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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2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사막 아래의 지하. 훤히 드러난 밤하늘을 구경하던 해골은 기나긴 세월이 흐르고 마주하게 된 하늘의 풍경에 웃음을 지었다.

   

   신기하군. 밤의 하늘이 본래 저토록 아름다웠었나?

   

   원본이 새겨 준 기억 속의 밤하늘은 그저 지긋지긋한 불행의 징표일 뿐이었는데 어찌하여 현실의 밤은 저토록 반짝이는 것인지.

   

   어쩌면 원본은 내가 세계의 바깥을 궁금해하지 않기를 바란 걸지도 모르겠구나.

   

   내가 바깥의 정경에 호기심을 가진다면 이 곳을 버리고 바깥으로 나가려 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해골은 에르기누스의 걱정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만일 자신이 저 광경을 머리에 새긴 채 긴 세월 동안 이 곳에 남아 있었다면 분명 이 곳을 뜰 방법을 찾아 헤맸을 테니까.

   

   “헌데 에르기누스여. 당신은 어찌하여 내게서 요정의 기억은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제가 영원히 이 곳을 지키길 바라셨다면 그 행복했던 기억 또한 가져가셨어야지요.”

   

   그랬다면 지금처럼 간절한 마음을 품었을 리도 없을 터인데. 피식 웃음을 흘린 해골은 밤하늘에서 시선을 떼고 천장을 메웠다.

   

   “방금 전의 풍경은 몇 번을 되새겨보아도 납득이 안 되는 군.”

   

   여러 폭탄과 스크롤을 엮어 폭발력을 증대시킨 것까지는 알겠다. 폭발 과정에서 생긴 충격이 스크롤에 무언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도 짐작은 가.

   

   그렇지만 그 영향이 왜 에르기누스의 마법을 부수고 어지간한 재앙 속에서도 멀쩡해야 할 천장을 부수는 결과물을 낳는단 말인가.

   

   “주신이시여. 당신은 도대체 저 아이에게 무얼 알려주신 겁니까.”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에 한탄의 말을 내뱉은 해골은 허공에 환상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파괴의 풍경을 담은 그림을 말이다.

   

   아직 몇 개월이란 시간이 남아 있으니 그 동안 이거나 분석하고 있자꾸나.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현상이 존재하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오랜만에 승부욕이 생긴 해골이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려는 그 순간 그가 도사리는 던전의 입구에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정보가 그에게 흘러들어왔다.

   

   허. 몇 년에 하나 들어올까말까한 것이 이 곳인데 하루에 두 무리나 손님이 들어오다니.

   

   우연일리는 없을 터이고 그 건방진 꼬맹이의 뒤를 따라 온 것들인가.

   

   루엘. 그 놈. 꼬맹이 옆에 붙어있으면서 이런 것 하나 잡아내지 못한 거냐.

   

   이런 부분은 세월에 따라 낡아빠졌는데 어찌하여 그 고집만큼은 그대로인지.

   

   해골은 다음에 만났을 때에 한심하단 말을 전하겠다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지팡이를 붙잡았다.

   

   침입자들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보면 공허의 악신을 모시는 잡놈들인 듯 한데. 마침 잘 됐군.

   

   현대의 마법사가 내게 참신한 발상을 알려준 참이잖은가. 그를 이용한다면 저들을 손쉽게 가지고 놀 수 있을 터.

   

   “그 꼬맹이에게 받은 짜증을 저 녀석들에게 풀어보도록 할까.”

   

   해골은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발을 움직였다.

   

   *

   

   “…저희가 한 일이 없는데 이런 보상을 받아도 될는지요.”

   

   용병단장은 내가 내민 금화를 보고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드러냈다.

   

   애초부터 돈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면서. 뭐 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돈을 받으면 오히려 자신들이 곤란해진다며.

   

   손사래를 치는 그의 모습을 보던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품 안에서 금화를 몇 개 더 꺼냈다.

   

   “여. 영애?!”

   “뭐야? 이걸로도 모자라단 거야?”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저희는 그저.”

   “흐응. 알겠어. 내가 욕심많은 아저씨를 위해 특별히 호구가 되어 줄게. 어디 한 번 뜯어갈 수 있을 만큼 뜯어가 봐.”

   “제발. 알른 영애. 이러시면 제가 베네딕 경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한 쪽은 더 퍼주겠다 그러고 한 쪽은 제발 주지 말라 비는 기묘한 상황 속에서 결국 백기를 든 것은 용병단장이었다.

   

   괜히 말을 더해봐야 자꾸만 상황이 불리해질 뿐임을 깨달은 그는 어쩔 수 없이 창백해진 손으로 내가 내미는 돈을 받아들었다.

   

   “돈 필요 없다더니 마음에 드는 액수 되니까 냉큼 받는 것 좀 봐. 연약한 여자아이를 겁박해서 이렇게 돈을 뜯어내다니. 완전 귀축이야.”

   “…아니. 전 필요 없다 했는데 영애께서 굳이.”

   “맞아요. 제가 자발적으로 드렸어요. 그러니까 화내지 마세요. 저 너무 무서워요. 혹시 돈이 부족하세요? 그럼.”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발 살려주십시오. 알른 영애. 이러다 저 정말 베네딕 경에게 반으로 찢어질 것 같습니다.”

   

   수많은 용병들을 하나의 군처럼 운용하는 남자가 무릎을 꿇고서 비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유쾌함을 넘어 짠함이 치솟아 올랐다.

