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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472

       모든 사건이 끝나고, 나는 컨셉조차 포기했다.

        

       그래도 삶은 평범하게 돌아갔다.

        

       해결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남았고, 그 산더미를 다 치운다고 해서 산더미가 또 생기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어차피 산더미이니 그렇게 바로 처리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함께 처리할 사람을 늘려가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

        

       한 삽씩 퍼가면서 처리하다 보면, 뭐, 평생 다 치우지는 못하더라도 약간의 모양을 변하게 할 수는 있을 거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었던 시절에 쌓아둔 인연이 그냥 인연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중에는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굴착기나 다른 중장비 급의 능력을 갖춘 사람들도 많아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손쉽게 처리하는 이들이 있었다.

        

       “자, 네 근성은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검을 다시 들어라.”

        

       예를 들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검성이라던가.

        

       검성 프레데릭 경은 단순히 검만 휘두를 줄 아는 사람은 아니다.

        

       이전에 이미 제국군으로 복무한 적이 있고, 아래에는 수많은 사람을 이끌어본 적이 있는 이였다.

        

       당연히 제국군의 현대화에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 제자인 제니퍼 윈터필드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저는…… 검을 휘두르러 온 것이 아니라—”

        

       “어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을 보니, 아직 힘이 남았다는 것이렷다.”

        

       아니, 사람 말을 끝까지 들어.

        

       내가 검성을 찾아온 이유는 당연히 검술을 배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제국군 현대화를 바란 것도 아니다. 아직 제국군 대다수는 멀쩡했고, 잘 굴러가고 있었다.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현대화된 군대는 제국군이기도 했고.

        

       그보다는, 검성과 똑같이 검에 목숨 거는 다른 사람의 상담을 좀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서 왔던 거였다.

        

       “시간을 몇 번이나 돌려가면서 훈련하여 실력을 늘리던 녀석이, 이렇게 한 번 뛰었다고 투덜거리느냐?”

        

       “그렇다고 황녀한테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십니까?”

        

       내가 분통을 터뜨려 보았지만, 당연히 검성은 황녀라는 지위 따위에 흔들리지 않았다. 하긴 황제한테도 반말 찍찍 날리던 사람인데 황녀는 어떻게 보이겠어.

        

       게다가, 차기 황제의 검술 스승이기도 했고.

        

       그리고 역시나 검성은 나의 말이 시간 낭비라는 듯 손에 든 목검을 매섭게 휘둘러왔다.

        

       좋아, 그렇게 나오시겠다 이거지.

        

       나도 나름대로 몸에 밴 것이 있다고. 검성의 칼 놀림은 몇 번이나 보아왔다. 엄청나게 빠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물러나지 않으며 피한다면—

        

       탁!

        

       내 손에서 날아간 검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

        

       “들지 않겠느냐?”

        

       검성이 물어왔다.

        

       아니, 지금까지 해놓고 안 들겠냐고 물어보면, 안 들 수가 없잖아.

        

       오자마자 상대하게 해놓고 마냥 농락하듯 나에게 칼을 움직여놓은 양반이 인제 와서 그만두겠냐고 물으면 약올라서라도 그만두지 못한다.

        

       나는 다시 칼을 들었다.

        

       “그래야 내 제자지.”

        

       ……후회하셔도 소용없습니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내 실력으로 검성을 이기는 방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내가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능력을 잃었다고 해도 말이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시도하다 보면,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 나는 이미 몇 번이나 그걸 실험해왔으니, 분명 만에 하나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상대가 검성은 아니었지만, 뭐.

        

       내가 양손으로 검을 잡고 자세를 취하자, 검성은 즐겁다는 듯 씩 웃었다.

        

       그래, 말년에 즐거움을 찾아서 기분 좋으시겠어요.

        

       기왕 가르치는 거, 한 번 확실하게 가르쳐 보시던가.

        

       *

        

       오늘은 이기지 못했다.

        

       바닥에 엎드려서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몰아쉬는 나를, 검성은 딱히 탓하지도 않고 내려다보았다.

        

       근성 있게 달려들었던 것이 유효하긴 했나 보다. 마음에 들었던 걸까?

        

       “그래서, 뭘 부탁하러 왔다고?”

        

       “그걸…… 이제야…….”

        

       후우.

        

       나는 숨을 길게 몰아쉰 뒤, 몸을 일으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루카스를 조금 설득해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루카스를? 왜 그렇게 판단했느냐?”

        

       “그야…….”

        

       루카스가 언젠가 당신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될 테니까?

        

       그 말을 어떻게 전해야 조금 예쁘게 포장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검성이 루카스에게 진다는 소리는 죽을 수도 있다는 소리다. 루카스는…… 열정을 잃어버린 지금은 몰라도, 한때는 자기보다 위에 있는 자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던 인간이니까.

        

       여러모로 안타깝게도, 나도 거기 포함되었었고.

