐어도 연인 간 최소한의 매너니까 안심시킬 겸 보여주기로 했다.

     

    서랍을 열어 미리 사둔 대용량의 박스를 꺼냈다. 한 번에 많이 사두는 것이 편리하니까.

     

    다만 문제는 테이프로 여기저기 꽁꽁 싸져 있어 잘 벗겨지지 않았다.

     

    “잠깐만.”

     

    수정이를 돌아보며 한마디 하고는 테이프를 벗겼지만, 그 안에 또 작은 스티로폼으로 감싸져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힘을 주면서 마구 뜯었다. 이런 건 분위기가 생명이라 시간을 끌 수 없었다.

     

    마음이 급해서일까 평소에는 잘 뜯기는 것들이 제대로 뜯어지지 않아 답답했다.

     

    하지만 이내 어렵게 얻어 낸 안전장치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흥분된 목소리로 수정이를 향해 돌아보며 말했다.

     

    “봐봐, 여기 있지?”

     

    “으음….”

     

    하지만 뒤를 돌았을 때 날 반긴 것은 눈을 감은 채 편히 잠들어 있는 수정이의 모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 스토리는 감동 실화라고나 할까..
    물론 제가 아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다음화 보기


           


The Girl I Saved Came Back As An S-rank Hunter

The Girl I Saved Came Back As An S-rank Hunter

내가 구한 그녀가 S급 헌터로 돌아왔다
Score 3.4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s soon as she became an S-rank Hunter, my childhood friend and lover said we should break up. As I was hurting, another S-rank girl came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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