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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0

    <470 – 시험에서 하면 안 되는 짓>

     

    괴인연주가는 관대하게도 20분의 티타임 시간을 전부 흘려보내주지는 않았다.

     

    “선 넘네.”

     

    치고 박고하는 모습을 보기야 좋지만 시간끌기를 목적으로 교육대련을 하는 모습을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괴인연주가가 여덟 개의 손으로 건반을 쾅 내리치자 막대한 풍압이 그에게 다가오던 불을 짓눌렀다.

     

    “믿을 수가 없군. 물이 없는 곳에서 이 정도의 화재진압을 해낼 수가 있다니…”

    “단련된 전사는 믿음 없이도 신성술의 효력을 낼 수 있듯이 뛰어난 악사는 건반을 치는 힘만으로 불을 꺼트릴 수 있단 말인가!”

     

    서귀연의 귀족들조차 경악할 위력!

     

    “소란 떨지 마라. 악기를 매개체로 마나를 사출해서 불이 태울 풀과 마나를 일소했을 뿐이다. 마음만 먹으면 저 정도는 우리도 할 수 있다.”

    “자신감은 대단하군. 하지만 마도구에 의지해 불을 지핀 주제에 부리기엔 과한 허세야.”

     

    괴인연주가의 여덟 개의 팔이 일제히 건반 위에 올라갔다.

     

    “남은 티타임 시간은 1분. 너희를 모두 쓰러뜨리기까지는 단 1분조차 쓰지 않겠다.”

     

    건반의 눌림과 동시에 날아드는 음파를 매개로 한 마나사출공격!

    정신없이 몰아치는 건반음의 연속에 동기들의 필살기도 맨몸으로 받아내던 안데르센이 정색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캉!

     

    자신을 노리는 경로로 날아드는 음파공격 하나를 받아치자마자 안데르센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모두 피격을 허용하지 마라. 못해도 멍이 들고 심하면 베인다.”

     

    피륙의 단단함이 나무나 바위에 가까운 서귀연 소속 귀족들조차 긴장해야 하는 위력.

    혈음악단의 강함은 진짜였다.

     

    “안데르센 1점 감점. 표정이 여유를 잃었다.”

    “…”

     

    심지어 그런 강자를 상대로 여유를 잃거나 불편해하는 내색을 드러내기 무섭게 감점을 받는다.

    히틀러라면 이렇게까지 깐깐한 기준을 내세우지는 않겠지만 많은 조가 탈락하며 평가할 조원들을 잃어버린 다른 교관들이 채점표를 들고 몰려들었다.

     

    ‘우리 조가 기권한 이상, 너희 조도 통과하면 안 돼.’

    ‘점수를 망친다면 다 같이 망치는 거다.’

    ‘굴러 들어온 외부교관 따위가 우리 머리 위에 서는 꼴을 용납할 성 싶으냐!’

     

    악의로 똘똘 뭉친 교관들의 집중견제!

     

    “들었죠, 대공자님? 여유를 잃었다면 여기까지예요. 슬슬 제가 나서야하지 않을까요?”

    “연장자가 후배의 수고로움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 이것이 내가 정한 귀족의 법도이다.”

    “헉. 스윗퐁퐁남!”

    “…?”

     

    의미는 모르겠지만 오크노디는 딱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안데르센은 그것이 마치 너희가 패배할 건 알지만 일단은 지켜봐줄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서 더욱 자존심이 상했다.

     

    “포메이션 A4를 갖춰라. 서귀연이 독자적으로 연마했던 <동격의 강자 없이 강자를 쓰러뜨리기> 주말특훈의 성과를 보여줄 시간이다.”

     

    안데르센 대공자를 중심으로 밀집하는 서부귀족연합 연합원들!

    건반에서 몰아치는 음파공격이 안데르센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전후좌우에 각기 포진한 십자대열로 인해 부담해야 할 방향은 전방 90도뿐이었다.

    360도 모든 방면을 경계할 때보다 방어면적도, 방어동작도 효율적이니 부담이 덜어진 학생들!

     

    <괴인연주회>

    <겹음>

     

    괴인은 심리적 우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단위면적 당 쏟아지는 칼날의 수를 늘렸다.

     

    <괴인연주회>

    <화음>

    <라만의 정신파괴 라단조 3번 2악장>

     

    손이 바빠지며 점차 호흡이 가빠지는 이들을 비웃듯이 동시에 두 개가 날아오던 겹음이 3개, 4개로 수를 불렸다.

    인간의 신체구조를 넘어선 여러 개의 팔과 커다란 손은 복수의 건반을 동시에, 보다 빠르게, 훨씬 강한 힘으로 누른다.

     

    “좋구나. 좀 더 버텨봐라. 크하하하.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이 남아있단 말이다!”

