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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

       곰곰이 생각하던 곧바로 행정실로 향했다.

       

       “내일 외출 명단 좀 볼게요.”

       

       행정실장이 내어준 외출 신청 명단에 보니 ‘소피에’가 있다.

       

       “얘는 빼세요. 따로 보충수업을 하기로 해서요.”

       “알겠습니다.”

       

       행정실장이 소피에의 이름에 삭선을 긋는 것을 확인하고 행정실을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말 동안 힌드라스타는 내가 데리고 다녀야겠다.

       

       힌드라스타는 지금 우리 아카데미에서 상당히 중요한 학생이다.

       

       키르린이 야심차게 추진한 외부 특기생 선발 1기라 상징성이 굉장히 크기 때문.

       

       만약 그런 힌드라스타가 아카데미에서 탈주하면 뭐가 되겠나.

       

       아카데미의 위신도 추락하고 키르린은 완전히 절망하고 말 것이다.

       

       어쨌든 힌드라스타가 내년 초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 좋은 곳에 들어가야만 특기생 선발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분탕드래곤이 도망치지 못하게 해야 하고 그렇다고 무작정 우쭈쭈해주면 이번처럼 말도 안 되는 분탕을 칠 게 뻔하고.

       

       일단 거기에 딱 좋은 방법이 있는데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당분간은 내가 감시를 해야겠어.

       

       “수석교수님!”

       

       누가 나를 부르기에 돌아보니 전투학과 교수들이 오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늘 나를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하는 리나가 내 팔을 부드럽게 잡으며 물었다.

       

       “아이들에게 질이 좋지 않은 분으로 오해를 받으셨잖아요. 이번 일로 그 오해가 풀어졌으면 좋겠는데….”

       “뭐, 다들 납득했을 거야. 납득 못하는 애는 그대로 가는 거고. 어쨌든 이번 일을 계기로 애들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

       “아아, 역시 수석교수님…. 정말로 존경스러워요….”

       

       내 말에 큰 감명을 받았는지 리나가 눈을 빛냈다.

       

       “어쨌든… 모두 계획하신 일이라니 다행입니다. 괜한 걱정을 했군요.”

       “나를 도대체 어떤 놈으로 본 거야?”

       

       웃으며 모턴의 어깨를 툭 치자 오렌디가 나섰다.

       

       “대충대충 사시는 것 같지만 늘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는 분이시죠!”

       “브로그는 그런 디안이 마음에 든다!”

       

       브로그가 가슴을 쾅쾅 치자 애나가 질겁하며 귀를 틀어 막았다.

       

       “그러면 그 특기생 소피에가 수석교수님께서 심어둔 주동자인 겁니까?”

       “그런 셈이지. 아무래도 특기생인데 보통 애들하고 똑같이 갈 수는 없잖아?”

       “역시 대단하셔요.”

       

       리나가 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 봤다.

       

       “특기생과 나머지 학생들 모두를 동시에 실습시키시는 것이로군요.”

       “침이나 닦아라, 침투 교수!”

       

       카자다르가 껄껄 웃자 리나가 황급히 소매로 입을 닦았다. 당연히 침은 흘리지 않았다.

       

       반면 제네브와 모턴은 이렇다 할 반응 없이 저 뒤에 서서 침묵을 지켰다.

       

       원래 말이 없는 놈들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성격이 좀 다른 침묵.

       

       아마 나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의심하는 게 당연하지. 여기 교수들은 바보들이 아니니까.

       

       심지어 지금 내 팔을 꼭 잡고 있는 리나와 마냥 긍정왕인 오렌디, 웨이버도 초반에는 내 뒤를 캐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딱히 나오는 게 없자 수더분한 성격답게 빠르게 포기했던 것이고 카자다르와 브로그는 뭐, 좋은 게 좋은 양반들이니까.

       

       하지만 나머지는 다르다.

       

       집요하기로 유명한 장거리순찰대 출신인 모턴은 현역 시절 인맥을 이용해 나를 아는 이를 찾고 있고 제네브도 알게 모르게 움직이는 중.

       

       교수들은 대부분 나를 의심했거나 의심하고 있는 중이며 다만 내가 그들의 중간인사권을 쥐고 있는 수석교수라는 점.

