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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어지간한 섬보다 크고 넓을 고래 등 위엔 여러 거대한 지형지물이 자리 잡았다.

         

       그중엔 가파른 경사로 하늘을 찌를 듯 솟은 바위산도 있었다. 몇몇 괴조들이 날아다니며 둥지를 짓고 서식했다.

         

       둥지 한 곳에 거대한 아기새 세 마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사람보다 큰 어미새가 먹이를 가져다주길 기다리며 부리를 짹짹거리길 반복했다.

         

       오늘도 먹이가 배달됐다. 하늘섬이라는 새 사냥터를 발견한 덕에 온종일 바쁠 어미새는 금방 떠났지만 아기새들은 서운해하지 않았다. 신기한 분홍색 먹잇감을 쪼기 바빴기 때문이다.

         

       분홍 먹잇감을 둘러싼 아기새들이 부리를 정신없이 움직였다.

         

       삐약, 삐약, 삐약!

         

       “으아아!”

         

       거대한 부리가 파스텔을 쪼아댔다. 분홍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헤집어지고 뒤엉켰다.

         

       “괴롭히지 마아!”

         

       파스텔은 울상으로 양팔을 휘저었다.

         

       부리가 머리를 쿡쿡 찔러댔다.

         

       으아아.

         

       “관상용으로만 보라구우!”

         

       복슬복슬한 아기새들이 쪼기를 멈췄다. 그리곤 파스텔만 한 덩치로 고개를 갸웃했다. 거대하긴 해도 병아리 같았다.

         

       “흐아.”

         

       엉망이 된 파스텔은 옷과 머리를 정리했다. 자신을 둘러싼 거대 아기새들을 둘러보다가 양팔을 파닥였다.

         

       “이제 알겠지?! 파스텔은 먹잇감이 아니야! 엄연한 지성체야!”

       ―삐약?

         

       아기새가 고개를 갸웃했다.

         

       드디어 알아듣는 거야?

         

       휴우, 다행.

         

       아기새가 부리를 움직였다. 부리가 파스텔을 쪼아댔다. 나머지 아기새들이 합류했다.

         

       삐약, 삐약, 삐약!

         

       으아아!

         

       파스텔은 둘러싸여 허우적댔다. 기껏 정돈한 머리카락이 다시 헤집어졌다.

         

       진짜 벚꽃 나무가 된 기분……!

         

       파스텔 살려어!

         

       까치집이 된 파스텔은 허둥대며 둥지 구석으로 도망쳤다. 아기새들이 뒤쫓자 검을 뽑아 겨눴다.

         

       “계속 이러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호르몬 친구를 부르고 말 거라고!”

         

       호르몬 친구 준비됐지?

         

       복슬복슬한 아기새들이 멈칫했다.

         

       선두의 아기새가 고개를 갸웃했다.

         

       ―삐~?

         

       파스텔은 움찔했다.

         

       우앗, 귀여워.

         

       칼끝이 흔들렸다.

         

       흔들흔들흔들.

         

       “아, 알겠지? 너희가 계속 이러면 사나운 파스텔이 당도하는 거야. 무려 귀엽다고 봐준다거나 하지 않는 파스텔이야!”

         

       파스텔은 힘껏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크아앙-!”

         

       완전 무섭.

         

       세상이 벌벌 떨 공포.

         

       ―삐약.

         

       아기새가 천천히 다가왔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에서 사과의 태도가 느껴졌다.

         

       파스텔은 표정이 밝아졌다.

         

       드디어 내 진심이 통했구나?

         

       말도 안 통하는 동물에게도 먹히는 친화력.

         

       이것이 인기인 파스텔?

         

       아기새 세 마리가 파스텔을 둘러쌌다.

         

       ―삐약!

         

       한 마리가 외치자 일시에 부리가 움직였다.

         

       삐약, 삐약, 삐약!

         

       부리들이 파스텔을 쪼아댔다.

         

       우아악!

         

       차마 검을 휘두르지 못한 파스텔은 허우적댔다. 분홍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뜯겼다.

         

       파스텔 살려어!

         

         

         

       #

         

         

         

       파스텔은 지친 상태로 둥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손엔 뜯겨나간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잡혀 있었다. 분홍 실타래가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인기인의 삶이란 이런 걸까…….”

         

       훌쩍.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조난자의 삶이겠지.』

         

       우아, 공감력 제로의 답변.

         

       몇 차례의 고된 대화와 허우적거림 끝에 먹잇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아기새 친구들이 생긴 거다.

         

       정말 힘들었어.

         

       친구 사귀는 일이 원래 이렇게 힘들던가? 악마님 같이 칙칙한 사람은 이런 삶을 사는 걸까?

         

       흐아.

         

       어떻게 그러고 살지?

         

       존경.

         

       파스텔은 둥지에 걸터앉은 채 다리를 흔들었다.

         

       둥지는 수직에 가까운 아찔한 경사 위에 있었다. 지상으로 울긋불긋한 바위산이 내려 보였다. 하얀 바위산 너머론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여기가 고래 등 위에요? 그냥 땅덩어리인데요?”

