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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세실리아 님 식사입니다.”

        “어머, 이건 뭔가요?”

        “교국 측에서 보내온 선물입니다. 듣기로는 선어를 바람에 말려 보존성을 높인 식품이라 하더군요.”

       

        그것을 자신이 개발한 특제 양념에 버무렸다며 조리장이 접시를 내려놓았다.

        식탁에 올려진 붉은 덩어리를 바라보는 세실리아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태양의 적’을 토벌하기 위해 교국에 머무르는 동안 제공받은 식사는 모조리 최악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식은 죄악이라는 성신의 가르침에 따라 그곳 사제들은 차마 음식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괴식을 일상적으로 먹곤 했다.

       

        스프에 섞은 밥, 치약 맛 나는 아이스크림, 형형색색의 닭튀김 등…….

        아니나 다를까, 조심스레 포크를 들어 정체불명의 생선 조림을 입으로 가져간 그녀는 끔찍한 식감과 목넘김에 몸을 떨었다.

        잘만 하면 기청으로 되살릴수도 있을 것만 같은 접시 위의 흉물.

        기껏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생선도 죽어서 이런 모욕을 당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맛이었다.

       

        “욱.”

        “세실리아 님?”

        “다른 음식은 없나요? 아무래도 제 입맛에는 영…….”

        “죄, 죄송합니다 그게 사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조리장.

        뒤이어 그는 땀을 뻘뻘 흘리며 저택에 들어온 식자재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업체에서 배송을 누락해 이것을 제외하곤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없었습니다!”

        “…….”

        “1층에 있는 구내식당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 됐습니다. 모쪼록 다음에는 이런 실수가 없도록 철저하게…….”

       

       

       

        *

        ====

        [이 버튼을 누르면 평소 싫어했던 고닉의 게시글 하나가 전술핵으로 바뀝니다]

       

        (버튼) – 150P

       

        누르실?

       

        — 바로 누름

        — 재봉틀 가져와라

        — 씨발아 나까지 피폭되잖아!!

        — 파딱 빨리 일해!!!

        ====

        ====

        [여기 버튼이 하나 있습니다]

       

        (버튼) – 790P

       

        별 건 없고 누르면 기분이 좋아져요~

       

        — 이건 뭔데?

        — 아 최소한 설명이라도 써놓으라고 ㅋㅋㅋㅋ

        —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포인트 사기 아님?

         ㄴ 10분 뒤에 암컷절정하는 버튼이에요~

         ㄴ ㅅㅂ?

         ㄴ 좆됐다 열 번 눌렀는데

         ㄴ 열 번? 개부럽네

         ㄴ ?

         ㄴ 님아

        ====

        ====

        [여기 버튼 하나가 있습니다]

       

        (버튼) – 10P

       

        아직 설명 안 끝났어 그만 눌러!!!

       

        — 응 어림도 없지 바로 무지성 연타함 ㅋㅋㅋ

        — 고작 10포인트? 일단 찍먹해 봄

        — 걍 눌러놓고 뭔 일 생기는지 기다리는 거 자체가 재밌다고 ㅋㅋㅋㅋ

        — ㄹㅇ 뇌 녹는 기분이네 이거

        ====

        ====

        머리깨져도메테오

        [이 버튼을 누르면 메테오가 얼음마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마법사들 머리 위로 메테오가 하나씩 떨어져요]

       

        (버튼) – 1,500P

       

        다들 누르세요 빨리

        ====

        ====

        말벌단수장

        [이 버튼을 누르면 무고한 꿀벌이 하나 죽습니다]

       

        사실 버튼은 없습니다

        무고한 꿀벌 같은 것도 없습니다

        이 혼란을 틈타 꿀벌단을 멸절시킨다

       

        가자 사냥의 시간이다

       

        — 난 말벌단이야~ 난 꿀벌을 죽일 거야~ 난 말벌단이야~ 난 꿀벌을 죽일 거야~ 난 말벌단이야~ 난 꿀벌을 죽일 거야~ 난 말벌단이야~ 난 꿀벌을 죽일 거야~

        — 갤러리가 혼잡해지니까 온갖 악질들 다 튀어나오네 ㅋㅋㅋㅋ

        — 우이이잉…… 아직 게시판도 못 판 것들이 성격만 급한 거에요~

         ㄴ 부이이잉…… 포인트 없어서 버튼도 못 만드는 말벌단 따위 살충제로 박멸하는 거에요~

        — 주딱주딱아 대체 뭘 만든 거니…….

