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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0

   해골의 눈동자는 분명 텅 비어 있지만 기이하게도 그 어둠 안에서는 열기가 느껴진다.

   

   기억에 서려 있는 짙은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만 같은 분위기에 압도된 나는 방금 전의 신남도 잊고서 해골을 마주했다.

   

   “대답해라. 요정의 춤에 대해 어떻게 아는 것이냐.”

   

   할아버지와 다툴 때와는 전혀 다른 진중한 어투.

   

   자그마한 장난도 허용치 않을 것처럼 날이 선 목소리.

   

   요정의 춤이 무엇이기에 해골을 이토록 다급하게 만든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해골과 요정의 숲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요정의 숲을 영원한 잠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것 뿐.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건 나도 알지 못한다.

   

   그건 영웅들의 이야기지 소울 아카데미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간슈님께서 보여주셨노라 이야기하거라.>

   

   잡아먹을 듯한 해골을 앞에 둔 채 말을 고르던 중 할아버지가 내게 조언을 했다.

   

   거짓말을 하라고.

   

   간슈와 내가 춘 요정의 춤이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할아버지는 알 것이다. 내가 시련을 받는 광경을 옆에서 다 지켜보았으니까.

   

   그럼에도 할아버지는 거짓을 고하라고 방금 전의 열의를 지운 채 이야기했다.

   

   내가 그리 눈치가 빠른 사람은 아니지만 이 정도쯤 오면 무슨 일인지 자연스레 짐작을 할 수 있다.

   

   요정의 숲과 관계된 이야기는 아마 한없이 비극에 가까운 무언가 일거야.

   

   “아싸히키역사씹덕꼬맹이가 보여줬는데 왜?”

   “…간슈님께서 그대에게 요정의 숲을 보여주었다고?”

   

   해골은 내 멸칭을 듣고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내가 누굴 말하려는 건지 알아차렸다.

   

   “어째서?”

   “내가 그 쿱쿱한 냄새 나는 꼬맹이의 머릿속까지 알아야 해?”

   

   신의 뜻이라는 것은 이토록 편리하다.

   

   하늘에서 땅에 예언을 내릴 때에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듯 그들의 신탁 또한 명확한 것이 드무니. 의도를 모르겠다고 말해버리면 상대 입장에선 할 말이 사라져버린다.

   

   어쩌겠는가. 모르겠다는데.

   

   “진정 좀 해. 찐따동정마법사님. 아는 얘기 나왔다고 그렇게 발광을 하면 당신이랑 누가 친구를 해주겠어? 친해질 생각이 있어도 기겁하면서 도망치겠다.”

   

   살짝 열을 돋구는 것으로 화제를 돌릴 생각이었지만 해골은 내 건방진 어투에 조금도 반응하지 않았다.

   

   여태 내 장난에 놀아났던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처럼.

   

   “지금 요정의 숲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고 있나?”

   “땅에 처박혀서 부들부들대는 찌질이 악신한테 잡아먹힌 곳? 그걸 왜 물어봐? 찐따동정마법사님이 봉인시켜뒀잖아. 골이 비어서 기억도 휘발성으로 바뀌었어?”

   “그래. 그 곳은 내가 봉인을 한 곳이다. 잠식 되어 버린 숲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녀 대신 세상을 선택한 비루한 마법사의 죄가 머무는 장소란 말이다.

   

   간슈님께서 거길 주신의 사도인 네게 보여주었다는 건 분명한 의도가 있을 터!”

   

   그…런가?

   

   아닌 것 같은데?

   

   사회성 부족한 역사 씹덕한테 그런 혜안이 있을 리가 없어.

   

   그 쪼잔한 자식은 그냥 날 괴롭히고 싶어서 까다로운 곳을 선택했을 뿐일 거야.

   

   “어둠이 이 땅 위에 머무는 이상 그 곳을 구원하는 건 불가능한 일일 텐데? 어째서? 왜지?”

   “그 찌질이 나한테 쳐발리고 질질 짜면서 도망쳤는데?”

   “…뭐?”

   “음습한 찐따 답게 귀여운 날 괴롭히려고 준비하다가 나한테 박살났어. 대체 그런 개허접이 어떻게 신이란 호칭을 단 건지. 아. 병신도 신은 신인가?”

   

   어둠의 악신을 완벽하게 물리친 것은 아니다. 녀석의 존재를 지우려면 던전 아래로 들어가서 봉인을 깨고 박살을 내야하니까.