       『섬이라 생각하는 게 편하다.』

         

       헤에.

         

       진짜 조난되겠는데.

         

       “순순히 물려올 게 아니라 바로 괴조를 잡고 비공정에 돌아갔어야 했으려나요.”

         

       식인 괴조도 아니고 그냥 먹잇감으로 오인받았을 뿐이라 죽이기 좀 망설여져서 순순히 잡혀 왔는데.

         

       ―삐?

         

       아기새가 돌아봤다.

         

       파스텔은 양손을 휘저으며 허둥댔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기새 친구들!”

         

       너희 부모를 죽였어야 했다거나 하는 사악한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

         

       혹시 했다면 못된 호르몬 친구가 한 거야!

         

       끄덕끄덕.

         

       『일반적인 소녀라면 매우 위험할 조난 상황이지만 너라면 큰 문제는 없다. 체력도 좋고 어차피 마석 섭취라 식량 문제도 당장은 크지 않지. 문명의 흔적이 있을 곳까지 빠르게 이동만 하면 된다.』

         

       파스텔은 손날을 눈썹 위에 댔다. 경관을 살피듯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바위 바위, 숲 숲.

         

       “문명의 흔적은 전혀 안 보이는데요?”

       『가다 보면 금방 나올 거다. 순수한 자연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사람의 손을 탄 지 꽤 오래됐어.』

       “그래요?”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비공정의 장거리 항행 기술이 발전하기 전부터 하늘섬은 마족의 성지였지. 바로 이 고래를 타고 하늘섬을 방문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곳은 최소 수백 년 이상은 사람이 오간 곳이야.』

       “그럼 혹시 악마님은 이곳 지리를 아신다거나?”

       『맞다.』

       “와아!”

         

       악마 내비게이션이 있는 파스텔은 조난되지 않아.

         

       파스텔은 흥얼거리다가 둥지 끄트머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려 아기새들을 돌아봤다.

         

       “아기새 친구들!”

       ―삐?

         

       복슬복슬한 아기새들이 바라봤다.

         

       파스텔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양손으로 옆구리를 짚었다.

         

       “비록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짧았을지언정 감정의 깊이는 그 어떤 관계보다 깊었지.”

         

       뜯겨나간 분홍 머리카락의 숫자만큼 말이야.

         

       “하지만 모든 인과 연에는 맺고 끊음이 존재하기 마련이야. 이제 우리도 헤어질 시간을 맞이했어.”

         

       파스텔은 눈가를 훔쳤다.

         

       “슬퍼하지 마, 친구들.”

         

       ―삐약.

         

       아기새들이 물끄러미 보다가 무시하고 자기 할 일을 했다. 부리로 둥지를 콕콕 찌르고 다듬는 일이었다. 떠나는 친구를 배웅하는 것보다 백만 배는 중요한 일처럼 보였다.

         

       아기새가 어디서 난 건지 모를 분홍 실타래를 둥지와 뒤섞었다. 나무와 지푸라기로 이루어진 둥지에 분홍 실타래가 장식됐다.

         

       분홍 실타래가 바람을 따라 흔들렸다.

         

       파스텔의 입이 벌어졌다.

         

       으아아.

         

       내 머리카락……!

         

       내 머리카락으로 집을 장식하고 있어……!

         

       너희가 그러고도 친구야?!

         

       파스텔은 경악하다가 간신히 제정신을 차렸다. 아기새에겐 떠나는 친구의 머리카락을 뜯어서 장식하는 문화가 있을지도 몰랐다.

         

       최선을 다해 머리카락에서 시선을 뗐다.

         

       “어, 어쨌든 헤어질 시간이야. 마지막으로 할 얘기가 없다면 난 이만 갈게, 안녕.”

         

       파스텔은 솔직히 배웅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얘네 친구 아닌 거 같아.

         

       그런데 정말로 머리카락을 뜯어서 장식하는 건 문화에 불과했는지 아기새들이 배웅하듯 다가왔다.

         

       ―삐약! 삐약!

         

       황급한 움직임과 애처로운 울음이었다.

         

       복슬복슬한 아기새가 모여들었다.

         

       오잉.

         

       이렇게나 애절한 배웅을?

         

       파스텔은 울컥해졌다.

         

       역시 문화적 차이에서 나온 오해에 불과했구나!

         

       우린 정말 친구였어!

         

       감동.

         

       파스텔은 애처롭게 들러붙는 아기새들을 둘러봤다.

         

       그러다 둥지 저편 바윗길로 웬 사족보행 야수들이 접근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날렵한 몸매를 가진 재규어들이 능숙하게 바위산을 타고 둥지로 다가왔다. 노란 눈동자가 응시하고 하얀 송곳니가 드러났다. 송곳니를 타고 침이 늘어졌다.

         

       ―삐약! 삐야악!

         

       아기새들이 애처롭게 울었다. 부리로 파스텔의 옷자락을 잡더니 끌어당겼다.

         

       파스텔은 얼결에 끌려갔다. 부리가 등을 밀었다. 소녀는 아기새와 재규어 무리를 가로막듯이 밀려났다.

         

       ―삐야악!

