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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카렌과 이안이 요정과 은화를 다녀간 이후.

       

       엘리와 리디아는 치사하게 마도구까지 써가며 나 몰래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이단심문관이 엘리를 찾아온 이유에 관한 이야기겠지.

       

       나를 신전으로 보내느니 마느니 하는 건 딱 잘라 거절했기도 하고, 어찌됐건 내 이야기니 나한테 숨길 이유가 없다.

       

       그 때문인지 엘리는 가끔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리디아도 나를 보며 멍때리는 일이 늘었다.

       

       물론, 엘리는 조금만 장난쳐도 재밌게 반응했고, 리디아는 적당히 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는 점은 여전했지만.

       

       그렇게 뭔가 바뀐 듯,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지던 도중. 난데없이 레몬과 애플이 요정과 은화를 박차고 들어왔다.

       

       “요나 어딨슴까?”

       “두목이 불러서 왔슴다!”

       

       “으엉?”

       

       시리얼의 개념을 알려주자, 이걸 또 어떻게 재현해 온 엘리의 시작품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분명 나를 불렀음에도 눈은 몸에 딱 달라붙는 체조복을 입고 폴 댄스를 추는 종업원 형님들에게 고정시킨 채로 걸어오는 둘.

       

       걸음걸음마다 다른 모험가랑 부딪히고, 의자에 발이 걸리고, 식탁에 허리를 찧으면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 고개.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엘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멍하니 폴 댄스에 집중하고 있었고, 리디아는 두 눈을 가린 척 손가락 사이로 감상하는 중이었다.

       

       “흐응.”

       

       뭐, 이해는 한다. 나라도 누가 전신 타이츠를 입고 폴댄스를 추고 있으면 거기에 시선이 가겠지.

       

       하지만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놀리고 싶은 건 놀리고 싶은 거다.

       

       팔을 크게 뻗어 엘리의 빈 소매를 꾹꾹 잡아당겼다.

       

       “으햣!?”

       

       화들짝 놀란 엘리가 늑대 귀와 꼬리를 발딱 세우며 괴성을 지른다. 그리고 삐걱이는 움직임으로 이쪽을 돌아보기까지.

       

       “엘리. 이런 거 좋아하셨군요?”

       

       “자, 잠깐 내 말을 들어 봐 요나야. 이건 여자라면 어쩔 수 없는…!”

       

       “알아요 알아. 애초에 저 복장이나 춤 전부 제가 알려준 거잖아요. 세상 모든 여자를 꼬실 생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뭐?”

       

       “몰랐나요? 반응을 보아하니 꽤 엘리 취향인 것 같은데…오늘 밤에 어때요? 형들 다 퇴근하면 1층은 우리끼리만 써도 되잖아요. 첫 경험이 꼭 침대일 필요는 없죠.”

       

       “어? 으, 어아?”

       

       인간의 말을 잃은 엘리. 고장난 그녀를 내버려 두고 이번에는 리디아 쪽을 돌아보았다.

       

       분명 아까까지 손가락 틈새 사이로 볼 거 다 보고 있었으면서 지금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꼼꼼하게 가린 자세다.

       

       “이제와서 그럴 필요 없어요 리디아 님. 그냥 당당하게 봐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아무것도 못 봤어.”

       

       “에이. 이게 뭐 별거라고. 서로 알 거 다 아는 나이잖아요?”

       

       “난 그렇지만 요나는 아냐.”

       

       “그럼 제 눈을 가려야지 왜 리디아 님의 눈을 가린 거죠? 아하? 뭔가 찔리는 게 있군요?”

       

       “…없어.”

       

       “어디 보자. 리디아 님이 이렇게 필사적으로 숨길 정도의 일이 뭘까요. 아무리 고결한 기사님이라도 지금껏 매일 같이 요정과 은화에 드나들었으면서 오늘에 한해 이런 반응이라…역시 그거죠?”

       

       “…….”

