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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1

    <471 – 서비스 서비스>

     

    식물도 의지가 깃든 자연마나를 듬뿍 머금다보면 몬스터로 각성한다.

    마치 열과 압력을 받으면 석탄도 다이아몬드가 되고, 마나를 잔뜩 받으면 돌도 마나석이 되는 현상과 흡사한 원리!

     

    “일단 달려!”

    “대공자님, 멍하니 보고 있을 때가 아닙… 어라? 대공자님이 어디 갔지?”

    “벌써 로프 건을 쏴서 나무에 매달려계신다! 너야말로 멍 때리지 말고 대공자님이 남겨둔 로프부터 당장 붙잡아!”

     

    엄청난 행동력으로 일찌감치 나무에 매달린 대공자와 뒤늦게 쫓아가는 서귀연 일동!

     

    “앤서니 소보로 1점 감점. 여유를 잃었다.”

    “옐친 브라우니 1점 감점. 여유를 잃었다.”

    “아돌프 1점 감점. 여유를 잃었다.”

     

    심사를 맡은 조원들이 모조리 기권한 교관들은 그런 학생들에게 가차없이 감점폭격을 쏟아 부었다.

     

    “큭… 쫓아가도 감점인가!”

    “더 빠르게 달려라. 나무를 한 바퀴 돌지 못하면 피크닉을 끝마칠 수 없다!”

     

    옐친의 판단은 현명했다.

    감점도 낙제보다는 낫다.

    어차피 완주에 실패하면 기권한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큭큭. 쫓아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혈음악단 간부가 내게 물었다.

     

    “딱히?”

    “여유는 있군요. 포기를 한 건지 노리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처럼의 기회입니다. 혈음악단 간부와 대화를 나눌 기회는 흔치 않죠. 무언가 궁금한 것은 있으십니까?”

    “있어요!”

    “해보시죠.”

    “보통 나무를 몬스터로 만든다고 순순히 명령을 따르지는 않잖아요. 혹시 풀피리 연주로 테이밍까지 동시에 진행한 건가요?”

    “용케 눈치 챘군요.”

    “방금 그 연주, 테이밍 강의시간에 들리는 인게임 효과음이거든요!”

     

    보스전 브금을 들을 때부터 심상치 않다고 느꼈지만 효과음까지 들으니 이젠 확신이 들었다.

     

    “설마 혈음악단이 브금담당이었다니!”

     

    브금BGM.

    배경음악Back Ground Music.

    몰입을 더하고자 나오는 노래를 실은 게임 속에서 직접 연주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니, 이 얼마나 충격적인 진실이란 말인가!

     

    ‘그럼 챕터보스가 나올 때마다 근처에 혈음악단이 숨어서 연주를 하고 있었던 건가?’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챕터보스들의 보스전 브금은 무언가 맛탱이가 갈 때 나오긴 했다.

    암흑마나에 헤까닥 한다거나, 폭주를 일으킨다거나, 동귀어진이나 대량학살을 각오한다거나.

    나무를 괴물로 변이시키고 즉시 테이밍까지 걸어버린 솜씨를 보아서는 그들의 연주가 챕터보스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은 틀림없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그보다 조원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서두르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 나무괴물, 벌써 저만큼이나 멀어졌다고요?”

    “후후. 테이밍 실력이야 인정하지만 플레이어의 편법도 만만찮거든요. 이미 대비책을 세웠답니다.”

     

    아카데미를 암약하는 혈음악단.

    챕터보스들을 일으킨 주범.

    대단하기는 한데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누구한테 어디서 간섭할지를 전부 다 알고 있는데.

    나무가 움직일 때부터 이미 수는 두었다.

     

    “간부. 나무가 다시 돌아오는데?”

    “그건 이상하군요. 분명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라고 지시를 내렸을 텐데.”

     

    나무몬스터를 살펴보던 간부의 눈에 충격이 어렸다.

     

    “뭡니까 저건. 내가 일으킨 건 분명 <영목>이었을 텐데. 어째서 나무괴물이 마목이 되었죠?”

    “후후후. 그야 당연하죠.”

     

    간부가 나무를 일으켜 세우는 동안 나라고 구경만 했던 건 아니다.

     

    “제 암흑마나를 피리소리와 같은 주파수로 은밀히 날려서 보냈으니까요!”

