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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1

       

       엽사조합 시마즈구미 경성분조, 4층의 간부 사무실. 

       

       『후우……』

       

       렌까는 아까부터 탁자에 얼굴을 올리고 한숨만 내쉬더니, 고개만 살짝 움직여 탁자 위의 달력을 바라보았다. 

       

       일요일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고, 그 뒤로 X표가 연거푸 그어져 있다. 오늘은 화요일. 즉, 백철연이 형무소에 들어간지 3일째인 것이다. 

       

       ‘시간이 가지 않아……!’

       

       종로서 미와 과장의 말에 의하면 백철연은 일주일 안으로 나올 것이라며,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나올 것이라지만 그래도 시간이 너무 안 간다. 

       

       ‘면회도 안 되고…….’ 

       

       그래서 렌까는, 백철연이 언제쯤 나올지 오로지 그 생각만 하며 하루하루 기다리는 나날이었다. 

       

       차라리 바빴으면 좋았겠지만 할 일도 없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어디 근처에 마문이 열리기라도 하면 지루하지는 않을 것……

       

       ‘……이라는 말은 하면 안 되겠죠.’

       

       아무리 엽사라는 것이 마수 사냥이 본업인 직종이라고는 하지만, 마문이 열리고 마수가 튀어나오면 필연적으로 사람이 다치거나 죽는다. 엽사라는 것은 한가해야 좋은 직업이다. 의사나 소방관처럼 말이다.

       

       하지만 마문은 둘째치더라도, 경호 업무의 조정이라든가 타 조합과의 조율, 비품 구입같은 어지간한 일처리는 유능한 부하인 다까히로가 다 처리해 놓았기에 렌까는 여전히 할 일이 없었다.

        

       지금도, 법적 문제 때문에 경찰과 조율해야 하는 일에 다까히로가 나가있었고. 

       

       ‘아-아. 부하가 유능한 것도 이럴 때에는 문제구나.’

       

       그런 형편 좋은 생각을 하는 렌까였다. 그리고,

       

       ‘후우. 얄미운 사람.’ 

       

       렌까의 생각은 다시금 백철연을 향했다. 얼마나 중요한 비밀 임무였기에 약속을 파토내고 일절 연락도 없이 형무소로 들어가버렸단 말인가? 괘씸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각오하세요. 나오기만 하면, 마구마구 몰아붙일테니. 후후.’

       

       백철연이 나오면 약속 배반을 약점잡아서, 하루종일 이곳저곳 데리고 다니며 노닥거릴 생각을 하니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쇼핑도 하고, 구경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함께 걷고…… 그리고, 그리고…….’

       

       그렇게 탁자 위에 뺨을 찰싹 붙인 채 헤죽 웃으며 망상을 이어가던 렌까는,

       

       『저기…… 아가씨. 퇴근하지 않으십니까?』

       

       한 간부급 조합원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들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6시. 시간이 안 간다 안 간다 했지만, 어쨌든 시간은 가는 것이다. 렌까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간부 사무실의 조합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슬슬 퇴근할 시간이군요? 그럼, 당직만 남고……』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득 사무실 입구를 보니, 며칠 전에 빡빡이 하루조가 깨먹은 액자가 아직 걸려있지 않았다. 

       

       엽사조합 시마즈구미 본조(本組)의 장(長)이자, 시마즈 가문의 현 당주이며 렌까의 부친인, 시마즈 다다노부(島津忠宣)의 액자가.

        

       『하루조 상. 액자가 아직 걸려있지 않군요? 깨트린 것이 이틀 전일텐데…….』 

       

       빡빡이 하루조가 황급히 대답했다.

       

       『죄, 죄송합니다! 목공소에 액자의 제작 주문을 넣었습니다만, 최고급 흑단목의 수급이 늦어져서…… 어,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로……』

       『뭐, 관계없어요.』 

       

       렌까는 대충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사진 따위, 걸어놓지 않아도 괜찮을지도.』

       『……예?』 

       

       퇴근을 준비하던 간부 사무실의 모두가 일순간에 얼어붙었다. 다들 경악하는 얼굴이었다. 

       

       ‘아차.’ 

       

       자신이 무슨 말을 해버린 것인가? 시마즈 당주의 사진을 걸어놓지 않아도 된다니. 

       

       엽사조합 시마즈구미는 그 최고자인 시마즈 가문의 당주를 신처럼 우러러보는 집단이었으니, 평범한 조합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면 당장 목이 잘려도 당연한 대죄(大罪)였다. 그런데 하물며, 당주의 딸인 자신이 그런 말을 해버리다니…….

       

       렌까는 손을 내저으며 다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액자는 신경써서 좋은 것으로 걸어놓되, 너무 서두르지는 마세요.』 

       『예, 예. 알겠습니다…….』

       

       ‘후우.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예전 같으면 결코 그런 무엄한 말 따위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실수로라도 뱉어버렸다면, 아버지에게 크나큰 죄를 지었다고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이래놓고도 아버지에게 죄송스럽다는 감정조차 들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한 반감 때문일까.

