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1화. 새로운 시대
어느 가수의 노래에서 말하기를.
안녕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고 하였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헤어짐의 끝에는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는 것.
나는 흐려지는 시야를 비비며 눈을 부릅떴다.
“…쓰으. 후우ㅡ”
괜찮다.
정말 괜찮았다.
일꾼 1호의 예상치도 못한 선물 때문에 살짝 흔들리기는 했지만,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 “…하나 된 분이시여.”
– “힘내세요….”
“후우. 나는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할 일은 해야지.”
녀석에게서 뜻밖의 선물을 받아버렸다. 마땅히 보답해야겠지.
내가 드워프들에게 준비한 선물은 ‘고작’ 별자리 따위가 아니다. 그건 충동적으로 선택한 퍼포먼스였을 뿐.
나는 그보다 훨씬 엄청난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자, 시작하자.”
성지의 하늘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르고스와 하늘 고래가 천천히 유영했다.
나는 손끝에 별빛을 모았다. 화면을 향해 힘껏 별빛을 쏘아낸다.
쿠구구구구구ㅡ!!
성지의 초원이 들썩이며 일어나기 시작한다. 오래된 거북이의 등껍질이 갈라지듯 땅이 무너진다.
쩌적ㅡ! 쩌저저적!
삐이이이이이ㅡ!!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고 있던 이베르만 봉변을 당했다. 다급히 하늘로 날아오른 이베르가 하늘을 째려봤다.
“앗차. 실수.”
미리 말해주는 걸 깜빡했네.
한참이나 나를 째려보던 이베르는 날개를 파닥거리며 어디론가 모습을 감췄다.
별빛을 두른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드워프들이 사는 곳을 중심으로 커다란 원을 그린다.
쿠구구궁ㅡ!!
내 손가락을 따라 대지가 갈라진다. 이윽고 드워프와 엘프, 밤의 일족이 살던 구역을 따라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이윽고 외딴섬 같은 모습이 되었다.
꽤 커다랗고 깊은 절벽이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여러 작은 마을이 있었다.
“완벽한데?”
일단 1차 가공은 완료.
나는 한껏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시작할 2차 가공은 조금 힘든 과정이었다.
“흐으으읍…!”
다시 한번 더, 손끝에 별빛을 모은다.
아까보다 조금 더 선명하게 빛나는 별빛. 균열을 열고 그 너머로 손을 집어넣었다.
ㅡ화아아악!
화면 너머, 거대한 손이 성지의 하늘에서 나타난다.
내 손이다. 나는 분리된 땅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어우씨. 생각보다 조금 크네?”
조금 무거웠지만, 생각보다는 가볍다.
나는 가까스로 땅을 통째로 들어 올렸다.
“빨리 와…! 빨리!”
부우우우우ㅡ
하늘고래가 부랴부랴 근처로 다가왔다. 아르고스 주변을 헤엄쳐서 은근히 부각되지 않았지만, 하늘고래 자체의 크기도 상당한 편이다.
나는 들고 있던 땅을 조심스럽게 하늘 고래의 등에 올렸다.
하늘 고래가 순간 휘청거렸지만, 곧 균형을 잡으며 안정적으로 비행하기 시작했다.
이걸로 2차 가공은 끝.
이제 마무리 작업이다.
치지지지직ㅡ!
손끝에서 레이저를 쏘아내며 하늘 고래의 등과 땅을 단단히 고정했다.
하늘 고래와 땅은 한 몸처럼 단단히 고정됐다.
고오오오오오ㅡ
하늘 고래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제 몸 위에 땅덩어리 하나가 올라왔음에도, 불만이나 불평 하나 없었다.
이렇게 온순한 녀석이 있을 수가 있을까.
“착한 녀석.”
나는 하늘 고래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굉장히 거대한 하늘 고래였지만, 내 손에 비하면 금붕어나 다름없었다.
츠파앗!
하늘 고래에게 약간의 별빛을 부여했다. 조금 색다른 ‘권능’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종류를 하늘 고래에게 부여한 것이다.
“이 정도면 생각보다 할 만하네.”
현기증 같은 증상은 없었다.
생각보다 작업의 난이도가 낮았다.
나는 균열에서 손을 꺼냈다.
이걸로 내가 드워프들에게 주려던 선물은 무사히 준비됐다.
