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471

       “…….”

        

       “…….”

        

       말을 걸기 어색한 사람이 있다면, 말을 걸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말을 걸지 않더라도 옆을 떠나기에는 어색한 상황이어야 한다. 그래야 그 사람들은 서로 근처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지구에 오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많은 일이 있었다.

        

       내 친구들은 다 한 번씩은 다녀갔다. 모두 디저트를 좋아했고, 일부는 특정한 퓨전 요리를 보고 분개했고, 커피에 물 타 먹는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뭐, 그래도 만족도는 대부분 높았다. 이쪽 세상에는 대량생산과 압도적인 금융의 힘으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특정한 시장이 있었고, 그 시장 덕분에 나올 수 있는 수많은 문화 콘텐츠들이 있었으니까.

        

       한 며칠 정도 푹 쉬면서 그런 것들을 체험하고 가는 것만으로도 그 아이들의 얼굴이 매우 밝아졌다.

        

       엄청 뿌듯한 일이었다.

        

       심지어 클레어가 동의만 해준다면 돈도 따로 들지 않는다. 물론 클레어가 이것저것 조건을 들어서 나는 앨리스와 함께 클레어의 집을 방문하거나, 함께 차를 마시거나, 이쪽 세상에서 캠핑하거나 했다.

        

       하지만, 애초에 나도 원하는 일이었으니 딱히 불만은 없다. 얼마나 훌륭한 거래인가? 사전적으로도 훌륭한 윈윈 전략이다.

        

       아무튼, 물론 나는 내 친구들을 부를 때마다 나름대로 공을 들였다.

        

       집 안을 미리 깨끗하게 청소하고, 먹을 음식들을 사다가 냉장고에 채워두고, 방송도 미리 조금 하고, 어디 놀러 갈 지 계획을 세우고.

        

       하지만 보통은 다들 정말로 놀다가 갈 생각으로 오기에, 몇몇 호불호 강하게 갈리는 음식 정도만 주의하면 큰 문제 없었다.

        

       내가 까다롭게 생각한 존재는 황제와 그 아이들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설정되어 나에게는 언니 오빠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었고, 대부분은 성격이 상당히…… 음, 특이했다.

        

       게다가 공통으로 황제를 미워했다.

        

       과거에야 목숨 걸고 따를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전제조건 자체가 황제가 비틀어버린 자기네 운명이었으니 원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나는 어째서인지, 황제와 그 아이들을 함께 두고 싶었다.

        

       이유는 정말로 모르겠다. 황제를 완전히 용서하는 게 불가능한 아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냥 그러고 싶었다.

        

       황제가 나한테 했던 것처럼 사과라도 하기를 바라는 걸까?

        

       뭐, 아무튼.

        

       그렇게 모든 아이에게 이쪽 세상을 보여주고, 설득하고, 황제에 대한 감정이 조금은 가라앉게 하고, 연금이 풀리기를 기다리는 데 걸린 시간이 무려 2년이었다. 그리고 연금이 풀렸더라도 이들이 그 죄를 제대로 해결하는 데는 긴 시간이 남았고.

        

       따지자면 연금 장소가 밖에서 황궁 안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나는 아직 미성년자다. 앨리스, 클레어도 마찬가지다. 아카데미는 졸업 직전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잠깐 났다. 성인이 되면 이렇게 마음 놓고 지내는 시간이 잘 나지 않을 것 같아, 나는 클레어와 앨리스에게 말했다.

        

       다 같이, 여행이라도 가 보자고.

        

       내가 잡은 곳은 낚시터.

        

       황제, 나, 앨리스, 클레어, 루카스, 제이든, 벨라, 데미안.

        

       무려 여덟 명의 인간이 나란히 앉아 멍하니 물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낚시였으니, 당연히 다닥다닥 앉아있지는 않았다. 다들 그럭저럭 먼 거리를 유지 중이다. 클레어, 나, 앨리스는 사실상 같은 자리에 앉아있긴 했지만.

        

       그래도…… 음,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든 것은 다행인가?

        

       “으악!?”

        

       갑자기 제이든이 소리쳤다.

        

       찌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낚싯대를 잡긴 했는데, 정확히 어떻게 물고기를 낚아야 할지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물가까지 끌고 와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제이든을 보고, 루카스는 쯧, 하고 혀를 찬 뒤 자리에서 일어나 뜰채를 가지고 제이든 근처까지 갔다.

        

       어떻게든 두 사람은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데 성공했다.

        

       제이든은 내 쪽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이며 물고기를 번쩍 들어 보였다.

        

       음…… 나도 사실 낚시를 제대로 해 보는 것은 처음이라, 그게 뭔지 잘 모르겠다.

        

       벨라는 그런 제이든을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었고, 데미안은 제이든을 보다가 자기 찌를 다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황제도 그런 자기 아이들을 보았지만, 얼굴에 표정은 없었다.

        

       ……참.

        

       이게 평화롭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가시방석을 길게 늘여놓은 것이라고 해야 할지.

        

       뭐, 그래도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의 장이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까.

        

       *

        

       “우리가 서로 죽고 죽이지 않는 건 순전히 너 때문이야.”

        

       벨라의 말이었다.

        

       “모두…… 네게 빚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가?