       

       그 때, 

       

       『아가씨!』

       

       문을 벌컥 열고 사무실로 돌아온 다까히로가 렌까에게 다가왔다. 진지한 얼굴을 보니 뭔가 중대한 일을 보고할 것이 있어보였기에, 렌까는 퇴근하려던 조합원들을 잠시 멈추게 하고는 다까히로의 보고를 들었다.

       

       『간밤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폭동이 있었답니다.』

       『……폭동이?』

       『예. 경찰이 몹시 꼭꼭 숨겨서 저도 겨우 알아냈습니다. 간밤에 각성능력자 죄수들을 중심으로 발생한 폭동이 새벽까지 이어졌었고, 수많은 죄수와 간수가 죽거나 다쳤다고 합니다.』

       

       신문에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지만 보통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렌까는 다시 물었다.

       

       『시라바야시 상에 대한 소식도 있었나요?』

       『그게,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했습니다만, 혼란을 틈타 탈옥한 죄수가 여럿 있다던데, 아마 시라바야시 도련님도 그 중 하나가 아닐지……』

       『뭐라고요?』

       

       폭동에 이어 탈옥이라니. 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아무튼 백철연이 뭔가 위기에 빠진 것은 분명해 보였고, 백철연이 빠져나왔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들은 렌까는, 

       

       『여러분. 퇴근은 잠시 미루고, 시라바야시 상의 소재를 알아내 주세요. 서대문 형무소가 위치한 현저정을 중심으로, 주변의 관동정,  옥천정, 행촌정 및 인근 야산을—』 

       

       막 퇴근할 준비를 하던 조합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무실의 벽에 걸린 지도를 보며 지시를 이어나가는 렌까를 두고, 꼼짝없이 야근을 하게 된 조합원들은 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늘같은 당주의 딸이자 경성분조의 장(長)의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치리리리링!

       

       그때, 탁자 위의 전화가 울렸다. 분조장 전용 전화인 만큼 먼저 걸려올 일이 거의 없는 전화였다. 단순히 시마즈구미 경성분조에 걸려오는 문의 전화는 1층 로비의 접수원이 받고, 중요한 용무일 경우에만 이 쪽으로 돌리는 건데……

       

       ‘누구지?’

       

       렌까가 수화기를 들어 받아보니,

         

       —『음. 저기, 렌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것은 세상에나, 백철연의 목소리였다. 렌까는 깜짝 놀라 크게 외쳤다.

       

       『시라바야시 상!』

       —『아니, 뭘 그렇게 놀래? 고막 찢어지겠다.』

       

       백철연이 맞았다. 렌까는 금세 화색이 되어서는, 수화기를 얼굴에 찰싹 붙여 대고는 말했다. 

       

       『마침, 형무소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당신의 소재를 파악하라고 지시를 내리려던 참이었거든요. 과연, ‘소문을 내면 그림자가 비친다’라더니……』

       『음?』 

       『후후. 무슨 뜻인지 모르시나요?』

       

       조선인들은 이렇다. 학교에서 배웠기에 일본어를 잘 하면서도, 속담이나 관용구는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일본에서 살아온 사람과의 차이다. 

       

       『일본의 속담이랍니다. 조선의 속담으로는, ‘호랑이도 자신의 말을 하면 온다’와 같은 뜻이려나요. 그래서, 지금은 어디인가요?』

       —『집이야. 새벽에 임무 마치고 형무소에서 나왔거든.』

       

       그 소리를 들은 렌까는 조직원들에게 손을 내저어, 방금의 출동 명령은 취소하고 각자 퇴근하라는 뜻을 전했다. 꼼짝없이 야근을 할 뻔했던 조합원들은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렌까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사무실을 나갔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백철연의 말이 이어졌다. 

       

       —『음. 그나저나, 렌까. 저기, 일요일에 있었던 약속은……』

       

       백철연의 목소리를 듣던 렌까는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평소의 그 자신 넘치던 백철연이 수화기 너머로도 말을 쉽사리 꺼내지 못하는 것을 보니, 꽤나 미안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후후. 저와의 약속을 어긴 것 말이지요? 종로서의 미와 과장으로부터 전-부 들었답니다. 비밀 임무였기에 저에게도 전하지 못했다지요?』 

       —『으응.』

       『뭐어, 그 점은, 제가 너그럽게 참작해 드리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용서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답니다!』

       

       렌까는 수화기 너머로 쏘아붙이듯 말을 이었다. 

       

       『왜 이제서야 전화를 걸었죠?』 

       —『어?』

       『새벽에 나왔다면서요? 그렇다면 바로 저에게 연락부터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째서 한나절이 꼬박 지나서야 연락을 주시는 건가요?』 

       —『그게. 나도 할 일이 조금 있었어서.』 

       『흥…… 기다리는 사람의 기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겠죠! 못된 사람!』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렌까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백철연이 쩔쩔매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흐흥. 최근에는 제가 지나치게 고분고분했었죠.’

       

       렌까는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다시금 상하관계를 알게 해드려야겠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랜만입니당!

    이번주도 주5회 업로드를 향해 수라나찰빡글레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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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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