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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아아, 이건 실패네.”

       

       “그러게요. 생각보다 너무···무섭지 않은데요?”

       

       

       아멜리아와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몬스터가 튀어나온다기에 살짝 기대했는데.

       

       역시는 역시라고 해야 하나.

       

       안전을 위해서인지 몬스터들이 나사가 하나씩 빠져있어서 긴장감이 하나도 없었다.

       

       유령의 집답게 조금 무섭다던가, 그런 게 있어야 하는데.

       

       초인들 한두 명 정도면 긴장감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아카데미의 학생이 세 명이나 있으니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셋 다 실전을 겪어본 우수한 학생들이다.

       

       이런 놀이터에서 나오는 놈들에게 너무 기대를 많이 한 걸까?

       

       

       “아니, 당연한 거 아냐? 초인 셋이 긴장할 정도면 사고 한번 터지는 순간 여기 문 닫아야 한다고.”

       

       “그건 그렇지만···. 뭔가 속은 기분이야.”

       

       “···그래, 너는 그런 녀석이었지.”

       

       “뭐야, 뭘 그렇게 봐?”

       

       “아무것도 아냐.”

       

       

       ···으음, 그나저나 뭔가 아멜리아랑 유시우의 관계가 조금 생각했던 거랑 다른 느낌인데.

       

       작가님이 딱히 히로인 후보를 늘릴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메인 히로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멜리아.

       

       그녀와 시우의 관계가, 뭔가 악우같은 느낌이었다.

       

       이성으로 보는 느낌이 아니라, 뭐라고 해야 하지···. 그래.

       

       동성 친구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는듯한 느낌? 그런 거.

       

       며칠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티격태격 싸우는 모습이 그냥 친한 친구 같은 분위기였다.

       

       지금이야 저런 관계지만 언젠가 아멜리아가 시우를 좋아하게 되는 날이 올까?

       

       문득 걱정되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아, 저거. 저거는 어때? 저거라면 너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뭐야, 관람차?”

       

       “응. 관람차라면 괜찮겠지.”

       

       “···! 너, 생각보다 똑똑하구나!”

       

       

       시우의 의견에 잔뜩 흥분한 아멜리아가 관람차가 있는 곳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관람차라. 그래, 뭐. 이건 아멜리아도 즐길 수 있겠네.

       

       속도나 스릴을 즐기는 종류의 놀이기구가 아니니까.

       

       나와 유시우는 분명 놀이기구를 즐겼지만, 아멜리아는 능력 탓인지 즐기지 못했으니 저런 쪽에 시선이 가는 모양이었다.

       

       

       “하아. 할아범이 재밌을 거라고 했는데.”

       

       “···할아범이요?”

       

       “내 집사. 친구들이랑 놀이공원에 간다고 했더니, 이것저것 이야기 해줬어. 생각했던 거랑은 조금 달랐지만.”

       

       

       할아범이 거짓말만 잔뜩 늘어놓았다며 아멜리아가 툴툴거렸다.

       

       그렇구나. 아멜리아는 부잣집 아가씨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지.

       

       

       [오오. 그렇군요. 좋은 걸 들었어요.]

       

       “···작가님이 설정한 게 아닌가요?”

       

       

       어느새 서로 장난치며 걸어가는 두 명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작가님께 말을 건넸다.

       

       

       [저는 필요할 때 만지면 되니까요! 굳이 필요 없거나 이미 괜찮아 보이는 건 그대로 놔두는 편이에요. 이곳도 손을 댄 건 없었고.]

       

       “···그래요. 그랬었죠.”

       

       

       이 놀이공원도 작가님의 인형극 속 세계.

       

       하지만 작가님은 이곳을 건드린 적도 없었고, 이용객들도 어렸을 적 기억처럼 웃고 떠들며 특별함을 즐기고 있었다.

       

       아카데미 주변 상권부터 내 집까지 실시간으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본 내게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신선했다.

       

       그 특별함이.

       

       작가님의 손이 닿지 않은 특별함이.

       

       내게는 무척이나 즐거웠다. 여태껏 이 세상에서 작가님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은 본 적 없었으니까.

       

       그래서일까? 초인 전용 놀이기구, 초인 전용 유령의 집. 아무리 생각해도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놀이기구들이 있어도 마치 현실 같았다.

       

       

       “작가님. 정말 이곳은 작가님이 무언가 건드리거나 하지 않은 거죠?”

       

       [네? ···그렇죠? 갑자기 그건 왜···.]

       

       “아뇨, 그냥.”

       

       

       내뱉으려던 말을 삼켰다.

       

       여긴 현실이 아니다.

       

       작가님이 주변을 조정하지 않았다고 한들 결국 무대 위.

       

       세상은 여전히 인형들로 가득 차 있다.

       

       

       “뭐해, 아르테! 빨리 와!”

       

       “성격도 급하셔라. 금방 갈게요.”

       

       

       

       ***

       

       

       

       “···큰일 났어.”

       

       “왜 그래?”

       

       “아니, 그게. 너랑 아르테의 데이트였는데···.”

       

       “이제와서? 한참 늦었어.”

       

       “윽···.”

       

       

       뒤늦게 따라오는 아르테를 곁눈질하며 아멜리아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다급함을 표현해봤자 이미 늦었다.

       

       데이트는 무슨. 셋이서 놀러 온 상황이니까.

       

       그 누구도 이걸 데이트라고 생각하지 않을걸.

       

       

       “으, 너무 흥분해버렸어. 좋아, 마침 딱 좋은 기회가 있으니, 이걸로 어떻게든···.”

       

       “기회?”

       

       

       아멜리아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아르테를 기다릴 뿐.

       

       ···기회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여기야, 아르테. 엄청나게 큰 관람차! 멋있다.”