“자. 너도 지상으로 나가라.”
지상으로 통하는 균열을 열었다. 하늘 고래는 거대한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균열을 통과했다.
– “드워프들의 고향을 하늘 고래의 등에 올려두고, 하늘 고래를 지상으로 보내시다니요?”
– “도대체 무슨 뜻으로…?”
“아아… 모르는 건가. ‘하늘치’라는 환상의 동물을 말이다.”
– “…?”
리아와 케넬름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군. 모르는 건가.
“아아. 그렇게 된 건가…. 이건… 다음에 말해주도록 하지. ‘하늘치’라는 환상의 생물은… 아니다. 이건 너희에게 아직 이르군.”
– “네, 네에? 그런 게 어디 있어요!”
– “너무하십니다! 아니, 그보다 묘하게 열받는 그 말투는 뭔가요?”
“케넬름을 따라 해본 거야. 어때, 비슷해?”
– “저는 그렇게 얄밉게 말한 적 없습니다! 혀를 날름거리지도 않았어요!”
그렇지만 평소에 케넬름이 하는 설명은 딱 이런 말투였는걸.
* * * * *
긴 균열의 끝을 빠져나오자, 지상이었다.
온 세상이 화사한 색채를 뒤집어썼다. 드워프들은 조심스럽게 사방을 둘러봤다.
여름의 끝 무렵인지, 불그스름한 산등성이가 선명하다.
“이곳이ㅡ”
난생처음 지상에 와보는 드워프들의 표정은 제법 볼 만했다.
성지에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초원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지상은 전혀 다르다.
반듯하게 올라온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잘 닦인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오가는 수많은 사람과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
“어, 어어! 저기 좀 봐! 드워프들이다!”
“신의 일꾼들께서 다시 나타나셨다!”
성지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차원 관문에는 기도하러 온 신도들로 가득했다. 거대한 관문을 열고 나온 드워프들은 금방 인파에 둘러싸였다.
척 척 척ㅡ!
금속 장화 소리가 울리더니 어디선가 성기사들이 나타났다. 드워프들이 지상으로 올 것이라는 걸 예상하던 만신전이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이다.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신의 일꾼들이신 드워프 님들을 뵙습니다. 이쪽으로.”
“오, 어? 어어어.”
“크흠. 자아, 어리바리하지 말고 얼른 가자!”
지상에 처음 와본 드워프들은 얼떨떨하게 성기사들을 따라갔다.
그나마 한두 번 지상에 와봤던 드워프들이 조금 의젓하게 행동했다.
지상에 가장 익숙한 오푸스 팔락이 앞장섰다.
“만신전까지 호위하겠습니다.”
1 중대에 달하는 숫자의 성기사들이 창칼을 세우며 드워프들을 호위했다.
이미 각국의 권력자들이 숨겨둔 눈과 귀를 통해 드워프의 존재를 눈치챘다. 드워프들은 신의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어찌 탐이 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만신전은 다소 과할 정도로 많은 성기사들을 드워프들의 호위에 배치했다.
혹시 모를 습격이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저번에 봤던 그 늙은이들은 그나마 괜찮은 것 같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오푸스 팔락도 이 사실을 금방 눈치챘다.
오푸스 팔락은 지상의 대장장이들 수준이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본인들이 갖는 가치 또한 누구보다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우리가 탐나겠지.’
드워프들의 숫자는 고작 200.
소수의 인간과 싸운다면 지지 않겠지만, 군대가 몰려와 숫자로 압박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것이다.
…하나 된 분께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감히 드워프들을 핍박할 정도로 용기 있는 자가 있을까 싶기는 하다만.
언제라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법이었다.
“흐음. 고민이구먼.”
앞으로 지상에서 지내야 할 테니, 향후 계획에 대해 오푸스 팔락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쩌저저적ㅡ!
“어, 어엇!”
“하늘에 균열이 열린다!”
“꺄아아아아악!”
만신전에 가까워질 무렵.
하늘에 거대한 균열이 열리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이리저리 도망치기 시작했고, 성기사들도 안색을 굳히며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마왕? 또 마왕이냐!”
“습격이다, 습격! 놋쇠 날개 부대는 당장 집결해라!”
땡ㅡ! 땡ㅡ! 땡ㅡ! 땡ㅡ!
날카롭게 울리는 네 번의 종소리.