         ㄴ 글쎄…… 파멸?

        ====

       

        “으아악! 미니 메테오다!”

        “내가 궁금하다고 아무거나 막 누르지 말라고 했잖아!”

        “어디 가? 이제 곧 수업 시작인데.”

        “나, 나 잠시 화장실 좀……!”

        “출석은 해야지 너 차원유리 과목 한 번만 더 강의실 못 찾으면 유급이잖아.”

        “아, 안 돼! 이거 놔! 오옥, 오고고옥!!”

       

        개판이군.

        기어코 인세에 도래해 버린 지옥도를 걸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버튼 기능은 의외로 밸런스를 굉장히 신경 써서 만든 마법이었다.

        기본적으로 갤러리에서 활동할수록 쌓이는 포인트가 있어야 하고, 원하는 요구사항이 높아질수록 제작에 필요한 마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렇기에 딸깍 한 번으로 타 차원의 외신을 불러 온다거나, 진짜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설계되어 있다.

       

        무한정에 가까운 포인트를 보유하고 있는 나조차 마나의 총량이 너무 작기에 사기적인 능력은 못 만든다고 봐야 했다.

       

        “오늘은 먹을 게 하나도 없는 것이에요. 이거라도…… 히끼야아악!!?”

       

        기껏해야 마리엘이 먹을 코다리조림 옆에 ‘오징어인 척하는 도라지’ 반찬을 추가하는 정도.

       

        구내식당에서 고통받는 그녀의 모습을 뒤로하고 20층의 시련에 도전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가는 중에 살살이가 허리춤에서 부르르 떨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주ㄷ닥

        “왜 살살아?”

        — ㄴㅏ ㅍㅗ인트 부ㅈㅗㄱㅎㅐ

       

        나는 녀석의 손잡이에 묶인 위치노트 조각을 풀어서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봤다.

        조잡하고 작은 글씨라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누르면 본래 육체로 돌아가는 버튼’이었다.

        허나 전직 도배충이었던 살살이는 게시글에 추천을 거의 받은 적이 없어 포인트가 부족했다.

        또한 백 년 동안 봉인된 녀석의 육체를 버튼 하나로 되찾기엔 터무니 없는 마나가 요구되었다.

       

        “이런 조건은 구현이 불가능해. 범위를 좁히고 패널티를 부여하면 모를까.”

        — ㅇㅓㄸㅓㅎ게?

        “예를 들어 이런 거지.”

       

        모든 술식은 인과가 상동(相同)해야 한다.

        그 법칙에서 벗어난 마법은 오직 ‘저주’ 뿐이다.

       

        마리엘이 점심식사로 고통받는 대신 퍼리충 하나가 정상성욕을 갖게 되는 것처럼.

        품삯이 부족하다면 대신 다른 대가를 끼워 넣으면 된다.

        나는 녀석이 본래의 몸을 되찾을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인 조건을 추가해 건네 주었다.

        그렇다 해도 살살이는 본래 저명한 마법사였기에 완전히 부활하는 건 무리였다.

       

        “이걸 누르면 토비의 머리카락이 천 개씩 빠지는 대신 네가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시간은 대략 삼십 분 정도.”

        — …….

        “어떡할래? 참고로 토비는 며칠 뒤에 다른 대학원생과 소개팅이…….”

        — ㅎㅏㄹㄹㅐ

       

        오빠의 미래 따위 전혀 개의치 않고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누르는 살살이.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버튼) – 1,700,000P

        ====

       

        — 주ㄷ닥

        — ㅍㅗ인트 부ㅈㅗㄱ해

       

        포인트를 모으는 방법은 간단하다.

        갤러리에서 글과 댓글을 작성해 추천을 많이 받거나, 아니면 마법제 같은 이벤트가 있을 때 베팅에 성공하거나.

        허나 지금껏 살살이가 모은 포인트는 겨우 10만 남짓.

        살려달라는 게시글만 7만개를 넘게 써온 것에 비하면 굉장히 적은 양이었다.

       

        “그러네, 이거 어떡하지?”

