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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하수구.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 안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한다거나, 직업이 관련 직종이거나…… 애초에 중요한 시설이니까 웬만한 사람은 쉽게 들어가지도 못하겠지만.

        

       물론 아제르나 전기는 극사실주의 게임은 아니다. 징그러운 몬스터가 몇 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몬스터 디자인이 그럴 뿐이고, 기본적으로는 평범한 애니메이션풍 캐릭터들이 나오는, 오타쿠를 겨냥한 서브컬쳐 분위기이면서도 ‘대하’라는 말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길고 긴 스토리를 자랑하는 것이 특징인 서브컬쳐계 게임이다.

        

       하수구라고 해서 바퀴벌레가 바닥과 천장을 기어 다니고, 온갖 불결한 것들이 떠다니는 것을 굳이 그래픽으로 구현하지는 않았겠지.

        

       하수도 자체가 제도 전역에 퍼져있는 만큼 그 방대한 크기의 하수도를 전부 다 구현하는 건 무리다. 하지만, 제도 일부가 게임상에 구현되었던 것과 똑같았던 것을 생각하면, 하수도도 그렇게 생겼을 것이다.

        

       처음에는 하수도 설계도 같은 걸 입수해볼 생각이었는데, 성격 급한 나는 일요일 하루 만에 그걸 입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어차피 안에서 길을 잃더라도 시간을 돌리는 것으로 밖으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판단했다.

        

       “…….”

        

       “…….”

        

       어째서인지 내 뒤에 황녀와 왕녀가 따라붙어 버리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레오와 클레어는 다른 의뢰를 처리하러 갔다. 다른 서브 퀘스트라고 해봐야 오늘 새벽에 처리한 그것 이상의 보상이 나오지는 않으니 나는 그 둘을 앞서기 위해 온갖 경우의 수를 다 따져보는 피곤함을 겪을 바에는 차라리 다른 것을 먼저 확인하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원작에서도 정말 엄청나게 성실하게 자기 할 일을 하던 주인공 일행의 성격은 이렇게 게임이 아니라 게임과 매우 닮은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게임 시리즈에서는 종종 여러 사건 때문에 일행이 파티에서 이탈하거나 게임 시작하는 시점에서 다른 지역에 있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그런 상황에도 그 지역에서 열심히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설정이었다.

        

       게임을 제작하는 사람들 기준으로는 자기 자식이나 같은 캐릭터들이다. 무엇보다, 그 캐릭터들의 인기가 골고루 있어야 굿즈라던가, 후속작이라던가 골고루 팔리게 되는 법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히로인이 죽는 선택지를 봤을 때도 조금 낙관적이었고, 플레이어 사이에서도 별로 논란이 되지도 않았다.

        

       그 사망 가능 히로인 중에서는 정말 인기가 많은 히로인도 있었기 때문이다.

        

       후속작 판매량, 그리고 그 모든 중대한 선택지에 대한 루트를 모두 만들어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제작사 규모를 생각하면 히로인 부활은 필연이었다. 몇몇은 인기 캐릭터였지만 무조건 사망하게 되는 클레어마저도 살려낼 거라고 의심하기까지 했었다.

        

       뭐, 아무튼.

        

       그러므로, 주인공은 열심히 구르고 있었는데 꿀 빨고 있었던 히로인이라는 이미지가 생기지 않도록 제작진은 다른 지역으로 가 있는 히로인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설정을 자주 사용했다.

        

       그리고 그 성실하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도 같은 모양이었다.

        

       “황녀님, 그리고 왕녀님.”

        

       나는 하수구 입구 앞에 선 채 내 뒤에 따라붙은 두 사람을 향해서 말했다.

        

       “앨리스.”

        

       “샤를로트라고 불러주세요.”

        

       “…….”

        

       뭔가 대단한 각오를 한 표정이었다면 또 내가 할 말이 없는데, 이 두 사람은 마치 자기가 여기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매우 태연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니, 뭐, 그래. 앨리스야 여기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쳐도, 샤를로트는?

        

       벨부르의 왕녀가 굳이 제도 하수구에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

        

       “이 안은, 두 분께서 생각하시는 것 보다 훨씬 불결하고 불쾌할 수 있습니다.”