    “!!”

     

    <마나제어술>

    <흉내내기>

    <마계수의 부름>

     

    암흑마나를 이용해 한 번 영목이 아닌 마목으로 타락시킨다면, 마목은 내 부름을 거역할 수 없다.

    1학기 플라톤 교수님의 철인3종경기 시험에서 출몰한 마목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

     

    정장차림의 간부가 한방 먹었다며 제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이거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군요… 다른 분야도 아니고 하필이면 마나제어술로 이 혈음악단의 간부에게 도전하다니.”

    “특기분야세요?”

    “기고만장하는 것도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제어술식에는 대응할 수 없을 겁니다!”

     

    간부가 풀피리를 쥐었다.

    피리에서 나는 효과음은 4위계 <속성포식> 술식이 성공했을 때의 효과음!

    지정된 특성 외의 모든 속성퍼즐이 잡아먹히는 순간, 해당 물질 혹은 생명체의 속성이 특정속성으로 변환되는 주문이다.

     

    <암흑포식>

     

    그럼 내가 할 일도 간단하다.

    암흑마나로 다른 속성을 잡아먹게 시키면 그만!

     

    “이제 시작입니다.”

     

    포식을 우회해서 저주로 특정속성 상태이상을 부여해서 마나퍼즐의 주도권을 역전시키는 잔기술은 <암흑저주>술식으로 대응한다.

     

    “어림도 없습니다.”

     

    고통부여로 간부가 지정한 술식 외의 속성을 사용할 때마다 고통을 입혀서 특정속성에 치우치게 만드는 기술은 나도 <암흑고통부여>로 대응한다.

     

    “이것까지 따라오진 못하겠죠!”

     

    중급마석을 매개로 한 종류의 마나를 대량으로 발생시킨다면 나도 마석주머니에서 중급마석을 날려 마목의 껍질을 갈라 이식한다.

     

    <바람의 속삭임>

    <암흑의 속삭임>

     

    <선풍의 축복>

    <암풍의 축복>

     

    <폭풍의 흔들림>

    <흑풍의 흔들림>

     

    속성으로 협박하면 나도 협박하고, 속성으로 꼬드기면 나도 꼬드기고, 속성으로 강제하면 이쪽도 똑같이 강제한다.

    뭘 해도 이중으로 술식을 받으니 마목은 언제부터인가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변해가는 자신의 몸체에 두려움을 느끼며 고통에 꿈틀거리기만 했다.

    불쌍한 마목의 발버둥에 혈음악단 간부는 분노만 터뜨렸다.

     

    “이런 고약한! 대체 제어술이 왜 이렇게 뛰어난 겁니까. 어떻게 이런 괴물 같은 제어실력을 지닌 자가 1학년일 수 있단 말입니까!!”

    “후후. 효과음을 아는 마법 따위, 백날 써봤자 제 눈과 귀를 속일 수는 없다구요!”

     

    나뭇가지로 머리를 가리듯이 나무기둥을 덮고 웅크린 마목.

    보기 딱할 정도로 애처로운 몰골의 마목을 향해 간부가 거칠게 손을 뻗었다.

     

    우수수수수!

     

    강제로 나무에서 뽑혀 나오는 나뭇잎들.

    마목이 비명을 내지르건 말건 나뭇잎을 모은 간부의 앞에 수많은 마목의 잎사귀가 뭉쳐서 형체를 이룬 거대풀피리가 등장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제 수법을 전부 간파하고 있음은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간파 불가능할 새로운 악상을 지금 이 자리에서 창조해드리죠!”

     

    간부아저씨가 작전을 바꾸었다.

    마목의 지배권을 두고 다투는 대신, 무작정 마목에게 들어가는 마나의 총량을 거칠게 늘렸다.

    흡수.

    흡입.

    증폭.

    강화.

    보통의 생물체라면 몸이 마나에 불어터지고도 남을 주문을 마구잡이로 거칠게 섞어서 엮었다.

     

    “앗. 대공자님, 나무에 매달려계시면 큰일 나요!”

     

    안데르센 대공자가 마목에 매달린 채로 애처롭게 외쳤다.

     

    “대체 뭐가,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냐!”