       

       자신의 눈을 가린 채, 움츠러든 리디아.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종업원 형들을 본 게 아니라 제가 저런 옷을 입고 저런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한 거군요?”

       

       “……읏.”

       

       작게 잇소리를 내는 리디아. 일부러 살살 바람을 불어가며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옷을 입은 것도, 춤을 가르친 것도 아니지만…그래도 어떤 식인지는 제 입으로 엘리에게 설명했죠. 리디아 님은 당시에 바로 옆에서 같이 듣고 있었고요.”

       

       “아, 아냐….”

       

       “그때부터 상상하신 거죠? 제 야한 모습을.”

       

       “나는…그게….”

       

       “너무하네요 리디아 경. 아무리 제가 고귀한 영식이 아니라지만 그런 눈으로 보고 있을 줄이야.”

       

       “……!”

       

       거기까지 들은 리디아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고는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아냐! 그런 건 진짜 아냐…!”

       

       “에.”

       

       상상 이상으로 절박한 분위기에 흠칫했으나, 이내 거리를 벌리며 활짝 웃어보였다.

       

       “서프라이즈~ 농담이에요 농담! 리디아 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정말?”

       

       “정말요 정말요.”

       

       “그럼 다행.”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는 리디아. 잘은 모르겠지만, 방금 전의 농담 어딘가가 그녀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리라.

       

       경이라고 부른 점은 지적하지 않는 걸 보아, 내용의 문제인 건가. 일단 이건 기억해 두고 다음에는 신경 써서 조심해야지.

       

       장난은 언제나 선을 잘 지켜야 한다. 리디아랑은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으니까.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프로토타입 시리얼을 마저 먹으려던 순간.

       

       “요나 찾았슴다!”

       “중요한 일임다!”

       

       마침내 레몬과 애플이 내가 있는 테이블까지 도착했다.

       

       요정과 은화가 제법 큰 가게긴 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정도의 규모는 아닌데.

       

       고개를 들어보자, 아니나 다를까 종업원 형들의 공연이 끝나있었다. 이 자식들. 봉 춤에 정신이 팔려 하려던 일을 깜빡하고 있었구만? 그래 놓고 중요한 일은 무슨.

       

       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올 일이라면 짐작 가는 게 하나 뿐이라 관대하게 봐주기로 했다.

       

       “이브 씨에게 맡긴 물건이 완성됐나요?”

       

       “헉! 어케 알았슴까?”

       “요나도 두목이랑 비슷한 능력이 있는 검까?”

       

       “저나 이브 씨한테 특별한 힘이 있는 게 아니라 레몬과 애플이 지나치게 단순한 걸 수도 있죠.”

       

       “아님다! 저 완전 복잡한 여자임다!”

       “그렇슴다! 레몬은 몰라도 저는 똑똑함다!”

       

       배신감을 느낀 레몬과 꿋꿋하게 선을 긋는 애플이 서로 투닥이기 시작할 무렵. 먹던 그릇을 내려다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리. 저 잠깐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요. 아마 저녁쯤에 올 거예요.”

       

       “어? 잘 다녀와?”

       

       “시리얼. 만들어 준 건 고마운데 맛은 별로네요. 다음에는 민트초코 맛을 한번 다시 만들어봐요. 리디아 님도 내일 만나요!”

       

       “응….”

       

       “…내일 봐.”

       

       아직도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대답하는 둘을 뒤로하고 요정과 은화를 빠져나왔다.

       

       따라 나온 레몬과 애플이 가게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두 분에게 무슨 짓을 한 검까?”

       “정신계 마법도 쓸 줄 알았던 검까?”

       

       “정신 마법은 마탑에서 발급한 자격증이 있어야만 쓸 수 있잖아. 그건 아니고 그냥….”

       

       잠시 말을 고르다 천천히 내뱉었다.

       

       “가정의 기강을 바로잡았지.”

       

       “가정이 없어서 잘 모르겠슴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고아였지 말임다.”