   

   그렇지만 어둠의 악신이 지닌 힘 대부분을 날려버린 건 분명한 사실이다.

   

   악신은 주신의 사도인 나 하나를 없애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쳤고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한테 박살이 나며 자신이 허접이란 걸 입증했지.

   

   지금쯤이면 봉인 속에서 정신승리나 하고 있지 않으려나.

   

   “그 이야기. 자세히 해 줄 수 있나?”

   

   자신의 골을 들이미는 해골은 무척이나 부담스러웠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누구도 알 수 있을 간절함이 담겨 있어서 차마 그를 밀어낼 수 없었다.

   

   으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지?

   

   메스가키 스킬에 의해 왜곡되더라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자신이 없는데.

   

   거기다 내가 재잘재잘 떠들다보면 썩은물인 나만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올 거 아냐.

   

   잠시 고민을 하다 스스로 설명하는 걸 포기한 나는 해골에게 이야기해서 잠시 결계를 푼 후 페이비를 데리고 왔다.

   

   “어둠의 악신과 싸웠던 날의 이야기말인가요? 그거라면 영애님께서 하시는 편이.”

   “귀찮아.”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군요. 영애님의 헌신에 대해 제가 최선을 다해 설파하겠습니다.”

   

   평소 교회에서 다른 이들을 대상으로 설교 같은 것을 시간 날 때마다 해 온 페이비는 훌륭한 이야기꾼이었다.

   

   동영상 사이트에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는 예쁜 누나가 있었다면 조회수가 어마어마했을 것 같아.

   

   근데 있잖아. 페이비. 좀 이야기가 과장된 거 같지 않아?

   

   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는 메스가키가 아니라 신화 속에 나올 법한 인물이 되어 있는데?

   

   난 그렇게 고결한 사람이 아니라고! 제발 좀 적당히 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페이비의 찬양을 견디지 못한 나는 두 손으로 벌개진 얼굴을 가렸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페이비는 자기 기준으로 하아아안참 왜곡된 이야기를 해골에게 끝까지 전했다.

   

   

   “영애님께서 주신의 힘을 빌어 기적을 일으키셨기에 어둠에 잠식되었던 도시는 본래의 상태를 되찾았습니다.”

   “그럴 리가.”

   “진실입니다. 에르기누스님. 그 곳 교회의 사람들에게 전해듣기로 이전보다 더 성스러운 곳이 되었다 하더군요.”

   “…정말이냐?”

   “주신께 맹세코.”

   

   페이비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갤 끄덕이자 에르기누스가 슬며시 고갤 돌려서 날 바라봤다.

   

   뭘 기대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방금 전 이야기 속 저랑 실제의 저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괜한 기대 하셔도 매도밖에 돌려드릴 수 없답니다.

   

   “루시 알른. 이라고 했었나?”

   “내 이름 기억하고 있으면서 자꾸 꼬맹이라고 부른 거야? 왜? 여자애 이름 부르는 게 부끄러웠어?”

   “도시에서 벌였던 기적. 더 넓은 범위로도 펼칠 수 있나?”

   

   악신의 기운을 모두 걷어낸 일을 말하는 건가?

   

   안 될 건 없지.

   

   이사벨 아르테아에게서 성물 몇 개 뜯어온다면 충분히 가능해.

   

   나도. 페이비도.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으니까.

   

   아무 말 없이 고갤 끄덕였더니 해골이 이빨을 꾹 깨물었다가 느리게 고갤 주억였다.

   

   “아카데미의 학생이라고 했었지.”

   “그런데?”

   “방학이 시작되면 날 찾아와줄 수 있겠나? 거래를 하고 싶다.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진짜가 숨겨놓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주마. 내가 기억을 이어 받고 나서도 진짜는 계속해서 활동을 했으니 부정확한 부분이 있을 순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귀할 것이라는 건 확언하겠다.”

   

   해골이 내미는 제안은 게임 속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였다.

   

   이 녀석은 에르기누스의 기억을 잇고 있긴 하지만 결코 그에 관한 정보는 베풀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지금 해골이 하는 제안은 그가 얼마나 간절한 지 알려준다 해도 무방할 테지.

   

   허나 간절함과는 별개로 해골의 제안은 내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에르기누스가 숨겨놓은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이 해골보다 내가 더 잘 알 걸?