        

       아마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불결하고 불쾌할 것이다. 게임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감이라는 게 있을 테니까. 애초에 최적화 더럽게 못 하기로 유명했던 개발사다. 작은 벌레나 쥐가 없었던 이유는 그걸 넣고 싶지 않았다기보다는 그걸 넣으면 그래픽에 비해 프레임이 말도 안 되게 떨어지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내가 직접 본 하수구 들어가는 문만 해도 그렇다. 게임에서는 그냥 일반적인 철문 텍스쳐였던 그곳이, 여기서는 여기저기 녹슬어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주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텍스쳐야 원래 돈 없는 회사가 실사에 가까운 텍스쳐를 만들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그래서…… 적어도 이 안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그래서? 나는 제국의 황녀야. 어떤 불쾌한 공간이라도 제국이라면 내 아래에 있게 될 텐데, 그 가장 높은 곳에 서게 될 내가 그걸 꺼려서 되겠어?”

        

       “…….”

        

       그렇게까지 말을 하면 할 말이 없기는 했다. 앨리스에게 저런 생각을 심어준 건 나였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면 언젠가 한 번 크게 충격받을 텐데. 원작에서도 그랬었고.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아, 아니지. 지금은 클레어가 타락하지 않았으니 앨리스는 그런 광경을 직접 볼 필요는 없으려나?

        

       “…….”

        

       나는 앨리스 옆에 당당하게 서 있는 샤를로트 쪽을 보았다.

        

       “마침 별다른 일정이 없었으니까요. 친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무시할 만큼 벨부르 왕족은 인정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니, 딱히 도와달라고 한 적 없는데.

        

       그저 앨리스와 함께 걷다가 샤를로트를 만났고, 샤를로트는 우리의 이야기를 듣더니 그냥 자연스럽게 따라붙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샤를로트한테는 할 말이 있었다.

        

       “하수도는 중요한 국가시설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외국 분을 들여보내기에는—”

        

       “어머.”

        

       내가 말하는데, 그 도중에 샤를로트가 그런 소리를 내는 바람에 말이 도중에 끊어져 버렸다.

        

       샤를로트의 눈은 내 손을 향해 있었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락픽이었으니까.

        

       그렇다. 종종 해외 RPG에서 잠입 스킬을 찍어 문 따는 데 쓰거나, 이상하게 공포 게임 같은 곳에서 사실상 일회용 마스터키로 나오는 그 물건.

        

       누가 봐도 ‘허락받고’ 들어가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허락받은 적 없다. 애초에 여기는 관련 메인 퀘스트 이후로 들어갈 수 있도록 바뀌는 곳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아직 게임으로 치면 극 초반. 이곳이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한참 남았다.

        

       “요즘 열쇠는 특이하게 생겼군요. 혹시 보안을 위해 열쇠도 일회용으로 만드는 걸까요?”

        

       “…….”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대놓고 꼽주는 표정에, 나는 그냥 말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자물쇠는 다소 특이하게 생겼다. 마법이니 기운이니 하는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튀어나오는 세계관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스팀펑크가 아니겠는가. 황동으로 만들어진 자물쇠는 꽤 견고해 보였다.

        

       하지만 내부 구조는 현대 지구에서 쓰는 것에 비해 훨씬 단순하다.

        

       복잡하게 만들고자 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만들 수 있겠지만, 고작 하수구 아닌가. 굳이 이런 곳에 회중시계 급으로 비싼 자물쇠를 쓸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렇기에 락픽이 쉽게 먹힌다.

        

       신체 능력이 이 게임에 나오는 다른 괴물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는 내 재능을 ‘유틸’리티 쪽으로 확장하기로 결심했다. 그중 하나가 이 자물쇠 따기였다.

        

       원작에서도 중요한 장면에서 자물쇠를 따 문을 여는 장면이 있었으므로, 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결국 나는 자물쇠 따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왜? 나를 그렇게 봐도 내 생각은 바뀌지 않아.”

        

       내 시선이 다시 자기한테 오는 것을 보고, 앨리스가 턱을 치켜들며 그렇게 말했다.

        

       아니, 나는 샤를로트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뭐, 됐다. 어차피 여길 막아둔 건 들어갔다가 길을 잃는 사람이 생기지 않기 위한 이유가 가장 컸으니까. 그렇다고 샤를로트가 이 안에 폭탄이라도 설치할 것도 아니고.

        

       어차피 안에 들어갔을 때 코를 찌르는 냄새가 나면 알아서 도망가겠지.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은 채 자물쇠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자물쇠에 락픽을 꽂아 넣었다.

        

       잠시 그렇게 자물쇠 따기를 시도하다가,

        

       팅—

        

       하는 맑은소리와 함께 락픽이 부러졌다.

        

       자물쇠는 열리지 않았다.

        

       덤으로 부러진 락픽이 열쇠 구멍을 막아버려서 재시도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아.”

        

       “…….”

        

       “…….”

        

       뒤쪽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

        

       그런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대충 상상이 갔다.

        

       나는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생각했다.

        

       다시!