       

       “레몬과 애플 중 누가 언니인지 결판을 냈다고 생각하면 돼.”

       

       “허어억!”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슴다….”

       

       서로를 견제하듯 으르렁거리는 레몬과 애플. 그 둘을 데리고 만물상 에덴으로 향했다.

       

       ***

       

       화려한 거리. 화려한 건물. 화려한 사람들. 모든 것이 크고 반짝반짝한 가운데 홀로 칙칙한 가게는 되려 시선을 끌었다.

       

       딸랑-!

       

       만물상 에덴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브가 예의 자리에 앉아 수상쩍은 미소로 반겨주었다.

       

       “이렇게나 헐레벌떡 뛰어오시다니…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이미 늦었다(X)

       

       땀에 젖은 모습 쪼아!(O)

       

       이젠 시작부터 맛이 간 뇌내 번역기를 무시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당연하죠. 제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레몬과 애플에게 듣자마자 바로 뛰어왔지 뭐예요.”

       

       “어머? 조금 뜸 들이며 애태워 볼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많이 화나시려나요?”

       

       “제 흐트러진 모습은 따로 얼마든 보여드릴 테니 우선 물건부터…!”

       

       나를 한차례 위아래로 훑어 보고는 의미심장하게 혀로 아랫입술을 할짝이는 이브.

       

       “…알겠습니다. 약속은 제대로 지켜주시리라 믿죠.”

       

       그리 말하고는 허공에 손을 집어넣는다. 공간계 아티팩트인가? 이브의 나이와 실력을 생각해 보면 그냥 아공간 마법을 익힌 걸지도 모른다.

       

       어깨까지 깊게 쑤신 허공에서 내 팔뚝보다 조금 큰 상자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스으윽.

       

       그대로 밀어서 상자를 건네는 이브. 멍하니 이브와 상자를 번갈아 바라보자, 실눈이 한층 깊어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위험한 약이라도 권유하는 것 같지만 평범한 의뢰품을 꺼내주는 거라는 걸 잊지 말자.

       

       “후으.”

       

       깊게 심호흡하고는 상자에 손을 댔다. 그러자 여기저기에 새겨진 문양이 빛나며 하나로 이어졌다. 뒤이어 들려오는 작은 소리.

       

       찰칵.

       

       “이건?”

       

       “귀한 물건이니 요나 씨만 열 수 있는 상자에 보관한 거예요.”

       

       “…그런 건 제 마력이나 신체 일부가 필요하지 않나요?”

       

       “저번에 오셨을 때 흘리고 가신 머리카락을 이용했죠. 요나 씨도 참. 칠칠치 못하시다니까요?”

       

       “…….”

       

       누가 봐도 미친 스토커의 발언. 하지만 분명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나를 걱정하는 내용일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악용할 수도 있으니 좀 더 주의하라는 그런……그런 거 맞겠지?

       

       고장난 뇌내 번역기를 다시 켤까말까 고민한 끝에 상자나 열기로 했다.

       

       이브가 수상쩍은 건 내가 직접 설정한 일이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그런 것보다 새 장비다.

       

       두근 두근.

       

       가챠를 돌릴 때와 비슷한 소리로 박동하는 심장. 전신의 감각이 한껏 예리해진 느낌에 절로 헤실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것만 있으면…!”

       

       지금껏 위력이 부족해 상대하기 힘들었던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어쩌면 1층 계층 수호자를 상대로 충분한 딜을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한 번에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는 유니콘의 뿔로 만든 단검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처녀 반드시 죽이는 무기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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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EP.47





       카렌과 이안이 요정과 은화를 다녀간 이후.


       


       엘리와 리디아는 치사하게 마도구까지 써가며 나 몰래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 이단심문관이 엘리를 찾아온 이유에 관한 이야기겠지.