습격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미 마왕에게 몇 번이고 습격당했던 성도는 균열에 대해 PTSD가 있었다.
도시 전체가 벌집처럼 시끄럽게 들끓기 시작했다.
거리에 판을 벌리던 상인들은 바람처럼 사라지고, 오가는 사람들도 순식간에 도망쳤다.
저 멀리서 성기사와 사도 부대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오고 있었고, 한창 데이트를 즐기던 케니스와 한스도 이빨을 갈며 나타났다.
“균열! 균열이 열렸다면서요!”
“마왕이 씹어먹을 녀석! 어디냐, 어디야!! 감히 데이트 중에ㅡ 아, 아니. 이게 아니고. 아무튼! 어디냐!”
케니스의 대검에서 이글이글 화염이 치솟았다.
한스는 왼손에 걸려있던 봉인의 붕대를 진작에 풀어버렸다. 유난히도 한스의 분노가 큰 것 같았다면 착각일까?
쩌저저적ㅡ! 쩌적ㅡ!
균열은 지상의 소란과 무관하게 계속 크기를 키워갔다.
여태껏 관측된 적 없던 거대한 규모의 균열이었다.
저 균열이 열린다면 안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상황.
“저건… 너무 커지는데요.”
“케니스. 균열이 열리기 전에 먼저 공격하자.”
“네!”
타앗! 케니스와 한스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높이였다. 균열은 구름과 비슷한 높이에 있었다.
“으음…….”
눈을 가늘게 뜨고 균열을 바라보던 오푸스 팔락이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으음ㅡ.
뭔가, 저 균열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되게 익숙한 기분이 드는데. 기분 탓인가?
쩌적ㅡ!
균열이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유례없이 거대하게 열린 균열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건…?”
대검을 들고 전의를 불태우던 케니스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부우우우우우ㅡ
하늘을 나는 고래였다.
수염처럼 뻗은 지느러미는 수백 개에 달했고, 꼬리 쪽 지느러미에는 뿌옇고 하얀 구름을 달고 있었다.
“고, 고래… 잖아?”
하늘 고래는 지상의 사정 따위에 관심 없다는 듯, 느릿하게 움직였다.
“허….”
드워프들은 조금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저 하늘 고래, 분명 성지에 있던 녀석 아닌가? 아르고스 주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던 녀석이 맞는 것 같은데.
갑자기 지상에 나타났다고? 도대체 어째서…?
하늘 고래의 그림자가 성도 전체를 뒤덮었다. 하늘 고래는 분명 굉장히 높은 상공에 존재하고 있다. 하늘 고래의 배 부분에 구름이 걸려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까마득하게 거대한 몸통 때문에 원근감이 뒤틀리는 착각이 들었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하늘 고래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부우우우우우ㅡ
유유히 구름을 따라 움직이던 하늘고래가, 문득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지상의 사람들은 그제야 하늘 고래의 등을 볼 수 있었다.
본래라면 아마 평생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늘 고래가 보여주기로 마음 먹었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어…? 저기 등에 뭐가 있는데?”
구름과 비슷한 높이에 걸려있는 하늘 고래였지만, 드워프들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하늘 고래의 등에는 건물이 있었고, 분명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ㅡ
“우, 우리가 지내던 곳이잖아?”
성지에서 드워프들이 지내던 것들이었다.
드워프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
설마 이게, 신께서 말씀하신 선물…?
드워프들의 눈이 천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니, 그, 신이시여.
저희의 고향을 통째로 지상으로 보내버린다는 발상은 도대체…, 아니 그보다, 저렇게 고래의 등에 올려버리면.
“…저 높은 곳까지 저희가 어떻게 갑니까…?”
부우우우우ㅡ
하늘고래는 드워프들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보여줬다는 듯, 몸을 원래대로 돌리더니 천천히 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
“…………”
지상의 뚜벅이들은 하늘 고래가 떠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드워프들은 잠시 침묵했다.
고향을 떠나 지상에 왔더니, 고향이 우리를 따라왔네…?
이게 도대체 무슨?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엄청나게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후원 메세지가 드디어 부활하는군요…!! 다행입니다…! 그, 작가에게 자신의 줏대라는 것이 필요하기는 하겠지만… 흐잉… 모르겠습니다… 잦은 설정 찐빠로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맞는… 걸까… 요…….. 흐이이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