     

    <글리산도>

    <도약>

    <동음연타>

     

    여러 개의 건반을 오르내리는 글리산도.

    저음옥타브와 고음옥타브를 넘나드는 도약.

    빠르고 깔끔하게 같은 건반을 몰아치는 동음연타.

     

    “큭!”

    “대공자님, 내상이…!”

    “더는 무리다. 이러다간 체력이…”

     

    넷이서 방위를 나누어 방어를 한다는 진형의 이점이 상실되는 현란한 기술.

    상중하단을 몰아치고 힘의 가감이 다르며 두곳 이상의 포인트를 집중공세 하는 동음연타까지, 무엇 하나 쉬운 공격이 없다.

     

    “마무리다.”

     

    팔이 끊어질 것처럼 검을 움직이는 것조차 급급한 그들에게 가혹한 선고를 날리듯 괴인연주가의 팔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괴인연주회>

    <연격기 – 트릴>

    <라만의 정신파괴 라단조 3번 3악장>

     

    음과 음 사이를 빠르게 이어붙이는 글리산도.

    그러나 정직하게 위아래로만 움직이는 글리산도와 달리, 트릴은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파상공세.

    연주가의 손가락이 끊어질 것처럼 건반을 두드리는 힘에 방어자는 팔과 눈이 끊어질 것처럼 트릴의 흐름을 읽고 받아치기에 급급하다.

    교환비부터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전신을 움직이는 것과 손가락만을 움직이는 것.

    무엇이 더 쉽고 어려운지는 어린아이라도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이것이 음공의 두려움.

    혈음악단이 대군을 조종하고 격파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했다.

     

    ‘음유시인이나 바드는 고작 소소한 버프나 거는 허접약골 클래스가 아니었단 말인가…!!’

     

    귀족들의 검에서 불길한 파열음이 일어나고 검을 쥔 두 팔의 옷이 연이어 터져나가는 공세.

    터지고 갈라지는 옷자락 사이로 피가 새어나오지만 저항을 멈추면 출혈이 단숨에 전신으로 확장될 수 있는 위기의 연속.

     

    “허억!”

    “아돌프, 검면으로 받아치지 마라!”

    “무, 무리입니다. 마나가 부족해서 팔에 힘이…!”

     

    안데르센은 깨달았다.

    가문별로 주어지는 마나연공법을 익힌 귀족들과 달리, 순수한 신체만으로 모든 역경을 견뎌왔던 평민 아돌프에게는 절대적인 마나의 총량이 부족함을.

    그의 신체능력으로는 이 이상 파상공세를 견뎌낼 역량이 없음을.

    그리고 그에게도 그를 구할 힘이 부족함을.

    여기까지였다.

    서귀연이 낙오자를 내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남은 수십 초.

    고집을 부린들 대공자 본인은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아돌프는 확실하게 쓰러진다.

    고민은 어렵되 결단은 빨랐다.

     

    “오크노디이이━━!”

    “후후. 이 정도면 제법 오래 버텼네요.”

     

    오크노디는 웃는 얼굴로 제 앞에 손을 수평으로 활짝 펼쳐 마나로 짜여진 건반을 만들었다.

     

    <모방마법>

    <형태구현 – 파이프오르간>

     

    혈음악단의 간부, 정장차림의 사내가 “호오”하고 작게 감탄했다.

    학생들의 위기상황에도 개입하는 일이 없던 데모니카 교수 또한 “1학년이?”라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괴인연주가의 눈에 감출 수 없는 적의가 맺혔다.

     

    “즉석에서 내 악기를 모방한다… 나와 같은 음파공격으로 음파공격을 상쇄하겠다. 그것도 제대로 된 악기도 아닌 급조악기로?”

    “하비라면 분명 그랬을 테니까요.”

    “하비가 누군진 몰라도 네년이 오만함은 충분히 알았다. 증폭구조를 구현하는 마나제어술. 연주를 유지하기 위한 신체강화. 가장 근본이 되는 연주술. 그 전부를 따라할 수 있다는 오만을 무엇 하나 빠짐없이 모조리 부숴주지.”

     

    서귀연을 덮쳐오던 괴인연주가의 공세가 끊겼다.

    표적은 하나, 오크노디.

    사면을 나누어 방어하면서도 피투성이가 된 서귀연 4인방이 받아내던 공세가 홀로 우뚝 선 오크노디를 향해 몰아친다.

     

    “안 돼!”

     

    닥쳐올 참사를 떠올리며 새하얗게 질린 안데르센이 소리 쳤다.

    교관들조차 깐깐하게 측정하던 벌점을 더는 매기지도 못하고 구조용 비상캡슐을 움켜쥔 순간이었다.

     

    <라만의 정신파괴 라단조 3번 클라이맥스 15초>

    <라만의 정신파괴 라단조 3번 클라이맥스 15초>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음이 일치했다.