       

       그리고 부임하자마자 전투학과를 부활시키고 예산도 엄청나게 가져온 것 때문에 대놓고 티를 내지 않는 것일뿐.

       

       다만 펠레미아는 거의 대놓고 나에게 자신의 능력을 쓰려고 했다.

       

       어제 펠레미아의 교수실로 가서 둘이서 이번 사태를 실습으로 국면전환하는 계획을 세울 때.

       

       펠레미아는 내게 계속 말을 걸고 눈을 마주치면서 자신의 심문 능력을 발동한 것.

       

       부지불식간에 내 입으로 은연중에 진실을 털어놓게 하려는 수법인데 나한테는 그게 안 통하지.

       

       펠레미아는 능력이 차단당하자 극심하게 당황하면서 그 뒤로는 잠잠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나를 더 의심하고 있을 거다.

       

       그 지랄 같은 마족군단장들 입에서 기밀을 술술 뽑아냈는데 고작 인간 따위가?

       

       이거 좀 불편한데 나중에 황성에 갈 일이 있으면 황녀한테 물어봐야겠다.

       

       명확히 보안을 지킬 수 있도록 위장신분이라도 내려주든 아니면 그냥 편하게 다 말하게 해달라고.

       

       그런데 솔직히 황성 입장도 이해는 간다.

       

       잘난 체하는 건 아니고 내 이력이 다 공개되면 평소처럼 지내기 좀 어려울 것 같기도 해서.

       

       뭐, 나중에 이야기 해보면 답 나오겠지.

       

       일단은 퇴근하자. 내일 갈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런데 아까부터 쟤는 왜 저러고 있어?

       

       저 구석에서 애나가 찐따처럼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고개를 푹 떨구고 아무 말이 없다.

       

       평소와 같이 음침하니 큰 문제는 없나 보네.

       

       

       # # # # #

       

       

       해가 질 무렵, 교직원 구역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타닥타닥 발소리가 들려왔다.

       

       “할말이라도 있어?”

       “히익?!”

       

       뒤를 돌아보니 전투승마교수 애나가 안절부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아셨어요…?”

       “승마부츠 소리도 못 들을 만큼 귀가 먹지는 않았어.”

       “아….”

       

       애나가 아래를 내려다 보며 마치 부츠를 감추려는 듯이 다리를 꼬기 시작했다.

       

       “할말이 있으면 해.”

       “할말이 있는지는 어떻게 아셨나요…?”

       “네 숙소는 여기가 아니라 저쪽 기숙사잖아.”

       “아, 네….”

       

       계속 다리를 꼬던 애나가 주저하면서 입술을 달싹였다.

       

       “수석교수님….”

       

       다음 말을 생각하는지 애나는 한동안 머리를 긁적이다 말했다.

       

       “어… 마굿간을…. 아니, 감사를 먼저…. 그게 아니라 사과부터….”

       

       말이 꼬였는지 머리를 격하게 내저은 애나가 헛기침을 요란하게 했다.

       

       그리고는 무슨 큰 결심이라도 하는 듯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수석교수님을 오해했어요….”

       

       오해라니? 오해라면 설마 나이틀리….”

       “절대 그러실 분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따로 심화과정을 하고 계신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계속 여기저기서 말이 들리다 보니 괜한 의심을 하게 되었어요….”

       

       애나가 내 말을 끓으며 자기 말을 했다.

       

       “그랬어? 뭐…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자유….”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쁜 생각을 한 건 맞으니까요….”

       

       그러며 애나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폈다. 커다란 가슴이 육중하게 출렁였다.

       

       이건 좀 당황스럽네. 지금까지 애나는 이렇다 할 티도 내지 않았고 그저 말에만 관심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또 마굿간을 다시 채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뭐, 모두가 좋으라고 한 일….”

       “교장님께서 실습을 줄이시면서… 기존의 아이들만 겨우 지켜낼 수 있었어요…. 아, 아이들이라는 건 말들을 의미하는 겁니다….”

       

       애나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바로 말을 이었다.

       

       “학생들이 승마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는 것도 슬펐고… 아이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한 것도 슬펐고요….”