        

       하긴, 루카스는 얼마 동안은 나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시간을 돌리는 능력으로 자길 속였다고 분기탱천했을 때는 언제고, 기억이 돌아오니 자기가 나를 반복적으로 잘라냈던 기억까지 돌아와 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그럭저럭 나를 귀엽게 생각하던 루카스였으니 정신적인 충격이 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빚’이라는 게 목숨을 빚졌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 순전히 나한테 우겨놓은 고통의 총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

        

       제이든은 자길 죽이지 않았다는 것에서 가산점을 받은 모양이다. 그리고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갖추고도 답안지를 보지 않고 순전히 공부 시간을 늘리고 연습 시간을 늘렸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데미안은…… 사실 별로 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를 나름 막대로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황제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기까지 했고.”

        

       그랬었지.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

        

       황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연습이라도 한 걸까? 지금은 정말 잘 굽는다. 누가 황제 아니랄까 봐, 이런 쪽에서도 배우는 재주 하나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

        

       아이들이 나에게 말을 걸 때가 아니면, 대체로 우리 사이는 조용했다.

        

       그래도 피부로 느껴지는 살기가 아닌 것이 어디인가. 뭐, 나는 그런 살기 같은 것을 느끼는 능력 따위 거의 없기는 했지만.

        

       황제의 표정은…… 처음에는 상당히 굳어있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갈수록 서서히 풀렸다. 적어도 지금은 무표정을 일부러 지은 것 같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조정하고 있긴 했지만, 딱 그뿐.

        

       나는 그것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

        

       황제가, 자기 아이들을 적어도 도구로만 보고 있지 않다는 소리였으니까.

        

       “……그래서.”

        

       식사 도중에 제일 먼저 입을 연 사람은, 결국 루카스였다.

        

       아마도 나에게 가장 많은 업보를 쌓은 루카스였기에, 내 기분에 맞춰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그…… 방송이라고 했나? 그런 걸 한다고? 실비아가?”

        

       “그렇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영화 같은 건가?”

        

       제이든이 물었다.

        

       “아니, 그거랑은 좀 다르지. 훨씬 정적이야. 영화 같은 건 그냥 본인들이 찍고 싶다고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벨라가 말했다.

        

       “음? 그냥 적당히 찍어서 이어 붙이면 되는 게?”

        

       “영화를 뭐로 보는 거야.”

        

       벨라가 미간을 찡그린 채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나는 속으로 살짝 웃었다.

        

       벨라는…… 뭐, 배우의 꿈을 꾸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본인은 그게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대신, 영화감상에 취미를 붙였다.

        

       내가 이쪽 세상으로 올 때면 태블릿에 영화를 담아오기를 바랐다.

        

       그리고 나는 그냥 이쪽 세상에 발전기를 가져다 두고, 휘발유로 전력발전을 하는 것을 택했다. 어차피 가서 가지고 오면 되는 게 아닌가? 증기 터빈으로 전력발전을 하는 것은 이제야 제대로 개발에 들어갔기에 시간이 한참 걸릴 거다.

        

       그래서, 황성 안에는 커다란 TV도 있고, 에어컨도 있고, 냉장고도 있고…… 아무튼 그랬다.

        

       거기 블루레이 디스크를 쌓아두고, 벨라에게도 빌려주는 식으로 했더니 벨라는 순식간에 영화를 다 봐버렸다.

        

       그러니 제이든의 말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다.

        

       “……그, 그런가. 음.”

        

       벨라의 기세에 제이든이 조용해졌다.

        

       “그래. 자. 여기 봐.”

        

       벨라는 자기 스마트폰으로 내 방송 영상 편집본을 보여주었다.

        

       그곳에 나온 모습은—

        

       “…….”

        

       황제와의 합방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뒤 추하게 우기는 내 모습이었다.

        

       제이든의 얼굴이 멍하게 변했다.

        

       “푸핫.”

        

       루카스가 웃음을 터뜨렸다가, 내 표정을 보고 황급하게 정색했다.

        

       데미안은 역시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벨라를 노려보았지만, 벨라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일부러 그런 영상을 고른 것일까.

        

       아니, 백 퍼센트겠지.

        

       나는 황제 쪽을 보았다.

        

       황제는 내 쪽을 보고 살짝 미소 짓고 있었다.

        

       정말이지, 사람이 달라진 느낌이라니까.

        

       *

        

       “오늘은 만족했느냐?”

        

       근처 펜션에서, 밤에 잠깐 밖으로 나와 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더니, 어느새 황제가 다가와 있었다.

        

       “……만족했는지, 아닌지로 물어본다면, 만족했습니다.”

        

       “그러느냐.”

        

       “어쩌면, 서로 사이좋게 지낼 가능성이 보였으니까요.”

        

       “…….”

        

       황제도 나와 같이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느냐?”

        

       “멀리 왔으니, 잠깐 멈춰야죠. 다른 이들이 따라잡을 수 있도록.”

        

       아직 한참 남긴 했지만, 그 아이들의 과거는 이제 절대로 보상받을 수 없을 거고, 그 원망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그래도.

        

       그래도, 오늘은 희망이 조금 보인 것 같았다.

        

       “제가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건, 가장 마지막 순서입니다.”

        

       “…….”

        

       “만약 그럴 마음이 있다면, 다른 아이들을 모두 설득해 보십시오. 당신 손에 달렸으니까.”

        

       “……그런가.”

        

       황제는 잠깐 하늘을 올려보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래, 한 번 해 보겠다. 세계 정복보다 어려울 것 같긴 하다만.”

        

       “그래도 달성 확률 자체는 조금 쉽지 않겠습니까. 이번엔 제가 적은 아닐 테니까.”

        

       내 말에 황제는 짧게 소리 내 웃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개를 들어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구 외전은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습니다! 이제 본편의 후일담 몇 편만 쓰면 이 소설도 완결이네요!

    언제나 저의 글을 사랑해주시는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