    모든 공격이 서로를 상쇄했다.

    오리지널 파이프오르간의 술식을 거친 음의 증폭과 급조한 마나오르간의 증폭이 다르지 않았다.

    페달링의 강화효과조차 대등했다.

    여덟 개의 팔이 자아내는 음계의 웅장함이 아이의 작은 두 손에서 비롯된 음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고스트 핸드!!’

    ‘두 개의 손으로 칠 수 없으니 건반을 누를 손을 추가로 생성해낸 거야!!’

     

    오크노디의 뒤에서 건반을 누르는 상황을 지켜보던 히틀러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명을 지르며 바이올리니스트 비네를 저지하던 유령체가 오크노디와 <연결>된 채로 실체를 가져서는 건반을 두드린다.

    아이를 본딴 흐릿한 유령의 형체가 일그러질 정도로 수많은 손을 분출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가짜 린>

    <군집체 강제해제>

    <집단연결 – 사고동조>

     

    그 현상을 강제하는 모든 술식을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히틀러는 그중 일부를 간파했다.

    그리고 전율했다.

    저 술식은 오크노디가 입력하는 사고력에 영향을 받는다.

    모든 연주.

    모든 음계.

    그것은 오크노디 한 사람의 인지와 이해에서 비롯되고 있으니.

    태어나서 혈음악단과 마주한 적이 한 번밖에 없을 어린아이가 혈음악단 정규단원의 클라이맥스 연주를 완벽히 이해하고 이어질 심상의 흐름을 맞추었다.

     

    이해와 적응.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예측과 확신.

    그녀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다.

     

    괴인연주가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어낸 악상이.

    그 클라이맥스의 전개가.

     

    “후후. 보스곡의 연주란 꽤 재밌네요. 덕분에 즐길 수 있었어요.”

    “즐겨…? 이 나의 악상을, 복수의 손을 지니지 않고선 인간의 몸으로는 감히 도전할 수 없는 가혹한 난이도의 연주를, 즐길 수가 있다고…?”

    “조금 시시하기는 했죠? 초반보스곡은 아무래도 초반이니까요. 그래도 초반은 초반 나름의 허접한 추억이 있어서 싫지만은 않아요. 제 약했던 시절을 떠올릴 수 있거든요. 후후후.”

     

    괴인연주가의 전신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로브가 마구잡이로 꿈틀거렸다.

    겉으로 드러난 여덟 개의 팔로도 모자라 보다 많은 손이 육신을 비집고 빠져나오려는 것처럼, 인간의 골격에 가두어진 야성을 모조리 일깨우려는 것처럼.

    제 2의 형태를 개방하려던 그의 어깨 위에 차가운 단봉이 내려앉았다.

     

    “그만. 비네와 같은 추태를 보일 셈이냐?”

     

    정장차림의 연주가의 선언에 괴인연주가는 주먹을 움켜쥐다가 심호흡을 했다.

    부풀어 오른 신체가 가라앉으며 여덟 개의 팔도 다시 두 개로 줄어들었다.

     

    “…다음에는 진심으로 압살해주마. 두 번 다시 나의 악상을 허접하다고 모욕할 수 없도록.”

    “다음에도 같이 놀아요!”

     

    서귀연의 넷이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었던 연주보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가혹한 난이도의 연주를 홀로 여유롭게 받아쳐낸 오크노디.

    대공자 안데르센이 황망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가운데, 정장차림의 간부가 마침내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은 혈음악단 간부의 일석을 차지한 이 포케토가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나무 한 바퀴를 돌며 벚꽃의 색과 향을 즐기고 천천히 종료 선까지 이동하는 것뿐.”

     

    간부가 꺼내든 악기는 허접한 풀피리였다.

    마지막은 봐주려는 건가?

    그만 이 시험에서 해방되고 싶은 학생들의 간절한 시선에 간부 포케토가 싱긋 웃으며 풀피리를 입가에 가져다대었다.

    맑고 청량한 피리소리.

    별 대단한 기교가 섞인 것도, 어지러운 공세가 뒤따르는 것도 아닌 연주였지만 연주의 결과를 목도한 안데르센과 서귀연 일동의 입이 쩍 벌어졌다.

     

    <기상의 연주곡>

     

    벚꽃나무의 나무껍질 위로 세 개의 실선이 그어지더니 나무껍질이 벌어졌다.

    두 개의 눈은 학생들을 응시하고 하나의 입은 사악하게 벌어졌다.

     

    우두두두둑

    부스스스스

     

    뿌리를 들고 일어난 나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무를 한 바퀴 돌고 종료선을 통과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의 승리입니다. 그래요. 할 수만 있다면.”

     

    나무가 향하는 방향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학생들의 반대편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나무가 하면 안 되는 짓 : 자리에서 일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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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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