   

   돈으로 갑질하는 것도 성격에 맞는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알았으면 그냥 주는 대로 받아. 은혜니 뭐니 지껄이면서 착한 체 하지 말고. 돈에 미쳐서 사는 용병이 기사인 체 해봐야 같잖을 뿐이거든.”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왜요?”

   “아뇨. 조언 감사합니다. 귀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슬며시 존댓말을 꺼내 들었더니 용병단장이 질겁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진작에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다음에 부를 때 냉큼 달려와. 안 그럼 네가 날 협박했다고 파파한테 말해버릴 거야.”

   “목숨을 내다버리는 한이 있어도 부름에 응하겠습니다.”

   

   용병단장과 헤어지고서 친구들에게로 돌아왔더니 아서와 조이의 시선이 미묘했다.

   

   “왜 그딴 눈으로 보세요?”

   “내 알기로 알른 가문이 그리 부유한 가문은 아닐 터인데 어디서 그런 돈이 나왔나 싶어서 말이다.”

   “저도 그건 궁금해요. 아예 돈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는데 금화를 잔뜩 건네주시다뇨.”

   

   음. 확실히 내가 방금 전에 건네 준 돈은 귀족 가문의 영애가 가볍게 베풀기엔 너무 큰돈이긴 하지.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뭐 이상한 거에 엮인 게 아닐까 의심했을 걸?

   

   당장 몇 달 전의 나도 저만한 돈을 휙휙 던질 정도로 풍요롭진 않았어.

   

   변태사도가 내 손에 말도 안 되는 거금을 쥐어주기 전까지는 말이야.

   

   ‘들으셨겠지만 알른 영애의 그림이 그려진 장신구는 저희가 총력을 다해 생산하고 있음에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성황리에 판매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희 신도들은 행복 속에서 죽어가고 있지요.’

   ‘영애께서 기꺼이 허락해주시지 않으셨더라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터. 그러니만큼 저희가 장신구로 얻은 수익 중 일부를 영애께 드리는 것이 순리.’

   ‘자잘한 것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순수익 중에서 사용할 걸 쓰고 남는 걸 드리는 거니까요.’

   

   변태사도가 내게 쥐어준 돈의 단위는 금화가 아니었다.

   

   백금화. 금화 열 개가 뭉쳐서 하나가 되는 막대한 돈. 그런 화폐가 주머니 안에 다섯 개나 들어있었다.

   

   주머니 안에서 반짝이는 돈을 본 순간 나는 저도 모르게 장신구를 더 만들자는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아니! 생각을 해 봐! 커다란 영지를 1년 동안 운영할 수 있는 돈이 일순간에 들어왔다고! 한 번만 쪽팔림을 참으면 얼마나 큰돈을 벌 수 있을지!

   

   변태사도는 내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 완벽하게 준비를 끝마친 후 나를 부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의 눈에 담긴 열정을 본 순간 괜한 말을 내뱉었단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그 때는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변태 사도 그 녀석. 대체 무슨 준비를 하고 있길래 한참 동안 연락을 하질 않는 걸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안해져. 이게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마음인가.

   

   하여튼 내가 장신구의 판매로 인해 얻은 수익이 있다고 설명을 하자 친구들이 자연스레 납득을 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내 장신구가 퍼져나가는 속도가 무척 빨랐던 거겠지.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으면 우리를 위해 좀 쓰는 게 어떤가.”

   “제 몸을 팔아서 번 돈을 불쌍왕자님께 쓰라는 건가요? 어쩔 수 없죠. 무력한 귀족은 왕족의 앞에 무릎을 꿇어야…”

   “무력하긴 뭐가 무력하단 거냐! 마음만 먹으면 나 같은 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는 녀석이!”

   

   친구들과 투닥거리며 아카데미로 복귀한 나는 즉시 학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해골이 우리에게 알려준 대로 결계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결정권자인 학장의 허락이 있어야하니까.

   

   나는 그의 허락을 구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이미 학장의 목에 목줄이 걸려 있는데 그가 어찌 내 부탁을 거절하겠는가.

   

   “죄송합니다. 알른 영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허나 학장의 대답은 내가 예상한 것과 달랐다. 그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곤란하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나이를 너무 먹어서 기억력에 이상이 생기셨나요? 치매 할배 목에 어떤 목줄이 걸려 있는지 되새겨 드려나 하나?”

   “저도 마음 같아서는 바로 허락을 해드리고 싶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지금 아카데미에 너무 많은 것들이 관여되고 있는지라.”

   

   아카데미의 상황이 이전과 같았더라면 학장은 기꺼이 내가 결계에 개입하게 해줬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사실상 1왕비와 2왕비 세력의 대리전 양상을 띄게 된 아카데미 내부의 현황은 학장에게서 많은 권리를 빼앗아갔다.

   

   “조금 시간을 주십시오.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는 결계의 마법이 있는 곳에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간절한 학장의 말은 마냥 핑계처럼 들리진 않았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인가. 바란다면 좀 괴악한 방식으로 결계에 끼어드는 게 가능하긴 한데 정상적인 루트로 갈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런 미친 짓을 벌이는 건 좀 그래.

   

   중간고사 기간까지 그리 긴 시간이 남은 것도 아니고 말.

   

   “아.”

   

   잠.

   

   잠시만.

   

   중간고사 기간까지 지금 얼마나 남아있지?

   

   …

   

   

   2주?

   

   벌써 2주밖에 안 남았어!?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은 나는 퍼뜩 자리에서 일어나 학장실에서 빠져나왔다.

   

   큰일났다!

   

   이번에는 지능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진짜 공부할 생각이었는데!

   

   이러다간 또 58의 지능으로 살아야 하잖아!

   

   그럴 순 없어!

   

   이건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란 말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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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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