       


       나를 신전으로 보내느니 마느니 하는 건 딱 잘라 거절했기도 하고, 어찌됐건 내 이야기니 나한테 숨길 이유가 없다.


       


       그 때문인지 엘리는 가끔 심각한 표정을 지었고, 리디아도 나를 보며 멍때리는 일이 늘었다.


       


       물론, 엘리는 조금만 장난쳐도 재밌게 반응했고, 리디아는 적당히 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는 점은 여전했지만.


       


       그렇게 뭔가 바뀐 듯,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나날들이 이어지던 도중. 난데없이 레몬과 애플이 요정과 은화를 박차고 들어왔다.


       


       “요나 어딨슴까?”


       “두목이 불러서 왔슴다!”


       


       “으엉?”


       


       시리얼의 개념을 알려주자, 이걸 또 어떻게 재현해 온 엘리의 시작품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분명 나를 불렀음에도 눈은 몸에 딱 달라붙는 체조복을 입고 폴 댄스를 추는 종업원 형님들에게 고정시킨 채로 걸어오는 둘.


       


       걸음걸음마다 다른 모험가랑 부딪히고, 의자에 발이 걸리고, 식탁에 허리를 찧으면서도 절대 꺾이지 않는 고개.


       


       슬쩍 주변을 둘러보자 엘리도 다른 사람들처럼 멍하니 폴 댄스에 집중하고 있었고, 리디아는 두 눈을 가린 척 손가락 사이로 감상하는 중이었다.


       


       “흐응.”


       


       뭐, 이해는 한다. 나라도 누가 전신 타이츠를 입고 폴댄스를 추고 있으면 거기에 시선이 가겠지.


       


       하지만 이해하는 건 이해하는 거고 놀리고 싶은 건 놀리고 싶은 거다.


       


       팔을 크게 뻗어 엘리의 빈 소매를 꾹꾹 잡아당겼다.


       


       “으햣!?”


       


       화들짝 놀란 엘리가 늑대 귀와 꼬리를 발딱 세우며 괴성을 지른다. 그리고 삐걱이는 움직임으로 이쪽을 돌아보기까지.


       


       “엘리. 이런 거 좋아하셨군요?”


       


       “자, 잠깐 내 말을 들어 봐 요나야. 이건 여자라면 어쩔 수 없는…!”


       


       “알아요 알아. 애초에 저 복장이나 춤 전부 제가 알려준 거잖아요. 세상 모든 여자를 꼬실 생각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뭐?”


       


       “몰랐나요? 반응을 보아하니 꽤 엘리 취향인 것 같은데…오늘 밤에 어때요? 형들 다 퇴근하면 1층은 우리끼리만 써도 되잖아요. 첫 경험이 꼭 침대일 필요는 없죠.”


       


       “어? 으, 어아?”


       


       인간의 말을 잃은 엘리. 고장난 그녀를 내버려 두고 이번에는 리디아 쪽을 돌아보았다.


       


       분명 아까까지 손가락 틈새 사이로 볼 거 다 보고 있었으면서 지금은 차마 못 보겠다는 듯 꼼꼼하게 가린 자세다.


       


       “이제와서 그럴 필요 없어요 리디아 님. 그냥 당당하게 봐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아무것도 못 봤어.”


       


       “에이. 이게 뭐 별거라고. 서로 알 거 다 아는 나이잖아요?”


       


       “난 그렇지만 요나는 아냐.”


       


       “그럼 제 눈을 가려야지 왜 리디아 님의 눈을 가린 거죠? 아하? 뭔가 찔리는 게 있군요?”


       


       “…없어.”


       


       “어디 보자. 리디아 님이 이렇게 필사적으로 숨길 정도의 일이 뭘까요. 아무리 고결한 기사님이라도 지금껏 매일 같이 요정과 은화에 드나들었으면서 오늘에 한해 이런 반응이라…역시 그거죠?”


       


       “…….”