        

       “루카스가 뭔가 배울 게 있다면, 상대는 검성뿐이니까.”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검성은 어이없다는 듯 ‘허’하고 숨을 내쉬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루카스가 학문의 길을 걸을 일은 없을 거고, 그렇다고 빵 만드는 법을 배우란다고 그렇게 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나마 소통할만한 상대가 있다면 검성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조금 급하게 덧붙였다.

        

       “혹시라도 루카스가 검성을 벨 생각을 한다면 막을 수 있도록, 충분한 인원을 배치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음.”

        

       검성은 의자에 앉았다.

        

       예전처럼 산기슭의 다 허물어져 가는 오두막에 살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이 집의 배치는 그 시절과 거의 똑같았다.

        

       어쩌면 이게 검성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가구 배치라거나, 뭐 그런 거겠지.

        

       “그러게 말이다. 나도 한때는 엄청 강한 녀석과 싸우다 죽으면 여한이 없겠다고 생각은 했다. 어차피 꽤 많이 살지 않았느냐. 살 만큼 살았으니 가는 순간까지는 즐겁기를 바랐지.”

        

       검성은 목검으로 자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냥 둔기로 쓰면 사람도 죽일 수 있는 검인데도 검성이 그러고 있으니 그냥 안마 도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노인인데도 체격 하나는 훌륭한 사람이었으니 당연한가.

        

       “하지만,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뀌었다. 조금 오래 두고 보고 싶은 녀석들이 생겼거든. 그래서 요즘엔 건강 관리도 하고 있다.”

        

       “……그래서, 루카스와 마주하고 싶지는 않으신다는 것인지요.”

        

       “물론이다. 한때 날 죽이려고 했던 녀석이 아니냐? 기껏 이어가고 있는 명줄이 끊어지게 두고 싶지는 않구나.”

        

       본인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긴 했다.

        

       내가 검성을 억지로 거기 배치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굳이 검성이 바라지 않는 일을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검성 말대로다. 나도 검성의 제자이기는 했으니까. 그 제자 중에서 가장 못난 제자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보다는, 네가 가르치는 것은 어떻겠느냐.”

        

       검성의 말에 나는 입을 살짝 벌리고 검성을 올려다보았다.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너는 내가 루카스에게 무엇을 가르쳤으면 해서 온 것이냐?”

        

       “그야 당연히, 검술, 입니다만.”

        

       그리고 기왕이면 그 검술로 사람과 연을 만드는 법, 그리고 사람들과 좀 사교적으로 사귀는 법도 가르쳐줬으면 했다. 물론 검성에게 정말로 ‘사교’를 바란 것은 아니다. 그건 검성도 잘하지 못하는 것 같았으니까.

        

       내가 노린 것은, 그나마 마음 맞는 사람 둘을 붙여두는 것…… 정도였다. 그래서 마음이 조금씩 열려 사회생활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내가 노리는 거였는데.

        

       “그렇다면 네가 그 검술을 가르치면 되지 않겠느냐.”

        

       “…….”

        

       지금 농담하는 건가?

        

       내가 어이없다는 듯 검성을 올려다보자, 검성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네 능력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라. 네 말마따나 지금의 네게는 그 강력한 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만, 네가 가진 강점은 그 능력 자체가 아니라, 그 능력을 통해 네가 끊임없이 반복할 수 있었던 집념과 끈기다. 덕분에 이미 많이 배우지 않았느냐.”

        

       하지만 나는 그래도 자기객관화가 조금은 되는 인간이다.

        

       내가 아무리 검술을 조금 연습했다 하더라도 루카스의 재능의 발끝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쯤 알고 있다.

        

       마지막 전투에서 루카스에게 총알을 박아넣는 것은 해낼 수 있었다. 그거야말로 그때까지 루카스를 보아온 나라서 할 수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검술로 루카스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당연히, 가르칠 수준도 되지 못했다.

        

       “노력은 네 특기가 아니더냐.”

        

       검성은 목검을 바닥에 딱 부딪히며 말했다.

        

       의자에 앉아있는 노인처럼, 검 손잡이 위에 양손을 겹쳐 올려두고 지팡이처럼 잡은 채 검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

        

       나는 잠깐 검성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번 고개를 끄덕인 뒤, 천천히 몸을 돌려 문을 향했다.

        

       마지막으로 검성을 향해 몸을 돌려서, 나는 말했다.

        

       “그런 자세로 앉아있지 마십시오. 오늘내일하는 노인으로 보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얼른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딱! 하고 문에 뭔가 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이 정도는 할 수 있단 말이지. 이미 몇 번이나 맞아봤으니까.

        

       ……그런데, 루카스한테도 통할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한숨을 푹 쉬고, 검성의 말을 곱씹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마 이번 에피소드가 마지막 에피소드가 될 것 같습니다.

    if if 외전에서 남은 이들이 조금은 밝은 미래를 지향하게 되었는데, 본편에서도 그런 묘사가 없다는 것이 조금 이상할 것 같아서, 말 그대로 후일담의 후일담 에피소드로,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남은 이야기를 담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너무나 감사합니다. 소설을 쓰는 내내 마음이 정말 벅찼습니다.

    마지막까지, 독자 여러분께서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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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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