        

       *

        

       찰칵.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자물쇠가 풀렸다.

        

       “참 재주가 많으시네요.”

        

       내가 하수도로 들어가는 관리자용 문을 열자, 샤를로트가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듯 말했다.

        

       샤를로트나 앨리스 모두 검기를 날릴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검사들이긴 하지만, 이런 식의 잔재주는 없는 모양이다. 샤를로트뿐만이 아니라 앨리스도 나를 조금 감탄했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별것 아닙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한 뒤, 하수구로 들어가다가—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가서 뒤의 두 사람이 내 표정을 보지 못한 것이 다행이었다.

        

       아마 내 표정은 형편없이 무너졌을 테니까.

        

       간신히 다시 무표정으로 바꿀 수는 있었지만,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맡은 뒤 진지하게 다시 돌아가는 것을 생각했을 정도다.

        

       “…….”

        

       그리고 그건 나를 뒤따라 들어온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우윽.”

        

       소리가 나오려던 것을 손으로 막았는지, 앨리스의 목소리는 중간에 잘리듯 막혔다.

        

       간신히 표정 관리에 성공한 나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혹시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으시다면 그렇게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내 말에 눈가를 찡그리고 손으로 입을 막고 있던 앨리스가 입가에서 손을 치웠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손 아래 있던 입은 웃고 있었다.

        

       “너야말로, 지금 표정이 말이 아닌데?”

        

       “말이 아닌 표정인가요?”

        

       앨리스의 말에 그 뒤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샤를로트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사실 앨리스의 말이 맞기는 했다.

        

       “혹시 돌아가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돼. 그렇잖아?”

        

       “…….”

        

       앨리스의 그 말에, 나는 다시 뒤로 돌아섰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만약 나 혼자 왔다면 그냥 포기하고 돌아갔겠지만, 앨리스가 저렇게 나오면 나도 포기할 생각이 싹 가신다.

        

       뭐, 누가 먼저 포기할지 한번 해보자고.

        

       *

        

       “그런데, 지금 들고 있는 그 무기는…….”

        

       내가 손에 쥐고 있는 무기를 보고 샤를로트가 물었다.

        

       내가 들고 있는 무기는 평소와 같은 총기는 아니었다. 황동색과 강철로 보이는 부품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것 같은 모양의 쇠뇌였다. 크기 자체는 내가 평소에 들고 다니는 에르겐센 소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에 온갖 크랭크와 톱니바퀴가 복잡하게 자리하고 있어서 최소한의 힘만으로도 차탄을 장전할 수 있었지만, 사실 총기에 비해 장점이라고는 비교적 조용하다는 것 하나뿐이었고, 볼트액션 소총과 비교하더라도 장전 속도, 연사력, 탄속, 내구성 등 뭐 하나 나은 구석이 없었다.

        

       “만약에 대비한 겁니다.”

        

       지금 당장은 ‘냄새’뿐이었지만, 여기는 하수도가 아닌가. 혹시라도 가스가 차 있는 곳이라면 총기를 사용했다가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그 정도로 가스가 차 있는 곳이라면 우리 신체에 먼저 이상이 생기겠지만.

        

       “그런가요?”

        

       다행히 악취는 절대로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머리가 아프거나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가스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더 오래 있고 싶지는 않으니까, 얼른 확인할 것만 확인하고 돌아가자.

        

       나는 빛을 뿜는 마력석 램프를 머리 높이 들면서 다짐했다.

        

       솔직히 혼자 와서 조금 더 돌아다녀 볼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그건 안될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LeBe 님, 후원 감사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언제나 당연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쓰는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저에게 돈과 시간을 써주시는 것이고, 그건 제가 글을 꾸준히 여러분의 입맛에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만에 하나라도 그 기대에서 벗어나거나, 내용이 지루하고 흥미롭지 못하게 되면 여러분도 실망하고 떠나실 거라는 것을 매번 상기하려고 노력합니다. 글 쓰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가 그냥 혼자 블로그같은 곳에 끄적이는 글이 아닌, 여러분의 소중한 돈을 받으며 팔고 있는 상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상품에는 상품가치가 있어야 하는 법이겠죠. 여러분께서 앞으로도 꾸준히 기대하며 읽으실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게다가 그저 글만 읽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후원까지 해주시니 그만큼 그 책임에 무게가 실린다고 생각합니다. 후원이라는 것은 주지 않아도 될 돈을 일부러 줄 정도로 그 글이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후원 창을 열어둔 사람은 저니까요. 제게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요즘 갑작스럽게 순위가 많이 올라서 조금 얼떨떨하네요. 여러분의 그 기대감에 보답해드릴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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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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