       “그건 복잡한 사정이….”

       “물론 교장님을 원망할 생각은 없어요….”

       

       역시 내 말을 끊어 먹은 애나가 세상 음침한 미소를 옅게 지었다.

       

       “교장님께서도 나름의 사정이 있으셨겠죠…. 듣기로는 교장님과 황성의 높으신 분과 사이가 안 좋다고 하던데… 아마 그와 관련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저 같은 일개 교수 따위가 알아서도 안 되고 알 수도 없는 일이겠지만….”

       “사실 그 말이 맞….”

       “하지만 수석교수님께서 오시고 모든 게 달라졌어요….”

       

       헝클어진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꼬면서 애나가 말했다.

       

       “전투학과가 정상화되었고… 똑똑한 아이들도 많이 데려왔고… 또 삭막한 아카데미에 상점가도 만들어 주셨잖아요….”

       “나 혼자 한 건 아니고 너희랑 교장….”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전투승마 과목을, 그리고 전투학과를 살려 주셔서…. 오해해서 죄송하고요….”

       

       애나가 또한번 출렁이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졸업생들이 최상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지금처럼만 해주면….”

       “그럼 쉬세요…. 퇴근 후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애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독신 기숙사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뭐냐, 저 애는. 자기 말만 왕창 쏟아내고 도망쳤네. 귀엽긴 하다만….

       

       

       # # # # #

       

       

       다음날, 나는 올리시아의 배웅을 받으며 수석교수 전용마차를 타고 집을 나섰다.

       

       같이 가려고 했는데 혼자 남은 김에 대청소를 하겠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교직원 구역을 벗어나 정문 쪽으로 가니 주말외출을 나가려는 학생들로 북적북적.

       

       어디 보자. 걔가 어디쯤 있으려나.

       

       “뭐라고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분명히 신청했는데!!”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니 핑크대가리 힌드라스타가 교문에 선 행정실 직원에게 따지는 중이었다.

       

       “그렇게 말해봐야 소용없어. 여기 명단에 이름이 없잖아.”

       “그럴 리가요!? 수요일에 종합할 때 확실히 넣었는데!? 잘못된 거 아니에요?! 말도 안 돼!”

       

       행정실장에게 외출 명단에서 빼라고 했기에 지금 힌드라스타는 정문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지당해 절망하는 중.

       

       마차를 세우고 태연하게 물었다.

       

       “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히익?!”

       

       나를 본 힌드라스타가 질겁하며 뒷걸음질쳤다.

       

       “너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지연되고 있잖아. 무슨 일인데 그래?”

       “외출 명단에 없는데 자꾸 외출하겠다고 해서 말입니다.”

       

       행정실 직원의 대답에 힌드라스타를 돌아봤다.

       

       “확실해? 너 신청한 거 맞아?”

       “맞다고요…. 다른 애들도 다 봤는데….”

       

       기어이 힌드라스타가 눈물을 후두둑 흘리자 옆에 있던 학생들이 맞다며 동조해 주었다.

       

       잠시 고민하는 척하던 나는 행정실 직원에게 말했다.

       

       “아마 중간에 뭔가 누락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지금 다시 명단에 넣기는 좀 그렇고, 그럼 제가 직접 인솔해서 나가는 것으로 하죠. 괜찮나요?”

       “뭐… 수석교수님께서 그러시겠다면야….”

       “좋아. 소피에 학생. 마차에 타.”

       

       마차를 가리키자 힌드라스타가 경계심이 그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타라고. 안 그래도 시내에 가려던 참이었어. 거기서 내려다 줄게.”

       “정말이지…?”

       “타든지 아니면 아카데미에 박혀 있든지.”

       “탈게!”

       

       힌드라스타가 냉큼 마차에 올라타자 웃으며 마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약 한 시간 후.

       

       힌드라스타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어디를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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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A Quiet Life

The Retired Supporting Character Wants to Live Quietly 은퇴한 조력캐는 조용히 살고 싶다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causing chaos with my knowledge of the original work, I assisted the protagonist.

I successfully completed the story and now planned to retire and live peacefully.

However, it seems the protagonist still needs my help.

An academy professor? That’s nothing much.

But why is the state of the academy so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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