       

       “그러게요. 이런 크기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빨리 들어가자. 어서!”

       

       

       도대체 무슨 기회를 뜻하는지도 모른 채로, 나와 아르테는 아멜리아의 손길에 관람차 내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손님들, 곧 출발하니 준비를···.”

       

       “···으, 끄윽. 미안, 얘들아! 나 갑자기 배가···! 너희들 먼저 타고 있어!”

       

       “어?! 아멜리아! 너 어디가?! 야!”

       

       

       ···사라졌다.

       

       저 속도, 분명히 능력까지 사용한 거다.

       

       배가 아프기는 무슨.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했고, 배가 아프다면 능력까지 사용하며 벗어날 리가 없어.

       

       문득 아까 아멜리아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기회. 그게 이걸 말하는 거였냐.

       

       

       “어, 그게.”

       

       “들어가죠, 시우 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래.”

       

       

       마음속으로 아멜리아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기회라더니, 이건 기회는커녕 나를 음해하려는 행위임이 틀림없었다.

       

       아르테와 나를 단둘이 밀폐된 장소에 집어넣어?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아, 올라간다.”

       

       

       하지만 이미 작동해버렸으니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관람차가 한 바퀴를 도는 사이에, 도대체 어떻게 해야···.

       

       

       “와악!”

       

       “왁?!”

       

       “왜 그렇게 굳어있어요? 제가 너무 예뻐서 그런가? ···하하, 농담. 긴장하지 마세요.”

       

       “그, 그래···.”

       

       

       어느새 맞은편에서 손을 펼치며 덤벼들 것 같은 포즈를 취하며 나를 놀라게 한 아르테가 싱긋 웃으며 멀어졌다.

       

       ···코끝에, 은은한 향기가 맴돌았다.

       

       

       “···?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냐.”

       

       

       말할수 없었다.

       

       아르테가 빌런이 아니라 평범한 학생이라고 해도 도저히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네 레오타드의 냄새를 맡았던 기억 때문에 체취를 맡을 수 있었다던가.

       

       무심코 그 냄새 때문에 목덜미에 슬쩍 보이는 레오타드에 시선이 향했다던가.

       

       말하면 죽는다. 아르테가 죽이는 게 아니라, 내가 목을 매고 죽어버릴 거다.

       

       

       “관람차는 정말 오랜만이네요. ···어렸을 적 이후로는 처음이에요.”

       

       

       다행히 아르테는 잠깐 의문을 표했을 뿐, 내게 캐묻지는 않았다.

       

       사, 살았다···.

       

       점점 올라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아르테의 모습을 지켜보던 와중에 아멜리아가 당부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곳에 온 목적은, 아르테를 꼬시는 것.

       

       어떻게든 기회가 온다면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라. 그런 이야기였지.

       

       ···연애 한 번 해본 적 없는 나한테 그런 걸 말해서 뭐 어쩌라고.

       

       하지만 이렇게 억지로 기회를 만들어줬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면 또 잔소리가 시작되겠지.

       

       어쩔수 없이 용기를 내서 말을 건네보기로 했다.

       

       

       “···있지, 아르테.”

       

       “네?”

       

       “아르테는 좋아하는 사람이라던가, 있어?”

       

       

       아.

       

       시우는 속으로 망했다고 되뇌었다.

       

       어떤 미친놈이 대화의 시작을 이런 걸로 하냐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음속 아멜리아의 압박을 이기지 못했더니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네이놈 아멜리아.

       

       핑크빛 망상을 나에게 전염시키다니.

       

       

       “아뇨, 없어요. ···저를 꼬시는건가요?”

       

       “아, 아니. 그게. 아르테의 사생활은 들어본 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아, 잘했어. 유시우.

       

       이정도면 초반을 크게 망친 것 치고는 잘 넘어간 거야···!

       

       다행히 아르테도 무심하게 넘어가는 모양이었다.

       

       

       “딱히 이야기할 필요성이 없었으니까요.”

       

       “···그렇구나. 언젠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르겠네.”

       

       “아뇨.”

       

       “···?”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졌다. 시우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점차 올라가는 관람차, 어느새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르테의 모습.

       

       그녀의 모습이 마치, 사람이 아닌 것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저는, 그 누구하고도 사귈 생각이 없어요.”

       

       “그, 그래···?”

       

       “스스로 길을 개척하지도 못하는 인형들 따위는 죽어도 사양이에요.”

       

       

       인형이라니.

       

       아르테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누구를 뜻하는 걸까.

       

       

       “어, 아르테.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내가 말실수를 한 것 같아. 미안해.”

       

       “나는, 인형 따위와는 이어지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가고 말 거야. 이런 인형극 속에서 계속 있을 수는 없어.”

       

       

       무엇이 문제였을까. 무슨 단어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걸까. 시우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으로서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아르테가 평소와는 다르게, 무언가를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

       

       그게 무엇인지 시우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시우는 무언가를 계속 중얼거리는 아르테를 꽉 껴안았다.

       

       

       “?!”

       

       “괜찮아. 아르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괜찮아. 걱정하지 마.”

       

       

       카멜레온 사건, 그때는 그녀가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반대. 내가 그녀를 도와줘야 해.

       

       그런 단순한 생각이 시우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녀가 빌런인지 아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도움을 받았으면, 도움을 주는 것이 친구니까.

       

       비록 그녀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정말 빌런을 죽이던 빌런도살자라고 하더라도.

       

       지금 시우의 눈앞에는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을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 머릿속에서는 지금 애 둘 낳고 알콩달콩 하고있는데 언제 야스해!!! 왜 포옹밖에 안했어!!!

    아멜리아! 빨리 뭐 좀 더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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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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