    “나무를 아주아주 크게 만들어서 터뜨릴 작정이에요. 나무가 커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한 바퀴를 돌고 결승선을 통과하지 않으면 시험통과에 필요한 나무가 펑 터져서 사라질걸요?”

    “사악한 혈음악단이 본색을 드러낸 건가?!”

    “그보다 그 전에 그 나무에 붙어있으면 마나 다 빨려서 쓰러져요!”

     

    안데르센 대공자마저도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여겼는지 표정이 어두워졌다.

     

    “기…”

    “그러지 마라.”

     

    기권을 외치려던 안데르센 대공자를 함께 나무에 매달려있던 교관이 저지했다.

     

    “히틀러 교관. 지금 무얼 하는 건가! 시험을 진행 중인 학생에게 참견하다니, 보수를 모조리 몰수당할 작정인 건가!”

     

    총교관의 노호성에도 그는 아랑곳 않았다.

     

    “이게 무슨 1학년 시험이냐! 정신나간 혈음악단 때문에 3학년 시험보다 위험해졌는데!”

    “아니 저 녀석이…!”

    “내버려둬라.”

     

    당장 히틀러를 강제로 끄집어내려고 완드를 꺼내든 총교관을 데모니카 교수가 저지했다.

     

    “학생들만큼 저 교관도 흥미롭군.”

    “교수님, 히틀러 교관이 혈음악단에게 찍히도록 둘 작정입니까? 혈음악단과의 계약은 학생의 안전만을 장담했지, 교관의 안전은 장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흥미롭지 않은가. 모든 위험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던 교관이 제 발로 가장 위험한 자리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헤에.

    히틀러 교관이라고 하는구나.

    별난 이름만큼 별난 교관님은 나무에 손을 꽂아 넣고 강제로 안정화 주문을 부여했다.

     

    <강제안정화>

    <마나연공법>

     

    도둑들이 마법적으로 불안정한 트랩을 강제로 안정화시키고 해체할 때 사용하는 안정화 주문을 마나연공법과 연동시킨다.

    마치 주기율표에 나오는 모든 금속원소가 존재하는 땅에서 공기필터 없이 인간의 허파로 공기를 정화하는 것과 동등한 미친 짓이다.

     

    ‘시도 자체는 미친 짓이지만 충분한 실력이 뒷받침된다면 가능성은 있는 시도!’

     

    수준 높은 술식의 발동도 놀랍지만 본인에게 이득이 안 될 짓을 저지르는 태도에서 2챕터 챕터보스 카멜라의 파트너가 된 교관 루소가 떠올랐다.

     

    약하지만 용기 있는 사람.

    목숨만큼 소중한 무언가를 지닌 사람.

    기존의 스토리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히든NPC.

     

    혈음악단보다도 흥미로운 교관의 존재에 눈에서 저절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세계, 이 회차, 이 순간은 특별해.

    투자 대비 이득이 적은 시험을 대충 내던지고 혼자만 통과하려던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다.

     

    “기특한 뉴비는 아껴야죠.”

     

    특별서비스다.

    오늘은 큰 맘 먹고 아껴둔 자원 좀 써야겠다!

     

     

    * * *

     

     

    히틀러는 후회했다.

     

    ‘멍청한 녀석. 초대면의 1학년이 뭐라고 목숨 걸고 안정화 주문을 걸어대는 거야. 이래선 주문역류에 당해 죽고 싶지 않다면 끝까지 버텨야 하잖아.’

     

    혈음악단 간부가 부여한 흉악한 증폭흡수확장의 연쇄술식에서 비롯된 불안정화 현상.

    마목이 한도 이상으로 흡수하고 증폭된 마나를 제어하지 못해 펑 터져나갈 위기로부터 아돌프라는 답답할 정도로 성실한 1학년이 벗어날 기회를 만든다.

    그 대가로 임무마저 내팽개치고 몰두한 자신이 이렇게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는지 의아해질 지경이다.

     

    ‘이상해. 분명 바보 같은 짓인데도 전혀 후회가 되질 않아.’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되어버렸나 보다.

    고작 1학년의 시합 따위에 이렇게까지 가슴이 뜨거워지다니.

     

    ‘역시 미련이 남았던 건가?’

     

    아카데미에 잠입하거든 보여주겠다고.

    너희가 놓친 인재가 어떤 인재였는지.