       


       자신의 눈을 가린 채, 움츠러든 리디아. 판결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불안해 보이는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종업원 형들을 본 게 아니라 제가 저런 옷을 입고 저런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한 거군요?”


       


       “……읏.”


       


       작게 잇소리를 내는 리디아. 일부러 살살 바람을 불어가며 말을 이었다.


       


       “제가 직접 옷을 입은 것도, 춤을 가르친 것도 아니지만…그래도 어떤 식인지는 제 입으로 엘리에게 설명했죠. 리디아 님은 당시에 바로 옆에서 같이 듣고 있었고요.”


       


       “아, 아냐….”


       


       “그때부터 상상하신 거죠? 제 야한 모습을.”


       


       “나는…그게….”


       


       “너무하네요 리디아 경. 아무리 제가 고귀한 영식이 아니라지만 그런 눈으로 보고 있을 줄이야.”


       


       “……!”


       


       거기까지 들은 리디아가 얼굴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우고는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질 쳤다.


       


       “아냐! 그런 건 진짜 아냐…!”


       


       “에.”


       


       상상 이상으로 절박한 분위기에 흠칫했으나, 이내 거리를 벌리며 활짝 웃어보였다.


       


       “서프라이즈~ 농담이에요 농담! 리디아 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정말?”


       


       “정말요 정말요.”


       


       “그럼 다행.”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는 리디아. 잘은 모르겠지만, 방금 전의 농담 어딘가가 그녀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리라.


       


       경이라고 부른 점은 지적하지 않는 걸 보아, 내용의 문제인 건가. 일단 이건 기억해 두고 다음에는 신경 써서 조심해야지.


       


       장난은 언제나 선을 잘 지켜야 한다. 리디아랑은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으니까.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프로토타입 시리얼을 마저 먹으려던 순간.


       


       “요나 찾았슴다!”


       “중요한 일임다!”


       


       마침내 레몬과 애플이 내가 있는 테이블까지 도착했다.


       


       요정과 은화가 제법 큰 가게긴 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 정도의 규모는 아닌데.


       


       고개를 들어보자, 아니나 다를까 종업원 형들의 공연이 끝나있었다. 이 자식들. 봉 춤에 정신이 팔려 하려던 일을 깜빡하고 있었구만? 그래 놓고 중요한 일은 무슨.


       


       하지만 여기까지 찾아올 일이라면 짐작 가는 게 하나 뿐이라 관대하게 봐주기로 했다.


       


       “이브 씨에게 맡긴 물건이 완성됐나요?”


       


       “헉! 어케 알았슴까?”


       “요나도 두목이랑 비슷한 능력이 있는 검까?”


       


       “저나 이브 씨한테 특별한 힘이 있는 게 아니라 레몬과 애플이 지나치게 단순한 걸 수도 있죠.”


       


       “아님다! 저 완전 복잡한 여자임다!”


       “그렇슴다! 레몬은 몰라도 저는 똑똑함다!”


       


       배신감을 느낀 레몬과 꿋꿋하게 선을 긋는 애플이 서로 투닥이기 시작할 무렵. 먹던 그릇을 내려다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엘리. 저 잠깐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갔다 올게요. 아마 저녁쯤에 올 거예요.”


       


       “어? 잘 다녀와?”


       


       “시리얼. 만들어 준 건 고마운데 맛은 별로네요. 다음에는 민트초코 맛을 한번 다시 만들어봐요. 리디아 님도 내일 만나요!”


       


       “응….”


       


       “…내일 봐.”


       


       아직도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니 대답하는 둘을 뒤로하고 요정과 은화를 빠져나왔다.


       


       따라 나온 레몬과 애플이 가게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두 분에게 무슨 짓을 한 검까?”


       “정신계 마법도 쓸 줄 알았던 검까?”


       


       “정신 마법은 마탑에서 발급한 자격증이 있어야만 쓸 수 있잖아. 그건 아니고 그냥….”


       


       잠시 말을 고르다 천천히 내뱉었다.