       

        포인트야 내가 개인 간 거래 기능을 넣지 않았을 뿐, 게시판을 만들 때처럼 유동적으로 건네줄 수도 있다.

        허나 상대방이 가장 원하는 것이 내 손에 있을때야 말로 최적의 조건에서 협상을 할 수 있는 법.

        나는 낙심한 녀석의 검신을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요즘 관리 안 되는 게시판이 늘어나면서 파딱들이 힘들어하는 중이거든. 그렇다고 방치하자니 저번처럼 열차 테러 같은 걸 작당할 지도 모르고 말이야.”

        — 살?

        “네가 그런 게시판들 좀 통째로 관리해주면 내가 포인트 모으는 걸 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때?”

       

        하루에 고작 20시간 밖에 접속하지 못하는 나와 달리 녀석은 먹지도 자지도 않고 모든 시간을 갤질에 할애할 수 있다.

        일종의 봇처럼 선 넘는 게시글만 보고해도 내 걱정의 절반은 덜 수 있을 것이다.

       

        — ㅎㅏㄹ……ㄹㅐ

        “그래그래, 그럼 앞으로 24시간 갤러리에 상주하는 거다?”

        — ㅅㅣ급으ㄴ?

        “음, 요즘 경기도 어렵고 하니 시간 당 1ㅍ…….”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칼끝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생각해보니 녀석은 밤중에 침대에서 유일하게 날 암살할 수 있는 존재였다.

       

        “백 포인트 줄게. 예전에 본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약속 했으니 이 정도는 해줘야지.”

        — 조ㅇㅏ 주ㄷ닥 사라ㅇ

       

        허공에서 계약서가 툭! 하고 떨어졌다.

        소환학파답게 작은 거래에도 증거를 남기려는 녀석의 치밀함이 느껴졌다.

        적당히 왼손으로 꼬불꼬불한 싸인을 하고 나니 어느덧 마력 승강기가 20층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배낭에서 미궁의 핵을 꺼내며 정령들에게 이 대단한 마법을 자랑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

       

        ====

        [주딱 또 접속 끊겼다!!!]

       

        ‘현생 살러 간 주딱 강제로 돌아오는 버튼’ 만들고 싶으면 개추

       

        [추천 5634 / 비추천 21]

       

        — 왜 하필 이 타이밍에 사라지냐고 ㅋㅋㅋ

        — 파딱들 불구덩이에 남겨져서 오열 중 ㅋㅋㅋㅋ

        — 주딱이 없어? 딱 대라 

         ㄴ ㄹㅇ 바로 핵 발사 버튼 만들러 간다 ㅋㅋㅋ

        ====

       

        20층의 시련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령들을 만나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정령문 없이는 인지할 수 없는 대상들이지만 ‘정령의 회랑’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흥미로운 마법을 품은 채 회랑을 걷다 보면 정령들이 나름의 방식대로 관심을 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시간 동안 신전의 구조물 같은 장소를 빙빙 돌고 있음에도 내게 다가오는 정령의 기척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 발걸음이 향하는 곳마다 기감에 무언가 걸렸다 사라지는 느낌만이 반복되자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한 번에 끝내려고 했는데.’

       

        하는 수 없이 나는 일단 한 차례 바깥으로 나왔다.

        예상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창의적인 버튼이 생기는 중이었다.

       

        유저들의 포인트가 다 털리면 소란도 잠잠해지겠으나 그 전에 전쟁이 터질지도 모른다.

        특히 암약하고 있던 ‘꿀벌단’과 신흥 ‘말벌단’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는 중이었다.

       

        정령들이 마법이 형편없다며 짓궂은 놀림과 함께 돌려보내는 경우는 있어도 아예 접근조차 안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다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는 정령학파 출신이 한 명도 없었다.

        가장 최근에 봤던 것은 셀루시아의 정령사로 그는 전술핵에 피폭되어 사경을 헤매고 있다 들었다.

       

        “아, 맞다.”

       

        고민하던 나는 한 명을 떠올리곤 위치노트를 펴서 메시지를 보냈다.

       

        ====

        — 관리자 : 부엉아

        — 관리자 : 너 할 거 없으면 잠깐 19층으로 내려와 봐

        — 관리자 : 부엉아 대답

        ====

       

        실력은 미심 쩍었지만 어쨌거나 자신이 정령사라고 주장하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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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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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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