    감쪽같이 암약하며 도적길드의 VIP임무를 완수할 작정이었을 텐데.

    정작 도적길드의 임무는 뒷전이 되었다.

    숨겨왔던 감정이 더는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넘쳤다.

    인정받고 싶다.

    끝내고 싶지 않다.

    그는 역시 기프트 아카데미의 4학년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늦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저 1학년들이 살아서 이 시험을 통과하도록 시간을 버는 것이 전부야.’

     

    눈을 감았다.

    형편없는 최후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그래도 좋다.

    실패한 자신과 달리, 저 1학년에게는 길이 열렸으니까.

    위기 앞에서 기권하고, 돌아서고, 현명했다며 자조하는 대신에 더욱 빠르게 돌파하는 용기를 깨우칠 수 있을 테니까.

    이름 모를 교관의 희생 덕분에 아돌프라는 1학년에게는 더욱 찬란한 가능성이 펼쳐질 테니까.

    그렇게라도 범용한 사내가 아카데미의 4학년에 올라선다면 만족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눈을 감았던 히틀러였다.

     

    <공포부여>

     

    초연을 넘어서 해탈에 가까워졌던 그.

    그런 그의 눈이 번뜩 떠졌다.

     

    ‘뭐냐 저건?’

     

    한눈에 보자마자 깨달았다.

    저건 오크노디의 짓이다.

    혈음악단 간부가 수를 쓸 때마다 응수를 해왔던 오크노디가 이번에도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랐다.

    저건 흡수하는 힘이 아니다.

    오히려 마목에게 가득 차고 넘칠 정도로 모여든 마나에 뿌리 내리며 그 몸에 파고드는 저주였다.

     

    <강제출혈의 저주>

    <상처확장의 저주>

    <감각상실의 저주>

     

    대상이 고통 받고, 약화되고, 죽음에 향하도록 만드는 목적을 지닌 저주.

    그렇기에 그 강력한 효과를 충족시키고자 대상의 마나를 강제로 동원해서 소모하는 저주.

    그런 저주가 수도 없이 오크노디를 통해서 폭주 직전의 마목에게 날아든다.

     

    ‘대체 얼마나 많은 저주를 지닌 거야?!’

     

    저 많은 저주를 전부 매개체를 사용해서 수집했을 리가 없다.

    아카데미의 주간이벤트에 나오는 저주를 싹싹 긁어모은 것이 아니고서야 비상식적인 수준의 물량!

    그것도 1학년 구역에서는 결코 출현하지 않을 고학년 구역에나 출몰할법한 저주들이다.

     

    ‘한번 본 악상을 눈앞에서 모조리 재현할 수 있는 재능의 아이. 그런 아이가 저주를 펼치려면 한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해.’

     

    한번 본 악상을 재현했던 것처럼.

    전부 직접 본 저주를 재현하는 것이라면.

    저 많은 저주도 비로소 납득이 간다.

    재단이다.

    와이히엠하이 재단.

    그 악명 높은 재단이 저 어린 아이의 눈앞에서 사용해왔던 저주들이 펼쳐지고 있다.

    아카데미 중퇴자인 자신조차도 그 흉험한 구성에 공포감이 밀려들 정도의 저주들이 한 아이의 손에서부터 끝도 없이 뿜어져 나왔다.

    마목의 폭주하는 마나가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할 때까지.

    마나가 늘어나는 양과 동일한 양의 마나가 소모될 때까지.

     

    쿠구구구궁.

     

    직경 50m가 넘도록 자라났던 마목이 수많은 저주에 비틀리고 피 흘리며 주저앉았다.

    혈음악단조차도 멍하니 바라보는 광경을 만든 당사자는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한, 기이할 정도로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개운하게 말했다.

     

    “히틀러 교관님. 이제 손 떼어도 돼요. 저 마목은 에너지가 늘어나는 만큼 더 많은 저주에 당하도록 술식을 짜서 이제 절대로 폭주할 수 없거든요!”

     

    의기양양한 소녀의 모습이 그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그 어떤 강자에게도 이런 고문을 펼쳐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자랑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마도 그 협박을 당하는 당사자일 혈음악단 간부는 풀피리를 내던지고 백기를 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주문 안한 저주모듬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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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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