         

       아기새들이 파스텔을 보며 애처롭게 울었다.

         

       파스텔은 벙찐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둥지에 장식된 분홍 머리카락을 보고 사나운 재규어 무리를 본 다음 다시 아기새들을 봤다.

         

       ―삐야악!

         

       아기새들이 애처롭게 울었다.

         

       너희 좀 양심이 없는……?

         

       선두의 재규어가 이를 드러냈다. 재규어들이 둥지로 넘어왔다.

         

       헛.

         

       파스텔은 생긴 게 귀엽지만 않았으면 진작 멸종했을 거 같은 심성의 아기새들을 위해 검을 뽑았다.

         

       “재규어 친구들, 우리 대화로-”

         

       재규어가 달려들었다.

         

       소녀는 옆으로 반걸음 걸었다. 야수의 형상이 스치고 검날이 번뜩였다. 짐승이 절단되며 피보라가 일었다.

         

       재규어 무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덮쳐왔다. 품에서 나이프가 비행했다. 소녀와 아기새에게 달려들던 재규어들을 은빛 궤적이 관통했다. 뚫린 머리에서 핏줄기가 나오고 형상이 무너졌다. 사체들이 소리를 냈다.

         

       파스텔은 손을 털었다. 나이프의 핏물을 허공에서 털어내고 품속에 넣었다.

         

       양손으로 옆구리를 짚고 아기새들을 돌아봤다.

         

       “너희들! 이제 친구의 가치를 알겠지?”

         

       에헴.

         

       푹신푹신한 아기새들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냥 파스텔을 밀치고 지나쳤다.

         

       푹신, 흐억!

         

       철푸덕.

         

       아기새들이 재규어 사체를 부리로 집어 둥지 밖으로 버렸다.

         

       휙휙.

         

       엎어진 파스텔은 서럽게 울상지었다.

         

       “너희 정말 심한 거 아니야?!”

         

       저 나쁜 애들은 생긴 게 귀엽지만 않았으면 진작 멸종했을 거야!

         

       호르몬 친구가 혼쭐을 내줬을 거라고!

         

       아기새가 다가왔다. 파스텔을 대충 밀치더니 근처의 재규어 사체를 갖다버렸다.

         

       다시 엎어진 파스텔은 더 서러워졌다.

         

       으아앙.

         

       “악마니임! 쟤네 좀 혼내주세요! 나쁜 애들이에요! 완전 나쁜 애들!”

         

       소녀는 삐약거렸다.

         

       귀엽지만 않았으면 진작 멸종했을 울음소리였다.

         

       『하아.』

         

       악마가 어쩐지 자괴감이 든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

         

         

         

       나쁜 애들과 헤어진 파스텔은 바위산을 내려오고 숲을 달렸다.

         

       수풀이 방해하자 검날이 번뜩였다. 길이 트이고 분홍 형상이 질주했다. 바위가 가로막자 도약음이 울렸다. 분홍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몸이 회전했다. 공중에서 돌곤 사뿐히 착지해 지면을 박찼다.

         

       개울을 거닐고 야수를 벴다.

         

       어느덧 사람의 흔적을 발견했다.

         

       소녀는 진흙의 신발 자국을 발견하곤 검을 한차례 휘둘렀다. 날에 묻은 야수의 핏물이 털어졌다.

         

       『조난은 끝났군. 이대로 합류하면 된다.』

       “그렇겠네요.”

         

       크래프트 후작은 대강 긍정하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지?』

       “아뇨, 그냥…….”

         

       어차피 조난 당했는데 굳이 정규 루트로 합류할 필요가 있을까?

         

       본래 비공정 진입 루트와는 딴판인 곳에서 튀어나와 상단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영역을 몰래 살펴보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크래프트 후작은 일부러 빙긋 웃었다.

         

       “이렇게 된 거 합류하지 않고 비밀 감사를 실시하죠!”

       『감사? 하늘고래 채집을 위한 명분 만들기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려던 건가?』

         

       악마가 의아해했다.

         

       “에이, 악마님. 제가 가진 직책이 몇 개인데 사익만 추구해서야 쓰겠어요?”

         

       아무리 생계형 비리라 해도 말이다.

         

       『자리엔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훌륭한 생각이다. 마침 하늘고래는 치안의 공백지라 각종 범법 행위가 자행될 테니 감사할 필요가 충분히 있다.』

       “맞아요.”

         

       대강 긍정하며 몸을 숙여 진흙을 펐다. 그리곤 분홍 머리카락에 들이부었다. 진흙이 분홍색을 뒤덮었다.

         

       『어린 크래프트?』

         

       꼼꼼히 색을 더럽혔다. 하얗고 분홍 진 옷감이 칙칙한 색에 물들었다.

         

       “제일 처음은 규모가 가장 큰 프레지 상단부터 살펴볼까요. 얼마나 많은 위법이 있을지 기대되네요.”

         

       교단의 끄나풀이든 뭐든 하나만 걸려라.

         

       감추고 조작해 흔적과 심증만 남았을지라도 상관없었다.

         

       죄목은 붙이기 나름이니까.

         

       크래프트 후작은 비밀 감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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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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