       


       “가정의 기강을 바로잡았지.”


       


       “가정이 없어서 잘 모르겠슴다.”


       “기억이 있을 때부터 고아였지 말임다.”


       


       “레몬과 애플 중 누가 언니인지 결판을 냈다고 생각하면 돼.”


       


       “허어억!”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슴다….”


       


       서로를 견제하듯 으르렁거리는 레몬과 애플. 그 둘을 데리고 만물상 에덴으로 향했다.


       


       ***


       


       화려한 거리. 화려한 건물. 화려한 사람들. 모든 것이 크고 반짝반짝한 가운데 홀로 칙칙한 가게는 되려 시선을 끌었다.


       


       딸랑-!


       


       만물상 에덴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브가 예의 자리에 앉아 수상쩍은 미소로 반겨주었다.


       


       “이렇게나 헐레벌떡 뛰어오시다니…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이미 늦었다(X)


       


       땀에 젖은 모습 쪼아!(O)


       


       이젠 시작부터 맛이 간 뇌내 번역기를 무시하며 씨익 웃어보였다.


       


       “당연하죠. 제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레몬과 애플에게 듣자마자 바로 뛰어왔지 뭐예요.”


       


       “어머? 조금 뜸 들이며 애태워 볼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많이 화나시려나요?”


       


       “제 흐트러진 모습은 따로 얼마든 보여드릴 테니 우선 물건부터…!”


       


       나를 한차례 위아래로 훑어 보고는 의미심장하게 혀로 아랫입술을 할짝이는 이브.


       


       “…알겠습니다. 약속은 제대로 지켜주시리라 믿죠.”


       


       그리 말하고는 허공에 손을 집어넣는다. 공간계 아티팩트인가? 이브의 나이와 실력을 생각해 보면 그냥 아공간 마법을 익힌 걸지도 모른다.


       


       어깨까지 깊게 쑤신 허공에서 내 팔뚝보다 조금 큰 상자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스으윽.


       


       그대로 밀어서 상자를 건네는 이브. 멍하니 이브와 상자를 번갈아 바라보자, 실눈이 한층 깊어지며 고개를 끄덕인다.


       


       …위험한 약이라도 권유하는 것 같지만 평범한 의뢰품을 꺼내주는 거라는 걸 잊지 말자.


       


       “후으.”


       


       깊게 심호흡하고는 상자에 손을 댔다. 그러자 여기저기에 새겨진 문양이 빛나며 하나로 이어졌다. 뒤이어 들려오는 작은 소리.


       


       찰칵.


       


       “이건?”


       


       “귀한 물건이니 요나 씨만 열 수 있는 상자에 보관한 거예요.”


       


       “…그런 건 제 마력이나 신체 일부가 필요하지 않나요?”


       


       “저번에 오셨을 때 흘리고 가신 머리카락을 이용했죠. 요나 씨도 참. 칠칠치 못하시다니까요?”


       


       “…….”


       


       누가 봐도 미친 스토커의 발언. 하지만 분명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라 나를 걱정하는 내용일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악용할 수도 있으니 좀 더 주의하라는 그런……그런 거 맞겠지?


       


       고장난 뇌내 번역기를 다시 켤까말까 고민한 끝에 상자나 열기로 했다.


       


       이브가 수상쩍은 건 내가 직접 설정한 일이니 당연하지 않겠는가. 지금은 그런 것보다 새 장비다.


       


       두근 두근.


       


       가챠를 돌릴 때와 비슷한 소리로 박동하는 심장. 전신의 감각이 한껏 예리해진 느낌에 절로 헤실거리는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것만 있으면…!”


       


       지금껏 위력이 부족해 상대하기 힘들었던 몬스터를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 어쩌면 1층 계층 수호자를 상대로 충분한 딜을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한 번에 상자를 열었다.


       


       그곳에는 유니콘의 뿔로 만든 단검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비처녀 반드시 죽이는 무기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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