   

   사막 아래에 처박힌 해골보다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이 더 많은 걸 아는 건 당연한 일이잖아.

   

   그렇지만.

   

   ‘할아버지. 이 해골이 하고자 하는 제안. 요정의 숲하고 관계된 거죠?’

   <…아마 그럴 거다. 모든 일이 끝난 그 순간에도 숲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쉬워하던 녀석이니.>

   ‘위험하겠죠?’

   <개인적으로는 그냥 무시해버리라 이야기해주고 싶구나. 그건 괜한 벌집을 건드리는 일이다.>

   

   할아버지는 날 만류했지만 나는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요정의 숲은 게임 속에서도 방문할 수 없었던 장소다.

   

   내가 단 한 번도 발을 들이지 못했던 마경. 무엇이 도사리는 지도 알 수 없는 지옥.

   

   이처럼 매혹적인 단어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입꼬리를 끌어올린 나는 가만 내가 입을 열길 기다리는 해골의 앞으로 다가가 그 정강이를 후려찼다.

   

   아무리 대마법사라도 예상치 못한 공격에는 어찌할 수 없었던 듯 그가 나자빠지며 나와 해골이 시선이 같은 선상에 놓인다.

   

   “개허접동정마법사님께서 뭘 남기고 갔는지 내 알바 아냐. 홀아비냄새나는 물건을 찾아내봤자 별로 건드리고 싶지 않은 걸. 냄새가 옮아버릴 것 같잖아.”

   “그런 식으로 폄하할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다! 그것들은!”

   “여심 따위는 하~나도 모르는 동정마법사님. 자기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해서 여자애 앞에 비굴하게 머리를 처박아야하는 허접마법사님. 하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썩어 문드려졌을 당신의 소망을 이루고 싶어?”

   “…그래.”

   “그럼 멍청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얼빵이나 도와. 저 허술한 바보는 잘 나가다가 또 이상한 짓을 할 게 분명하니까.”

   

   나는 조이의 능력을 믿는다.

   

   그리고 그녀가 얼빵이에서 벗어날 수 없단 사실 또한 믿는다.

   

   그녀 혼자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면 조이는 누구보다도 성대한 실패와 함께 얼굴을 창백히 물들일거다.

   

   친구가 죄송하다면서 우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던 나는 해골에게 그녀를 도와달라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해골이 잠시 멈칫했다가 나지막히 물음을 던졌다.

   

   “…내가 그대에게 부탁할 것이 무엇인지 아나?”

   “대충은?”

   “그것이 위험할거라는 것도?”

   “위험? 아. 닭장아줌마의 썩은내를 견디는 건 좀 괴롭겠다. 인정이야.”

   “그런데도 겨우 이런 작은 도움으로 내 소망을 들어주겠다고?”

   “저기. 찐따마법사님. 뭔가 착각하는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난 당신의 쿱쿱한 소망에 아무 관심이 없어.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뿐이야. 그러니까 과대망상하지 마. 찐따가 지 혼자 실실대는 것만큼 기분 나쁜 것도 없다고.”

   

   해골의 이마를 툭툭 건드리면서 할 말을 끝마친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다시금 메이스를 붙잡았다.

   

   요정의 춤을 통해 얻은 단서를 좀 더 구체화 시킬 생각으로 첫 자세를 잡은 순간 뒤 편에서 호쾌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정신이 나간 것마냥 덜그럭거리던 해골은 얼마가 지나고 나서야 웃음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날 보고 웃음기 서린 목소리를 냈다.

   

   “위대하신 주신의 안목을 의심해선 안 되겠군.”

   

   …뭐.

   

   뭐지?

   

   쟤 왜 갑자기 저딴 소리를 하는 거야?

   

   매도를 당하다가 자기 안에 있는 음습한 취향이라도 각성한 건가?

   

   또 변태가 하나 늘어나면 곤란한데!?

   

   “얼빠여우! 공격!”

   “…응?! 왜!? 왜?! 난 칭찬을 한 건데 어째서 질겁을 하는 게냐!”

   “루시야. 나중에 보상 제대로 챙겨줘야 한다?”

   “갸아아악! 오지 마! 오지 마세요!”

   

   다행이다. 어찌할 줄 몰라하는 걸 보면 취향이 바뀐 건 아닌 것 같아.

   

   “다가오지 말아주세요오오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절 주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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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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